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넓히라
Notes
Transcript
<새벽설교>
고린도후서 6:11-13
“마음을 넓히라”
찬송가 270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2025. 7. 11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마음을 넓히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마음을 넓히라”고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마음을 넓히라. 왜 마음을 넓히라고 할까요? 마음이 좁으니까. 좁은 마음을 좀 넓히라는 겁니다.
지난 시간에 바울에 대한 사람의 평가가 어떠했는지를 보셨죠? 사람의 겉사람만 보고 판단을 하고 평가를 해요. 그 사람의 속사정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고,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이 그렇게 평가를 한 거지만, 그러한 악한 평가에 홀라당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문제예요.
그래서 바울이 그 문제를 오늘 본문에서 지적하는 겁니다. ‘너희가 왜 나를 의심하고, 나를 멀리할까? 그 이유가 뭘까?’ 바울은 그 근본적인 이유가 너희의 마음이 좁아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겁니다. 너희의 마음이 좁아서 나를 품지 못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냐?
자, 오늘 본문 11절을 같이 봐 볼까요? 11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을 “고린도인들이여” 하고 불렀어요. 바울이 성도들을 부를 때, 이렇게 도시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별로 없거든요. 딱 세 번 나와요. 갈라디아서 3장 1절에서, “갈라디아 사람들아” 라고 했고, 또 빌립보서 4장 15절에서 “빌립보 사람들아” 라고 했어요.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고린도인들이여” 하고 부르는 겁니다.
바울이 성도들을 도시의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요, 언제 이렇게 부르냐면, 굉장히 큰 감정적인 변화가 있을 땝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성도들이 다른 복음을 믿는 것에 화가 나서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이렇게 불렀어요. 또 빌립보서에서는 성도들이 바울을 위해서 헌금을 모금해서 준 것에 대해서 깊은 감사를 느끼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잘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이렇게 친근하게 불렀습니다. 이처럼 바울이 성도들을 도시의 이름으로 부를 때는 감정적인 큰 변화가 있을 땝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고린도인들아” 라고 부를 때 바울의 감정은 어떤 감정이었을까요?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들어있었겠지만, 그 중에 가장 큰 감정은 아마도 “안타까움”이지 않았을까요? 오늘 본문 13절에 보면,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을 마치 자기 자녀처럼 대하거든요. 아버지가 자녀의 엇나가는 모습을 보고 안타깝고 애가 타는, 그런 감정이었을 겁니다.
일찌기 고린도전서 4장 14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교회를 자녀처럼 사랑하고 있다고 말을 했었어요. 고린도전서 4장 14절, 1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아멘.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사랑하는 자녀 같이 여기고 있죠.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낳았기 때문에. 내가 복음을 전해서 전도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자녀처럼 양육하는 겁니다. 여러분도 태신자들 전도하면,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그들을 자녀처럼 사랑하고 돌봐야 돼요. 전도만 한다고 끝이 아닙니다. ‘내가 교회 데려왔으니까 내 역할은 끝이지’ 이게 아니라, 그 사람이 잘 정착하고, 바른 신앙으로 성장해서 독립할 때까지, 자녀를 돌보는 것처럼 돌봐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도 지금 고린도를 떠나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편지를 보내고 기도하고, 어떻게든 교회를 바로세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러한 심정으로 지금 “고린도인들이여” 하고 부르고 있는 것이죠. 엇나가는 자녀들에게 아버지로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권면하고 있는 거예요. “마음을 넓히라” 자, 13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아멘.
바울이 자녀에게 말하듯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보답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너희가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이게 무슨 말이겠습니까? 내가 너희를 자녀를 대하듯이 하니까, 너희는 그 보답으로 나를 아버지를 대하듯이 하라는 말이 아니겠어요?
사람간의 관계는 일방적인 관계가 돼서는 안 돼요. 내리사랑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아버지가 자녀에게 사랑을 주고 또 줘도, 자녀가 반응이 없으면 그 관계가 정상적인 관계가 될 수 없어요. 자녀도 아버지에게 사랑으로 보답을 해야 됩니다. 물론 자녀가 아버지에게 줄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죠. 돈이 없으니까 뭘 사줄 수도 없고, 일을 대신 해줄 수도 없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자녀에게 뭘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니죠. 그냥 고맙습니다, 하고 아버지를 한번 안아만 줘도, 아버지는 기뻐요. 아버지가 주는 사랑의 10분의 1이라도 보답을 해주면 그것만 갖고도 아버지는 마음이 사르르 녹는 겁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예요. 성도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바울이 바라는 건 딱 하나예요. 마음을 넓히는 것. 그래서 나를 받아주는 것. 바울은 이미 마음을 넓혔거든요. 11절에 그랬죠.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입이 열려 있다는 말은 무슨 말이든 솔직하게 말한다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넓어졌다는 말은 이해심과 포용력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해요. 그러니까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서 거짓이 없이 말하고, 또 그들이 어떠하든지 모든 것을 다 품고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이 넓다는 거예요.
