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나님께 보냄 받은 학생 선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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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
긍휼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사랑합니다! 꿈사땅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무슨 주일인지 아는가? 맥추감사주일이다. 보리 ‘맥’에 추수하다 할 때 ‘추’로 보리 추수를 마친 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절기이다. 7월 첫째 주일로 매년 맥추감사주일을 보낸다. 구약 시대 때부터 맥추절이 시작되었고, 한 해의 절반을 돌아보며 상반기 동안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고 남은 하반기를 감사로 시작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맥추절은 단순히 보리 추수에 대한 감사를 넘어,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라는 의미도 지닌다. 십일조도 마찬가지다. 수입의 전체를 드리는 것으로 고백하며 1이라는 대표성을 가진 숫자로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드리며 감사하는 것이다.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감사하며 헌금을 드리기를 소망한다.
오늘은 여러분과 ‘긍휼’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긍휼의 뜻이 무엇인가? “불쌍히 여기고 가엾게 생각하며 도와줌”이다. 히브리어 사전에서는 긍휼은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단어에서 나온 것으로 아기를 뱃속에 잉태한 어머니가 자신의 태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뜻한다. 그러니 성경에서 긍휼이란 “깊은 동정의 마음, 상대를 도와주는 사랑, 부모가 자기 자녀에게 갖는 사랑이나 열망”이라는 뜻을 가진다. 여러분은 언제 이런 감정을 느끼는가? 전도사님은 TV광고 중에 유니세프 광고를 보면서 긍휼의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군대에서 항상 식당에 뉴스채널을 틀어준다. 군대 밥이 맛없다고 불평하며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유니세프 광고에서 “이 아이가 배부르다는 느낌을 알까요?”하면서 불쌍한 아프리카 흑인 아이를 보여주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러다 불평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꿋꿋히 밥을 먹으며 잔반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면서 네이버에 들어가보면 기부하는 곳이 있다. 그곳에 힘겹게 살아가는 분들에게 작은 금액을 후원하며 기부한 적이 있다. 또 비오는 날 어떤 노부부가 폐지를 줍는 리어카를 우산을 씌어드리며 도와준 적도 있었다. 이번에 여러분들을 만나서 기말고사 기간 고생했다고, 1학년 친구들은 새로운 학기 고생했다고 선생님들이 긍휼의 마음으로 꿈사땅 친구들을 만나러 가시거나 이를 위해 후원해주고, 기도해주시는 선생님들이 여러분들의 선생님이시다. 또 경아쌤 같은 경우는 무더위에 택배기사님들 마시라고 집 앞에 생수를 놓아서 가져가시라는 쪽지를 남겨두었다고 한다. 이처럼 안타깝고 가련한 마음에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실제로 직접 도와주는 것이 바로 긍휼이다.
오늘 말씀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 향해, 오늘날 우리에게도 긍휼의 마음으로 바라보시고 실제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어떤 긍휼을 베풀었는지 마태복음 9장 35절을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셨던 사역을 요약해준다.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선포하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치유하시는 사역을 하신다. 가르치는 사역, 선포하는 사역, 치유하는 사역을 하신 이유가 우엇일까? 그들을 너무나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그들의 모습을 보니까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보였다고 말씀하신다. ‘목자 없는 양’이라는 표현은 모세나 왕이 없는 이스라엘은 ‘목자 없는 양’ 또는 통치자가 없는 양으로 묘사되었다. 구약역사에서 이스라엘에 신실한 목자인 종교지도자가 없을 때면 하나님 스스로 목자가 되셨다. 목자의 사역은 먹이고, 고치며, 잃은 양을 찾아오는 일을 하였다. 당시 로마 시대여서 압제로 인해 이스라엘에 왕이 없는 문제로 불쌍히 여기시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영적인 돌봄과 리더쉽이 없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런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모습은 ‘고생하며 기진한’ 모습이었다. 이 표현은 ‘찢어져 내팽개쳐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양들이 위험한 사람에게 잡히려고 하거나, 자기만 생각하는 목자들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는 뜻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즉,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을 구원해줄 구원자, 메시아적 목자를 기다리고 있는 ‘잃어버린 양’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목양할 책임을 맡은 지도자들이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이스라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추수’는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바로 종말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왜 종말이 가까이 온 것인가?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구원자,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이 땅에서 무엇을 선포하셨는가? ‘천국 복음’을 선포하셨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복음이란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선포이다. 사탄의 통치가 끝나고, 악의 무리가 떠나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이는 출애굽처럼 묶인 자가 놓임을 받는 평화의 나라, 희년이 영원토록 임하게 된다. 로마와 헬라사람들에게 있어서 복음이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탄생이 복음이었다. 그가 태어남으로 이제 전쟁이 끝나게 되고, 평화의 나라가 올 것이라는 소망이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이제 하나님이 다스릴 것을 선포하고, 영원한 평화의 나라를 만드실 진정한 왕이 로마 황제가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라는 복음을 선포한 것이다. 이러한 선포를 한 일꾼이 적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당시에 일꾼이 누구였는지 아는가? 세례 요한 밖에 없었다. 그는 혼자서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선포하다가 분봉 왕 헤롯에게 붙잡혀 결국 사형당하게 된다. 그렇게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였던 세례 요한 이후에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천국 복음을 선포한 유일한 분이셨다. 그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추수하는 주인에게 간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추수할 밭으로 보내 달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주인은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여러분들이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다 읽어보면 예수님은 아픈 사람들을 위해 오신 분 같다.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고침을 받는다. 예수님은 찾아오는 병자들을 외면하지 않고 다 고쳐 주신다. 예수님이 먼저 병자들을 고쳐 주는 경우도 있지만 예수께 나오는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는 경우도 있다. 예수님은 병을 고쳐주시면서 사람들에게 믿음을 요구하신다. 믿음이 예수님의 능력을 받는 통로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역을 하시면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신다.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의 눈을 뜨게 해주시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 주시자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걷지 못하는 사람들이 걷고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신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들의 의미가 무엇일까? 예수님의 사역은 구약의 선지자인 이사야의 예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오실 때가 있다고 예언한다. 하나님이 오실 때에 맹인이 볼 것이다. 듣지 못할 사람이 듣게 될 것이다. 걷지 못하는 사람이 사슴 같이 뛸 것이다. 그리고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말을 하게 될 것이다.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하나님이 오실 때에 이런 표적들이 나타날 것이다. 예수님이 오셔서 맹인, 벙어리, 귀머거리를 고치는 사역과 관련이 있다. 예수님의 병 고침의 이적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신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사야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직접 보여주신다. 이것이 예수님의 병을 고치신 의미와 이유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영원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것을 미리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에 성령이 강력하게 임하면서 그들이 전세계에 흩어져 복음을 전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니 그들은 추수할 일꾼이 되어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제자들 12명으로 시작하여 수많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적은 수로 복음을 전했다. 지금 현재는 어떠한가? 세계 기독교 인구가 26억 3천만명이라고 한다.
