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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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창세기40:1-23
1.인과응보
행위의 선악에 대한 결과를 후에 받게 된다는 말로, 흔히 죄 값을 치른다고 할 때 ‘인과응보’라는 말을 씁니다. 원인이 있으니 그에 맞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 다는 것이 우리가 공식처럼 여기는 인생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가끔 그 인생의 법칙이 깨질 때가 있습니다. 정말 착하게 살았는데 그 마지막이 허무하고 안타까운 사람이 있는 반면에, 정말 못되게 살았는 데도 불구하고 그 가문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봅니다. 이런 상황은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오늘 말씀을 보면 요셉이 딱 그렇습니다. 요셉의 인생을 계산기로 두드려 보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채색옷을 입고, 꿈을 꿀 때만 해도 앞으로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는데 구덩이에 빠지고, 구덩이에서 죽는 줄 알았는데 살아나고, 애굽에 종으로 팔려 와서 모진 생활을 할 줄 알았는데 보디발의 집에 가정총무가 되고, 가정총무로 출세하며 인생역전을 하는가 했는데 누명을 쓰고 지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리도 길지 않은 요셉의 인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그런데도 요셉은 억울하니까 해명할 기회를 달라고도 하지 않고, 낙심해서 좌절하지도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요셉은 자기에게 일어나고 있는 이런 일들에 대한 해석을 하나님께 맡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고, 형들을 만났을 때 형들은 자신들의 잘못으로 요셉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요셉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45장 5절 말씀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형들은 자신들이 요셉을 팔았던 기억에 갇혀서 퍼즐 하나를 놓고 전전긍긍하고 있지만, 요셉은 하나님의 큰 그림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자신이 꿈을 꾼 것도, 그리고 구덩이에 빠진 것도, 애굽에 팔려온 것도,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것도 다 하나님의 큰 그림을 완성하는 각각 조각들이었음을 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해석으로 풀어지는 과거의 시간들인 것입니다.
롤러코스터와 같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자신의 인생을 종잡을 수 없어 답답할 만한데도, 요셉은 그런 시간들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확인시켜주셨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어도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인자를 더해주시니 간수장에게까지 은혜 입는 것을 보십시오. 요셉은 언젠가 이곳을 벗어날 것을 기대하며 감옥에서조차 최선을 다합니다. 어제 읽었던 39장 22절과 23절을 보면, 요셉이 간수장이 해야 할 제반 사무를 다 처리합니다.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간수장이 그에게 맡긴 것은 살펴볼 필요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오늘 40장에 등장하는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바로왕에게 범죄하여 보디발의 감옥에 갇혀있을 때도 그렇습니다. 4절 말씀을 보면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 들게 합니다. 그러니까 보디발이 감옥에 있는 요셉에게 또 다시 일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정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차피 내가 이곳에 영영 있을 것이 아니라면 그냥 대충대충 시간을 떼우다가 적당한 때에 더 나은 곳으로, 좋은 곳으로, 새로운 곳으로 가면 그만이지 하며 주어진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의 능력으로 더 나은 곳을 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자기 인생을 자기가 계획하고 움직여 가는 사람입니다. 지금껏 그렇게 해서 무언가 이루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구원도 자기 스스로 믿어서 나는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숨을 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운동장을 뛸 수 있는 멀쩡한 다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말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알게 될 때가 온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는 현장이 감옥처럼 갑갑하지는 않습니까? 억울한 일을 겪으셔서 살아갈 의욕이 없지는 않습니까? 내가 지금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답이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풀이과정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시간이 지나 고난의 시절을 통과하고 답을 얻었을 때, 이 문제의 해석이 하나님께 있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처럼 하나님의 해석의 때를 기다리며 오늘도 있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그 다음 과정을 준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근심의 빛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갇힌지 여러 날이 지나고, 두 사람이 같은 날에 다른 꿈을 꾸게 됩니다. 아마도 그 꿈이 생생했을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도 꿈에서 보았던 것들이 마음에 남아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이런 꿈을 꾸었나? 염려가 됐을 것입니다. 때마침 요셉이 수종들기 위해 아침에 들어갔더니 두 사람의 얼굴에서 무엇을 봅니까? ‘근심의 빛’입니다. 요셉이 정말 민첩한 사람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묻습니다.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그러자 두 사람과 요셉이 어떤 대화를 주고받는지 보십시오. 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자신들의 꿈을 해석할 자가 없어서 지금 이렇게 근심의 빛이 드리워져있다고 말합니다. 요셉의 질문에 대답은 했지만 요셉이라고 뭐 우리 꿈을 해석할 수 있겠나 기대했겠습니까? 그냥 답답한 마음에 말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해석은 하나님께 있나이다”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시고, 우리 인간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서 이 세상을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그 분을 믿고 있는 나에게 그 꿈에 대하여 알려주신다면 그 꿈을 풀어드리겠습니다. 요셉은 곡식 단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 별과 해와 달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두 번의 꿈이었지만 그 결은 같았습니다. 앞으로 요셉에게 일어날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꿈으로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그 경험이 있으니 요셉은 더 담대하게 두 사람의 꿈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라고 했을 것입니다.
3.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
먼저 술 맡은 관원장이 자신의 꿈을 이야기 합니다.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은 거야. 그런데 내 손에 바로왕의 잔이 있어서 그 포도를 따서 즙을 잔에 짠 다음 바로에게 그 잔을 드리는 꿈이었어.’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이 꾼 꿈을 해석합니다. ‘세 가지는 사흘인데, 지금부터 사흘 안에 당신의 전직이 회복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전에 하던 것처럼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될 것입니다.’ 요셉은 그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이 그대로 이뤄질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간청합니다. 14절과 15절 같이 읽겠습니다.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주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요셉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습니다. 자신의 무결함을 토로하며 다음 과정을 넘어갈 다리를 놓습니다.
다음으로 떡 굽는 관원장의 꿈입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그럴싸하게 해석하는 요셉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꿈도 소상히 알려줍니다.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은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는데, 맨 윗 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을 새들이 먹어버렸어.’ 요셉은 그 꿈에 대해서도 망설임 없이 해석합니다. ‘세 광주리 역시 사흘입니다.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을 부를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나무에 달리게 될 것이고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을 것입니다.’
두 사람의 꿈에서 말하는 사흘 뒤가 어떤 날이었습니까? 바로왕의 생일이었습니다. 바로가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 때 감옥에 갇혀 있던 두 관원장을 부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요셉이 두 사람의 꿈을 해석한 것처럼 그대로 됩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을 하고,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이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하고 한동안 그를 잊어버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근심의 빛이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근심의 빛 말입니다. 그 근심의 빛을 평안의 빛으로 바꾸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죄악 가운데서 건지시는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쉴만한 물가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시는 목자이십니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 찾아다니시는 선한목자이십니다. 나를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내 인생이 누구의 손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 분의 의해 빚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작은 신음에 응답하시며, 우리의 고단한 인생에 답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