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5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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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절차와 문화
장례 절차와 문화
말씀을 전해드리기에 앞서서 한 가지 안내 말씀이 있습니다. 어제 저녁에 허판석 권사님의 어머니가 되시는 고 이기남 집사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장례 일자가 나오는대로 문자로 안내해드릴 예정이니 함께 참석해주시거나 일정이 안되시는 분들은 따로 유족분들을 위로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도 여러 차례 교회에서도 장례를 경험하고 가족 장례 또한 세번 정도 치르면서 그 장례 절차를 많이 봐왔는데요. 그 중에서도 그 장례 절차에 대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미국 크리스천들의 장례 절차였습니다. 제가 올더스게이트 연합감리교회에서 사역을 했을 때, 그곳이 한국인 목사님이 섬기시는 미국인 교회였는데요, 한 성도님의 가족의 장례를 치르게 되어서 교회를 방문했는데, 그 분위기가 너어어어어어무 밝은 겁니다. 저는 장례식이 아니라 무슨 축제에 온 줄 알았어요. “아니 아무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천국에 가셨다고 믿는다고 해도 장례식인데 서로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고 하는게 이게 아메리칸 스타일인가?”싶었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한국 땅과 다르게 미국은 땅이 너무 넓어서 장례를 치르려면 가족들이 기차가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와야하는 겁니다. 그래서 장례를 치르려면 한국은 입관, 발인, 화장 혹은 매장 까지 3-4일이 걸려서 진행되지만 미국에서는 보통 그런 절차는 가까운 가족 친지들만 개인적으로 2-3시간 안에 끝내버리고 추모하는 추모식은 가족들이 시간 맞춰서 모일 수 있는 몇달 뒤에나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고인을 위해 아프고 슬퍼하는 감정들은 가족들끼리 다 추스른 다음에 교회에서 성도분들과 함께 추모예배를 드리고 조금은 밝은 분위기에서 장례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는 곳이 다르면 장례 절차도 이렇게 다르구나 라는 것을 보게 된 적이 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창세기 50장의 말씀은 드디어 저희가 함께 읽어온 창세기의 단원을 마무리하는 내용인데요, 야곱과 요셉의 죽음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요셉이 야곱의 장례를 치르는 장면이 유대인의 관습이 아니라 이집트의 관습과 문화로 장례 절차를 진행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이집트의 장례 문화
이집트의 장례 문화
1절부터 보시면 요셉이 아버지인 야곱에게 막 울면서 입맞추고는 2-3절에 야곱의 몸을 향으로 처리했다. 그리고 이 향처리 하는데만 40일이 걸렸고 이집트 사람들이 70일을 애도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장면은 사실 유대인들에게는 굉장히 생소한 장면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유대인들의 장례는 율법과 관습에 따라서 “즉시 매장”하는 것이었어요. 신명기 말씀을 보면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시신을 밤새도록, 다른 말로 하루가 지나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지내서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땅을 더럽히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무슨 생물학적으로 시신이 부패하니까 그렇게 하지말라는 뜻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율법에서는 시신을 만지거나 하는 행위를 부정한 행위라고 이야기합니다. 민수기 말씀에서도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사람의 시신을 만진 사람은 7일 동안 부정하다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이것은 시신을 만진 행위가 죄에 해당할 정도로 악한 행위가 아니라 이 사람이 하나님의 성소에 접근할 만큼의 정결함이 사라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정결 예식을 치르면 다시 정결해져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렇다보니 기본적으로 유대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신은 그 당일, 혹은 24시간이 지나기 이전에 땅에 묻고, 7일 동안 애도하는 기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말씀에서는 야곱의 시신을 향처리하는데만 40일이 걸렸다, 그리고 이집트 사람들이 70일동안 그를 위해서 애도하는 기간을 가졋다고 이야기하는데요, 이것은 이집트의 미라를 만드는 과정 중에 하나입니다. 부패할 수 있는 장기는 빼고 약품 등으로 시신을 보존할 수 있도록 하고 70일 동안 염장을 합니다. 물론 이렇게 까지 정성스럽게 하는 것은 파라오와 귀족들 정도만 이렇게 할 수 있는 아주 비싼 미라 제작법이라서 요셉이 총리였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율법이 나중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야곱의 장례는 율법에서도 금지하는 장례 방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인 야곱이 이집트 방식으로 장례를 치뤄졌다는 것이 이상한 장면입니다. 왜 이렇게 했을까요?
