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났는가?

요한복음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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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복음 3:1-8
1.철 들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났습니다. 엄마의 뱃속에서 10개월을 보내고, 세상의 빛을 보며 가족의 품에서 자랐습니다. 나름 어릴 때는 명석하다는 소리도 들어가며, 촉망받는 인재였습니다. 그러다 내가 얼마나 평범한 사람인지를 생각보다 일찍 깨닫게 됩니다. 남들과 비교하며 예쁘지 않은 것이 엄마 때문이라고, 키가 작은 것이 아빠 때문이라고 탓하며 사춘기를 맞이합니다. 친구들과 함께라면 무서울 것이 없는데, 집에만 오면 방문을 잠그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냅니다. 저는 자칫 제가 잘못하면 아버지한테 피해가 갈까봐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서 축구하고, 농구하고, 음악으로 연애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의 눈물을 보게 됩니다. 떼를 쓰면, 화를 내더라도 못이기는 척 다 받아주던 엄마가 이제 약해보이는 겁니다. 또 목욕탕에서 살이 벗겨질 것 같이 아프게 떼를 미시던 아버지의 힘도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그리고 행동도 조금은 달라집니다. 그 때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무엇일까요? ‘철 들었네’ 여러분들은 언제 ‘철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조금 일찍 철이 드는 사람이 있고, 아주 늦게 철이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남편은 겨우 이제야 아내에게 철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철 들었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할 줄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2.데려감과 버려둠
철이 들면 자기 고집을 덜 부립니다. 하기 싫어도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 참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내가 변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철들었다는 말이 좋으니까 조금 더 열심을 냅니다. 주일 예배도 빠지지 않고, 성가대도 하고, 교회 봉사까지 합니다. 그걸 지켜보는 부모와 배우자는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그런데 과연 당사자의 속마음은 어떨까요? ‘오늘도 내가 가족의 평화를 이루어냈다.’ ‘아내한테 잔소리 듣지 않겠다.’ ‘떠들지 않고 예배 잘 드렸으니까 엄마한테 뭐 사달라고 할까?’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어찌 됐든 주일 아침에 다른데 가지 않고, 이렇게 온 가족이 예배당에 함께 앉아있는 것만으로 만족하십니까?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기적과 같은 변화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것을 아셔야 합니다. <철 든 가족이 고맙고, 아무리 기특해 보여도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고, 들어갈 수 없다> 는 것을 말입니다. 마태복음24장을 보면 예수님이 다시 이 땅에 오실 때 일어날 일이 기록되어있습니다. 40-41절입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마태복음24:40-41) 지금은 이렇게 장의자에 한 가족이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마지막 때에 우리가족 중 한 사람만 버려둠을 당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온세대가족예배를 드리면서 싫은 듯 좋은 듯 남편이 아내 옆에 앉습니다. 예배에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부모와 자녀가 각자의 예배가 아닌, 우리의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1부 예배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들과 함께 예배드리려고, 아들들의 가정을 기다리는 풍경을 매주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 모습이 ‘성경적이다’ 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동안 편안함과 눈높이 때문에 굳게 닫혀 있었던 문이 열린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세대와 세대가 함께, 가족이 함께 예배드린다고 해서, 구원의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것 아닙니다. 유모차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옆에서 예배드리던 내 아이가 어느 날 성경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혼을 하고 남편을 따라 처음 신앙생활하게 된 아내가 울면서 참아왔던 속이야기를 꺼내놓습니다. 교회에서 느낀 실망감 때문에 더 이상 교회가고 싶지 않다고 말입니다. 의문이 들겠죠.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아닙니다. 가족이 아니라 나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다니던 교회니까 의무감으로 앉아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굳이 이런 무거운 이야기를 꼭 해야 할까요? 네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는 것은 영혼구원을 위한 좋은 토대가 마련된 것이고, 정말 중요한 것은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듭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오늘 말씀에 보면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1절 말씀을 보니, 니고데모가 어떤 사람이라고 알려줍니까? ‘바리새인이고, 유대인의 지도자’입니다. 이 정도면 걸어 다니는 구약성경입니다. 말씀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적어도 나 정도는 되어야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명성이 자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갈릴리 나사렛 출신의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셔서 가르치시고, 전파하시며, 고치신 일들에 관해 소문이 퍼졌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예수님께서 일으키고 있는 일들은 마술 같은 속임수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부릅니다. “랍비여~” 유대인들의 선생님인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향해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다 계획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듣게 될 것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래도 내가 바리새인이고, 유대인의 지도자인데...’ 