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장

이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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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찬송가 375장, 369장

모세의 탄생

오늘 출애굽기 2장의 말씀은 어제 1장과 같이 출애굽기의 시작을 알려주고 시대적인 상황을 알려주는 장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 그대로 출~애굽. 애쿱에서 탈출시키기 위해서 부르신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 특별히 모세가 태어나는 것 부터 시작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1장에서 보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그 수가 너무 많아지자 힘든 노역을 지기하고 남자 아이들은 나일강에 던져서 죽게되는 일들을 당하고 있는 시점이에요.
모세가 태어나게 되는 이당시 애굽은 철저한 계급사회입니다. 파라오가 있고, 귀족이 있고, 제사장이 있고, 관리가 있고, 기술자들 농민들, 노예들이 있는 계급이 분명하게 나뉘어져 있는 사회였어요. 그러다보니 지금 강제노역을 담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분상승을 기대할 수가 없고, 그럴 가능성도 없는 이들이었어요.
그런 시점에서 레위 지파 안에서 가정을 만드는 일이 등장합니다.
Exodus 2:1 NKRV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레위 가족중에 한 사람이 레위여자에게 장가 듭니다. 6장에보면 아버지는 레위지파 고핫의 아들 ‘아드람’이었고, 레위 여자라고 등장하는 여인은 ‘요게벳’입니다. 아드람과 요게벳이 결혼해서 임신했는데 아들을 낳어요.

숨기다.

그런데 2절에 아이를 어떻게 하냐면
Exodus 2:2 NKRV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
그런데 그 얼굴을 보니까 성경에 표현하기를 잘 생긴것을 보았다라고 표현해요. 이 뜻이 “토브” 라는 뜻인데 창세기 1장 을 보면 “보시기에 좋았더라”와 같은 뜻입니다. 이 “토브”라는 말씀처럼—보기 좋고 특별한 존재로—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태어났지만 이 좋은 아이를 어머니는 ‘숨깁니다.’
저희가 보통 “드러남”에 집중을 해요. 드러나는 것으로 인정받고, 앞에 서고, 드러나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숨김”이라는 방식으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이렇게 숨겨졌다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모세에게서 ‘준비의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3개월을 숨긴다는 것이 애굽에서 노예처럼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굉장한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었을 거예요. 다 잡아 죽이기는 마당에 아이를 숨기고 몰래몰래 먹이고 돌보는 시간은 부모의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래고 3개월 뒤에 더이상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지니까 아이를 숨길 수 없어서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질하고 아기를 나일강에 띄웁니다.
저희도 숨겨지는 시간이 필요해요. 이 시기에는 겉으로 무엇인 가가 들어나는 시간이기 보다는 보기엔 조용하고 아무일도 없는 것 처럼 보여도, 영혼은 자라고, 기도는 깊어지고, 말씀으로 강해지는 시간입니다.
오늘 모세가 숨겨지는 과정을 통해서 목숨을 구하고 또 이과정 이후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되는 것 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숨기실 때는, 우리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깊이 빚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삶이 지금 멈춰 있는 것 같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을 때가 있죠. 기도해도, 예배해도, 변화가 없는 것 같은 그런 시간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숨기시는 시간입니다. 감춰진 보배처럼 저희를 빚으시는 주님은 이후 주님의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바로의 딸

