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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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phaniah 3:14–20 NKRV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18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20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기쁩니다.
기쁘십니까?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도 기쁘고, 찬양하는 것도 기쁘고, 기도할 수 있는 것도 기쁘고, 이렇게 예배할 수 있는 것도 기쁩니다. 하나님 안에서 기쁘다보니 우리의 삶 가운데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은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기쁨인 것이지요.
이처럼, 신앙 생활을 통해서 얻어지는 기쁨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떠세요? 정말 모든 상황이 다 기쁘신가요?
너무 뻔하고 진부한 질문 같아서, 왜 기쁜 것을 물어보나 하겠지만, 정말 기쁘게 살아가는 것? 어떻습니까? 어렵습니다. 하루 하루가 참 어려울 때가 많죠. 직장에서 매일 마주하는 일들을 매일 기쁘게 받아들이기가 참 어렵고,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 삶에 변화가 생기면 그것 또한 어렵고, 가정에서는 어떤가요? 서로 좋아서 결혼했지만, 서로 맞춰서 살아가야하는 부분들이 생기면 그것도 너무 어렵습니다. 자녀들은 어때요? 여러분들 말 너무나도 잘 들으시죠? 지나고보면 별일 아닌 일에 그 순간 순간 화가 날때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삶이면서 우리의 신앙 생활인데, 신앙 생활이 어떤가요?
우리의 신앙 생활이 온전하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늘 온전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이 어렵게 느껴지겠습니까만은?
우리의 삶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근본적인 것부터 생각해보더라도,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면서부터가 고난의 시작입니다. 이미 여러분들은 그때의 기억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살아오셨겠지만, 갓 태어난 신생아만 하더라도, 이 땅에 태어나서 첫 숨을 틔우는 것 어떤가요? 단 한번도 입으로 먹지 않았던 아이가, 무언가를 입에 대고 먹는 다는 것이 어떤가요? 느낌이 잘 안오시죠?
최근에 제가 맡고 있는 23교구에서 열심히 출산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요, 많은 성도 가정에서 아이들을 잉태하고 출산하게 되는데, 제가 느끼는 출산은요.
제 아이가 태어날 때 느끼지 못한 것을 최근에 우리 성도님들 출산을 보면서 많이 느끼고 있는데요. 잉태하는 일도 기적이요, 출산하는 일도 기적이고요… 그 아이가 첫 울음을 터트리고 숨을 쉬어주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입으로 뭔가 먹는 것도 엄청난 도전이자 기적같은 일이러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을 출산하는 가정을 위해서 잉태하고 10개월간은 그 순간 순간이 기도가 절로 나올수 밖에 없습니다.
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당연할것 같지만 이 땅을 살아가면서 어떤 한 순간도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이 기적일 뿐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금 이 자리에 여전히 예배하고 있는 우리 모습을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또한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을 알고, 깨달을 수가 없고, 부모로부터, 또는 누군가의 전도로, 또는 어떤 상황에 임하게 되서 시간상으로 보면 후속적으로 신앙 생활을 하게 되었고,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결코 우리의 지금 모습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자리에 있지 못합니다.
그렇다보니, 우리의 삶에서 어떤 기쁨을 얻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펼쳐지는 많은 일들을 보면 고난과 고통이 대부분인 환경에서 우리 스스로 기쁨을 얻으며 살아가는 것은 한낱 사치스러운 일이거나 우리 스스로가 고난과 고통 가운데서도 잠시라도 피할 수 있는 어떤 순간의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그정도로 우리의 삶 가운데서 기쁨을 찾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보면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라고 스바냐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합니다.
기쁨을 선포하는 일, 스바냐 선지자가 기쁨을 선포합니다.
기뻐하는 것이 뭐 어떤 큰일이라도 되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기뻐하는 일이 쉽지 않을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장례식에가서, 예배 중에 갑자기 큰 소리로 웃으면서 “여러분 지금 기뻐하십시오”라고 한다면, 유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근심과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지금 스바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것은, 마치 장례식장에서 있는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스바냐 선지자가 살아가고 있는 상황이 그렇습니다.
Zephaniah 1:2 NKRV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을 진멸하기로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분노로 인한 저주 중에서도 저주이고, 마치 종말을 코앞에 둔, 더 이상의 살아갈 소망이 없는 그런 상황에 있는 그런 백성들입니다.
이 때가 요시아왕 때인데, 히스기야 이후 멸망의 길을 걸었던 므낫세와 아몬의 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니 나라의 모습이 얼마나 절망스럽겠습니까? 남유다 왕들 중에서도 가장 악하고, 히스기야가 깨끗하게 해놓은 성전을 다시 바알의 재단으로 더럽혀서 온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이어서 그의 아들 암몬도 똑같은 일을 저질러서, 백성들은 장례식장과 같은 나라의 모습에, 괴로움과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나라가 혼란스러우면 나라만 망하는 정도가 아니라 함께하는 모든 백성들이 고통과 괴로움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가 나라를 이어 받아 살아가고 있는 가운데 선지자 스바냐가 그동안 나라에 펼쳐진 일들을 바탕으로 선포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고 좋을리가 없습니다.
Zephaniah 1:14 NKRV
14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
악의 소굴로 변한 이 나라에 ‘여호와의 날’이 다가온다고 합니다. 그것은 곧 심판의 날을 말하는 것입니다. 심판의 날에 ‘악의 소굴’은 멸망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들에게는 장례식이 되는 것이지요.
