로마서 6장 1-14절 (예수와 합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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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그림을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저 그림이 뭘로 보이십니까?
어떻게 보면 오리고, 또 다르게 보면 토끼로 보입니다.
우리가 이 그림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림이 오리로, 아니면 토끼로 다르게 보입니다.
그림을 보는 우리의 관점과 같이, 우리가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생각과 관점들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러분들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 이며, 어떤 관점에서 죽음을 생각하십니까?
어떤 사람에게든 죽음은 두렵고 맞이하기 싫은 것입니다.
죽음은 완전한 종말이며 영원한 헤어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례식장을 가면 많은 사람들이 먼저 죽음을 맞이한 자들을 애곡합니다.
하지만 성경적 관점에서 죽음은 완전한 끝이나 종말이 아니라고 합니다.
기독교에서 죽음을 제외하면 사실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 있어야 부활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죽음을 단지 육체의 죽음만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복된 죽음이 있다고 하는 데, 가장 귀한 죽음을 그리스도의 죽음 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에 대한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죽음의 관점을 바꿔서, 우리를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한다 고 합니다.
죽음은 사망과 눈물과 종말이 아닌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며 죄에 대한 죽음 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5장의 내용으로 생긴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바울은 구원의 은혜를 설명하면서 로마서 5장 20절 에서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넘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죄를 지으면 되는 것입니까?
어리석은 이런 질문에 대하여 바울은 본문 1절과 2절에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바울은 죄를 짓는 것을 행위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인식의 증가 라고 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죄를 많이 짓고, 적게 짓는 것, 다른 사람보다 죄를 덜 지었다고 자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더 많이, 더 깊이 깨닫고, 고백 할 때
더 큰 구원과 회복의 은혜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보잘것없고, 무지한 죄인임을 절실하게 깨달을 때
이 모든 것을 덮는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격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3절에서 이렇게 정의 합니다.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바울은 세례를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사는 것 이라 합니다.
세례가 지닌 참 의미가 무엇입니까?
세례는 단지 교회의 정회원이 되기 위하여, 아니면 직분의 자격이나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하여, 교회에서 받을 수 있는 여러 유익을 위하여 시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세례를 그리스도와의 연합 이라고 합니다.
다시 3절을 보시면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였다고 할 때, 합하다 라는 단어를 영어에서 into 라고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뛰어든다. 그리스도 예수 속에 잠긴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는 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내 삶을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뛰어들어 그 속에 푹 잠기는 것을 의미 합니다.
그런데 이 연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는데, 그 방식이 바로 죽음 입니다.
4절 입니다.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우리는 죽어야 살 수 있습니다.
죽지 않으면 예수의 죽음은 우리와 무관한 것이 됩니다.
이것이 죽음을 통한 연합의 은총입니다.
그래서 세례는 옛 사람의 장례식 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무엇에 대한 죽음 입니까?
갈라디아서 2장 20절 입니다.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죄에 대하여 죽는 것 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에 감사하며, 육신의 욕망에 종노릇 하면서 살지 않는 것입니다.
죄의 지배를 받지 않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본문 7절 입니다.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그런데 문제는 여전히 우리는 주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지만, 계속해서 죄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안된다는 것, 죄 사함의 권세를, 용서를 받았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고 하나님보다 죄를 선택할 때가 더 많습니다.
분명 구원을 받았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세례를 받았는데 왜 계속해서 죄를 짓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2001년 9월 11일 온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사건이 미국에서 일어났습니다.
아마 기억하실 것 같은데, 탈레반이 두 대의 민간 항공기를 탈취하여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으로 돌진하였습니다.
수 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한 이 사건으로 인해 그 해 10월 7일 미국은 아프칸 침공을 시작하여 테러를 자행한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하였습니다.
탈레반의 최고지도자와 고위 인물들이 미군에 의해 사망하였고, 그 해 연말에 결국 탈레반 정권이 붕괴되었습니다.