요게벳은 아들을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었을 때, 갈대 상자 하나를 준비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상자’라고 번역하지만, 원어로는 ‘테바’라고 합니다. 이 말은 창세기 6장에 등장했던 노아의 방주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이 상자는 단순히 “작은 바구니”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노아의 가족을 심판의 홍수에서 구원하신 것처럼, 요게벳은 믿음으로 이 작은 상자 하나를 통해 생명을 보존하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담은 것입니다.
그리고 상자는 파피루스로 만들어졌습니다. 물을 빠르게 흡수하는 연약한 식물이지만, 잘 엮으면 배를 만들 수 있을 만큼 강해집니다. 요게벳은 그 파피루스로 상자를 짜고, 그 틈마다 역청과 나무 진을 바릅니다. 물이 새어 들어오지 않게,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기술과 정성을 쏟아서 갈대상자를 만듭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히브리인으로서 절대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는 애굽 왕의 딸에게로 흘러갑니다. 지금 히브리 사내아이는 모두 죽여라라고 명령된 상황이에요. 그런데 그런 명령을 내린 애굽왕의 집안에 이 아이가 도착했어요. 그럼 이아이 어떻게 되게어요. 사실 상활적으로 볼 때 이곳에 들어간게 상황이 좋은 상황이 아니에요.
공주가 상자를 열고 보니 아기가 막 울고 있었어요. 그리고 어떤 마음을 품냐면 6절에
Exodus 2:6 NKRV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딱봐도 히브리사람 아기인데 “불쌍히”여기는 마음을 품습니다. 여러분 이 마음을 바로의 딸이 품는게 얼마나 신기한 것인지 아시나요? 당시에 바로의 딸이면 애굽의 공주거든요. 애굽의 공주는 그냥 치장하고 예쁘게 살아가는 소녀보다도 왕족의 여성으로서 굉장히 많은 교육을 받습니다. 그리고 많은 교육을 받는 것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결정권도 가지는 인물이에요. 그래서 지금 애굽의 입자에서 히브리인들의 상황도 잘 알고 있고, 정치적으로 이해를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 뚜껑을 열고 보니까, 파라오인 아버지가 극도로 싫어하는 히브리사람의 아이인 것을 앎에도/인지를 하고 있음에도 “불쌍히”여기는 마음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를 내 양아들로 데리고 살겠다는 것은 사람의 계획과 계산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임을 믿으시기 소망합니다.
사람의 눈에는 “왜 하필 거기로 가냐, 왜 하필 바로의 딸이냐” 싶은 그 자리가, 하나님의 눈에는 “그래서 구원의 문이 열린 자리”였습니다. 히브리인을 죽이라 명령한 왕의 집안에서, 모세는 살아남습니다. 사내아이는 나일강에 던져 죽이라는 명령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생명을 숨기셨고, 그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으신가요? 지금 내가 놓인 곳이 혹시 '왜 하필 여기지?' 싶은 낯설고 두려운 자리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꼭 기억하세요. 하나님은 우리가 짠 갈대상자 하나로도, 구원의 길을 여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한 손을 사용하시고, 우리가 보기엔 위험해 보이는 자리조차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통로로 만드십니다.

