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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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시편29:1-11
main idea: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예배하라.
1.이름에 걸맞는 대우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곳에 있고 싶어 합니다. 나에게 이런 능력이 있는데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에서 존재감 드러내며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대중들의 인기를 힘입어 살아가는 연예인들이나, 프로 선수들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빛내어 줄 수 있는 기획사와 계약을 맺거나 더 많은 연봉을 주는 소속팀으로 둥지를 옮기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사우디아라비아로 유명한 축구선수들이 대거 이동한다는 기사들이 나옵니다. 왜일까요? 나이가 들면서 전성기 시절의 폼은 잃어버렸지만, 사우디에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제시하며 그 선수의 가치를 여전히 인정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다는 것은 성경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왜 그토록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할까요? 도대체 하나님은 내 삶에 얼마나 중요한 분이십니까? 흔히 우리는 하나님을 창조자, 구원자, 인도자, 보호자로 생각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갑니다. 내게 있는 연약함과 장애물,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읽었던 시편 29편에는 마냥 친절한 하나님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폭풍으로 묘사하며, 그분의 위대하심과 피조물들의 간격을 정확하게 구분 짓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분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예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편에서 다가가기 쉬운 친절한 분으로만 단정 짓는 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자와 자비가 한이 없으시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는 엄중하시고, 얼마든지 진노하실 수 있는 위엄 가득한 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오늘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기에서 말하는 ‘권능 있는 자들’은 원어적으로 보면 ‘신들의 아들들’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이 시를 썼을 때로 보자면, 이스라엘의 이웃나라들이 섬기던 우상들을 가리켜 ‘권능 있는 자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우상이 정말 권세와 능력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우상 앞에 절하며, 제물을 받치고, 심지어 신전에서 몸을 섞으면 신과 하나가 되어, 특별한 은총을 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우상의 권능이었습니다. 그러나 고작 인간이 만든 우상과 이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어떻게 감히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 우상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겠습니까? 권능있는 자들에게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라고 하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자들을 향한 비웃음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방나라 사람들만 우상을 섬겼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꾸만 우상을 만들어 자신의 안위를 점치거나 허탄한 것에 자신들의 인생을 맡기려 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말하는 것입니다. 2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그분의 이름에 걸 맞는 예배다운 예배를 드리라는 것이지요. 제물을 가지고 오는데 드리기 싫어서 병들고, 흠이 있는 것을 가져오지 말고, 몸만 이 자리에 있고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그런 예배 말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드리는 예배,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크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몸과 마음을 드리는 그런 예배를 드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여호와의 소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다윗은 무엇을 통해 설명합니까? ‘여호와의 소리’입니다. 이 여호와의 소리는 7차례가 반복되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리가 들리는 곳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먼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는 여호와의 소리”입니다. 많은 물이라는 것은 바다를 가리킵니다. 가나안 지역을 보자면 지중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 바다 위에서 하나님께서 내시는 소리를 다윗은 ‘우렛소리’라고 표현합니다. 천둥이 치는 소리라는 것입니다. 바다에 천둥이 친다는 것은 파도가 크게 일고, 하늘은 캄캄하며, 폭풍이 일어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실 가나안 사람들에게 바다 지역은, 바다와 혼돈의 신 얌과 풍요와 폭풍우의 신 바알 사이의 전쟁터로 인식되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여호와의 소리가 우렛소리처럼 울리는 것입니다. 바다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얌과 바알이 치열하게 싸운다고 믿는 그곳을 다스리고 계심을 드러내 보이시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일본에 지진이 났는데 기사가 어떻게 났는지 보셨습니까? 쓰나미와는 관련이 없는 듯. 왜 이런 기사가 나옵니까? 일본이 바다에서 일어난 쓰나미 때문에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 또 그런 피해를 입을지 모르기 때문에 만일에 대비해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바다에 파도만 크게 일어도 우리는 그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바다에 여호와의 소리가 우렛소리처럼 힘있게 울리고 있는 것입니다.
4.레바논의 백향목
그 다음으로 그 여호와의 소리가 어디에서 들립니까? 5절과 6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그 나무를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송아지 같이 뛰게 하시도다” 바다에서 들리던 여호와의 소리가 가나안 땅 북쭉에 있는 레바논에서 들립니다. 레바논하면 무엇이 유명합니까? 백향목입니다. 솔로몬이 궁궐과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레바논에서 수입해 온 나무가 바로 백향목입니다. 지금도 레바논 국기 중앙을 보면 백향목 나무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자랑이 된다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여호와의 소리가 그 백향목을 꺾어버립니다. 산을 뒤흔드는 것입니다. 6절을 보면, 시룐이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이곳은 헬몬산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두 산들도 메소포타미아 신들이 자리하는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그 성스러운 곳을 하나님께서 가만두지 않으시고 훼파하십니다. 6절 하반절을 보면, 여호와의 소리가 그 나무를 들송아지 같이 뛰게 하십니다. 요새와 같이 견고하다 여기던 곳이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5.광야를 진동하다.
북쪽에서 들리던 여호와의 소리가 이제는 점점 남쪽으로 내려옵니다. 그래서 도착하는 곳이 어디입니까? 가데스 광야입니다. 가데스 광야는 우리가 가데스바네아로 많이 들어봤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1년 정도를 보내고, 가나안땅을 정탐하기 위해 정탐꾼들을 보내었던 곳이 바로 가데스광야입니다. 여기에서 다시 정리하자면 폭풍 같은 여호와의 소리가 바다에서 일어나, 가나안땅 북쪽 산들에 상륙해서 지금 남쪽까지 휩쓸며 내려오고 있는 모습입니다. 화염을 가르고, 광야를 진동하는데, 조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바로 9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을 낙태하게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의 성전에서 그의 모든 것들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물론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면 새끼를 베고 있던 사슴이라 하더라도 생명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암사슴은 원어적으로 보면 ‘참나무’로 해석하는 것이 맞습니다. 히브리어는 모음이 점과 획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점하나, 획 하나만 바뀌어도 의미가 달라집니다. 성경의 사본이 발견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참나무가 암사슴이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왜냐하면 뒤에 나오는 삼림을 말갛게 벗긴다는 것과도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6.그의 성전에서 영광이라
지금 우리는 손에 모두 카메라를 들고 다닙니다. 그래서 만약 오늘 다윗이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현상들이 바다에서부터 시작해 산에서 광야로 이동하는 것들이 나타난다면 영상으로 찍어서 유튜브에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지금 팔레스타인지역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게 됩니다. 그 때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표현할까요?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벌벌 떨 것입니다. 혹시나 우리나라에도 저런 자연재해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여호와의 소리에서부터 시작된 것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눈으로 목도하며, 하나님의 구원의 때가 도래했음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0절과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땅이 물로 잠겼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왜 큰 홍수가 세상에 있었습니까? 죄로 가득한 이 세상을 씻어내기 위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큰 심판이 있었을 때에도 노아의 가족들은 평강의 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방주를 만들라하시며, 물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셨다고 해서, 정말 물로 세상을 심판하시겠어? 하나님은 그럴 분이 아니라며 노아를 조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인정하며, 묵묵히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누가 남았습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기 백성들, 노아의 가족들만 살아남았습니다.
결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