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의 헌신

사도행전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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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디모데의 헌신

본문: 사도행전 16장 1-5절

찬송: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임재의 기도

말씀의 문을 열며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시작하며 루스드라를 다시 찾아왔을 때, 그곳에는 디모데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였습니다. 루스드라는 비록 로마제국 내에서 변변치 않은 작은 시골마을이었지만, 그곳에서 디모데는 제자로 태함을 받고 단순히 믿는 사람이 아니라 헌신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였습니다. 성서학자들은 당시 디모데의 나이를 대략 18세정도로 추정합니다. 겨우 18세의 청년이 두 지역 교회에서 모두 인정받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이런 디모데를 바울이 자신의 동역자로 선택했을 때, 디모데는 놀라운 헌신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디모데가 보여준 두 가지의 헌신의 모습을 통해,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헌신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웃을 위한 희생적 헌신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고 말씀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직접 할례를 행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5장에서 바울은 안디옥교회에 거짓 교사들이 나타나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을 때 바울은 그들과 격렬하게 맞서 싸웠습니다. 예루살렘 공의회를 통해 이방인 성도들에게 할례를 요구하는 것은 복음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결정을 이끌어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 바울이 오늘은 디모데에게 직접 자기 손으로 할례를 행한 것입니다.
당시 디모데의 나이는 18세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생후 8일만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어머니는 유대인이지만 아버지가 헬라인이어서 할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18세의 청년이 성인이 다 되어 받는 할례가 어떤 것인지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변변한 마취제가 없는 2천년 전, 의사도 아닌 전도자 바울로부터 할례를 받은 디모데의 육체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입니다.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과 며칠간 지속되는 회복 기간의 고통을 성인이 다된 18세의 청년이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왜 디모디는 이런 고통을 감수한 것일까요?
오늘 성경은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디모데는 자신을 위해서라면 할례를 받을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구원받지 못한 유대인들과의 접촉점을 위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영혼들을 위해 자신의 육체가 찢어지는 고통을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또한 헬라인 아버지를 둔 혼혈아로서 이미 유대인들에게 천시받던 디모데에게 성인이 되어서 할례받는다는 것은 극심한 사회적 수치를 의미했습니다. “저 청년은 왜 이제야 할례를 받는가? 부모가 제대로 기르지 못했구나.”사람들의 시선과 수군거림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디모데는 복음을 위해 자존심과 체면을 모두 내려놓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방법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죄인인 인간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죽음의 형벌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의 죄값을 대신해 십자가의 제물이 되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을 거저 베풀어 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가지 찢어지는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아픔을 감수하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고, 그것이 사랑의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위해 아픔을 감수하는 것이 사랑의 특성입니다. 이같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디모데가 사랑해야 할 유대인들을 사랑하기 위하여 자기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기꺼이 감수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가족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이웃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내가 포기해야 할 체면들이 있습니다. 전도를 위해 감수해야 할 오해와 비난을 두려워하며 입을 다물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디모데처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영혼들을 위한 마음을 품고 있다면, 조금의 체면과 편안함쯤은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순종적 헌신

또한 디모데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순종적 헌신을 보여주었습니다.
3a절에서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바울이 디모데 자신을 동역자로 선택했을 때, 디모데는 망설이지 않고 그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디모데 자신에게 있어서 정말로 어려운 결단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디모데의 가정상황을 살펴보면 외할머니 로이스와 홀어머니 유니게, 두 과부 모녀의 유일한 희망이 바로 디모데였습니다. 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의 유일한 희망인 디모데가 가난한 전도자 바울을 따라나섰다가는 세상적으로 출세하지 못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남아있는 가족들의 여생 역시 고생길을 헤멜 것이 뻔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있는 디모데는 고향 루스드라에서의 안정된 삶을 포기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디모데가 위험을 각오한 결단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디모데는 1차 전도 여행 때 바울이 당한 돌팔매질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부터 바울을 죽이기 위해 뒤쫓아 온 유대교인들이 바울을 모함하며 루스드라 사람들을 선동했고, 격동당한 루스드라 사람들은 유대교인들과 함께 바울에게 돌팔매질을 퍼부었습니다. 그 돌팔매질이 얼마나 심했던지, 사람들은 피투성이가 된 채 실신한 바울이 죽었다고 생각하여 바울을 성 밖으로 질질 끌고 나가 내팽개쳐 버렸습니다.
그 광경을 목격한 디모데가 그럼에도 바울과 함께 떠날 용기를 어디서 얻었겠습니까? 세상적 안전보다 하나님의 뜻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부르심은 단순히 한 사람의 부르심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4, 5절을 보면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고 말씀합니다.
디모데가 바울과 함께 한 일은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을 전파하는 거룩한 사명이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계획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이었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거룩한 사명이었습니다.
그 결과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 가니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디모데의 헌신이 교회 부흥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자를 통해 역사하시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더 목격합니다.
우리의 삶은 지금 어떠합니까? 편안한 신앙생활만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삶을 정말 살아가고 계십니까?
우리 중앙교회 올해의 목표는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것은 성령이 충만하고, 믿음이 충만하고, 말씀이 충만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디모데와 같은 헌신된 성도들이 있어야 합니다. 개인의 유익이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시하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나에게 더 깊은 헌신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내가 안전지대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디모데처럼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용기를 내어야 합니다. 이와같을 때 우리교회가 영적으로나 숫적으로 부흥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 디모데의 헌신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이웃의 구원을 위해 고통과 체면을 버린 희생적 헌신이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안정과 안전을 포기하고 순종한 헌신이었습니다.
사랑하기 위해 아픔을 감수하는 것이 사랑의 특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자를 통해 교회를 부흥시키십니다. 우리가 디모데와 같은 헌신된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이 시대를, 우리 중앙교회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성령 충만, 믿음 충만, 말씀 충만한 삶을 위해 우리 자신을 아낌없이 드리십시다. 이와 같이 이웃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드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우리 교회의 부흥을 위해 헌신하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디모데의 헌신을 통해 우리에게 참된 헌신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함만 추구하고 헌신을 회피했던 우리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이웃의 구원에는 관심이 없고, 하나님의 부르심보다 내 안전만 생각했던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
오늘부터 디모데와 같은 헌신된 삶을 살기로 결단합니다. 이웃의 구원을 위해 체면과 편안함을 내려놓는 삶,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시 순종하는 헌신된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헌신의 고통이 결국 생명의 기쁨으로 승화됨을 확신합니다. 순종하는 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심을 믿습니다.
특별히 우리 중앙교회가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게 해주십시오. 모든 성도가 디모데와 같은 헌신된 삶을 살아 성령 충만, 믿음 충만, 말씀 충만한 교회가 되게 해주십시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당신의 생명까지 드리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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