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이 임하시면
Notes
Transcript
본문: 사도행전1:6-11
1.서론
성경학교와 수련회 계절이 되었습니다. 우리교회 다음세대들의 신앙부흥을 위한 집중사역 기간이 된 것입니다. 몇 주 전부터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나, 기도제목 주보삽지 등을 유심히 본 분들이라면 체감하고 계실 것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성경학교와 수련회를 경험해보셨기 때문에 방학이 다가오면 교회가 왜 이렇게 성경학교와 수련회에 몰입을 하는지 다 아실 겁니다. 성경학교와 수련회는 매주 드리는 예배와는 다른 특별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어른 세대들의 성경학교와 수련회는 어떠했습니까? 무엇이 특별했습니까?
제 초등학교 때는 새벽성경학교가 있었습니다. 여름에는 해가 일찍 뜨니까 5시 30분 정도가 되면 새벽성경학교 출석하면서 명찰 뒤에 스티커 붙인 다음에 마치고 밖에 나와서 체조했었습니다. 제 청소년 때는 그렇게 굴렸습니다. 학교 운동장에 공동체 훈련으로 코스를 만들어서 막 뛰게 만든 다음에 절묘한 장소에 요구르트를 둡니다. 마시라고해서 마셨더니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다면서 얼차려를 주었습니다. 저녁 집회 때 은혜 받아서 운 사람도 있지만, 서러워서 운 사람도 있었습니다. 지금 웃고 계신 분들은 이런 특별함을 다 경험해본 분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기억하는 성경학교와 수련회의 특별함이 이게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학교와 수련회의 특별함은 수고와 고생보다 더 중요한 은혜와 회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수고한 만큼 열매가 있기는 합니다. 고생한 만큼 보람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은혜는 인간의 계산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 된 인간의 본성은 훈련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부분은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5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은혜가 무엇입니까? 내가 제일 잘 난 줄 알았는데,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회심은 무엇입니까? 그런 죄인인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사랑 밖에 없다는 것을 믿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저녁집회 시간에 불을 끄고, 서정적인 피아노 반주가 흐르면 죄인임을 깨닫게 될까요? 좋은 강사가 복음을 이해하기 쉽게 잘 풀어주면 모두가 마음을 돌이킬까요? 아닙니다. 오직 성령님이 우리 각 사람에게 임하실 때 우리에게 이런 은혜와 회심이 일어납니다.
2.본론
첫째, 성령님이 임하시면 굳은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지금 제자들과 함께 계신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분명히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 흘리시며 죽으셨던 바로 그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셔서 무려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면 그 말씀에 부족함이 있겠습니까? 거짓이 있겠습니까? 복음서에 나오는 비유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청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쉽게 설명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 말씀을 들은 제자들의 질문은 무엇입니까? <6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 질문은 마치 이런 늬앙스로 느껴집니다. ‘예수님 말씀은 잘 들었고요. 그런데 저희가 진짜 궁금한 건 이스라엘이 언제 로마로부터 벗어나 나라다운 나라가 되는 거예요. 예수님도 이렇게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그렇게 예전부터 강조하시던 성령님이 진짜 오신다면 이제는 우리가 로마를 이 땅에서 쫓아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도, 제자들의 마음은 아직까지 그대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알게 될 것을 말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2절-14절>입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시지만,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고치십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라고 고백하면서도,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이전과 똑같은 사람에게 예수님의 말씀으로 깨닫게 하십니다.