백성들이 스바냐 선지자의 메시지를 통해서 많은 두려움이 몰려왔을 것입니다. 전혀 기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온갖 저주를 퍼붓는데 좋아할 일 전혀 없고, 전혀 기쁠 수가 없습니다.
이쯤되면 1차원적으로는, 아, 이제 우리의 삶은 끝났구나, 더 이상의 희망은 없구나,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는 들음으로 깨닫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살 소망이 없게 되지요.
그런 가운데 스바냐 선지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전합니다.
Zephaniah 2:1–3 NKRV
1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 2 명령이 시행되어 날이 겨 같이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 3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여기서 스바냐 선지자가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규례를 지켜라,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면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 -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은 진노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17
Genesis 3:17 NKRV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그리고 19절 마지막에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저주와 죽음을 선포하십니다. 그렇게 아담과 하와는 저주와 죽음으로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21절에서 이렇게 명하십니다. 창세기 3:21
Genesis 3:21 NKRV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온갖 저주를 받고 평생을 수치를 당하여 숨어다니다가 삶을 마감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수치를 숨길 수 있게 하셨습니다. 숨지 않아도 옷으로 덮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저주하셔지만, 하나님은 그럼에도 하나님 곁에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옷으로 덮어주십니다.
다시 우리 본문으로 돌아와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장례식과 같은 그런 처참한 그런 삶을 살더라도, 내 삶이 더 이상 희망이 없어보이고 삶의 낙이 없는거 같더라도,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면…
지금 우리의 상황에 빗대어 말하자면… 어떻게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면… 주일에 주신 말씀으로 오늘도 살아가면, 하나님은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우리를 숨겨주십니다. 여호와의 분노가 우리에게 임하지 않도록 우리를 숨겨주십니다.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적용하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피로 살아가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의 소굴에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에 진노하시면서도, 이어서 우리에게 손을 내미십니다. 나에게 와라, 나에게 붙어있어라, 나와 함께가자…
우리가 하나님이라면, 더 이상 가망없는 백성들을 그냥 포기해버릴 수도 있을것 같은데,
하나님은,
나에게 와라, 나에게 붙어있어라, 나와 함께가자고 말씀하십니다.
Zephaniah 3:1 NKRV
1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 있을진저
라고 말씀하시면서도,
다시 손을 내미십니다.
Zephaniah 3:9 NKRV
9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다시 깨끗게, 정결하게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수치를 느낌과 동시에 회개할 수 있게 하십니다. 우리가 수치를 느끼는 것, 죄를 느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회복시켜주시기 위한, 치료해주시기 위한, 더 이상의 고통과 두려움이 없게하시기 위한 장치입니다.
우리가 죄를 느낌으로 하나님 옆에 붙어있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장치입니다.
Zephaniah 3:11 NKRV
11 그 날에 네가 내게 범죄한 모든 행위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은 그 때에 내가 네 가운데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들을 제거하여 네가 나의 성산에서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할 것임이라
우리는 죄를 지었음을 느끼게 될 때, 바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면 됩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면, 당한 수치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시며, 다시는 교만하게 하지 않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런 우리에게 스바냐 선지자는 선포합니다.
Zephaniah 3:14 NKRV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너가 당하고 있는 모든 괴로움 고통을 벗어나게 해주실 하나님이 있으니, 하나님을 노래할지어다! 하나님을 기쁘게 부를 지어다! 하나님을 즐거워할지어다!
아멘!
우리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노래하면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부르면 됩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으면 우리의 잘못으로 우리에게 진노를 표하시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곧바로 손을 내밀어주십니다. 우리에게 내밀어주신 하나님의 손길을 붙잡고 가길 소망합니다.
스바냐 선지자가 우리에게 이렇게 선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스바냐 3:17
Zephaniah 3:17 NKRV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고난 속에 있는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리고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 이십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고난 속에 있지만, 그런 우리를 보시면서도 우리로 말미암아 기뻐하십니다. 우리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십니다.
스바냐 선지자가 말하는 3:17절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 안에 이미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모습만 보시는 것만으로도,
이미… 가장 선제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기쁨을 느끼신다는 것입니다.
요일 4:19
1 John 4:19 NKRV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 어떤 모습으로 있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지…
하나님은 우리의 모습만으로 충분히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는 모습만으로 충분히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했기 때문에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것만으로도 심히 보기에 좋으셨다는 그 말씀 그대로 이미 하나님은 우리 자체로만으로 충분히 기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것은 무엇이냐?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죄는 우리를 낙망하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곁에 붙어있게 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입니다. 회복의 길을 이미 예비하셨습니다.
죄로 인한 두려움, 고통, 아픔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 없도록 하게 하시기 위한 장치입니다.
결국에 구원받아 영생을 살아가려면, 하나님 앞에 돌아와야 합니다. 돌아오지 않으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돌아오면,
Zephaniah 3:18–19 NKRV
18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입니다.
Zephaniah 3:20 NKRV
20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우리의 삶을 두고도 충분히 기뻐할 수 있습니다.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기뻐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충분히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기쁨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전달되어 하나님을 기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배할 때, 기도할 때, 찬양할 때 기쁜 것입니다.
가끔은 자신이 느껴지는 죄악으로 하나님 앞에 송구스러워서, 예배의 자리에서 뻔뻔하게 웃으며 기뻐하는 자신의 모습이 이기적으로 느끼시는 분들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걱정않하셔도 됩니다. 이미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보고 이미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기에… 우리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외쳐볼까요?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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