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세 번 절기를 지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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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출애굽기 23:14-17
1.배경
시내광야에 이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곳에 장막을 칩니다. 그리고 모세는 시내광야에 솟아있는 산에 올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출애굽기 20장은 십계명장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지키라고 하시는 동안, 산 아래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레와 번개, 그리고 나팔소리와 연기를 듣고,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 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 현상이 그저 자연재해가 아님을 단 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 곳에 하나님이 계심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백성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두려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가 아닌, 자신들에게 직접 말씀하신다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부탁합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사실 그럴 만도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애굽에서 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몇 번이고 불평하고 원망했으니 두렵지 않겠습니까? 모세 역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출애굽기 20장 20절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지금부터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노예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고, 하나님이 주시는 땅으로 들어가게 될 텐데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범죄하지마라. 너희는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이다. 진정한 자유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을 때 누리는 것이다. 모세는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다시 하나님이 계신 흑암으로 가까이 나아갑니다. 하나님은 이제 본격적으로 모세에게 말씀하시며 그분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상세하게 알려주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러한 맥락 가운데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2.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키라
23장 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제가 학교 공부는 잘 못했는데, 아직도 배운 것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국경일입니다. 국경일에는 태극기를 게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국경일은 학교에 가지 않는 공휴일입니다. 달력에 빨간 날이겠지요. 시험에 이런 문제가 나왔습니다. 다음 중에 국경일이 아닌 것은 무엇인가요? 삼일절, 현충일,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정답은 현충일입니다. 현충일은 학교도 가지 않고, 태극기도 다는 날이 맞긴 하지만 나라의 경사스러운 날이 아닙니다. 현충일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추모하는 기념일입니다. 그러면 또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7월17일 제헌절에는 쉬지 않는데요? 제가 어렸을 때는 쉬었습니다. 찾아보니 2008년부터 공휴일만 폐지가 되었다고 하네요. 여전히 국경일이 맞습니다.
제가 이렇게 아는 척을 하는 데는 오늘 말씀에 나오는 성경의 절기가 이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절기는 ‘약속된 시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와 누구의 약속이겠습니까?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의 약속입니다. 성경에는 더 많은 절기와 기념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절기를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은 아닙니다. 에스더서에 나오는 부림일 같은 경우에는 하만의 계략에서 벗어난 일을 기념하며 포로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이 정신을 후대에게 물려주자고 정한 기념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나오는 이 세 절기는 누가 정하셨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이 절기를 지키라고 하셨을까요? 흔히 출애굽기부터 신명기까지 반복해서 등장하는 여호와의 절기를 7절기라고 부릅니다.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맥추절,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이 바로 7절기입니다. 이 절기들에는 각각의 특별함이 있지만 그 맥을 같이 합니다. 마치 국경일처럼 말입니다. 레위기23장을 보시면 7절기에 관하여 시간 순으로 나열이 되어있습니다. 어린양의 피로 죽음이 넘어간 유월절부터 시작해서 광야에서 나그네와 같이 지냈지만 언젠가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초막절에 이르기까지, 여호와의 절기는 약속된 구원자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될 구속의 역사를 가르치시고자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절기 때마다 하나님은 성회로 모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오늘 말씀에 하나님은 매년 7번이 아니라 3번 절기를 지키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오늘 말씀에 나오는 무교절과 맥추절, 수장절은 모두 농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맥추절과 수장절은 농사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겠는데, 무교절은 유월절과 관련하여 누룩이 없는 무교병을 먹는 날이 아닌가요?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7절기와 관련된 날짜를 계산해보면 무교절이 왜 농사와 관련이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먼저 유월절이 언제냐면 유대인들의 달력으로 1월 14일입니다. 그리고 무교절이 언제나면 유월절 바로 다음날부터 일주일간입니다. 그렇다면 무교절 첫 시작일이 1월 15일입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절기가 바로 초실절입니다. 초실절은 말 그대로 첫 번째 곡식을 드리는 절기입니다. 