이후 나토 병력 주도하에 치안유지와 지원 그리고 탈레반 잔당과의 교전을 지속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전쟁이 단 두달만에 미군의 승리로 끝나는가 했지만, 지속적인 잔당들의 게릴라전으로 인하여 미군은 20년이 지난 뒤에 공식적으로 철수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연합으로 구원과 회개가 임하였음에도 계속해서 죄를 짓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을 받고, 죄에 대하여 죽은자 되었지만,
죄의 잔재들이 계속해서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연합으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우리 안에 죄의 욕구는 여전하지만, 우리는 죄의 욕구와 욕망의 요구 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5절 입니다.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것은 인격의 성숙과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감으로 나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타인의 유익을 구하고
소유보다 나눔을 실천하고,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기 보다, 희생을 선택하는 삶
이 땅에서의 성공보다는, 하늘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음을 사모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따라가는 것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동일, 연합을 의미 합니다.
즉, 내 삶에 나의 욕구와 욕망이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것입니다.
좌우 사람들과 함께 인사하겠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입니다.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여러분, 지독하게 변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본성 입니다.
제가 어느 책을 보니
요즘 교회와 성도는 죽기를 싫어한다.
악착같이 살아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자신을 무시하면 분노하고 증오한다.
너는 죽고 나는 살기를 원한다.
삶에 본은 없고, 지적과 비판과 논쟁 뿐이다.
천하보다 귀한 사람의 가치를 무시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너무나도 쉽게 짓밟는다
라는 글을 봤습니다.
이 글이이 다른 사람이 아닌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교회와 성도의 모습 이라고 합니다.
이런 죄의 본성의 변화가 임하기 위한 유일한 길과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수 많은 학문과 방법들로 하나님을 찾고, 변화를 추구하고, 죄와 죄의 본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우상숭배 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죄에 대하여 완전히 죽은 자 라고 선언 합니다.
죽은 자는 생명도, 활동도, 생각도 없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죄를 지을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 안에 살아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길을, 예수의 삶을, 사랑을, 인격을 믿고 배우며 닮아가며 함께 걸어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를 고백하는 자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는 자 입니다.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삶을 내어드리는 자 입니다.
멈추라 하실 때 멈추고, 돌이키라 할 때 회개하며 돌이키는 자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로 향하는 길이 유일한 길이 아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미 정답이 무엇인지 보여주시고,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선택하고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매 순간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직장에서, 사람을 대할 때, 무언가를 추구하고 가치를 매길 때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고,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인지를 매 순간 기도하면서 고민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임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것 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이 사실임을 알기에
믿음으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삶으로 그리스도의 인격을 배우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에 중립지대는 없습니다.
한쪽에는 예수 그리스도, 다른 한쪽은 세상에 양다리를 걸치며 살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말로만 종교인이 아닌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예수와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상의 많은 유혹과 나 중심적 사고와 내가 살기 위한 죄의 욕망을 선택하지 않고
나의 입술과 마음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가는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 합니다.
말씀을 정리 하겠습니다.
미국 트리니티 대학의 조직신학 교수인 웨인 그루뎀은
회개는 죄에 대하여 진심으로 슬퍼하는 것, 죄를 버리는 것, 죄를 버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그리스도께 순종하며 사는 것 이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딱 붙어서
그리스도의 삶을 배우고 순종하며, 이 땅에서 그리스도로 살아가야 하는 자들 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하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그리스도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말하고 행동해야합니다.
새벽에 열왕기서를 통해 아합과 이세벨의 이야기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를 통하여 수 많은 기적과 말씀이 선포되지만, 항상 그들의 선택은 자신의 욕심과 욕망 뿐입니다.
심지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마저 파는 악한 모습을 봅니다.
그 마음 안에 죄의 욕심과 욕망이 가득 차 있기에 그들의 입, 행동, 생각, 계획은 모두 악하고, 다른 사람을 해치고 빼앗는 것 뿐입니다.
지금 내 안에 누가 살아 있습니까?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하며, 무엇을 계획하고 고민하고 기도합니까?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한 말과 삶과 계획과 행동으로 가득 차기를 소망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죄를 사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삶의 근본적인 변화와
죄의 종노릇이 아닌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여 영원한 생명을 살아가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