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 고등부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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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축복의 통로

본문: 민수기 6:24–26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복 좋아하는 대한민국 사람

대한민국 사람들이 복을 참 좋아합니다. 저는 무속인에 대해서 접할 기회가 없어서 잘 몰랐는데, 정치 문제에서 항상 등장하는 사람들이 무속인입니다. 무속인들이 하는 말을 정치인들이 따르는 모습을 흔하게 보게 됩니다. 거기다가 무속인들이 연애하는 예능도 등장했어요. Chatgpt에서 많이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도 점을 보는 컨텐츠라고 합니다. 저는 엄청 먼 이야기 같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사람에게 정말 흔한 이야기 중 하나가 무속신앙입니다. 무속신앙을 통해 원하는 것이 복입니다. 복을 받기 원하죠.
기독교 안에도 ‘기복신앙’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물질에 대한 축복, 건강, 성공 등을 얻기 위한 신앙을 말합니다. 기복신앙으로 생겨난 것이 복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믿음이 좋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직분을 사회적 계급, 재산 보유로 주는 경우도 생겼죠. 오늘날 한국교회가 무너진 이유를 기복신앙으로 보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너무 ‘복’만 바라는 신앙의 문제들이 오늘날 열매로 생겨나게 되었다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복’을 구하는 것이 잘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건데, 우리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복’을 구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복’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복과 하나님이 주시려는 복이 다릅니다.
옛 선조들은 다섯가지의 복 ‘오복’을 말했습니다. 오복 안에 들어가는 것은 장수에 대한 복(건강), 재물에 대한 복(물질), 몸과 마음이 편안한 복 그리고 덕에 대한 복과 마지막으로 잘 죽는 것도 복이라 말합니다. 옛선조들의 말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바라는 복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러나 조금 달라진 것은 재물에 대한 복, 특별히 물질이라고 불리는 것이 건강, 마음의 편안, 덕, 잘 죽는 것까지 대체되면서 물질에 대한 복을 많이 바라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복을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려는 복은 이런 복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 포함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질은 아닙니다. 물질이 많다고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저주일 때도 있습니다. 얼마를 갖느냐보다 내가 가진 것에 얼마나 감사하는지를 아는 사람이 복되다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 10절에서 ‘가난한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말했습니다. 물질이 많아서 모든 것을 가진 것이 아니라, 가난하여도 모든 것을 가졌다 말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오늘 축복은 그 어떤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겠다는 축복입니다.
어노인팅 찬양 중에 제가 좋아하는 찬양이 하나 있습니다. ‘복이라’하는 찬양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복이라 주님의 마음 아는 것이 축복이라 주님과 함께 걷는 것이 복이라 주님의 사랑 노래함이 행복이라’
찬양의 고백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기에 축복이고, 행복이라 말합니다. 그 어떤한 것이 나에게 있어서 행복함이 아니라, 나를 가장 잘 아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복이라 말합니다. 찬양을 만든 사람도 분명 물질이라는 것을 쫓으며 살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임을 발견하여 그는 이 찬양을 만들었을 겁니다. 나에게 무언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하나님만이 나의 복되심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바울도 같은 고백을 합니다. 고린도후서 6장 10절에서 ‘가난한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이다 말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고백하는 겁니다. 오늘 우리이게 주신 이 말씀도 그 어떠한 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찬양을 만든 사역자도, 바울도 복의 근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 어떠한 복보다 하나님이 복임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우리에게 무엇이 정말 필요한지, 우리에게 무엇이 복되는지 알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복임을, 하나님만이 우리이게 필요한 존재임을 알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넘어집니까? 관계, 성적, 가정 여러가지 문제들로 넘어질 겁니다. 절망하고 낙심하는 문제들이 각자 하나씩 있을 겁니다. 그럴때 우리에게 무언가가 없어서 절망한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모든 것을 가진 자임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의 복되심을 믿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간절히 필요한 것은 어떠한 물질도 아니라, 하나님임을 고백합시다. 찬양의 고백처럼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복입니다. 고백하는 우리 모두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고백할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오늘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의 얼굴을 은혜로 빛나게 하시고, 우리에게 평강 주실 것입니다.

