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의 노래, 영혼을 살리는 예배 2025 0702 시9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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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 / 29장 성도여 다 함께
공동체성경읽기 시편 92-101편
12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13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14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15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영혼을 살리는 예배에서 삶을 살리는 능력이 나옵니다.
안식의 노래, 영혼을 살리는 예배
안식의 노래, 영혼을 살리는 예배
(서론) 쉼을 잃어버린 시대, 안식의 노래를 듣다
(서론) 쉼을 잃어버린 시대, 안식의 노래를 듣다
세상의 분주함을 뒤로하고 주님의 집에 나아와 함께 예배하는 모든 성도님의 삶 위에 하늘의 평강이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참으로 쉼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도 안 그래야 하는데, 잠들기 전 꼭 스마트폰을 보게 된다. 이제 좀 쉰다라는 마인드인데, 의사들은 한결같이 그것은 전혀 쉬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 또 우리가 잠들어서 그렇지, 스마트폰은 24시간 우리를 세상과 연결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바쁠 일도 아닌데, 우리를 바쁘게 만드는 것들도 많다.
그렇게 쉴 새 없이 달리고 또 달리지만, 이상하게도 우리의 마음은 점점 더 공허해지고, 우리의 몸은 이유를 알 수 없는 피로에 지쳐갑니다.
‘열심히 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이 다른 말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입니다. 마치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지만, 체인이 빠진 자전거처럼 헛돌기만 할 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무력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펼쳐 든 시편 92편의 표제는 아주 특별합니다. 바로 ‘안식일의 찬송 시’입니다. 안식일. 이 단어는 쉼 없이 달려온 우리에게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게 하는 하나님의 초대장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안식은 단순히 활동을 멈추는 ‘쉼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방향키를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다시 맞추는 ‘재조정’의 시간이며, 헝클어진 내면의 질서를 바로잡는 ‘영적 조율’의 시간입니다.
구약의 안식일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며 예배하는 거룩한 주일(主日)로 이어졌다면, 이 시편은 오늘 예배의 자리에 나온 우리가 어떻게 새 힘을 얻고,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에 대한 비밀을 알려주는 영적인 열쇠와도 같습니다.
오늘 이 안식일의 노래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위해 준비하신 진짜 쉼, 영혼을 살리는 예배의 비밀 속으로 함께 들어가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1) 번성의 시작: 나의 자격이 아닌, 그리스도의 의 (12절)
(본론 1) 번성의 시작: 나의 자격이 아닌, 그리스도의 의 (12절)
먼저 시편 92편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2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아멘. 이 말씀은 ‘의인’이 종려나무와 백향목같이 번성하고 성장할 것이라 약속합니다. ‘여름의 열기 속에서 뿐만 아니라 겨울의 냉기 속에서도 종려나무는 연중 내내 그 푸르름을 유지한다. 그리고 백향목은 연수로 그 나이를 세지 않는다. 백향목은 세기(century)로 그 나이를 센다’(Tholuck).
이 장엄한 약속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나도 종려나무처럼,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번성하고 성장하고 싶다. 그런데, ‘나는 의인인가?’
우리의 양심은 이 질문 앞에서 머뭇거립니다. 지난 한 주간의 삶을 돌아볼 때, 우리의 말과 생각과 행동 속에 얼마나 많은 허물과 이기심이 있었는지 주님만이 아십니다.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는 ‘의인’이라는 이름 앞에 설 자격이 없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성경이 말하는 ‘의인’은 한 번도 실수하지 않는 도덕적 완벽주의자가 아닙니다. 그 본질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깨어진 관계가 회복된 사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사람입니다.
