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라파, 치유에서 수축으로 2025 0716 왕상18: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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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참조 : 2020 0911 / 라파의 다른 의미 / 왕상18:21-30 / 새하늘교회새벽예배(임직자)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23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24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25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붙이지 말라 26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27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28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29 이같이 하여 정오가 지났고 그들이 미친 듯이 떠들어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르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은 여러가지가 있음. 여호와라는 것 자체도 모세가 떨기나무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들은 내용이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 나는 나다. 예흐예 아쉐르 예흐예.
또 여호와 이레. 이르예. 그가 보신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바치려고 할 때, 하나님의 보심으로 예비하여 주신 숫양.
여호와 닛시. 하나님은 나의 깃발, 승리의 하나님. 모세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나서.
여호와 샬롬. 평화의 하나님. 여호와 샴마. 거기 계신다.
여호와 라파. 하나님은 치료자이시다.
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
라
마라의 쓴 물이 단 물로 변하는 사건을 경험하면서, 내 계명을 지켜라. 나를 믿어라.
치유는 무슨 말인가? 회복을 의미한다. 망가진 것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옴을 의미한다. 회복을 의미함.
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다시 출산. 원래의 기능으로. 외적인 회복만? 출산으로 그 가정에 다시 기쁨이. 즉 하나님의 치료, 치유, 라파는 우리의 영혼육의 회복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치유는 단순히 육체적인 질병 뿐 아니라, 영적인 질병, 고통으로부터의 치유를 포함함.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치유와 회복을 가져다 주시는 분이심.
지금 우리 시대. 치유가 필요한 시대. 웰빙을 부르짖던 시대는 지나감.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의 힐링의 시대가 필요. 물질적으로 몸이 잘 사는 것도 중요한데, 마음과 정신이 평안함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해짐. 인터넷과 기술의 발전은 사람의 삶을 건조하게 만듦.
메말라 있는 곳에는 촉촉한 단비가 필요함. 요즘 같이 무더운 여름에는 땅에 비가 내려주는 것이 땅을 치유하는 것. 우리의 영도 메말라 있을 때가 있음. 어떻게 치유가 되어야 할까? 예배를 통해. 우리의 영이 예배를 통해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때, 우리는 살아나게 되어 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의 몸과 마음이 은혜의 단비에 푹 잠기길 소망.
아합 왕이 다스리던 북이스라엘에도 치유가 필요했음. 하나님만을 섬겼던, 유일신 신앙의 야훼니즘이 가나안 땅의 토착종교와 그것을 신봉하는 왕후 이세벨의 세력으로 그 신앙이 도전받던 시기. 하나님을 믿는 예배자들을 잡아 가두고 죽임. 게다가 오히려 이방 신을 숭배하는 우상숭배가 널리 퍼져있었음. 오늘 본문의 배경은 3년 반동안 비가 내리지 않던 북이스라엘 땅에 드디어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비를 내리겠다고 말씀하심. 그리고 아합을 만나러 가라함. 왕상18:1-2
1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2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 때에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더라
그런데 지금은 무슨 시대인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는 시대. 숨어있어도 불안한 판국에 하나님은 적들의 수장인 아합을 만나라고 함. 신앙을 드러내면 죽을 수도 있음. 그 가운에 신앙의 야성을 가진 사람들이 매우 적었던 것으로 보임. 그래서 백성들은 누가 참 하나님인지 제대로 신앙고백을 하지 못하고, 머뭇머뭇 거리고 있었다.
세상 속에서 내가 하나님 믿는 사람이라는 당당함이 필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단순히 말을 잘 듣는 차원을 넘어섬.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부르셨다. 하나님의 말씀따라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으로 부르셨다. 때로는 세상 속에서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도 있다. 사회적으로 그런데 진짜 죽으라고 하는 것인가? 진짜 생명 바치라는 것인가? 아니다. 머뭇머뭇하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온전하게 선택하는 신앙을 요구함. 그러한 선택이 있을 때, 우리의 삶에 역사가 일어남. 결단하는 자에게 믿음을 보이는 자에게 하늘의 불이 임할 줄로 믿는다.
