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 강가의 디스코, 그리고 우리의 눈물 2025 0708 시1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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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87장 / 284장
공동체성경읽기 시편 135-141편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4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6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7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8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9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바벨론 강가의 디스코, 그리고 우리의 눈물
바벨론 강가의 디스코, 그리고 우리의 눈물
본문: 시편 137편 1-9절
서론: 세상에서 가장 슬픈 댄스곡
서론: 세상에서 가장 슬픈 댄스곡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른 새벽 주님 전에 나아오신 여러분 모두의 삶에 하늘의 평안이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시편 137편의 배경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기, 바로 '바빌론 포로기'입니다. 기원전 6세기경, 남유다 왕국은 강대국 바벨론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심장과도 같았던 수도 예루살렘이 불타고, 무너지고, 짓밟혔습니다.
무엇보다 끔찍했던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의 상징이었던 솔로몬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무참히 파괴된 것입니다. 성전의 파괴는 단순한 건물의 상실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마저 우리를 버리셨는가?'라는 영적 공황 상태, 정체성의 완전한 붕괴를 의미했습니다.
살아남은 백성들, 나라의 지도자와 기술자, 지식인들은 쇠사슬에 묶여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을 걸어 적국인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어제까지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 불리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노예이자 포로가 된 것입니다. 희망도, 미래도, 나라도, 심지어 하나님과의 연결고리마저 끊어졌다고 느끼는 깊은 절망. 오늘 시편 137편은 바로 그 절망의 한복판, 낯선 바벨론 강가에서 터져 나온 이스라엘의 신음이자 눈물의 기록입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사실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 시편이, 약 40년 전, 전 세계를 휩쓴 아주 경쾌한 디스코 음악의 가사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가능하다면 Boney M.의 'Rivers of Babylon' 전주를 짧게 언급)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는 보니 엠의 "Rivers of Babylon"입니다.
이토록 신나는 노래의 가사가 무엇인지 자세히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노래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By the rivers of Babylon, there we sat down... ye-eah we wept, when we remembered Zion."
"바빌론 강가에 앉아서, 그래요, 우리는 울었습니다. 우리가 시온을 기억했을 때..."
울었다고요? 이 신나는 파티 음악이 실은 눈물에 대한 노래였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노래는 계속됩니다.
"When the wicked, carried us away in captivity, required from us a song. Now how shall we sing the Lord's song in a strange land?"
"사악한 자들이 우리를 포로로 끌고 와서는 노래를 부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찌 이 낯선 땅에서 주님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겠습니까?"
이 가사는 단어 하나하나가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을 구약성경 시편 137편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고통스러운 비극 중 하나인 '바빌론 포로'의 이야기가,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댄스곡 중 하나가 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이 기묘한 부조화, 이 아이러니 속에 오늘 저와 여러분이 마주한 신앙의 중요한 질문이 담겨있다고 믿습니다. 세상은 마치 이 경쾌한 디스코 비트처럼, 우리의 슬픔을 가볍게 여기고, 우리의 아픔을 억지로 흔들어 덮어버리라고 말합니다. "울지 마, 힘내!", "아파도 웃어, 그게 프로야!" 이것이 바로 세상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바벨론의 디스코'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 '바벨론의 디스코'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정직하게 울 수 있는지, 어떻게 신앙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지, 그리고 마침내 어떻게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노래를 배울 수 있는지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본론 1. 세상의 노래를 거부하는 저항 (1-4절)
본론 1. 세상의 노래를 거부하는 저항 (1-4절)
먼저 1절과 2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시편137:1-2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상상해 보십시오.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이 있던 영광의 도시는 불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살아남은 이들은 쇠사슬에 묶여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 이역만리 바벨론으로 끌려왔습니다.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가족, 집, 나라, 그리고 예배의 중심이던 성전까지도요. 그들이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변에 주저앉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불타버린 고향, '시온'을 떠올리며 우는 것밖에는요. 여기서 '기억하며'라는 히브리어 '자카르'는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뼈에 사무치도록, 나의 존재를 걸고 잊지 않으려는 능동적인 몸부림입니다.
바로 그때, 3절을 보면 바벨론 사람들이 다가와 조롱하며 말합니다. "야, 너희들 노래 잘한다며? 너희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유명한 시온의 노래, 한번 불러봐! 우리 좀 즐겁게 해줘!" 보니 엠의 노래 가사처럼, "required from us a song", 노래를 요구한 것입니다. 시편137:3
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의 고통을 구경거리로, 우리의 신앙을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려는 잔인한 요구입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들은 말없이 강변 버드나무에 자신들의 수금을 걸어버립니다.(2절) 수금은 기쁨과 찬양의 상징입니다. 수금을 건다는 것은 침묵의 저항입니다. "나의 아픔을 당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팔지 않겠다. 나의 신앙을 당신들의 조롱거리로 만들지 않겠다. 나는 지금, 억지로 웃으며 당신들이 원하는 노래를 불러줄 마음이 없다." 라는 강력한 선언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정직하게 슬퍼할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빨리 털고 일어나라고, 웃으라고, '바벨론의 디스코'에 맞춰 춤추라고 강요합니다. 하지만 오늘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괜찮다고, 수금을 잠시 걸어두어도 괜찮다고. 하나님 앞에서 나의 슬픔과 아픔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회복의 시작이라고 말입니다.
