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의 족보
Notes
Transcript
창세기36:1-43
창세기36:1-43
1.에서 곧 에돔의 족보
창세기35장은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면서 모든 이방신상들을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벧엘에서 하나님의 복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불러주십니다. 그리고 그의 허리에서 아브라함부터 시작된 언약백성들의 총회와 왕들이 나올 것이라고도 약속하십니다. 결국 야곱의 새 이름 이스라엘이 곧 그 자손들을 통칭하는 이름으로 불리우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36장입니다. 36장은 1절부터 43절까지 에서의 자손들에게 대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1절을 어떻게 시작하는지 보십시오.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에돔은 ‘붉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세기 25장을 보면 에서가 야곱이 끓인 붉은 죽을 먹게 해달라고 말한 내용과 함께, 에서의 별명이 ‘에돔’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또 다르게 추측해본다면 에서가 태어날 때부터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 ‘에돔’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창세기 36장은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것처럼, 에서가 에돔으로 통칭되면서 그의 자손들이 어떻게 번성하게 되었는지 알려줍니다.
2.언약 밖에 있는 백성들
사실 내일 살펴볼 창세기 37장은 야곱의 아들 요셉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어제 35장에서 곧장 37장으로 이어지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그런데 굳이 에서의 족보를 그 사이에 집어넣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는 에서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복을 이어받았다는 것을 나타내보입니다.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보시면 에서의 자손들이 어떤 악행을 저질렀다고는 기록하지 않습니다. 다만 에서로부터 시작해서 3명의 아내에게서 난 아들들이 어떤 후손들을 낳아서 번성하게 됐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하더라도 야곱과는 다른 길을 갔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5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죽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이 이스마엘의 족보입니다. 이스마엘은 사라의 여종 하갈에게서 난 아들입니다. 이삭보다 먼저 태어난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갈에게서 난 아들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지 않으십니다.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사라의 몸속에 생명을 잉태하게 하셔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에서는 어떻습니까? 야곱의 형입니다. 그는 늠름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 그의 가족들을 지킬 사람으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에서와 야곱이 태중에서 싸울 때부터 하나님은 리브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25장 2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저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이미 태중에서부터 하나님은 어린 자인 야곱을 사용하실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3.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세상의 이치는 먼저 빈익빈 부익부입니다. 없는 자들은 그 가난을 물려줄 수밖에 없고, 반대로 있는 자들은 그 부를 계속해서 쌓으며 대를 이어갑니다. 그것이 당연한 논리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셨습니다. 사라와 같이 생명을 가질 수도, 낳을 수도 없는 상황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면 태의 문이 열리고, 그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도록 만드십니다.
또 다른 세상의 이치는 무엇입니까? 순서가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백화점에서 세일한다고 하면 새벽부터 줄 서는 것을 보십시오. 울산에서 국가대표 축구 경기 하는데 인터넷으로 티켓을 예매하는데 1시간 만에 매진됩니다. 먼저 클릭하는 사람들이 경기장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주권은 먼저 줄을 섰다고 해서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손을 들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특혜를 주셔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디까지 나 하나님의 뜻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야곱은 엄마의 치마폭 속에 있으면서 형이 잡아오는 짐승을 배불리 먹는 뺀질이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관여하시면 얼마든지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지금의 모습을 보면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평판도 바닥을 칩니다. 그러나 언젠가 훗날 다시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은혜받아 먼저 된 자들보다 더 크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반면에 지금은 거부가 되어있고, 교회에서도 평판이 좋은 사람이지만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롯을 보십시오.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이 가라시던 약속의 땅을 밟았던 사람이지만, 그는 그 땅을 벗어나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편에 있는 소돔과 고모라로 나아갔습니다. 에서는 어떻습니까? 오늘 36장 8절 말씀을 보면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 그 역시도 약속의 땅 동쪽에 터전을 잡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될까요? 점점 더 강성해집니다. 9절부터 말씀을 보면 후손들이 많아지니까 부족을 이룹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말렉도 포함되어있습니다. 15절부터는 부족의 우두머리인 족장들을 세웁니다. 20절부터는 에돔 땅에 원래부터 살고 있었던 세일의 자손들에 관하여 그리고 31절부터는 드디어 에돔이 왕을 세워 하나의 국가로서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대항하는 세상나라로 커져버린 것입니다. 요단 동편 아래에 에돔이 위치해 있다면, 그 위에는 롯의 후손들인 모압과 암몬이 약속의 땅에서 벗어난 그 곳에 자리를 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는 이들은 이스라엘과 싸우게 됩니다.
4.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롯과 에서의 행보를 한 번 찾아보십시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했습니다. 롯은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의 땅과 같은 소돔과 고모라로 갔습니다. 에서는 가나안의 딸들과 이스라엘의 딸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밖에 있었으니 당연히 이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 선택을 할 당시에도 내 인생은 저주 아래 있다고 여기며 그런 선택을 할까요? 우리의 욕심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해놓고, 하나님의 택함을 받지 못했다고 핑계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이미 결론이 나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계획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시간을 하나님께 의뢰하며 우리의 삶을 맡기는 것이지요. 우리가 늘 옳은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택한 자들을 그분의 주권 가운데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으십니다. 고난의 길이 때로는 우리를 정금과 같이 단련하는 기간임을 기억하시며, 오늘도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