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통하심

창세기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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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창세기39:1-23
1.꿈의 사람 요셉
요셉은 라헬이 낳은 아들로서 야곱에게 남다른 사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형제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형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결정적인 사건이 생겨납니다. 요셉이 꾼 꿈 때문입니다. 요셉은 두 번의 꾼 꿈을 꿉니다. 그 때마다 요셉은 꿈의 내용을 형들에게 알려줍니다. 이 꿈은 굳이 풀이를 따로 해주지 않아도, 온 가족이 요셉에게 머리를 숙이게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형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 그래도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데다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요셉을 이제는 더 이상 두고만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을 죽이자, 죽이지 말자 형제들끼리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요셉의 채색옷을 벗기고는 그를 구덩이에 빠뜨립니다.
2.하나님의 꿈
만약 그 구덩이에서 요셉의 삶이 마감이 되었다면, 그가 꾸었던 꿈은 그저 요셉의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결론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구덩이에 빠지는 순간부터 요셉의 꿈이 자신의 희망사항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형들은 꼴보기 싫었던 동생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후련함과 마음 한 켠에 숨겨둔 죄책감을 동시에 끌어안고 평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같이 잘못을 저지른 후에, 아버지에게 거짓으로 동생이 죽었다고 속였으니 말입니다. 형들은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갔으니 그의 인생은 끝이 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요셉에게서 들었던 그 꿈의 내용처럼 우리가 그에게 머리 숙일 일은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이미 요셉이 그 구덩이에서 건짐을 받았을 때부터 성취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애굽으로 팔려가다.
요셉은 은 이십에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려 애굽으로 가게 됩니다. 애굽에서 어떤 신세로 지낼지 가늠조차 할 수 없습니다. 또 어떤 누구를 만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39장을 보니 요셉이 누구의 집에 종으로 팔렸습니까?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입니다. 보디발이 요셉을 샀을 때,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샀을까요? 종을 사면서 우리 집에 복덩이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디발은 요셉에게서 남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생각해보십시오. 창세기 46장에 야곱이 그의 가족들과 함께 애굽에 내려갈 때 그 인원이 70명이었습니다. 아직 민족이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주변 다른 민족과 나라들이 견제가 아닌 관심조차 가질 필요가 없는 수입니다. 하물며 그들이 섬기는 신에 대해서는 또 어떻겠습니까? 지금 요셉이 보디발 집에 종으로 팔려왔는데, 과연 그가 하나님이라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요? 바로왕을 비롯해서 애굽에 그 많은 신들이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보디발이 요셉에게 있는 형통함을 보게 됩니다. 3절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모든 일에 누군가 그를 형통하게 하는 것임을 본 것입니다. 누군가 요셉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하는 일에는 열매가 있고, 사람들이 수긍하며, 막힌 것들도 뚫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디발은 요셉을 더 총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디발의 시선으로는 요셉에게 있는 특별함이 자신의 집안에 복으로 더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요셉을 종이 아닌 가정의 총무로 삼습니다. 자기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여러 종들에게 맡긴 일들 중에 요셉의 손이 닿는 곳에만 광이 났다면, 이제는 어떻게 될까요? 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심으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이제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집 안의 모든 곳, 심지어 밭에 있는 농작물까지도 복을 누리게 됩니다.
낮은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죽을 뻔했던 요셉을 구덩이에서 건지신 하나님, 종으로 팔려갔던 요셉을 형통하게 하시는 하나님, 이제는 형통하게 하시는 정도가 아닌 그를 세상의 하나님의 복을 드러내는 존재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복이 되라고 말씀하셨는데, 태양신을 섬기는 애굽이라는 제국 한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점차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4.사탄의 시험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절대적으로 막으려는 세력이 있습니다. 공중권세 잡은 자, 사탄은 하나님의 사람이 세상과 다른 방법으로 높임 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이런 시험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도 하나님은 사탄의 이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형통했던 요셉에게 시험지가 도착합니다. 과연 그는 이 테스트를 어떻게 통과할까요?
6절 말씀을 보면, ‘요셉의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은 이 요셉의 빼어난 용모와 아름다움 때문에 그가 시험에 빠지는 장면으로 연결됩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그와 동침하고 싶어 한 것이죠. 그 때에 요셉이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보십시오. 9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은 주인의 아내와 동침하는 것이 악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요셉은 보디발이 자신에게 모든 것을 허락했어도 딱 한 가지 그의 아내만큼은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제한선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요셉은 그 제한선을 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창세기37장부터 시작된 요셉의 스토리 중에 드디어 그의 신앙이 고백되는 장면입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자기에게 금지된 딱 그 하나, 그것 하나만 차지하면 정말로 모든 것이 내 것이 된 것만 같은 황홀함에 빠질 것입니다. 요셉에게 있는 형통함이라면 보디발도 속이고, 집안사람들의 눈도 속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에게 집안의 모든 것을 맡긴 보디발의 신의를 저버리는 것도 안되겠지만, 자신이 어떻게 형통할 수 있었는지, 자신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 누구신지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이런 대답을 아담이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와가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우리는 죄성을 가진 사람들로써 이 땅에 육체의 장막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 언제든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 힘으로 서 있는 줄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 붙잡아주셔서 반석위에 서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지, 사실 우리는 언제나 한 발만 헛디디면 떨어지는 줄 위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지 않으면 언제든 실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 줄 위에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줄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손을 붙잡고 계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우리는 죄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 본 사람은 죄가 주는 달콤함을 뿌리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 찬스를 버리느냐고 우리에게 물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선택하지 않아서 설령 내게 불이익을 당한다 하더라도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보다 더 값진 것을 우리에게 얻게 하실 것입니다. 세상의 썩어서 없어질 것이 아닌 하늘의 것으로 말입니다. 세상의 것을 얻느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진다면 그보다 더 어리석은 것은 없는 것입니다. 요셉은 이 테스트를 잘 통과합니다.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날마다 보디발의 아내가 동침하자고 청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동침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으려고 그 아내와 함께 있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아내는 끈질기게 구애합니다. 결국 요셉이 덫에 걸리고 맙니다. 하필이면 사람들이 없는 어느 날 오늘도 어김없이 요셉을 꼬드깁니다. 요셉 역시 뿌리칩니다. 그런데 자기의 옷을 그 여자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간 것이 화근이 됩니다. 이 여인이 그 옷을 가지고 요셉이 자신을 겁탈하려고 누명을 씌운 것입니다. 결국 요셉은 손에 있던 것을 잃어버리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보기에는 한심해보였을 것입니다. 진작에 내 말 좀 들었으면 이런 험한 꼴 당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보기에는 요셉이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손에 아무 것도 없으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고 계시는데 말입니다. 21절부터 23절 말씀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하나님의 꿈은 안개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둠은 빛을 막을 수 없습니다. 빛의 자녀로 모든 착함과 진실함과 의로움으로 오늘도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형통한 하루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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