찰스 쉘던이 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책이 있습니다. 레이몬드 제일교회에 직장을 잃은 인쇄공이 찾아오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직장을 잃었으니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가지고 있는 기술이라고는 인쇄술 밖에 없는데, 무인 시스템처럼 기계가 들어오니 점점 더 그와 같은 사람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도 고프고, 마음도 아프고, 힘이 들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였지만 사람들은 외면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외면하던 사람들이 주일이 되니 모두 교회에 나와서 듣는 말씀이,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 분을 따르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인쇄공은 어떻게 교회가 예배 때 들은 말씀과 삶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가 싶어, 예배 중 성도들을 향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나에게 보여준 그 모습이 예수님의 모습이냐고 말이죠. 인쇄공이 남긴 이 질문은 맥스웰 목사님을 비롯한 모든 성도들에게 큰 울림이 됩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제안을 합니다. 일년 동안 모든 삶 속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라는 질문과 함께 예수님의 방식대로 행동하자고 말입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 바로 이 것입니다. 성령님은 식어있는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장작이나 연료가 아닙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주님의 마음을 깨닫게 하셔서, 그 말씀에 순종하도록 이끄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제자들이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 이 때냐고 물었을 때, 한 번 더 생각해보았으면 어땠을까요? 예수님이 힘이 없어서 붙잡히셨나? 예수님이 능력이 없어서 십자가에서 그 수치를 참아가며 피를 흘리셨나? 그런데 성령님이 임하시니까 제자들의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4장 33절-35절>입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전에는 이스라엘 나라 회복에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회복되면 예수님의 자리 오른쪽과 왼쪽에 누가 있게 될지 궁금했겠지요. 그러나 성령님이 임하시니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하나님 나라가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미 그 분의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성령님 임하셔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주시길 원합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우리에게 주님의 마음을 주시길 기대합니다. 굳어있던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둘째, 성령님이 임하시면 건조한 삶이 새로워집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바 아니요” 만약 때와 시기를 알려주면 어떻게 될까요? 평소에 예습 복습 잘하는 친구들은 갑자기 쪽지 시험 친다고 해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벼락치기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 어디에서 문제가 나오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래야 게으름을 피우던지, 일찍 포기를 하든지 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에게 때와 시기를 알려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시한부 종말론자들처럼 비참한 마지막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때를 이용해서 인생을 쥐락펴락하려 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와 시기는 너희가 알바가 아니라며 잘라 말하시는 것입니다.
대신에 무엇을 알아야 하겠습니까? <8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이 임하시면 제자들이 권능을 받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권능은 ‘두나미스’라는 헬라어로 ‘다이너마이트’ ‘다이나믹’이라는 단어를 파생시켰습니다. 그만큼 성령의 권능은 폭발력, 역동성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성령님은 왜 제자들에게 이러한 권능을 주시는 것일까요? 제자들은 이제 땅 끝까지 찾아가서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극적인 순간에 증인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뀔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증인이 주인공을 돕는 역할이 아니라, 주인공에게 누명을 덮어씌우려고 하는 역할 일 때,그런 증인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처음에는 잘 되어가는 것처럼 보이다가 나중에 다 들통 납니다. 증언이 거짓이거나, 어떤 범죄 경력이 있거나, 증인으로서의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 결정적인 오류가 있음이 발각되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증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원에서의 증인은 방청객들이 난동을 부리면 판사가 제재를 부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증인들은 증언하는 곳은 얼마든지 그들을 붙잡아 감옥에 가둘 수 있고, 돌을 던질 수 있고,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곳입니다. 사람들의 굳어있는 표정, 차가운 눈빛만 보면 얼어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증인이라고 완벽할 수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말이 안 나올 수 있고, 죄에 걸려 넘어져 사람들 앞에 부끄러울 수도 있습니다. 복음을 전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열매 없음에 실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권능이 더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모든 결과는 주님께 맡기기 위해서 말입니다.
난생처음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일본에 예수님을 전했던 증인들의 순교, 그리고 그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의 순교현장을 정탐하고 왔습니다.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 생활을 하며 그들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잔인함이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549년도에 복음이 전해지고, 기독교가 부흥하자 박해가 시작됩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다닌 현장의 몇몇 곳 가운데 유독 인상 깊었던 곳이 있습니다. 바로 머리 무덤과 몸 무덤입니다. 1658년 7월 27일 참수형이 결정된 406명 가운데 131명이 호쿠바루 처형장에서 처형됩니다. 4열로 줄을 지어 무릎 꿇은 채 차례로 참수형을 당하는데 순교자들은 한 마디의 신음 소리도 내지 않고 묵묵히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죽은 시신을 그냥 한 곳에 묻지 않고, 머리와 몸을 따로 매장을 했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죽은 그리스도인들이 부활할 것을 겁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겁이 났으면 매장 후 3일이 지난 몸은 다시 파내어서 바다에 던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나가사키 정탐을 가보면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몸 무덤과 머리무덤 기념비가 세워진 곳이 차로 이동해야 할 정도로 떨어져있습니다.