바로 이 놀라운 관계의 회복을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의롭다 증명하기 위해 아무리 애를 써도 불가능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21 은 그 신비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번성은 나의 자격이나 지난주의 성실함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죄와 수치를 대신 짊어지시고, 당신의 완전한 의를 값없이 선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예수님이 나의 의가 되십니다.’ 이 고백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 담대히 나아올 수 있는 유일한 이유이며, 우리의 삶이 백향목처럼 성장하는 첫걸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입술에서 자꾸 예수를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 때문에 의인이 되는 거고, 예수 때문에 우리의 영이 육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본론 2) 번성의 장소: 세상의 토양이 아닌, 여호와의 집에 (13절)
(본론 2) 번성의 장소: 세상의 토양이 아닌, 여호와의 집에 (13절)
그렇다면 의인이 된 우리는 어디에서 이 번성을 누릴 수 있을까요? 13절이 그 장소를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13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여기서 ‘심겼다’는 히브리어 ‘샤탈(שָׁתַל)’은 아주 의도적인 단어입니다. 바람에 날려 우연히 떨어진 씨앗이 아닙니다. 최고의 정원사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인 우리를 세상의 척박한 토양에서 뽑아내어, 가장 기름지고 안전한 땅, 바로 ‘여호와의 집’에 당신의 손으로 직접 옮겨 심으셨다는 뜻입니다.
‘여호와의 집’, ‘하나님의 뜰’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는 이 믿음의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나무가 살기 위해 반드시 땅에 뿌리를 내려야 하듯, 성도의 영혼은 교회 공동체라는 토양에 깊이 뿌리내릴 때 비로소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함께 드리는 예배의 감격 속에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공급 속에서, 서로의 연약함을 위해 기도해주는 성도의 따뜻한 교제 속에서, 우리는 세상이 결코 줄 수 없는 영적인 자양분을 공급받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그냥 나오는게 아닙니다. 살려고 나오는 것이다. 내 영혼이 살고, 내 육신이 살아나는 장소가 교회. 말씀이 선포되는 그 곳. 믿음의 공동체와 함께 예배하는 곳입니다. 우리의 교회는 바로 그런 곳이다. 살려고 오는 사람을 살려주는 우리교회 좋은 교회 한빛교회.
혹시 나의 신앙생활이 하나님의 집에 깊이 뿌리내린 ‘나무’가 아니라, 잠시 들렀다 가는 ‘방문객’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심으신 이 믿음의 공동체에 더 깊이 뿌리내리기를 결단할 때, 우리의 영혼은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과 풍성한 번성을 향해 자라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본론 3) 번성의 모습: 세월을 이기는 신선한 열매 (14-15절)
(본론 3) 번성의 모습: 세월을 이기는 신선한 열매 (14-15절)
이렇게 의인의 자격으로, 교회의 토양에 심겨진 삶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14절과 15절은 우리에게 감격적인 약속을 보여줍니다.
14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115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이것은 세상의 상식을 뛰어넘는 선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쇠약해지고, 가지고 있던 재능과 힘도 점차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뿌리내린 인생은, 세월을 거스르는 신비한 생명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여기서 ‘빛이 청청하니’로 번역된 히브리어 ‘라아난(רַעֲנָן)’은 ‘푸르른, 활기찬, 신선한’이라는 뜻인데, 이 단어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바로 앞 시92:10 절에서 시인은 “~ 내게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라고 고백하는데, 이때 사용된 ‘신선한’이라는 단어가 바로 ‘라아난(רַעֲנָן)’입니다.
10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가 늙어서도 청청하게, 신선하게 열매 맺을 수 있는 이유가 내 안에 있는 생명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매일 매 순간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신선한 기름 부음’, 즉 성령의 능력과 임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단순한 시적인 표현이 아님을 증명하는 기적 같은 실화가 있습니다. 1960년대, 이스라엘의 마사다 유적지에서 2,000년 된 종려나무 씨앗이 발견되었습니다. 완전히 화석처럼 변해버린,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씨앗이었습니다.
(PPT01) 수십 년이 지난 2005년, 과학자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 씨앗을 심었을 때, 온 세상을 놀라게 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씨앗에서 싹이 돋아나고, 나무가 자라난 것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산 인물의 이름을 따 이 나무를 ‘므두셀라’라고 불렀습니다.
