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입니까 사랑입니까 2025 0706 삿11:2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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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dges 11:29–40 NKRV
29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의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의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 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32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33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매우 크게 무찌르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34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35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36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니라 37 또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버려 두소서 내가 내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니 38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을 기한하고 그를 보내니 그가 그 여자 친구들과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39 두 달 만에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온지라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 이것이 이스라엘에 관습이 되어 40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믿음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영이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시간에 볼 삼손의 내용과 비슷. 신앙생활에서 조심해야 할 부분. 잘못된 서원. 순종은 순종인데 조건적 순종. Conditional Vow. 입다는 하나님께 서원을 했음. 하나님과 계약을 맺으려고 했음. 암몬 자손 내게 넘겨주시면! 그러면 처음 맞이하러 나온 자를 바치겠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서원, 약속을 지키셨다. 이제 입다가 지킬 차례. 너무 한게 아니다. 쌍방계약에서 계약 이행의 의무는 신성한 것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하나님께 거래를 하려고 했던 것이 잘못이다. 우리 신앙생활 할 때도 하나님, 이렇게 해주시면, 뭐 해주시면, 아니면, 이번 한번만 눈감아 주시면, … 그러다가 자기 꾀에 자기 함정에 빠져버리고 말 수도 있다. 사람은 그런 존재. ~해주시면, 헌금. 십일조. 나 십일조 제일 많이 내는 사람 되고 싶다. 이 소원이 정말,,, 정말 진실한 소원인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러는 사람은 내게 이미 없는 상태에서 전부를 드릴 줄 아는 사람이다. 과부의 두 렙돈처럼. 1억의 십일조 얼마임? 돈 많이 벌수록 헌금해야 하는 액수 장난 아니게 커짐. 아까워짐.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됨. 자기 꾀에 자기 함정에 빠짐. 하나님과는 거래하는 관계가 아니다. 이거 해주면 내가 이거 하겠다? 하나님이 뭐가 아쉬워서. 뭐가 아쉬워서. 그냥 하나님과는 부모와 자녀 사이가 되는 것이다. 그저 자녀의 권세를 누리면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 자리에 오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자, 제가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한번 상상해 봅시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 혹은 정말 간절히 원하는 회사의 최종 면접을 앞두고 있다고 해보죠. 밤새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번 시험만 붙게 해주시면 제가 정말… 주님을 위해 뭐든 하겠습니다. 다시는 거짓말 안 하고, 술도 끊고, 매일 성경 읽겠습니다.”
어떤가요? 너무나 익숙한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이 간절한 약속, 이 절박한 거래. 우리는 이것을 ‘믿음’이라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 하나님은 이 위험한 착각에 대해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고 싶어 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이야기는, 자신의 신앙을 하나님과 ‘거래’하는 데 걸었던 한 남자의 비극적인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사기 11장입니다. 거기에 ‘입다’라는 남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태생부터 상처투성이였습니다. 기생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형제들에게 쫓겨나 이방 땅에서 건달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정체성도, 소속감도 없는, 그야말로 벼랑 끝 인생이었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이 암몬 족속에게 침략당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자, 그를 내쫓았던 바로 그들이 입다를 찾아와 장군이 되어달라고 무릎을 꿇습니다.
여러분, 한번 입다의 마음이 되어보십시오. 평생을 무시당하고 살았는데, 이제 모든 이스라엘의 운명이 내 어깨에 달렸습니다. 얼마나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을까요? 얼마나 이 전쟁에서 반드시 이기고 싶었을까요? 그 불안과 압박감이 그의 영혼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그는 하나님께 서원합니다. 사사기 11장 30절 입니다.
Judges 11:30 NKRV
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하나님과 목숨을 건 거래를 시작한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이 ‘거래적 신앙’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그 뿌리를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입다의 서원은 그의 깊은 불안과 결핍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치를 ‘승리’라는 결과물로 증명해야만 했습니다. 혹시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인서울’ 대학에 가야해, 번듯한 직장을 잡아야해, 안정적인 연애를 통해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결혼을 해야해… 등등, 이런 세상의 ‘스펙’들이 내 존재의 가치를 증명한다고 믿습니다. 물론 이러한 노력들이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 노력은 칭찬받아야 하고 박수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과 거래하려 합니다. ‘하나님, 이것만 주시면요. 그러면~’ 이것은 믿음이 아니라 오히려 내 불안의 고백입니다.