우리가 보통 초실절과 맥추절을 헷갈려합니다. 그런데 레위기 23장은 이 부분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초실절은 곡물 거둘 때에 첫 이삭 한단을 가져오는 날이고, 그 때로부터 시작해서 일곱 안식일 이튿날까지를 더한 오십을 계산해서 새소제, 두 번째 거둔 곡식을 드리는 맥추절을 지키라고 말입니다. 자 이제 계산 해볼까요? 맥추절이 유대인들의 달력으로 3월 6일입니다. 그렇다면 50일을 뺀 초실절은 언제쯤일까요? 1월 16일입니다. 그런데 초실절과 하루 차이로 어떤 절기가 시작됩니까? 무교절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무교절 역시 농사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3.누구의 수고인가?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서, 애굽 땅에 들어간 야곱의 가족에 이르기까지 본디 이들은 농경사회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유목민들로서 이곳저곳을 다니며 장막을 치고, 양과 염소들을 기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다 애굽에 정착을 하게 되었지만 그곳에서는 노예로 살며, 이집트의 지배아래에서 늘 궁핍한채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시며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야곱이 가나안땅에서 애굽으로 내려 갈 때만해도 가족 70명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숫자가 200만이 넘어 가나안땅 전역을 차지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 땀을 흘리며 수고하여 땅에서 얻은 수확물들로 그들의 생계를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16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왜 맥추절과 수장절을 지키라고 하셨을까?를 고민하다가 이 말씀을 읽는데 두 절기에 동시에 기록된 내용이 있었습니다. “네가 수고하여” 그렇습니다. 땅의 소산을 얻으려면 분명 땀을 흘려야 합니다. 수고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첫 열매를 얻게 될 것이고, 연말에는 그 열매들을 저장할 정도로 풍성하게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열매들을 바라보며 백성들은 어떤 마음을 갖게 될까요? 처음마음을 끝까지 간직할 수 있을까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첫 열매를 얻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가 터져 나올 것입니다. 노예생활을 하던 애굽 때와 비교하면서 얼마나 감격해하겠습니까? 그런데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갈수록 그 감격과 기쁨은 무뎌지게 되어있습니다. 이른비와 늦은비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는 잊어버린 채, 자신들의 수고에 따라 한 해 농사가 성패된다는 교만한 마음이 점점 자라기 시작할 것입니다. 열매의 품질과 열매의 수확량을 따져가며 교만과 불평 사이를 오갈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사라지고, 하나님 앞에 또 다시 범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당부하십니다. 17절입니다.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무교병의 절기에, 맥추절에, 수장절에 하나님께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데 빈손으로 나오지 말고 말입니다. <신명기 16장 16절-17절>에는 더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맥추절)과 초막절(수장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빈손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복을 따라 그의 형편에 맞게 자원하여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합니다.
수고하여 첫 열매를 거두었고, 수고하여 열매를 저장할 정도가 되었다면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백성들은 자신들을 위해 사용할 것도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너무 바빠서 일 년에 세 번,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도 어렵다고 핑계될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어떻게 될까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그 땅을 차지하고 있었던 이방민족들과 똑같아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불러내신 목적이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나안땅에 들어가 일 년에 세 번 땅에 얻은 열매를 가지고 하늘 아버지를 찾아간다면 세상은 그들을 통해 누가 진정한 이 땅의 주인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전에는 바알과 아세라 때문에 곡식을 얻었다고 말했다면, 이제는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는지 궁금해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매년 세 번 절기를 지켜야 하겠습니까? 왜 맥추절을 지켜야 합니까? 내가 아무리 계획하고 노력해서 열매를 거두었어도 하나님 없이는 이 모든 것들이 불가능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위해서입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는 것을 고백하기 위해서입니다. 나의 수고보다, 하나님의 열심에 대한 감사를 드리기 위해 맥추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더 좋은 열매에 대한 감사, 더 많은 열매에 대한 감사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감사는 열매 맺을 수 없던 자에게 열매를 맺게 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을 기억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기억하시며, 그들을 애굽땅에서 건져내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치지 않으시고, 그들과 다시 언약 맺으시며 이제 그들에게 땅을 주시고 수고한대로 땅의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도 이스라엘과 똑같습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어있던 노예였습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기억하셔서, 그 분의 예정대로 사망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들을 그분의 자녀삼아 주셔서, 하늘 아버지께 구하고, 두드리고, 찾으면 주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나그네와 같은 이 땅에서 본향인 저 천국을 소망하며,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뜻을 구하면 우리의 필요대로 모든 것을 더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차원이 다른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열매가 있을까요? 이보다 더 큰 감사가 있을까요?