(PPT02)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수나무였던 므두셀라가 꽃가루를 피우자, 과학자들은 이 꽃가루를 역시 고대 씨앗에서 발아한 암나무 ‘한나’에 수분시켜, 마침내 2,000년 전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이 먹었던 바로 그 달콤한 열매를 수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PPT03)
성도 여러분, 흙 속에 묻혀 있던 작은 씨앗 하나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2,000년의 세월을 이기는 생명력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물며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안에 심긴 우리가,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는 우리가, 날마다 성령의 신선한 기름 부음을 받는 우리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열매 맺지 못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무슨 열매를 맺을 것인가.
청년의 때에는 열정과 섬김의 열매를, 장년의 때에는 인내와 성숙의 열매를, 그리고 노년의 때에는 지혜와 너그러움과 기도의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열매는 결국 시92:15 절의 고백,
15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여호와는 정직하시다! 그분은 나의 반석이시며, 그분께는 불의가 없다!”라는 우리 삶 전체를 통한 찬양과 선포가 될 것입니다.
(결론) 영혼을 살리는 예배, 삶을 살리는 능력
(결론) 영혼을 살리는 예배, 삶을 살리는 능력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의인이 되어, 하나님의 집에 심겨져, 세월을 이기는 열매를 맺는 삶의 원리를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놀라운 은혜가 가장 압축적으로,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일어나는 현장은 어디일까요?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모여 있는 이 예배의 자리입니다.
특별히 이 92편은 안식일의 찬송 시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배경에는 안식을 명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마냥 쉬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시간에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해야만 하는 의무가 아니라, 나를 뭐하는 시간? 나를 살리는 시간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영적 원리는 우리의 영혼이 먼저 살아야, 우리의 지친 육신도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거대한 나무가 시들기 시작할 때, 지혜로운 정원사는 지치고 축 늘어진 잎사귀에 물을 뿌리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땅속, 그 생명의 근원인 뿌리에 물을 줍니다. 뿌리가 생명수를 빨아들여야 비로소 나무 전체가 다시 살아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과 육신이 나무라면, 우리의 영혼은 바로 그 뿌리입니다. 삶이 지치고 힘들 때, 우리는 자꾸 겉으로 드러난 문제와 피로에만 신경 쓰게 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우리의 영혼이라는 뿌리가 예배를 통해 생명의 물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영혼이 먼저 살아나야, 그 생명력이 우리의 지친 육신과 삶 전체로 퍼져나가 우리를 진정으로 소생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배는 우리에게 결코 종교적인 의무가 될 수 없습니다. 안식은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니라, 살아나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첫째로, 예배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A. W. 토저 목사의 말처럼, 물고기가 물에서 살아야 호흡을 하며 살 수 있듯, 우리 영혼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할 때 비로소 살아 숨 쉴 수 있습니다.
둘째로, 예배는 ‘영혼의 충전’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스마트폰이라면, 영혼은 그 안의 배터리입니다. 예배는 우리 영혼의 배터리를 하늘의 능력이라는 충전기에 연결하여, 세상이 결코 줄 수 없는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받는 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예배는 ‘영혼의 질서 회복’입니다. 팀 켈러 목사의 통찰처럼, 오늘 시편의 표제였던, 이 안식일, 안식한다는 것은 단순히 쉬는 것을 넘어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내 삶의 가장 높은 자리에 다시 모셔 들이고 그분을 기뻐할 때, 돈과 성공, 세상 염려로 헝클어졌던 내 영혼의 질서가 바로잡히고, 그 하늘의 평안이 우리의 육신까지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영혼이 지금 하나님과의 예배를 통해 살아 숨 쉬고 있습니까?
예배에 나오는 우리들의 발걸음이 무거운 의무가 아니라, 시냇가를 향해 달려가는 목마른 사슴처럼, 내 영혼의 뿌리가 생명수를 향해 달려 나오는 가장 기쁘고 설레는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영혼을 살리는 이 예배의 감격을 회복할 때,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우리의 삶 전체를 종려나무 같이,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푸르고 견고하게, 그리고 열매 맺는 인생으로 반드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이 예배를 통해 여러분의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부어주시는 하늘의 새 힘으로, 남은 한 주를 넉넉히 승리하며 살아내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