몸과 머리를 따로 매장할 정도로 부활이 신경 쓰였다면, 그 당시 일본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었는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외국인 선교사가 전해준 복음을 믿고, 그 복음을 위해 생명조차 아끼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성령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박해자들이 성도들의 목을 잘라 몸과 머리는 떼어낼 수 있을지 몰랐어도, 부활의 능력, 영생의 소망은 그들에게서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영원한 삶은 무지한 자들에게는 두려움과 공포였을 것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고기를 낚던 어부가, 사람을 섬기는 어부가 됩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예수님을 부인하던 자가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성령의 권능을 입고, 예수님의 증인이 되면 무미건조한 삶이 풍성한 삶으로 새로워집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우리의 자녀들과 다음세대들이 그런 새로운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성령님이 임하시면 우리의 시선이 새로워집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고 있던 제자들을 향해 천사들이 나타나 이야기 합니다. <11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언제까지 하늘만 보고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 분명히 당부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약속한 성령을 기다리고, 성령의 권능을 받아서,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라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이 물끄러미 하늘만 보고 있으니 천사들이 그들의 사명을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예수님 분명 다시 오실테니, 이제 돌아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가?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요즘 어려운 일 만날 때, 주님을 찾고 있습니까? 너무 바쁘게 살면 하늘 쳐다볼 시간도 없다고 말하죠. 그리스도인들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주일날 예배드리며, 세상에서 이렇게 살자고 들은 것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이 여간 도전받는 일이 아닙니다. 착하게 사는 것도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엄두도 못내고, 세상 속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 역시 희망사항으로 그치고만 있을 수 있습니다.
주어진 상황만 보고 있자면 답이 없습니다. 어디에서부터 풀어야할지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을 가지고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그냥 하늘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심을 믿으며, 성령님의 도움을 구해보십시오. 성령님이 임하시면 우리의 시선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오늘 여름사역 출정예배 설교를 맡게 되면서 주제인 ‘성령님’에 관하여 말씀을 전하는 만큼, 더 기도로 준비해서 말씀을 전해야겠다 나름 계획을 했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실패했습니다. 한 주간 동안 생각지도 못한 여름 감기로 고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중에 여러 가지 일들이 계속 생겨나면서 마음에 여유도 없고, 설교를 준비해야하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심적인 압박감이 자꾸 외적으로 표출되는 겁니다. 그런 제가 불안해보였는지, 아내가 불가항력적인 상황이니까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으라고 말하는 겁니다. 오늘 제 설교가 성령님에 관한 내용이라고 말하니 더 강조합니다. 목사보다 낫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니 그런 겁니다. 주님을 찾지 않으니 설교준비 할 시간 없다고 짜증을 내는 겁니다. 기도해야지 마음먹는 순간부터 방해는 시작됩니다. 좋은 핑계거리가 우리가 주님을 찾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늘을 바라보지 못할 정도로 바쁩니까? 그때가 더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우리의 시선이 새로워집니다. 숨통을 조여 오는 긴장감 속에 여유가 생기고, 문제로 생각했던 것들이 오히려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하늘을 향해 문을 두드리고 찾고 구하니 땅에 필요한 지혜가 쏟아질 것입니다. 교회의 변화와 다음세대들의 여름사역을 앞두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다시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하며 기도를 멈추는 순간 거친 파도는 배를 덮칠 것입니다. 그러나 변함없이 기도하는 공동체,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는 공동체는 거친 파도가 아닌, 부흥의 파도를 타고 새로운 은혜의 항해를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3.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굳어진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주님의 마음을 따르게 됩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건조한 삶이 새로워집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아 주 예수보다 귀한 것이 없음을 증언하는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우리의 시선이 새로워집니다.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지는 그 첫 시작은 바로 기도입니다.
여름사역의 시작을 알리며,
각 부서와 각 사람들 가운데,
그리고 우리 교회 가운데 새로운 마음, 새로운 삶을 주시는 성령님이 임하는 은혜가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