하는 마지막 자존심이 남아있습니다. 그냥 한 수 가르쳐주십시오. 하면 될 텐데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마치 일반인들은 모르는 것을 바리새인들이 발견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의 그 마지막 자존심을 꺾어버리십니다.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돌려서 이야기 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방금 읽은 3절의 말씀을 보면 ‘진실로 진실로’ 이렇게 두 번이나 강조하시며 내 말을 새겨들으라고 하십니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와 예수님이 지금 제대로 된 대화를 하는 것이 맞습니까? 니고데모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나라를 볼 수 있습니까?’ 질문했다면 정상적인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할 텐데, 지금은 뭔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예수님의 이 대답을 들은 니고데모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곧 자신에게 하는 소리라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야 너는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어.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거듭난 사람이 들어오는 곳이기 때문이야’
엘리트 신앙교육을 받은 바리새인 니고데모가 아니면 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겠느냐며 사람들이 그를 존경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눈에는 아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지금 빛이 아니라 어둠 한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면, 처음에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밤은 지금이 몇 시인지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단순히 시간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상태를 상징합니다. ‘밤’은 영적인 생명이 죽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의 영이 죽어있다는 뜻입니다. 숨은 붙어 있고, 맥박도 정상인데, 보이지 않는 그의 영적인 심장은 멈추어있는 것입니다. 지금 니고데모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거듭남,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니고데모일 수 있습니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으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예배를 드렸겠습니까? 또 얼마나 좋은 양질의 신앙교육을 받았겠습니까? 세례도 받았고, 직분도 받았고, 힘에 부칠 정도로 봉사도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앞에 나와 찬양율동하며, 암송도 잘해서 교회어른들한테 칭찬받는 자녀들이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캄캄한 밤이라면 어떻겠습니까? 그동안 많은 수고와 노력을 했어도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3대째 기독교집안이라고 하나님 나라가 예약되어있지 않습니다. 철이 들어서 생긴 변화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신호탄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영이 죽어 있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거듭남’입니다.
3.거듭남은 영적인 심장이식수술이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충격이었으면 니고데모가 따지듯이 질문합니다. ‘사람이 늙어서 어떻게 다시 태어난다는 말입니까? 다시 엄마 뱃속에 들어가라는 말입니까?’ 그의 표정이 어땠을지 상상해보십시오. 그의 톤이 어땠을지도요. 그런데 한 편으로는 니고데모의 질문에서 니고데모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이런 엉뚱한 질문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자신이 구원받지 못한 상태라는 것에 대한 충격과 함께, 숨기고 있던 것을 들켜버린 부끄러움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한 것이 아닐까요? 또 한 편으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거듭남이 무엇인지 제발 알려달라는 SOS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찌됐든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한 번 더 이야기 하십니다.
5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3절과 비슷한 듯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앞서 3절에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5절에서는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영적으로 죽어있는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은 사람의 계획과 방법이 아닌 오직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물과 성령’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말씀이 에스겔 36장 25-27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여기에서 말하는 몇 차례 반복되는 대상 ‘너희’란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남유다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영적으로 죽어있는 백성들입니다. 그 죽어있는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성령께서 어떤 일을 하시겠다 말씀하십니까? <영적인 심장이식수술>을 시행하십니다. 먼저 맑은 물로 죄를 씻어냅니다. 그리고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십니다. 영적으로 죽은 심장은 떼어내고, 살아있는 심장을 이식하는 것입니다. 다시 뛰기 시작하는 영적인 심장은 생명의 말씀을 우리 영혼에 골고루 퍼뜨리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생기 있게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남입니다.