복을 가진 사람

여러분 복을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복의 사용방법입니다. 아무리 좋은 핸드폰 있어도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한다면 안되겠죠. 이처럼 복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을 주시고 머물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광야로 나아가게 하셨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복을 나만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복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인생으로 인도하신 겁니다.
성경 안에서도 복을 받았지만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라멕’입니다. 라멕은 창세기 4장에 나오는 가인의 자손입니다. 라멕이 받은 축복과 은혜가 무엇이었나면 자신을 헤치는 사람에게는 7배의 벌을 주는 축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은혜는 가인에게서 시작된 것입니다.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벌을 주셨는데 그 벌이 무거워 하나님은 가인을 헤치는 자에게는 7배의 벌을 주셨습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누군가 나를 괴롭히고 해치면 7배의 벌을 받는 겁니다.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런데 라멕은 그 축복을 가지고 누군가를 헤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랑스럽게 가인을 헤치는 자에게는 7배의 벌이고, 자신을 헤치는 자에게 벌을 77배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가진 축복,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그 은혜를 가지고 누군가를 헤치고 죽이는 자가 되었다는 겁니다.
라멕과 반대되는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노아입니다. 노아는 라멕처럼 강한 용사도 아니었습니다. 훌륭한 기술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를 주목합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였습니다. 그의 모습은 다른 사람보다 특별하지 않았지만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에게 큰 복을 누리며 사는 자였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축복의 모습과는 다를지 모르지만 그는 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노아를 통해 세상을 구원할 배를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왜 복을 주십니까? 그 복을 나만 누리고 살아가라고 주실까요?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내보내면서 하나님은 그러기 원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 복을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인 복을 주시면서, 그 복을 나누며 살아가도록 이 땅에 보내신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복을 가지고 있지만 누군가는 라멕처럼 복으로 억압하고 폭력을 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반대로 누군가는 복을 가지고 누군가를 구원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복은 모두에게 주어졌지만, 복을 사용하는 방법은 달랐습니다.
우리 산본교회는 축복의 통로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축복을 왕창 받는 사람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교회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나누며 살아가자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복을 주시면서, 우리를 지키고, 우리에 얼굴을 빛나게 하시고, 우리에게 평화를 주겠다 말씀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에게 복을 나누며 살아가야 합니다. 누군가를 보호하고 지키는 사람으로, 누군가에 얼굴에 빛이 나게 하는 사람으로, 분열과 다툼이 아니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복을 받은 사람이고,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결론

민수기 안에 가장 큰 주제 중 하나가 바로 불평과 원망입니다. 이번주 불평과 원망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고 했는데 제 마음을 아프게 하는 뉴스 때문에 주제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바로 부산에서 자살을 한 학생들 뉴스였습니다. 주일 저녁에 보았던 뉴스가 제 마음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혼자의 선택도 아니라 왜 서로 그런 선택을 해야 했을까,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이 어떤 존재인지를 꼭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존귀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하는 존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기에 그 무엇도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넘어지는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실패한 사람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때로는 하나님마저 나를 버린 것처럼 느껴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꼭 이걸 말하고 싶어요. 저는 세상이 말하는 사역자로서는 실패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나이가 많아요. 김예성 목사님, 박민주 목사님 저 보다 2살이 어립니다. 그런데 저는 전도사이고, 그분들은 목사님이세요. 또 저는 어떤 라인이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어릴 때 다녔던 교회는 교단이 다릅니다. 그런다고 부모님이 목사님도 아닙니다. 조금 웃긴 말 같지만 사역자 사이에도 성공하는 라인이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교회에서 전도사가 되어서, 몇살까지 목사가 되고, 부목사로 나가고, 외국에서 공부하고 그렇게 되어서 담임목회를 나가는 정말 입에 담기도 어려운 절차가 있습니다. 저는 그 절차 안에서 실패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저는 원망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늦게 와서 감사합니다. 제가 그 절차 안에 있었다면 경쟁하며 살았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저 변두리에 있으니까 무엇이 중요한지 알게 됩니다. 여러분 늦었다고 실패한 인생 아니고, 빠르다고 성공한 인생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탄탄대로 밟으며 살다가 괴물이 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마지막에 불평 불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많습니다. 오히려 늦은 것 같은데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축복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게 집중합시다. 여러분 무너지는 마음이 들때면 하나님에게 기대십시오. 실패한 것처럼 느껴지는 삶이라면 하나님을 붙잡읍시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특권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기에 결단코 우리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여러분 주변에 부산에 학생들과 같은 친구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 가진 복,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들에게 복을 나누며 살아가십시오. 누군가를 보호해주는 사람이 되세요. 누군가의 얼굴이 빛나게 하는 사람 됩시다. 그것이 웃음이든, 배려이듯, 선한일이든 얼굴을 빛나게 해주십다. 그리고 마음의 평안을 줄 수 있도록 기도하며 복을 전하며 살아갑시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는 이 땅에 보내신 이유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때 누군가가 다시 살고자 하는 힘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아니 누군가는 그냥 피식 웃는 정도인데 그게 그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면 그 인생 얼마 축복된 인생입니까? 오늘 우리 그 축복된 인생을 꿈꿔봅시다. 소망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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