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정도로 멋진 복음(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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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나
말레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1:03:40 부터 나옴
막달라 마리아를 연기란 모니카 벨루치라는 이탈리아 배우
요한복음에 나온 간음한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라는 것은 확실한 사실은 아니지만 영화에서는 그렇게 해석하여 연출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보니 이 배우가 간음한 여인을 연기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나오기 4년 전에 2000년 말레나라는 영화를 찍었는데 이 영화가 바로 간음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말레나라는 영화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한 시골마을에 ‘말레나’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전쟁에 참전한 남편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평범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너무 아름다웠고 동네의 남자들은 모두 그녀의 주변을 서성였지만 그녀의 마음은 오직 남편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었다.
동네의 모든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말레나는 여성들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여인들은 말레나에 대한 온갖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고, 소문으로 오해를 하게 된 여인들은 말레나에 대한 적대심이 날로 커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이 전쟁 중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남자들의 추파와 여인들의 시기질투에 너무나 지친 말레나는 평소 자신을 흠모하던 장교를 집으로 초청했다. 아마도 그와 새출발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던 유부남 치과 의사가 말레나는 자신과 혼인한 사이라며 싸움이 벌어진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말레나는 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되는데 한 변호사의 호의로 다행히 무죄를 선고 받고 풀려나게 된다. 그러나 그동안 말레나에 대한 소문은 이 사건으로 인해 사실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자신을 열렬히 변호해준 변호사는 고액의 수임료를 청구하여 말레나가 거절할 수 없게 만든 후 그녀와 관계를 갖게 된다.
그 이후 말레나는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고,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굶주린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자기를 원하는 군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었고, 그 대가로 빵과 담배를 받았다.
전쟁이 끝이 나고 군인들이 철수하자 마을에 여인들은 말레나가 독일군의 장교들과 간음했다는 이유로 광장에서 집단으로 린치한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수난을 당한 말레나는 그대로 쫓기듯 마을을 떠난다.
시간이 흐르고 말레나가 살던 동네에 죽은 줄 알았던 그의 남편이 돌아온다. 남편은 자신의 아내에 대하여 수소문했지만 자신들이 한 잘못때문에 아무도 말레나의 행방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 남편을 본 한 꼬마가 있었는데 그 꼬마는 어려서부터 말레나를 짝사랑하여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관찰했던 아이였다. 그 아이는 남편에게 그녀가 얼마나 남편을 사랑했는지와 어떤 일을 겪었는지 그리고 어디로 떠났는지까지 편지를 써서 전해준다.
그 편지를 가지고 말레나와 재회한 남편, 둘은 팔짱을 끼고 마을로 돌아온다.
우리가 영화 속의 마을 사람들이었다면 우리도 말레나를 혐오하고 비방하며 욕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밖의 우리 중에 말레나를 욕하거나 정죄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간음한 여인
간음한 여인
본문의 간음한 여인이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정황상 말레나와 같이 억울한 상황에 놓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번째는 요 8: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일부러 만든 상황이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힌다는 것이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아침이라는 것도 그렇고, 또한 그들이 잡힌 장소도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멀지 않는 곳으로 생각됩니다.
만약에 이들이 정말 불륜을 저질렀다면 인적이 드문 한밤 중이나 인적이 드문 장소와 같이 매우 은밀한 때에 관계를 가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침에 사람들이 많이 있는 장소에서 간음을 했다는 것이 이상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함께 관계한 남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간음죄라는 것이 혼자서 지을 수 없는 죄입니다.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동침하면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안에 있으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모세오경에도 간음을 했을 때 그 둘을 모두 돌려 쳐죽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는 남자는 애초에 나오지 않습니다. 억울한 여인만 사람들 가운데 벌벌 떨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정황으로 보아 지금 이 현장은 원래 그런 일을 하는 여인이든지 아니면 순진한 한 여인이 이용당한 사건으로 보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매수된 남성이 이 여인을 유혹하여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서 관계를 갖게되었고, 그들은 현장을 덮쳐 여인만 잡아서 광장으로 데리고 나온 것입니다.
남자는 이미 도망가버리고 여인 홀로 사람들의 손에 들린 주먹만한 돌이 언제 자신에게 날아올지 몰라 두려움에 떨며 땅바닥에 엎드려 있습니다.
아무 상황도 모르는 사람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말만 듣고 자기들도 돌을 하나씩 집어 들고 여인을 향해 언제든지 돌을 던지려고 준비합니다.
이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한마디도 상황을 정리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러니 복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렇게 복잡하고 난처한 상황을 각자의 입장이 모두 있는 상황에서 한마디의 말로 모든 사람의 양심을 일깨우고 상황을 정리할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바닥에 엎드려 벌벌 떨고 있는 여인을 부드럽게 일으키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몸을 파는 여인에게도 따뜻하게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결론
결론
이런 말씀을 볼때마다 스스로 참 부끄러워집니다.
저도 이런 상황에 놓였을 때 무의식적으로 ‘나같으면 절대 저런 짓 안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읽을 때면 그런 내가 떠올라 얼마나 부끄러운지, 그리고 얼마나 그 사람에게 미안한지 모릅니다. 나는 알아봤자 내가 듣고 본게 전부인데 이 외에는 알 방법이 없으면서 남을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죄인은 대할 때 그 죄가 확실하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마땅히 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여인이 이전에 어떤 사정에 의해서든 불의한 행동으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는 삶이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패션오브크라이스트에서 이 여인을 막달라 마리아로 해석한 이유는 그녀의 삶이 예수님을 쫓는 삶으로 변화된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이전처럼 몸을 파는 일을 계속한다면 이 여인은 이후에 언제라도 돌에 맞아 죽고, 또 죽고 난 이후에 지옥에 형벌을 받을지로도 변명할 수 없습니다.
내 과거에 부모가 어쨌든, 환경이 어쨌든, 상황이 어찌되었든지 간에 나의 불의를 정당화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는 두려움때문에 변화되지 못해서는 안됩니다.
과감하게 그 일을 끊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먹이시는 것도 경험하고,
물고기 배를 가르니까 돈이 들어있는 경험도 하고, 삭개오 같은 사람이 자기 재산의 절반을 나누는 경험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삶이요,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났다면 이제 우리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38년된 병자는 유대인에게 예수를 넘기고 떠났지만, 이 여인은 예수를 따랐습니다.
그것이 결정적인 차이이며,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복음을 들은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복음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복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