여러분의 학교는 어떠한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은가, 안 따르는 사람이 많은가? 아마 대부분은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볼 때는 그런 곳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여러분의 학교는 추수할 것이 많은 블루오션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여러분의 학교가 100% 크리스천으로 이루어진 학교라면 복음을 전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환경에서 우리가 지내고 있다면 전도와 선교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또 이렇게 생각하는 친구가 있을 수 있다. “그냥 편하게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크리스천이면 좋지 않을까?” 그러나 예수님 오신 이후에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중세 시대에 유럽은 모두가 100% 크리스찬이었다. 그리고 크리스천이 아니면 고위 공직에도 올라갈 수 없을 만큼 기독교와 정치가 하나가 된 시절이 있었다. 그러면 뭔가 좋을 것 같지만 교회 역사상 가장 세속적이고 타락했던 때가 중세 시대의 교회였다. 오히려 교회가 가장 순수하고 세속에 물들지 않았던 시대는 교회가 가장 핍박받고 고난을 받았던 초대교회와 종교개혁시대였다. 초대교회는 로마 황제를 반대하는 세력으로 크리스찬들을 바라보았기에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죽음을 경험했다. 종교개혁시대에는 세속적으로 물들어버린 교회를 종교와 정치를 분리시키려는 노력을 하였다. 이로 인해 교황으로부터 많은 개신교도들이 핍박을 받고 감옥에 갇히거나 죽음을 경험하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그럴 때일수록 교회는 힘을 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믿음이 굳건하게 세워져가는 것을 보게 된다. 성경과 예수가 거짓이고 가짜라면, 거짓과 가짜를 위해 죽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요즘 교회에서 왜 전도를 안하냐고 물어보면 전도하기 어려운 때라고 답하시는 분이 계신다. 실제로 그럴까? 초대교회 당시의 교인이 만약에 이 시대에 와서 이런 질문을 할 것 같다. “왜 전도하기 힘드세요? 요즘도 복음 전하면, 감옥에서 고문당하고 죽임당하고 그런가요?” 우리는 분명하게 “아니요.”라고 답할 것이다. 요즘 시대에 전도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어보면 사람들이 이제는 전도해도 안 듣는다고, 이 방법으로는 안 먹힌다는 이야기를 한다. 복음 때문에 고문과 옥에 갇힘과 죽임을 당한 초대교회 교인들이 들었을 때 얼마나 기가차는 답이겠는가? 우리는 복음 전하기 아주 좋은 시대에 살고 있음을 기억해야한다. 복음 전한다고 체포당하거나 감옥에 갇히는 일이 없다. 물론 복음을 전할 때 우리를 미워하는 정도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해보지도 않고 안될 것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과연 옳은 생각인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복음 전도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크리스천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의 학교에서, 여러분의 동네와 지역에서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 부르심에 반응하고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돌아오는 영혼을 주님이 여러분의 학교에, 동네에 예비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여러분의 학교에서 아무도 예수를 전하지 않는다면 누가 예수님을 알고 돌아올 수 있겠는가? 우리는 누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지 아닌지를 평생토록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하여서 여러분의 학교에 복음이 전해지기를 원하신다. 실제로 복음을 전해본 친구만 수확의 기쁨, 추수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꿈사땅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학교로 보냄 받은 선교사라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위대하신 하나님의 일에 우리가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우리는 세상에 나가서 해야할 일은 단 한 가지 밖에 없다. 예수를 전하는 것 외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 없다. 그리고 복음을 듣고 반응하는 자들이 교회에 오면 열심히 그들을 양육하고 가르치고 세례를 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전도사님도 중학생 때 학교에서 왜 성경 읽냐고 방해했던 친구가 있었다. 그렇게 전혀 교회랑 상관없이 살았던 친구가 나중에 오랜만에 어떻게 지내는지 SNS로 보게 되면 신앙생활하면서 신실하게 사는 친구를 보게 된다. 그러니 분명히 여러분 반에도 학교에도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 잃어버린 영혼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여러분은 분명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혼들을 만나는 기쁨이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늘 기도하고 말씀으로 무장하고 복음을 선포하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 귀히 쓰임받길 축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