4.거듭난 사람에게는 변화가 시작된다.
성령께서 집도하시는 영적인 심장이식수술을 눈으로 직접 그 과정을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새로운 생명을 받게 된 거듭난 사람에게는 이전과 다른 변화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주변 사람들도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8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그러하니라” 바람은 색이 없습니다. 모양도 없습니다. 그 자체만으로 냄새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바람이 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소리라든지, 사물의 움직임 등을 통해서 말입니다. 거듭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없기에 쉽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된 변화가 행동으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스티븐 로슨이라는 학자가 최근에 쓴 ‘거듭남에 관한 결정적 대화’라는 책을 보면 자신이 거듭났는지를 점검해볼 수 있는 <5가지 새 마음>이 나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새 마음이 일으키는 5가지 마음의 변화인 것이지요. 저는 이 부분에 공감이 되어서 부연설명과 함께 성도님들에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①먼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새 마음>입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눈을 만족시키는 것,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들에 힘을 쏟았다면, 거듭난 후에는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사랑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스림이 있는 그 나라를 꿈꾸며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②다음으로 <하나님을 아는 새 마음>입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만들어서 인간을 괴롭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 기독교인들은 십자가를 소중하게 여기는지 어리석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후에는 하나님이 왜 이런 방법을 택하실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더 궁금해지고, 자주 그리고 더 가까이 다가가 그분을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③세 번째는 <하나님을 믿는 새 마음>입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성경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너무 어려운 말들도 많고, 동화 같은 이야기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거듭난 후에는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것이 믿어지고, 지금도 우리를 다스리고 계시며, 약속하신 말씀들을 반드시 지키실 것이란 믿음으로 세상의 고난을 이겨나갑니다.
④네 번째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새 마음>입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나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나의 성공을 위해서 고민하고, 행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거듭난 후에는 그 중심에 내가 아닌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내 삶을 통해 이루어 가시는 것들을 높여 찬양합니다. 거친 말을 쏟아내던 입술이 축복의 말이 솟아나는 샘물이 됩니다. 예수님의 향기 나는 모습 때문에 주변 사람들도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게 됩니다.
⑤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새 마음>입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세상과 똑같은 길로 걸어갔습니다. 넓은 문 넓은 길로 갔습니다. 더 쉽고 편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후에는 나의 뜻보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바라며 예수님처럼 좁은 문, 좁은 길로 나아갑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혼자서 그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나는 정말 예수님을 믿고 있는가? 그래도 아버지가 목사인데, 아들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부모님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중창단을 하면서 점심 때 마다 모여 기도를 했는데, 대표기도를 돌아가면서 했습니다. 한 날은 제 차례가 되어서 기도를 했더니 한 친구가 그러는 겁니다. ‘역시 목사아들이라 다르구나.’ 제 속사정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그 친구들이 정말 예수님을 믿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엄마아빠위해서 술 안마시고, 사고 안치는 것이었지. 정말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첫 사역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목사후보생이 되어서 전도사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저는 니고데모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기도회에서 성령님이 영적으로 죽은 제 심장을 제거하고 살아있는 심장을 이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때에, 성령에 붙들려서 죄를 자백하며 새로운 마음을 얻었습니다. ‘너는 목사의 아들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야’ ‘너는 내 일에 집중해라. 나머지는 내가 책임질게’ 가끔은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유혹이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사탄이 비웃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난리를 쳐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이 영적인 심장을 멈춰 세울 수는 없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은 거듭났습니까? 여러분들의 가족은 거듭났습니까? 우리 공동체는 성도들의 거듭남에 관심이 있습니까?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는 지옥에 갈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절박해야 합니다. 가족이 같이 앉아있다면 서로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거듭남, 영적인 심장이식수술>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합시다. 가족의 손을 맞잡고 기도합시다. ➊니고데모와 같은 나에게 거듭남의 은혜가 있도록, ➋사랑하는 내 가족들에게 새 마음을 부어달라고, ➌성령께서 집도하시는 영적인 심장이식수술로 인해 우리 태화교회가 오직 주의 사랑에 매이도록 기도합시다.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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