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마리를 먹으라: 입에는 달고 배에는 쓴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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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이중적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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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요한계시록 10:1–11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신자가 경험하게 되는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보여줍니다. 말씀은 우리의 심령을 밝히고 소망을 주는 달콤한 양식이지만, 그 말씀을 삶 속에 실천하려 할 때는 고난과 도전이 따르기도 합니다.
오늘 새벽, 우리는 요한계시록 10장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이중적 성격을 깊이 묵상하고, 말씀 앞에서 위로와 담대함, 그리고 순종의 결단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작은 두루마리와 일곱 우레의 비밀(1-4절)

본문은 요한이 본 환상으로 시작됩니다. 힘센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구름을 입었고 머리에는 무지개가 있으며,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발은 불기둥 같았습니다. 그 천사의 손에는 작은 두루마리가 펼쳐져 있었고, 그는 한 발은 바다에, 한 발은 땅에 디디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은 하나님의 말씀전 세계를 향해 선포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계시록 5장에는 오직 어린 양만이 펼칠 수 있는 일곱 인으로 봉인된 큰 두루마리가 등장했습니다. 반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작은 두루마리는 펼쳐진 상태입니다. 이것은 이제 누구든지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 즉 종말과 심판에 대한 계시이제 공공연히 선포될 준비가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4절에서 천사의 외침과 함께 일곱 우레가 말을 합니다. 우레, 곧 천둥소리는 시편 29편이나 요한복음 12장에서처럼,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소리로 자주 등장합니다. 요한은 그 말씀을 기록하려 했으나, 하늘에서 “기록하지 말고 인봉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계시의 일부를 의도적으로 감추셨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종종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신명기 29:29 NKRV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우리는 모든 것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감추신 것은 감추신 대로 믿고, 계시하신 것을 지키는 순종의 신앙이 참된 믿음입니다.
계시록은 상징과 예언으로 가득한 책입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피해서는 안 됩니다. 계 1:3 은 분명히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1:3 NKRV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요한은 왜 복이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계시록은 시련과 유혹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도록 우리를 붙잡아 줍니다.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성도의 정체성과 사명을 깨닫게 합니다.
무엇보다도 새 하늘과 새 땅,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품게 합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종말을 추측하는 책이 아니라,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도록 이끄는 책입니다.

2. 두루마리를 먹고 다시 예언하라(5-11)

