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하는 신앙생활 2025 0713 눅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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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5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6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서론] 이상한 농부, 이상한 밭
[서론] 이상한 농부, 이상한 밭
오늘 우리는 너무나도 익숙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한 농부가 씨를 뿌리러 나갑니다. 그런데 그의 농사법이 조금 이상합니다. 씨앗이 좋은 밭에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길가에도, 돌밭에도, 가시덤불 속에도 떨어집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떤 농부가 귀한 씨앗을 일부러 그런 험한 땅에 뿌리겠습니까? 씨앗 주머니에 구멍이라도 났던 걸까요?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애초에 밭에 길가와 돌밭과 가시덤불이 왜 이렇게 많을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가지런히 정돈된 밭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당시 이스라엘의 농사 환경에 있습니다. (사진01) 이스라엘 땅은 ‘돌이 자라는 땅’이라 불릴 만큼 척박했습니다. 아무리 돌을 골라내도 비가 오고 흙이 쓸려 내려가면 또다시 돌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의 농부들은 우리와는 반대로, 밭을 갈기 전에 먼저 씨를 뿌렸다고 합니다. 딱딱하게 굳은 땅, 돌이 섞인 땅 위에 먼저 씨앗을 흩뿌리고, 그 후에 쟁기질을 해서 씨앗이 흙 속에 덮이도록 한 것입니다. (사진02)
이 배경을 이해하면 비유의 그림이 선명해집니다. 농부가 씨앗을 흘린 것이 아닙니다. 원래 그런 밭이었던 것입니다. 농부는 하나의 밭에 씨를 뿌렸을 뿐인데, 그 밭 안에 길처럼 단단한 곳도, 돌이 많은 곳도, 가시덤불이 우거진 곳도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네 가지 밭이 아닌, 한 밭의 네 가지 모습
네 가지 밭이 아닌, 한 밭의 네 가지 모습
예수님의 비유는 네 종류의 분리된 밭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한 밭에 공존하는 네 가지 상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길가, 쉽게 뜨거워지지만 흙의 깊이가 없는 돌밭, 세상 염려에 사로잡힌 가시덤불, 그리고 마침내 열매 맺는 좋은 땅. 이 모든 것이 바로 ‘나’라는 한 사람의 마음 밭 안에 모두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규정하려 합니다. ‘나는 믿음이 없는 길가 같은 사람이야’, ‘나는 끈기가 없는 돌밭이야’라며 스스로를 낙심시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그렇게 단정하지 않으십니다. 히브리어 신약성경 번역본은 씨앗이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부분을 ‘알 헬렉카 토바(על חֶלְקָה טוֹבָה)’, 즉 ‘좋은 부분(portion)에’ 떨어졌다고 표현합니다. 이는 길가와 돌밭과 가시덤불 ‘사이사이에 있는 좋은 땅의 한 부분’에 씨앗이 떨어졌다는 의미입니다. 방금 사진 다시 한 번 보실까요? (사진02)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 밭은 완벽하게 좋은 땅이거나 완전히 나쁜 땅이 아닙니다. 척박하고 힘든 현실 속에서도, 분명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땅의 좋은 부분’이 존재합니다. 우리의 과제는 ‘그 땅이 아니라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그 좋은 부분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가치: 발견하는 삶
천국의 가치: 발견하는 삶
그런 의미에서 신앙생활은 발견하는 삶입니다. 내 마음의 길가를 갈아엎고, 돌을 다 골라내고, 가시덤불을 모두 제거해서 완벽한 옥토를 만들기 위해 몸부림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신앙생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유교와 불교 문화권인 우리들은 이런 수행, 고행을 통해 깨달음이 얻어진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른 관점을 제시하십니다. 신앙생활은 척박한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이 숨겨두신 ‘옥토의 가치’를 발견해내는 여정입니다.
통곡의 벽을 보십시오. (사진03) 거대한 돌 틈 사이로 작은 풀이 자라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이 보기에는 거대한 바위일 뿐이지만, 그 풀에게는 그 바위틈이 생명을 주는 좋은 땅입니다. 그 풀은 바위 전체를 비옥하게 만들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단지 자신이 뿌리내릴 수 있는 작은 틈, 그 좋은 부분을 발견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 삶의 조건이 길가 같고, 돌밭 같고, 가시덤불 같다고 해서 낙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안에 이미 존재하는 옥토의 가치를 발견해내는 것이 바로 천국의 비밀입니다. 말씀의 씨앗은 우리의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말씀은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 딱딱한 길가도 뚫고 바위틈에도 뿌리를 내리며 가시덤불 속에서도 자라날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씨앗을 조심스럽게 하나씩 ‘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온 밭에 ‘뿌리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면, 씨가 뿌리를 내립니다." 이 단순한 진리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설이 담겨있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뿌리는 것이고, 뿌리 내리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발견하고, 발견되는 하나님 나라
발견하고, 발견되는 하나님 나라
결국 이 비유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내 마음 밭의 좋은 부분에 말씀의 씨앗이 심겨지고 뿌리내려 결실하기 시작할 때, 바로 그곳에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됩니다.
신앙생활은 내 삶이 좋은 밭이 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모든 순간 속에서 감사를 ‘발견’하고, 은혜를 ‘발견’하는 삶입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싹을 틔우시는 하나님의 생명력을 발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열매 맺는 삶을 살게 됩니다. 대추야자 한 그루가 100kg의 열매를 맺고, 올리브 나무 한 그루가 수천 개의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땅의 좋은 부분에 심긴 말씀은 인내의 시간을 거쳐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기적이 아니라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이 여정의 마지막은, 우리가 세상을 향해 ‘발견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감사와 은혜와 축복을 발견하며 살아갈 때, 그 모습이 세상 사람들에게 빛으로 드러납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보고 “아, 저 사람의 삶 속에 천국이 있구나!”라고 ‘발견’하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이 맺는 풍성한 열매의 모습입니다.
[결론] 당신의 밭에서 천국을 발견하십시오
[결론] 당신의 밭에서 천국을 발견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마음이 어떤 상태에 있든지, 그 안에 이미 예비된 좋은 땅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스스로를 정죄하거나 포기하지 말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의 시간, 우리가 듣는 이 말씀이 우리 마음 밭의 좋은 부분에 떨어져 뿌리내리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각자의 삶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축복의 통로가 되고, 세상이 그 모습을 발견하며 주님께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내 마음 밭 좋은 곳에 말씀의 씨앗이 심겨지게 하옵소서.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어가는 우리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407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