우리에게 이러한 감사가 넘친다면, 내 수고와는 상관없이 일년에 세 번이 아니라 시시 때때로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며, 예배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이유가 달라질 것입니다.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승리하기 위해 수고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을 누리기 위해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많은 것들을 나누기 위해 수고할 것입니다. 세상에 나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수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수고를 기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신원해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열매가 그 삶에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의 수고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시다. 다른 그 어떤 열매도 이보다 더 클 수 없음을 노래합시다. 더불어 받은 은혜와 복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빈손으로 나오지 말고, 내가 받은 은혜대로 힘을 다해 섬깁시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즐겨할 때, 하나님은 그 이상으로 우리에게 갚으시는 분임을 경험해보십시오. 드리지 않기 때문에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까워하기 때문에 받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감사가 사라지고, 끝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욕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 세상의 이치를 역행하며 감사로 하나님께 마음과 정성이 담긴 예물을 드려보십시오. 하늘의 창고가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은행에 정기적금을 할 때에도 나중에 불어날 목돈을 탈 생각에 힘들어도 꼬박꼬박 지킵니다. 하물며 우리가 드리는 감사의 예물이 그보다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할 때, 자라게 되어있고, 기쁨이 샘솟게 되어있습니다. 감사로 하늘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되는 우리 태화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매년마다
하나님은 왜 매년 세 번 절기를 지키라고 하셨을까요? 여기에서 저는 이런 가정을 해보았습니다. ‘절기’를 매년 지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앞서 하나님께서 이 절기를 왜 정하셨다고 했습니까? 각각의 절기의 특징이 있지만, 이 절기는 하나님의 구원의 스토리로 연속성을 가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이 절기를 매년 지키지 않고, 한 해 걸러, 그 다음해에 지키고, 그러다가 놓치고, 영영 지키지 않다 보면, 그런 절기가 있었는지도 모른 채 태어나는 다음세대들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접할 수 있겠습니까? 일 년에 세 번 지키라는 그 절기마저 바쁘다는 핑계로, 열매가 없다는 이유로 하나님께 나아오지 않는다면 자녀들은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생각하지 않고, 나도 엄마 아빠처럼 열심히 살아야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구나 만 각인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일에만 들을 수 있는 성경 속 존재이고, 다른 6일 동안 나의 일상에는 전혀 관여되지 않는 초월적 존재로만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떠할까요? 감사를 모르는 다른 세대가 일어나 믿음의 대가 끊어지고 말 것입니다.
코로나를 겪으며 우리가 여실히 느끼지 않았습니까? 매주 드리던 주일예배가 3년 동안 제대로 드려지지 못했습니다. 영상이라는 매체가 그나마 예배현장을 중계했지만 우리의 중심을 지키는 데에는 너무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도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자 점점 더 믿음이 약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막 신앙생활을 시작한 성도들은 어땠을까요? 우리의 자녀들은 어땠을까요? 이제는 교회에 굳이 갈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주일성수는 옛말이 되었습니다.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를 준비하는데에도 저들의 관심을 끌만한 프로그램이 없으면 부모들조차 성경학교에 보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재미난 프로그램과 비교하며 성경을 배우는데 교회가 더 노력해야하지 않냐고 되묻고 있습니다.