5절을 보면, 천사가 바다와 땅을 밟고 하늘을 향해 오른손을 들어 세세토록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께 맹세합니다. 그 맹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계 10:6b-7)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비밀이란, 세상 역사를 통해 나타나는 구원의 계획, 즉 하나님의 나라가 마침내 완성되는 것입니다.
계 11:15 을 보십시오:
요한계시록 11:15 NKRV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수십 세기에 걸쳐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해 왔습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가 왕으로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외치셨습니다.
설교의 핵심 주제도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말씀하였습니다.
부활 후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은 교회의 존재 목적이었습니다.
일곱째 나팔이 울릴 때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사도 요한이 천사에게 가서 두루마리를 달라고 하자, 천사는 그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그것을 갖다 먹어버리라.”
그 손에 들려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작은 두루마리, 곧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입에는 꿀 같이 달지만, 배에는 쓰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신앙의 깊은 이중성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처음엔 은혜와 기쁨으로 다가오지만,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려 할 때는 고통과 저항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단지 말씀을 듣고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우리 존재 깊은 곳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말씀을 내 안에 넣고, 씹고, 삼켜서, 내 피와 살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우리는 ‘내면화’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말씀을 수박 겉핥기처럼 대할 때가 있습니다.
눈으로 읽고 귀로 듣기는 하지만, 말씀은 내 삶을 스치고 지나갈 뿐입니다.
저도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말씀을 그냥 흘려듣고, 형식적으로 지나친 적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말씀이 나를 붙잡아 주는 힘이 되지 못했습니다.
> 내면화의 첫 단계는, 말씀에 대한 반복과 묵상으로 시작됩니다.
말씀을 먹는 첫걸음은 우리 자신을 말씀 앞에 열어드리는 것입니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삶이 변하기 위해서 말씀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는 중에 우리의 마음을 끄는 단어나 구절이 있다면,
그것을 작은 소리로 반복해서 읽고, 암송해 보십시오.
이것은 마치 소가 되새김질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반복은 단순히 기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내 속에서 소화하고 흡수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럴 때 말씀이 머리에 머무는 지식이 아니라, 심장과 뼛속까지 스며드는 생명이 됩니다.
> 다음 단계는 말씀을 삶에서 실천해 보는 것입니다.
의대생이 의학 이론을 아무리 배워도,
실습을 통해 익히지 않으면 좋은 의사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지식은 생명을 해치는 돌팔이 지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행하지 않는 말씀은 오히려 위험한 지식이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은 삶 속에서 순종하며 살아낼 때,
그 진실성과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입에 꿀 같이 달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먼저, 시편과 예레미야를 보겠습니다.
시편 119:103 NKRV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예레미야 15:16 NKRV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입에 꿀 같이 달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진리를 깨달을 때 느껴지는 기쁨과 즐거움, 위로와 은혜를 상징합니다.
저 역시 대학 1학년 때 처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말씀이 너무도 꿀처럼 달았습니다. 성경 글자가 제게 살아 움직이는 듯 다가오며, 밤늦게까지 성경을 읽고 또 읽어도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이 저를 사로잡았고, 시편 저자의 고백이 저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배에는 쓰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 첫째, 말씀을 실천하려 할 때 생기는 내면의 갈등을 말합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려 하면 내적 자아와 충돌하기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고 우리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저는 젊은 시절 “원수를 사랑하라”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읽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말씀이 처음엔 너무도 감동적이고 아름다워 “입에는 꿀 같이 달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저를 괴롭히고 비방하는 직장 상사를 용서하고 사랑하려 하자, 마음속에서는 억울함, 분노, 불편함이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그 순간 말씀은 저의 ‘배에 쓰게’ 느껴졌습니다.
> 둘째, 말씀을 전할 때 거절과 오해의 고통을 말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생명을 헌신했지만, 돌에 맞고, 감옥에 갇히고, 자기가 세운 교회로부터 의심도 받았습니다. 그의 복음 사역은 눈물과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그 말씀을 품고 살아갔습니다.
> 셋째, 말씀 안에는 심판과 경고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위로와 은혜만이 아닙니다. 때로는 심판과 책망,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선포해야 하는 선지자의 심정은 참으로 무겁고 고통스럽습니다.
에스겔과 예레미야가 그랬습니다.
그들은 멸망 직전의 유다 백성에게 성전이 무너질 것이고,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심판의 말씀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조롱을 당하며, 외롭게 살아야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너무 괴로워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예레미야 20:9 NKRV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말씀이 배에 쓰다는 것을 경험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혹시 아직 그런 경험이 없으시다면, 우리는 진지하게 내가 정말 말씀을 먹고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 말씀이 나를 불편하게 하고, 내 삶의 방향을 흔들어 놓을 때, 비로소 우리는 말씀을 입에 넣은 것이 아니라 진짜 먹은 것입니다.
11절에서 천사는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10:11 NKRV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이 말씀은 복음의 보편성과 선교적 사명을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참 혼란스럽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심각한 이념적, 정치적 양극화 속에 빠져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 세대 간의 갈등, 지역 간의 대립이 깊어지고, 그 갈등의 그림자가 교회 안까지 들어오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습니다. 어느새 복음보다 이념이 앞서고, 십자가보다 진영 논리가 더 크게 말하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교회는 결코 이념의 통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화해의 통로가 되어야 하고, 진영의 소리를 따르는 곳이 아니라, 복음의 음성이 울려 퍼지는 곳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분열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복음의 능력을 다시 붙들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의 말과 삶이 화평의 복음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입에 넣을 때는 꿀처럼 달지만, 그 말씀에 순종하려 할 때는 때로 쓰고 아픈 경험이 따릅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에게 말씀을 먹게 하셨사오니, 이 말씀을 끝까지 품고 살아가게 하소서. 오늘 하루도 우리 성도님들 삶 속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끝까지 승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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