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사도행전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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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도행전8:4-8
스데반의 죽음과 동시에 예루살렘 교회는 더 거센 박해에 휩싸였습니다. 사울을 비롯한 유대교강경파들이 교회의 뿌리를 뽑고자 각 집에 들어가 예수를 믿는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가두기까지 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치닫게 되니 성도들은 예루살렘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사도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대와 사마리아와 모든 땅으로 흩어졌습니다. 유대인들의 눈을 피해 도망치듯 예루살렘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전쟁을 하다가 전세가 불리해지면서 궁지에 몰려 피난을 가는 것 같은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영적전쟁입니다. 포탄이 날아다니거나 총성이 울리는 전쟁은 아니지만, 예루살렘 땅에 하나님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막으려는 사탄과의 전쟁 말입니다. 성도들은 그 전쟁 통에 공격을 받으며 몸을 낮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숨어있거나 흩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성도들을 이제 어떻게 진두지휘하실까요? 전세를 역전시키려면 사울과 맞먹는 인물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애굽의 10재앙이나,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은 어떻습니까? 모세와 같은 그리스도인이 나타나서 예루살렘에 이런 기적을 베푼 다면 단숨에 교회의 위상이 높아질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방법을 택하지 않으십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처음부터 교회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사울은 교회를 잔멸하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땅에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발을 못 디디게 하려고 했습니다. 사탄은 이 전쟁에서 자신이 승리했다고 보지 않았을까요? 사탄은 하와가 자신에게 속아 아담까지도 넘어뜨린 것처럼, 흩어진 성도들 역시 어딘가에 숨어서 하나님을 원망하여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흩어진 사람들은 아담과 하와처럼 숨지 않았습니다. 흩어진 사람들은 무화과 나뭇잎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서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8장 4절 말씀입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흩어진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복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흩어진 그곳에서 다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왜 그럴까요? 복음의 능력은 한 사람을 바꾸고, 가족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전파될 때마다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전까지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세상 이치들이 죄로 인해 부패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고난도, 죽음도, 죄의 저주 아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도저히 우리 힘만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역사가 입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깨어진 세상을 다시 회복시키겠다고 말입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던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냥 한 사람의 죽음의 고통 정도가 아니라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그 몸으로 다 받아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이제 더 이상 죄의 저주 아래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되신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그분의 자녀가 되었으며, 은혜 아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이미 그 안에 거하시며, 구원을 여정을 돕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빌립 집사님이 바로 그 중에 한 사람입니다. 5절 말씀입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요한복음 4장에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신 적은 있지만, 여전히 사마리아는 민족적으로 거리낌이 있는 지역입니다. 그럼에도 빌립집사님은 사마리아 성에 가서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했습니다.
빌립 집사님의 상황을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먼저는 예루살렘교회 박해로 흩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경멸하는 사마리아까지 왔습니다. 보통 이 정도면 사람들 눈에 뛰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예배드리고, 봉사도 당분간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클 것입니다. 그런데도 빌립 집사님은 쉬지 않습니다. 흩어진 그곳에서 오히려 더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전파합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유대인들이 경멸하는 사마리아인이 아닌,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하며 죄의 무게에 짓눌려 날마다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한 영혼, 한 영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들이 복음을 듣는다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빌립 집사님은 복음의 능력을 먼저 경험한 자로서, 사마리아 땅에 선포 되어질 복음이 가져다줄 기쁨, 그리고 복음을 전함으로 자신이 얻게 될 기쁨이 어떠한 것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서12장 2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루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그 완전한 순종으로 인해 이 땅에 구원의 문이 열리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기쁨을 알고 계셨기에 기꺼이 그 고난을 감수하신 것입니다. 빌립 역시 그러했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만 놓고 보자면 조금 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고, 눈을 들어 복음이 필요한 그 땅을 보았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생기가 가득하고, 기쁨이 일어나는 사마리아 땅을 그려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전파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6절과 7절 말씀 읽겠습니다.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 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먼저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시다는 증거가 나타납니다.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빌립이 어떻게 말씀을 전했는지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말의 재주가 있건 없건 사람들이 빌립집사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더불어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에게 붙었던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병든 사람들이 낫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빌립 집사님이 전한 복음에 열매가 나타나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보니 사마리아성에 무엇이 있더라고 말합니까? 사도행전 8장 8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사도행전에서 말하는 큰 기쁨을 두 가지로 생각해보았습니다. 하나는 외적 기쁨입니다. 귀신들이 떠나가고, 병든 사람이 낫고, 걷지 못하던 사람이 걷게 되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주변인들까지도 덩달아 기뻐 행복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외적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적 기쁨입니다. 외적기쁨이 한 번의 사건, 한 번의 기적들로 인해 얻게 되는 것이라면 내적기쁨은 사시사철 삶 속에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로 얻게 되는 기쁨입니다. 복음을 통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변화가 눈에 보입니다. 형제의 모습 속에서, 자매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새롭게 빚어지는 변화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일마다 공동체 모여서 지난주보다 더 깊어지고 자라난 성도들을 바라볼 때 그 안에 세상이 알 수 없는 기쁨과 참된 평안이 넘쳐나지 않을까요? 그 사람들이 세상으로 나아가 흩어진 그곳에서 복음을 살아낸다면 그곳이 곧 하나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루디아 여러분,
우리의 공통분모가 무엇입니까? 60대 여성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정체성은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예수 안에서 태화교회의 한 가족 된 60대 여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령으로 충만하여서 태화교회 뿐만 아니라 우리의 걸음이 닿는 곳이 어디이든지 예수님의 증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황과 형편이 전혀 그렇지 못할 수 있습니다. 가족들의 핍박이 있고, 내 맘에 탐탁치 않은 것들이 장애물처럼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에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예수님이 무엇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는지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또한 주셨습니다.
우리는 5월에 밖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자랑합시다. 예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성취하신 그 놀라운 일들을 증거합시다. 그 복음을 듣고 믿는 자마다 귀신이 떠나가고, 병든 자들이 낫고, 걷지 못하던 자들이 걷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들로 인해 복음을 전한 우리나, 복음을 받아들인 저들에게나 하나님이 주시는 큰 기쁨이 이 땅에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을 기대함으로 준비합시다. 예수님이 보낸 70명의 전도대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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