정체성

그리고 모세의 어린 시절에서 부터 장성할 때 까지 애굽에서 바로의 딸의 신분으로 살게 됩니다. 이때 모세의 나이는 40세로 청년의 시기를 지나서 어느정도 자리를 잡고 있을 때에요. 이정도면 애굽의 왕자로서 어느정도 국정에 참여하고 여러 지식과 배움이 충분이 갖춰졌을 때입니다.
그런 모세가 11절을 보시면 자기 히브리 형제들이 있는 곳에 갑니다.
Exodus 2:11 NKRV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여기서 “보다”라는 동사는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 공감하며 응시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모세가 자기의 형제들인 히브리인들이 고된 노동을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움직이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리고는 한 애굽 사람이 히브리인을 치는 장면을 보고 격분하여 그 애굽 사람을 처죽입니다.
그는 정의감에 불타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그 일로 인해서 상황이 더 어려워집니다.
다음 날 모세는 히브리인 둘이 싸우는 장면을 보고 그들을 말리려 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누가 너를 우리의 재판장으로 삼았느냐?”라고 묻는 냉소적인 대답이었습니다. 그리고 애굽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 들통나게 되면서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지금 모세의 위치는 왕궁에서는 이방인 같고, 히브리인에게는 외부인처럼 느껴지는 상황이에요/—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낯설고 외로운 위치에서 그는 도망칠 수밖에 없습니다.
15절에 바로의 낯을 피해서 모세는 도망자 신세로 미디안 광야에 이르게 되는데 얼마나 비참하겠어요. 하나님이 인도하셔서 히브리인으로 죽을 줄만 알았는데 극적으로 살게 되어 왕자로서 40년의 세월을 보냈던 곳에서 도망쳐 나옵니다.
그런데 도망쳐 나온 미디안 광야에서 한 무리를 만나요.
16절에 여인들이 양에게 물을 먹이려고 물을 길어왔는데 목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어요. 사막의 거친 목동들이 먼저 길어둔 물까지 뺏으려고 할때 모세가 구해주고 물을 먹이도록 도와줍니다. 딸들이 아버지에게 가서 “한 애굽사람이 우리를 도와줬다고 말해요.” 모세가 40년이나 있으니가 용모나 나오는 기품이나 모든 것이 전형적인 애굽사람 처럼 보였을 겁니다. 그리고 도망쳐 나왔지만 모세가 막 입고 있지는 않았을 거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애굽사람이 도와줬다고 이야기하니까 그러자 그의 아버지가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데 왜 대려오지 않고 두고 왔느냐고 말하면서 모세를 청하고 음식을 대접하며 고마움을 표합니다.
모세도 도망쳐 나온 입장이기 때문에 환대해주고 그 장막에 머물러 있게 되고 그의 딸 십보라는 아내로 잡아서 아들을 낳습니다. “게르솜”이라 이름짓는데 그 이름의 뜻은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그래서 자기의 아들의 이름 통해서 내가 “낯선 땅의 나그네”라는 고백입니다. 그는 왕궁도 잃었고, 민족도 잃었고, 정체성도 잃은 채로 철저히 무너진 광야에서의 시간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광야가, 하나님이 모세를 준비시키고 부르시는 자리가 됩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님을 배우고, 참된 정체성을 다시 새기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강할 때보다, 우리가 무너졌을 때, 낮아졌을 때 더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모세는 그곳에서 40년을 더 지내며, 양을 치고, 기다리고, 훈련받습니다. 왕궁에서 40년, 광야에서 40년, 그리고 그다음 40년이 출애굽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광야는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철저히 낮추신 후에야 왕자로서 모세가 아닌, 양치는 무너진 모세를 통해 하나님은 출애굽의 문을 여십니다.
23절에
Exodus 2:23 NKRV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여러 해 후라는 말은 모세가 40년동안 광야에 있었던 시간만큼 여러 해 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식과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24절에
Exodus 2:24 NKRV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세룬 언약을 기억하시면서 출애굽의 길을 여십니다.
이때 기억하신다는 단어가 여러번 등장하는데 이 의미는 과거에 잃어버렸던 사실을 다시금 회상해낸다는 뜻이 아니라, 늘 염두에 두고 있었던 일을 마침내 실행에 옮긴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침묵속에 계셨으나 이스라엘의 모든 고통의 소리를 기억하셨으며 곧 그들을 구원하실 계획을 세워놓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긴 시간 준비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킬 앞으로의 여정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그 계획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에도 모세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은 우리도 기악하시면서 숨겨진 시간을 통해 우리를 다루시고 이끌어가십니다.
오늘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우리의 갈대상자 같은 인생도 하나님 손에 들려질 때 구원의 도구가 됨을 믿으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 기도하겠습니다 ]
사랑하는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모세의 삶을 다시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작은 갈대상자에서 구원받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 구원할 하나님의 계획과 이끄심을 보았습니다.
때로는 멈춰 있는 것 같고, 모세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것 같고은 낯선 광야의 시간을 지날 때에, 그 속에서 우리를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주시옵소서.
우리를 숨기시는 시간에도, 우리를 빚고 계신다는 걸 알게 하여 주시고, 드러나지 않아도, 인정받지 않아도,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믿음을 안에서, 우리가 마주한 삶의 자리를 살아내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도 모세처럼, 하나님의 손에 들려서 주님의 역사에 쓰임 받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말씀 따라, 믿음 따라, 주의 뜻을 기다리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하루되게 이끌어 주옵소서.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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