또한, 그의 서원은 하나님을 통제하려는 욕구에서 나왔습니다. 놀랍게도 성경은 그가 서원하기 전에 이미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셨다”(29절)고 기록합니다. 이미 승리는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보다, 자신의 극적인 행위로 결과를 ‘확정’ 짓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기다리기보다, 내 열심, 내 헌신, 내 기도로 하나님의 응답을 통제하고 조종하고 싶어 합니다.
어느 사람이 목사님에게 상담 받으러 옴. 목사가 뭘 말할 수 있을까? 같이 기도하자.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자. “목사님! 기도하자는 말 빼고요!”… 예수 믿는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주권자로 모시는 우리가 가장 먼저, 가장 최고로 할 일은 기도하는 일. 다시 말해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 자녀로써 고백하는 일이다. 그렇게 하나님이 일하시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결정적으로, 그의 서원은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마치 이방의 신들처럼, 더 큰 제물을 바쳐야만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분노한 신으로 여겼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거래하고 싶은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나의 헌신을 저울질하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차가운 분입니까, 아니면 이미 당신의 전부인 아들을 내어주신 사랑의 아버지이십니까? 나의 거래적 신앙은,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거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입다의 모습이 성경에서 유독 특별하고 이상한 사람의 이야기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이 ‘거래하려는 본능’은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에게서도, 비극적인 왕에게서도 동일하게 발견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 결과가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한쪽에는 ‘긍정적 서원’을 드렸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PPT01) 이들의 서원은 비록 인간적이고 미성숙해 보이지만, 그 끝은 축복과 감사로 이어집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한나입니다. (PPT02) 그녀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슬픔과 라이벌이었던 브닌나의 끊임없는 조롱 속에서 매일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성경은 그녀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했다”고 기록합니다. 그 찢어지는 마음으로 드렸던 기도가 바로 서원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장 11절 은 그녀의 기도를 이렇게 기록합니다.
1 Samuel 1:11 NKRV
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삭도를 대지 않는다’는 것은 평생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바치는 나실인으로 드리겠다는, 가장 거룩하고 진심 어린 약속이었습니다. 보십시오. 그녀의 서원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만이 유일한 소망임을 인정하며 하나님을 향해 나아간 필사적인 몸부림이었습니다. 그 내용 또한, 자신의 가장 큰 기쁨이 될 아들을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어놓겠다는 거룩한 헌신의 약속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PPT03) 형 에서를 속이고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챈 뒤, 죽음을 피해 홀로 광야로 도망치던 신세를 기억하십니까? 그는 성공한 족장이 아니라, 가진 것 없고 미래도 불투명한, 외로운 청년이었습니다. 차가운 돌을 베고 잠든 그 밤, 그는 꿈에서 하늘과 이어진 사닥다리를 보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 두려움에 떨며 약속합니다. 창세기 28장 20-22절 입니다.
Genesis 28:20–22 NKRV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솔직히 말해, 정말 조건적이고 계산적으로 들립니다. ‘해주시면, 합니다’의 전형이죠. 하지만 이것은 위대한 믿음의 조상의 모습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잃고 두려움에 떠는 한 청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시작하려는 필사적인 첫걸음이었습니다. 그의 서원은 하나님을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겠다는 절박한 의존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는 ‘부정적 맹세’를 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맹세는 결국 자기 자신과 공동체를 파멸로 이끕니다. (PPT04)
오늘의 주인공 입다가 그렇고,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그렇습니다. (PPT05) 사울은 블레셋과의 중요한 전투 중에, 조급함과 자기 공명심에 사로잡혀 백성들에게 명령합니다. 사무엘상 14장 24절 입니다.
1 Samuel 14:24 NKRV
24 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곤하였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아무 음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모든 백성이 음식물을 맛보지 못하고
이게 말이 됩니까? 한창 싸워야 할 군인들을 굶기는 장군이 어디 있습니까? 그는 이 전쟁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잊고, “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한다”며 자기 자신을 내세웠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군대는 지쳤고, 영웅이었던 그의 아들 요나단은 꿀을 찍어 먹었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맹세에 따라 죽임을 당할 뻔했습니다.