그런 반면에, 성도들은 마음이 좁죠. 자기들을 속이는 거짓 교사들은 따뜻하게 환영하면서, 진정으로 그들을 사랑하는 사도에게는 인색하고 불만을 품어요.
그래서 12절에 바울이 책망을 하는 겁니다. 12절에 뭐라고 하는가,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무슨 말입니까? 우리 마음이 좁아서 너희가 우리 마음 속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고, 너희 심정이 좁기 때문에, 너희 스스로가 좁아졌다는 것이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사람간의 관계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거든요. 한쪽은 마음이 넓어서 품어주는데, 다른쪽은 좁아서 밀어내면, 좋은 관계가 아니에요. 양쪽이 모두 넓은 마음으로 서로를 품어줄 수 있어야 됩니다.
바울은 품어줄 수 있죠. 이미 마음이 넓으니까. 11절에서 바울이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라고 했을 때 이 말은 완료형입니다. 이미 마음이 넓어진 상태인 거예요. 넓어진 마음으로 성도들을 대하고 있는 겁니다.
반면에 12절에서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라고 했을 때, 이 말은 현재형입니다. 성도들이 지금도 계속해서 마음이 좁아지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도들이 처음부터 마음이 좁았던 게 아니라, 어떤 이유에 의해서 점점 마음이 좁아지고 있는 것이죠.
처음에 바울이 교회를 개척했을 때만 해도 서로 얼마나 좋았겠어요? 바울이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동안 있었거든요? 바울이 한 곳에 이렇게 오래 머문 경우가 거의 없어요. 짧으면 몇 주, 길어봐야 몇 달이에요. 고린도보다 오래 머문 곳이 딱 한 군데 있거든요. 거기가 에베소죠. 에베소에는 2년 정도 머물렀습니다. 데살로니가 같은 경우에는 3주밖에 안 돼요. 그런데 고린도는 1년 6개월이나 돼요. 그만큼 고린도가 바울에게 각별한 겁니다.
성도들이 처음부터 마음이 좁았다면, 바울이 그렇게 오랫동안 고린도에 머물 수가 없었겠죠. 정말 각별하게 서로를 위하고 품어주었기 때문에 그 긴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 관계가 무너져버렸어요. 성도들의 마음이 좁아지면서 일방적으로 바울을 마음 밖으로 밀어낸 겁니다. 바울은 이것을 되돌리고 싶은 거예요. 너희의 마음을 다시 넓혀라. 이전과 같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품어주는 그런 관계가 되도록, 너희가 고치라는 겁니다.
“너희가 나를 의심하고 비난하고 욕하고 있지만, 내가 아니라 너희가 잘못된 거다. 내 마음이 좁은 게 아니라, 너희 마음이 좁아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너희가 고쳐라. 너희가 마음을 넓혀라.” 이런 말입니다.
할 말은 해야죠. 사랑해서 모든 것을 용납할 수 있지만, 아닌 건 아닌 거예요. 자녀가 말도 안 되는 떼를 쓰는데 어떻게 합니까? 훈계를 해야죠.
하나님과 우리들의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만큼,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무한한 사랑을 하나님께 드릴 수는 없겠지만, 그 10분의 일, 100분의 일, 천 분의 일이라도 하나님께 보답해야죠.
우리 마음을 넓혀서, 하나님을 우리 안에 모셔드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하나도 땅에 떨어트리지 아니하고, 다 마음판에 새겨서, 그 말씀대로 살아내야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듣기 싫은 말씀을 주실 수도 있어요. 받기 싫은 고난을 주실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아버지가 싫다고 가출해서는 안 되겠죠. 아버지와 자식은 서로 사랑하다가도 밉고, 밉다가다 사랑하는 관곕니다.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끊을 수가 없어요. 우리 마음을 넓혀서, 조금 더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향하여, 그리고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더 마음이 넓어지시기를 축복합니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많이 용납함으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를 맺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