엘리야에게도 지금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려고 함. 비가 내리지 않는 상황에서 비를 주시겠다는 음성을 듣고 아합 왕을 찾아감. 그리고 누가 진짜 하나님인지 대결을 하게 됨. 하나님 편에는 엘리야 단 한사람과 아합과 이세벨 편에는 이방 선지자 850명. 제단을 쌓아 각자 믿는 신에게 기도하기로 함.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도록 기도.
그 때 홀로 하나님 편에 선 엘리야의 모습을 보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엘리야를 보라. ‘죽으면 죽으리라’의 에스더의 모습도 이러했으리라. 엘리야는 단순히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제 백성들이 온전하게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원함. 그러나 백성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자 앞에서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는 것을 두려워했음. 그래서 엘리야는 그 백성들에게 일갈함. “어느 때까지 머뭇머뭇하려느냐. 하나님이냐, 바알신이냐!” 백성들에게는 치유가 필요했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희미해져가고 이방 신들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백성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치유가 필요했음. 회복이 있어야 했음. 다시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고백이 필요했음. 하지만 아직 두려웠음.
엘리야가 이방 선지자들이 자해를 하면서도 아무일도 안 일어나는 것을 보고 조롱했음. 가만히 그 모습을 한참동안 지켜보았음. 아마 백성들도 그 주변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을 것임. 두려웠던 아합과 이세벨의 바알 신이 아무 일도 일으키지 못하는 모습을.
엘리야는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백성들에게 나아갔음. 18장 30절.
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그런 그들에게 내게로 가까이 오라고 함. 뭐하자는 것일까?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자고 하는 것. 이방 신들이 저 난리쳤으니, 이제 우리가 보여줄 차례다. 그러면서 백성들을 가까이 오라고 하는 것. 그리고 엘리야가 하는 일.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당연히 당시의 시대상을 보면 하나님께 예배하는 제단은 제대로 서 있지 않았을 것임.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첫번째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제단을 수축하라고 함. 수축이 무엇인가? 다시 고치는 것이다. 무너진 제단을 다시 세우는 것임. 이 때 사용된 히브리어 단어가 바로 “라파”동사임. 이 동사는 무슨 뜻인가? 우리가 잘 아는 우리를 치유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라파라고 이야기 할 때의 라파이다.
출애굽기 15:26 … …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여호와 라파는 단순한 육적 치유만을 말하지 않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육적인 치유가 아니라 영적인 치유가 필요함. 영적인 힐링이 필요함.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를 경험해야 함. 그래서 엘리야는 무너진 제단을 단순히 ‘다시 쌓아라’가 아니라! 무너진 하나님의 제단을 “라파”하라고, 수축하라고 이야기함.
사랑하는 한빛 가족 여러분,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다시 원하시는 것은 세상에 무너진 하나님의 제단을 다시 라파! 온전하게 세우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제단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단순한 교회에 와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설교를 듣는 행위가 아닙니다. 예배는 무너진 우리의 삶을 다시 세우고, 무너진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고, 무너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다시 치유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치유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처럼,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하나님의 제단을 다시 쌓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는 우리 한국교회를 다시 라파, 치유시켜야 합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하나님 믿는 것에 대해 머뭇머뭇거렸던 우리의 신앙을 다시 라파, 치유시켜야 합니다. 무너진 우리 삶의 예배를 다시 라파, 치유해주실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합시다! 그 부르심과 사명이 지금 예배하는 우리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제단을 다시 고쳐 쌓을 때, 제단 위의 제물과 주변 도랑의 물들을 다 살라먹은 하늘의 불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하늘의 불이 우리의 삶과 교회와 이 땅 위에 임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예배가 다시 라파, 수축되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한빛교회 되길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