4-5절 말씀을 보시면 요셉이 바로의 궁전에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그대들이 나를 너그럽게 보아준다면, 부디 왕께 말씀 좀 전해주시오. 우리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놓은 묘실이 있으니 거기에 나를 묻어다오”하시고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했소. 부디 내가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지내고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전해주시오” 그리고 6절에 정말로 바로가 그 맹세대로 행하라고 허락해줍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이집트에서 이집트의 방식대로 행한 것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요셉이 아버지와의 맹세인 가나안 땅에 장사지내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7-8절에 보시면 요셉이 아주 어린 아이들과 가축들만 고센 땅에 남겨놓고는 파라오의 신하와 원로와 온 집안과 형제들을 데리고 야곱을 장사지내기 위해서 가나안땅으로 올라갑니다.
심지어는 9절에 요셉을 호위하기 위한 병거와 기병이 함께 따라가서 아주 많은 사람이 그 길에 올랐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10절에는 요단강을 건너서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렀을 때, 요셉이 아버지를 위해서 7일 동안 애곡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이건 굉장히 이상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지도를 생각해보면 이집트는 가나안땅의 남서쪽에 있습니다. 그래서 북동쪽으로 가면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 이삭과 리브가 부부, 그리고 야곱의 부인인 레아가 묻혀있는 막벨라 굴에 갈 수 있는데, 요단강은 막벨라 굴에서 북동쪽으로 150km나 더 가야합니다. 요셉이 길을 잃어서 그랬을까요?
이건 사실 요셉이 진짜 요단강을 건넜다, 라는 문자적인 의미라기 보다는 요단강을 건넌다는 말 자체가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는 표현입니다. 저희도 오늘 함께 찬양할 때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라고 찬양했잖아요? 진짜 비행기 타고 이스라엘로 가서 요단강 건너가서 “아유~ 장로님 권사님 오랜만이에요”하겠다는 뜻이 아닌 것처럼 요셉이 요단강을 건넜다는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나안 땅, 하나님께서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하신 그 땅에 들어선 겁니다.
그렇게 가나안 땅에 입성하자마자 요셉이 야곱을 위해서 7일 동안 애곡했다는 것은, 약속의 땅에 도착해서는 바로 유대인의 관습대로 7일 동안 애도하는 기간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비록 이집트의 장례 풍습인 미라를 만들긴 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땅, 요셉의 조상들의 땅인 본향에 돌아갔을 때는 하나님께서 주신 방식대로 장례를 치른 것입니다.
12-14절에 보시면 결국 그렇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아버지가 그들에게 명한대로” 행해서 막벨라 굴에 장사하고 이집트로 돌앙오게 됩니다.
형제들을 용서함
형제들을 용서함
이렇게 야곱을 장사지내고 나니까 요셉의 형들이 15절에 보시면 “야야… 아버지도 돌아가셨는데 요셉 이 놈이 우리가 전에 팔았던거 가지고 해코지 하려는거 아니야? 이전에는 아버지 눈치라도 봤지 이제 돌아가셨다고 우리한테 어떻게 할 수도 있어!”하면서 요셉한테 거짓말까지 하면서 살길을 찾습니다.
16-17절에 ‘요셉님, 사실 아버지께서 전하신 말씀이 있는데… 아버지가 “네 형들이 너한테 악을 행했더라도 용서하라”라고 하셨어요. 부디 저희를 좀 예? 용서해주세요’하면서 야곱이 한 적도 없는 말을 이야기합니다.
요셉이 이말을 들으면서 울고 있는데 형들이 또 납작 엎드리면서 하는 말이 “아이고, 저희가 당신의 종들입니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아부를 막 합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들을 용서하면서 “형님들, 부디 무서워하지 마세요. 제가 무슨 하나님을 대신하기라도 하겠어요? 형님들이 저를 해치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오히려 선으로 바꾸셔서 오늘처럼 수많은 박생들의 목숨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니 무서워 하지마시고 제가 형님들과 자녀들도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형들은 거짓말까지 하면서 아버지와의 약속으로 요셉의 용서를 얻어내려고 했지만, 도리어 요셉은 아버지인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도하셨다고 말하면서 형들을 위로하고 용서합니다.
요셉의 장사지냄
요셉의 장사지냄
그리고 22-23절에 보시면 요셉 또한 이제 110세까지 살면서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다고 하는데요, 이게 한국어로는 에브라임의 자손으로 삼대를 보았다고 하는거니까 에브라임의 아들의 아들의 아들, 고손자로 오해할 수도 있는데요, 히브리어에서는 숫자를 이야기할 때 그 시작을 포함합니다. 그러니까 에브라임을 포함해서 에브라임의 아들의 아들, 증손자를 보았다고 이해할 수 있겠죠.