안타깝고 슬프지만 저는 이런 모습들이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세상과 견주며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교회에 필요를 저마다 요구할 것입니다. 지역교회들을 저울질하며 한 교회에 소속되기를 거부하고 가나안 성도로 혼자 신앙생활하는 것을 편안해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도들의 편의를 위해 매일 지키던 것을 매주로 바꾸고, 매주 지키던 것을 매월로 바꾸면 상황이 나아질까요? 사람들이 더 모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교회는 힘을 잃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매년 지키라고 하셨던 것처럼 시대의 풍조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람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꿋꿋이 그 신앙을 지키는 교회는 힘을 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교회에서 자라나고 있는 다음세대들은 어른세대들의 어떤 모습을 지켜보며, 배우고 있을까요? 우리가 매일 하나님을 예배하며, 저들도 그렇게 예배할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고, 봉사하며, 헌신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그들도 그렇게 따라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미련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하나님나라완성을 꿈꾸며 살아갈 때, 아직은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장난감을 버리고 부모세대가 옳았다는 것을 깨닫는 날이 올 줄 믿습니다. 우리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5.네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
마지막으로 왜 하나님은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키라고 했을까요? 출애굽기 34장을 보면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이 절기에 대하여 언급하시는 내용이 있습니다. 34장 23절과 24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 내가 이방 나라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네 하나님을 뵈려고 올 때에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 출애굽기 34장을 읽다가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그렇지. 매년 세 번씩 성막이 있는 지역으로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다 모인다면, 호시탐탐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노리고 있는 이방민족들이 가만히 있을까? 이스라엘 때문에 땅을 빼앗겨버린 이방민족들이 식은 죽 먹기처럼 쉽게 땅을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생기니 말입니다. 주변 국가들의 위협을 느끼는 이스라엘의 지파들은 그 위험을 감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망설여지겠지요. 괜히 갔다가 땅을 빼앗기는 것은 아닌가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 내가 너희를 불렀으니, 너희의 그 빈틈을 내가 책임지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세 번의 절기동안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귀찮지 않으실까요?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처럼 힘이 부족하거나 피곤함을 느끼지는 않으시겠지만 백성들이 땅을 비운사이 그 땅을 지키시고 보호하셔야 하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해서라도 가르치고 싶은 것이 있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내 생업과 터전을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책임지십니다. 주일에 일을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돈을 쫒지 않고, 주일에 예배하며 안식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주시는 부요함이, 세상의 부요함보다 더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믿음의 모험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모험을 통해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헤쳐 나가야할지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며 약속하십니다.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 이 약속이 믿어지는 자들은 자신의 안주함을 벗어던지고 믿음의 모험을 떠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대적들이 손끝하나 건들지 못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경험하며, 돌아온 그곳에서 또 다시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리게 될 것입니다.
6.결론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1년의 절반을 보내며, 하나님이 내게 주신 열매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셨습니까? “비록 무화가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남들과 비교해가며 내가 얻은 것이 하찮아보여도, 우리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것이 우리의 감사의 첫 번째 이유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매년 드리는 이 맥추감사를 통해 우리의 신앙이 고백되어지길 원합니다. 교회력으로 지키는 절기라서 지키는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개인의 삶속에 베푸신 은혜, 우리 가정에 베푸신 은혜, 우리 교회에 베푸신 은혜를 찬양함으로 오고가는 모든 세대들이 이 신앙의 유산을 소중하게 여기며, 매년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신앙교육의 현장이 되기 바랍니다.
수고하고 땀 흘려 이룬 무언가를 잃을까 겁이 나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망설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 이 말씀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을 향해 믿음의 모험을 떠납시다. 새로운 변화 앞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또 감사의 제목을 주실 것입니다. 날마다 이런 감사의 은혜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