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정도로 멋진 복음(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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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가 되지 않으려면 알아야 한다
무리가 되지 않으려면 알아야 한다
무리는 이렇게 반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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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7:26, 31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그들이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이렇게 스스로가 말하고 생각하면서도 당국자들의 말과 행동에 의하여 좌지우지되는 삶이 무리의 삶이다.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무리의 안위에 관심이 없이 오로지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는 것에 몰두해있다.
지도자로서의 양심과 판단이 모두 흐려져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아랫사람들에게 지시하여 예수님을 잡아오라고 명령하였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너희와 함께 조금만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다고 하셨다.
그들은 전 세계의 흩어져 살아가는 유대인들에게로 가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메시지이며, 지금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가질 것을 호소하는 말이다.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그들이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그들에게서 떠나셨음이라
이 말씀과 같이 이들은 지금 예수님을 만났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예수님을 자신들의 삶에서 지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와서 자신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왜 예수를 죽이지 못해 난리인가?
왜 예수를 죽이지 못해 난리인가?
이들이 왜 이렇게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 하는지 한번 살펴보자.
먼저 이들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당국자라고 표현할 만큼 중요한 권력의 실세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세부서가 권력을 나누어 나라를 다스린다.
그런데 명확하게 이런 체제는 아니지만 이와 비교하여 보자면 바리새인 및 서기관과 대제사장 및 산헤드린 공의회 사람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며 나름의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런데 예수님이 와서 성전중심의 제도를 파괴하고, 율법을 파기하려는 태로를 보이시니 이들 당국자들은 체제가 무너지는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지금 체제를 무너뜨리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아집과 경험과 습관에 가려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무리들은 이런 권력자들에게 자신들의 삶을 의탁하고 있다.
무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친 이유는 권력자들이 무리를 선동했기 때문이다.
무지로 인한 실수
무지로 인한 실수
성경은 우리에게 늘 겸손할 것을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전지전능하신 분은 유일하신 하나님 한분이요. 그 외에는 모두 부분적일 수 밖에 없기 떄문입니다.
우리의 능력과 앎은 모두 제한적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해야 하고 신중해야 합니다.
무리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었던 성경지식을 맹신하였습니다.
그래서 나사렛 출신인 예수님은 절대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알지 못했던 것이 있습니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는 역사학자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의 간부에게 전하는 이 편지에는 허구가 아닌 사실만을 기록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그가 기록한 누가복음 2장에서 로마 황제의 칙령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가족이 호적을 하러 고향으로 갔는데 그곳이 베들레헴이었고,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이라고 성경말씀에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호적때문에 베들레헴에 가신 사실을 모르고 그가 어려서부터 살던 나사렛이 고향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런 무지로 인해 믿음을 갖지 못하게 된 사례는 이외에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또 아랫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지 않고 돌아가자 바리새인들이 그들에게 미혹되었냐며 꾸짖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들은 ‘율법을 알지 못하는 무리는 저주를 받은자’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말이며, 권력을 잡은 사람들의 이런 말 한마디가 서민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그때에 용기있는 바리새인 니고데모가 등장합니다.
그는 국회의원들이 불의하게 예수님을 모함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의 행동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재판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자신의 동료인 니고데모를 공격합니다.
그리고 니고데모가 갈릴리 출신인 것을 비아냥거리며 그곳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한다고 꾸짖습니다.
마치 전라도 출신인이 국회에서 이야기할 때에 전라도 출신이 무슨 큰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비아냥거림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들이야 말로 율법을 알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요나라는 유명한 선지자가 바로 갈릴리 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그는 가드헤벨 출신인데 그곳은 나사렛 근처에 있는 마을입니다.
그러므로 이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입으로 율법을 알지 못한 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함으로 인해 자신들이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말씀으로 보는 삶
말씀으로 보는 삶
저는 말씀을 묵상하며 이때나 지금이나 변한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전 우리는 계엄이라는 큰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특수부대 군인들이 완전무장을 하고 국회에 진입하여 일반인들과 대치하는 상황은 정말 긴장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군인들은 소극적 항명을 하였습니다.
상관의 지시가 국회에 진입하라고 했기에 항명죄를 저지를 수 없어서 들어가긴 했지만 폭력으로 사람들을 제압하지는 않았습니다.
마치 바리새인들이 보낸 아랫사람과 같습니다.
자신들이 생각해도 그들을 때리고 잡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국회에서 예수님에 대한 정당한 재판을 요구한 니고데모는 마치 최근 총리후보 청문회에서 성경책을 펴고 읽으셨던 박선원 국회의원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분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국회에서 성경말씀을 읽고 당당하게 말씀하시는 모습만은 매우 인상깊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불교인권위에서는 즉시 ‘헌법정신 위배’라며 기사를 내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니고데모 같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듯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예수님을 따르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무리로 살지 않기 위해 알기를 힘쓰며 겸손함으로 살아갑니다. 당국자나 지도자를 맹목적으로 따라가지않고 늘 말씀에 비추어 보고 기도하며 자신의 말과 행동을 결정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군인들과 니고데모와 같이 무리에 속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며,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무리로 살아가지 않기를,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때 만나시기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무지로 인해 실수하지 않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