이렇게 증손주까지 볼 만큼 오래오래 살면서 요셉은 25절에 자손들에게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반드시 돌보실테니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고 맹세해다오”라고 유언을 남깁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돌보실 것이다 라는 말은 히브리어 원문의 뉘앙스를 살리면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돌보실 날이 올 것이다” 혹은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나타나실 때” 정도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서 요셉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요셉또한 아버지와 같이 이집트에서 이집트 방식대로 미라로 만드는 장례절차를 거칩니다. 이또한 야곱과 같이 요셉이 추후에 자신의 시신이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옮겨지게 될 것을 예비하는 장면입니다.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출애굽기에서는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나왔다고 이야기하구요
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 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여호수아에서는 정말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요셉의 시신을 세겜에 장사하였다, 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세겜땅은 아버지인 야곱이 창세기 33장에서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입니다.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고 이름 붙인 제단을 쌓아올린 지명인데요, 비록 막벨라 굴은 아니지만 아버지인 야곱이 산 땅이니까 본향에 묻힌 것이나 다름 없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본향, 그리고 해하려 하였으나 선으로 바꾸사
본향, 그리고 해하려 하였으나 선으로 바꾸사
오늘 말씀은 야곱과 요셉의 죽음, 그리고 장례에 대해서 독특하기 이집트의 방식인 미라로 장사지냈지만 그것이 결국엔 그들로 하여금 요단강을 건너서 본향에 묻히도록 하는 것임을 보았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정말 신기한 것 같습니다. 하필이면 요셉이 “이집트”로 노예로 팔려간 것이 단순히 나일강의 곡창지대를 통해서 칠년 풍년 칠년 흉년 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미라를 만드는 장례 풍습마저도 본향땅인 가나안 땅에 묻히기 위한 하나님의 예비하심인 것이죠. 지금까지도 무려 수천년 전의 이집트 미라가 멀쩡한 모습으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400년이나 지난 후손인 모세가 그 시신을 가지고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렇게 오랫동안 피라미드도 높게 쌓아가면서 왕의 시신을 보존하고자 하는 이집트였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저희가 살면서 겪는 많은 풍파가 있습니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갇히는 것 만큼의 풍파는 아닐지는 모르지만 여러가지 삶의 어려움들이 저희를 괴롭게하고 힘들게 합니다. 저도 사실은 주의력 결핍 장애 소위 ADHD로 알려진 병의 징후가 어렸을때부터 지금까지 있는데요, 살면서 단 한순간도 아무생각도 없이 머릿속이 말끔하게 비워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막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제가 읽고 있던 교과서 내용 중에 재밌는 내용이 있어서 큰 소리로 읽다가 혼난적도 있고, 하루에도 여러번 우울했다가 기분좋았다가 하는 걸을 왔다갔다 하는 감정이 조절이 잘 안되는 것은 지금까지도 남아있습니다. 아직 검사를 받아본 적은 없는데 “검사 받아봐야지, 해봐야지”생각하고선 5년째 까먹어서 안가고 있는 걸 보면 확실히 있는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이런 기질인 것이 어렸을 때는 방금 누군가가 말한 것도 집중을 못해서 못듣거나 까먹어서 놀림도 받고 상댑방이 “내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구나”라고 오해하는 일이 많아서 너무 힘들었는데요, 지금은 오히려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더라구요. 제가 집중을 못하고 “와! 이거 재밌겠다!”하고 만져본 것들이 바로 컴퓨터 만지는거, 게임하면서 언어 배우는 거, 악기 다루는거, 노래 녹음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것들이 지금은 다 사역하는데 귀한 경험으로서 다른 전도사들은 못하는 걸 제가 교회 사역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하고 있는 걸 보니까 너무나도 감사하더라구요.
오늘 본문말씀에도 요셉이 겪은 풍파가 하나님께서 요셉을 괴롭히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본향 땅에 돌아가도록 하시기 위해서 예비하신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또한 중간에 짧게 언급되었지만 형들이 요셉을 해하려 한 것도 요셉이 하나님께서 선으로 바꾸셔서 구원하게 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저희가 살면서 겪는 풍파들 역시, 하나님께서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본향 땅, 천국으로 부르실 때까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셔서 구원하게 하시는 역사를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하나님께서 저희를 본향 땅으로 부르실 때까지 해야할 일은 비록 형들이 자신을 해하려 하였으나 선으로 바꾸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형제들을 용서한 것처럼 우리를 괴롭게 하는 자 조차 용서하고, 또한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일입니다.
결론
결론
그래서 오늘 함께 기도하실 때에는 저희가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장사된 야곱과 요셉처럼 하나님께서 본향 땅인 천국으로 저희들을 부르실 때까지, 저희가 겪는 어려움과 고난이 하나님께서 선으로 바꾸셔서 역사를 이뤄나가시는 것임을 믿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해달라고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서로 다투고 미워할 수 없습니다. 함께 부른 찬양처럼 다 요단강 건너서 본향인 천국에서 만날 사람들입니다.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나아가고자 하기 때문에 더욱더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과, 또한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저희의 삶을 인도하심을 믿고 감사하며 나갈 수 있는 요셉의 마음을 허락해주시기를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