본론 2. 충성의 맹세: 정체성을 향한 결단 (5-6절)
본론 2. 충성의 맹세: 정체성을 향한 결단 (5-6절)
침묵의 저항을 넘어, 시편 기자는 이제 적극적인 맹세로 나아갑니다. 5절과 6절입니다. 시편137:5-6
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6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이것은 무서운 자기 저주입니다. 만약 내가 나의 신앙의 중심, 나의 정체성의 뿌리인 '예루살렘'을 잊는다면,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기능인 오른손의 재주와 노래하는 혀를 영원히 잃어버려도 좋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맹세를 할까요? 바벨론의 화려한 문화와 풍요 속에서, 자신들이 누구인지 잊어버릴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에 동화되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릴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예루살렘'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순히 중동의 한 도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구원의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맹세는 세상의 화려한 성공, 안정된 삶, 사람들의 인정보다, 나의 가장 즐거워하는 그 어떤 것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귀하게 여기겠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보니 엠의 노래를 듣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저 경쾌한 리듬만 즐길 뿐, 그 안에 담긴 '시온'의 의미, '예루살렘'을 향한 절절한 마음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신앙도 그렇게 대합니다. 본질에는 무관심한 채, 그저 세상의 방식대로 소비하기를 원합니다. 이 맹세는 그 세상의 흐름 속에서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다"라는 나의 정체성을 목숨처럼 지키겠다는 결단입니다.
본론 3. 저주의 기도: 하나님께만 맡기는 정의 (7-9절)
본론 3. 저주의 기도: 하나님께만 맡기는 정의 (7-9절)
이제 우리는 이 시편에서 가장 어렵고, 많은 설교자들이 피하고 싶어 하는 부분에 다다랐습니다. 7절부터 9절입니다. 특히 9절은 우리를 너무나 불편하게 합니다. 시편 137:7-9
7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8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9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어떻게 성경에 이렇게 끔찍한 구절이 있을 수 있습니까? 기독교는 원수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이 구절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시편 기자가 직접 칼을 들고 바벨론 아기들을 해치겠다는 복수의 다짐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분노와 억울함, 정의를 향한 불타는 갈망을 하나님 앞에 하나도 숨기지 않고 100% 정직하게 쏟아내는 기도입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너무나 억울해서, "하나님, 저들이 우리에게 행했던 그 잔인함 그대로 갚아주지 않으시면 제 속의 이 분노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끔찍한 정의의 심판을 하나님, 당신의 손으로 직접 이루어 주십시오!" 라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복수를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내 손으로 직접 복수하는 것을 내려놓고, 심판의 주권을 온전히 하나님께 넘겨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못하겠습니다. 하나님이 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저주 기도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이 끔찍한 저주의 기도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십자가가 왜 필요한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는 이처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분노와 죄성이 있습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반드시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궁극적인 정의와 무한한 사랑이 정면으로 충돌하며 만난 곳이 어디입니까? 바로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이 저주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한 심판을 정말로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심판을 바벨론의 아기들이나 우리의 원수에게 쏟아부으신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쏟아부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저주와 분노를 대신 짊어지시고,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시편 137편의 처절한 부르짖음에 대한 하나님의 위대한 응답이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내 손으로 복수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억울함을 십자가 아래에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결론: 나만의 새로운 노래를 시작하다
결론: 나만의 새로운 노래를 시작하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오늘 '바벨론 강가의 디스코'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그렇게 경쾌한 리듬으로 슬픔을 잊고 그저 춤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시편 137편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길을 보여줍니다.
춤추기 전에 먼저 정직하게 울라고 말합니다.
노래하기 전에 먼저 나의 정체성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분노와 상처는 하나님께 정직하게 쏟아내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신의 '바벨론 강가'는 어디입니까? 당신의 '수금'을 걸어두게 한 상처는 무엇입니까? 괜찮은 척, 행복한 척 연주하고 있는 거짓된 노래는 무엇입니까?
오늘 이 시간, 세상이 강요하는 디스코 리듬을 잠시 멈추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우는 시간을 갖지 않으시겠습니까? 당신의 아픔과 눈물, 심지어는 마음속의 끔찍한 저주까지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 모든 것을 들으시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당신을 안아주실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노래를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일시적인 디스코 비트가 아니라, 우리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노래, 십자가를 통과한 자만이 부를 수 있는 부활의 노래, 절망을 넘어선 참된 희망의 노래를 말입니다. 그 노래가 오늘 저와 여러분 모두의 삶에 다시 시작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