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평가, 하나님의 평가

고린도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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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고린도후서 6:8-10
“사람의 평가, 하나님의 평가”
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2025. 7. 7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사람의 평가, 하나님의 평가”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바울이 자기가 받은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도록, 어떠한 고난이 와도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사역을 감당했다고 고백을 했죠.
이어서 오늘 본문은 바울이 자신이 받은 평가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바울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았는데, 그 중에 아홉 가지로 정리를 해놨어요. 계속 아홉이라는 숫자가 나오죠. 고난이 아홉 가지였고, 그 고난을 이긴 비결도 아홉 가지였고, 이제는 바울에 대한 평가도 아홉 가집니다. 숫자를 아홉으로 맞춰서 대칭구조로 짜임새 있게 기록을 한 겁니다.
고난 아홉 개, 이기는 비결 아홉 개.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바울에 대한 평가가 아홉 쌍이 나옵니다. 악한 평가 아홉 개, 선한 평가 아홉 개. 아홉 쌍으로 돼있어요.
여기서 악한 평가는 누구의 평가일까요? 오늘 말씀의 제목이 뭐였죠? 사람의 평가, 하나님의 평가. 악한 평가는 바울을 대적하는 사람들의 평갑니다. 그리고 선한 평가는 하나님의 평가예요.
자, 사람과 하나님이 각각 바울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봐 볼까요? 먼저 오늘 본문 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8절에 3쌍의 평가가 나오죠. 각 절마다 세 쌍씩 평가가 나와요. 8절에 세 쌍, 9절에 세 쌍, 10절에 세 쌍. 먼저 8절에는 어떤 평가들이 있습니까? 첫번째로 영광과 욕됨이 나와요. 영광과 욕됨. 누군가는 바울을 영광스럽게 평가해요. 반면에 다른 누군가는 바울이 수치스럽다고 평가를 하죠. 분명히 똑같은 사람을 놓고 평가를 하는데, 이렇게 평가가 다릅니다. 과연 바울은 영광스러운 사람인가, 수치스러운 사람인가?
또 뒤에 두번째 평가는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분류가 되죠.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 다시 말해서 나쁜 평판과 좋은 평판입니다. 복음을 전하다보면, 이유 없이 비방을 하고 나쁜 소문을 퍼트리는 자들이 있어요. 바울이 그런 일을 여러번 겪었죠. 복음을 전하고 있으면 유대인들이 와서 사람들을 선동하고, 바울에게 누명을 씌워요. 이런 식으로 나쁜 평판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울에게 좋은 평판을 주시죠. 바울의 내면을 아시기 때문에, 그의 순수함과 열심을 격려하고 응원해주십니다.
또 뒤에 세 번째는요, 속이는 자와 참된 자로 나눠집니다.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대적자들은 바울이 자꾸 말을 바꾸고, 온다고 했다고 안 오고 하니까, 바울을 속이는 자라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속인 적이 없죠. 상황이 그렇게 안 되는 걸 어떻게 해요? 정말 가고 싶은데, 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서 못 갔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바울의 사정이 어떤지는 생각을 안 해요. 오로지 약속을 안 지킨 것만 가지고 비난을 합니다.
여러분, 사람의 평가라는 게 이런 거예요. 속사정은 관심도 없고, 보이는 것만 가지고 평가를 해요. 몸이 아파서 얼굴을 찡그린 건데, 얼굴만 보고 이러는 거죠. ‘얼굴이 왜 저러지? 부부싸움 했나? 전에 남편이랑 사이 좋다고 하더니 거짓말 했나보네~’ 이렇게 혼자 오해를 하고, 그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는 겁니다.
그런 반면에 하나님은 바울을 참되다고 평가하셔요. 진실되다는 거죠. 바울의 말에는 거짓이 없고, 오직 참된 진리의 말씀으로, 진실만을 말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람을 함부로 평가해서도 안 되지만, 혹시라도 누군가를 평가해야 되는 때가 온다면,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평가를 해야 됩니다. 사람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속사정을 알고, 그 사람의 상처를 알고, 그 사람의 현재상황을 알고 난 뒤에야, 조심스럽게 평가를 해야 하는 겁니다.
밑에 9절과 10절에도 보면, 계속해서 사람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가 나오는데요. 사람의 평가가 얼마나 사람을 악하게 몰아가는지 보세요. 9절에서는 바울을 무명한 자, 죽은 자, 징계를 받은 자라 그러고. 10절에서는 근심하는 자, 가난한 자, 아무 것도 없는 자라고 그래요. 이것들을 종합해 보면, 바울이 어떤 사람이 되는 겁니까? 인간말종이 되는 거죠. 이름도 없고 없는 놈이, 사기치고 다니다가 징계나 받고, 속에는 근심이 가득하면서 돈도 없고, 그러면서 자기가 사도라고 사기나 치고다니는 그런 놈인 겁니다.
정말 사람 하나 묻어버리는 게 일도 아니죠? 이렇게 거짓 사실을 뿌려서 사람을 아주 인간말종을 만들어요. 이런 평가만 들으면 누가 바울한테 복음을 듣겠습니까? 근처에만 와도 다 도망가겠죠.
사람의 평가는 믿을 게 못 됩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조심해야 돼요. 수군수군하고, 혼자 오해해놓고 그게 진짜인 것처럼 말하고… 여러분, 칼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에요. 사람의 혀가 사람을 죽이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것을 경고하셨죠. 마태복음 18장 6절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엄청난 말씀이에요. 나 때문에 누군가가 실족하게 되면, 그 대가가 너무나 무섭습니다. 차라리 연자 맷돌을 매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심판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심판 당하기 전에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낫다는 거죠. 여기서 연자 맷돌을 목에 매단다고 했는데, 연자 맷돌이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옛날에 집에서 이렇게 돌리는 그런 맷돌이 아닙니다. 연자 맷돌은 말이나 소가 돌리는 맷돌이에요. 사람보다 더 큽니다. 무게가 1톤이 넘어요. 그런 걸 목에 매고 바다에 들어가는데, 다시 나올 수가 있습니까? 그대로 죽는 겁니다.
그만큼 사람의 혀가 무서운 겁니다. 남을 죽일뿐 아니라 나도 죽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평생 사람의 평가에 시달렸어요. 웬만한 사람 같으면 제정신으로 살 수가 없겠죠. 대인기피증 생기고, 공황장애 생기고, 우울증 생기고… 정상적으로 살 수가 없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은 그 모든 악한 평가를 이겨냅니다. 바울이라고 해서 왜 상처 받지 않겠어요? 상처 받고 힘이 들죠. 하지만 나의 진심을 알아주시는 하나님의 평가가 있기 때문에 그 모든 악한 평가를 이겨낼 수 있는 겁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평가로 인하여 사람의 평가를 이겨낼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바울이 이겨낼 수 있었다면, 우리들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여러분을 몰라줘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알아주십니다. 사람의 평가에 흔들리지 말고, 나의 진심을 알아주시는 하나님의 평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과연 나를 어떻게 평가하실까? 하루를 살아도 하나님께 칭찬 듣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선한 평가를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함부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도록, 스스로 입술을 삼가고 잠잠하여서, 공동체에 어떠한 해가 없도록 조심하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믿음의 말, 진리의 말, 거룩한 말을 함으로 말미암아 더욱 공동체를 든든히 세워나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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