자, 이제 그림이 보이십니까? 표를 보겠습니다. (PPT06)
한나와 야곱의 서원은 비록 미숙할지라도 그 방향이 하나님을 향해 있었고, 그 내용이 하나님의 성품을 존중했습니다. 하지만 입다와 사울의 맹세는 그 방향이 자기 자신을 향해 있었고, 그 내용이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어리석고 잔인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 잘못된 방향과 잘못된 내용의 맹세는, 입다를 최악의 비극으로 끌고 갑니다.

둘째로, 이 ‘거래’는 우리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갑니다.

다시 입다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입다는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하지만 그가 치른 대가는 끔찍했습니다. 승전고를 울리며 집으로 돌아온 그를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그의 무남독녀, 그의 유일한 기쁨이었습니다. 그 순간, 성경은 입다의 반응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내 딸아,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보십시오. 거래는 감사를 파괴하고 원망을 낳습니다. 그는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반겨준 딸에게 기뻐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자신의 서원에 갇혀 관계를 파괴하고, 스스로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인생 최고의 승리의 날이, 최악의 절망의 날이 되어버린 이 비극을 보십시오. 이것이 거래적 신앙의 결말입니다. 신앙이 기쁨이 아니라 무거운 짐이 되고, 교회가 안식처가 아니라 부담스러운 일터가 되고, 예배가 축제가 아니라 의무가 되어버렸다면, 우리는 지금 입다처럼 내 영혼의 가장 소중한 ‘기쁨’을 제물로 바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것은, 그가 순종에 실패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내가 여호와께 서원하였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어리석은 약속에는 맹목적으로 순종했지만, “사람을 제물로 바치지 말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는 철저히 불순종했습니다. 이것이 거래적 신앙의 가장 큰 함정입니다. 순종처럼 보이는 가장 무서운 불순종. 내가 만든 규칙은 칼같이 지키면서, 정작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처참하게 짓밟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비극의 사슬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정말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비극적인 입다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사랑 이야기의 서막이 됩니다.
복음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불안한 약속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친히 세우신 신실한 약속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입다는 ‘딸을 바쳐서’ 승리를 얻으려 했지만, 하나님은 ‘아들을 바쳐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실 때, 그분은 하나님과 거래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것이 진짜 순종입니다. 거래가 아닌 완전한 신뢰. 그 순종 때문에,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 자리에 있는 줄 믿습니다!
이 엄청난 은혜를 받은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입다처럼 살 필요가 없습니다. 두려움의 ‘거래’가 아니라, 감사함의 ‘응답’으로 살아갈 특권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요?
표 보기(PPT07) - 두려움의 ‘거래’ <-> 감사의 ‘응답’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청년의 때는 여러분의 인생이라는 집의 기초를 놓는 너무나 중요한 시간입니다. 이 기초를 어디 위에 세우시겠습니까?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는 나의 불안한 약속 위에 세우시겠습니까? 아니면, 천지가 무너져도 결코 변치 않는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 위에 세우시겠습니까?
오늘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나님께 여러분의 요구 목록을 내밀기보다, 먼저 감사의 목록을 한번 적어보십시오. “하나님, 저를 구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숨 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감사의 고백이 쌓여갈 때, 우리의 영혼은 두려운 거래의 자리에서 일어나, 기쁨과 자유가 넘치는 사랑의 응답의 자리로 옮겨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대단한 헌신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미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그 사랑을 믿고, 그 사랑 안에서 자유하며, 그 사랑에 응답하는 여러분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그 사랑 안에 참된 평안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 사랑이 여러분의 삶을 이끌어가는 능력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오늘 입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안의 불안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끊임없이 하나님과 거래하려 했던 저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우리의 불안한 약속이 아닌,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완전한 약속 위에 서게 하소서. 우리의 모든 예배와 헌신과 삶이, 의무와 거래가 아닌,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기쁨의 사랑 노래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결단찬양> - 나는 믿네

말씀노트

내 삶에서 입다와 같이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그 동기는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침묵'처럼 느껴지는 고난의 순간에, 나는 하나님의 성품을 어떻게 신뢰하며 나아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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