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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Intro
전도사님도 그렇고
여러분 주변의 어른들도 그렇고
청소년 여러분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 있어요.
꿈이 뭐니?
나중에 뭐가 되고 싶니?
한 두번 듣는거야 얼마든지 듣겠는데,
교회오면 전도사님들이,
학교가면 선생님들이,
집에가면 부모님들이,
명절이면 집안 사촌어른들이,
주구장창 물어보죠.
꿈과 목표가 확실한 친구들은
당당하게 말 할 것이 있지만,
아직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잘 할 수 있는 사람인지
확신이 서지 않은 친구들 입장에서는
고문과도 같은 질문이죠.
그럼에도 팩트는 이거에요.
당당하게 나의 목표를 정했다고 말한다고 해서
성공한 인생 살아가는거 아니고요.
지금 당장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목표가 없다고 해서
실패한 루저의 인생을 살아가는게 아니에요.
나한테 꿈이 있다고 해서 목표가 없는 친구들을
불쌍한 시선이나 한심한 시선으로 봐서도 안 되고,
지금 당장 주변에 꿈을 정하고
미친듯이 달려가는 친구들을 보고
부러워하거나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거나
초조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거에요.
꿈은 언제든 바뀌거든요.
인생의 폭풍이 한 번 몰아치면
내가 열심히 닦아 놓은 길도
어느 순간 갑자기 다 사라질 수도 있거든요.
아무 것도 없는 허허 벌판에서 갑자기
인생의 길이 보이기도 하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최선을 다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는게 아닙니다.
단, 내 인생의 앞날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가 어때야 하는가를
확실하게 아는게 더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거에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써
내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가 어때야 하는지
다윗왕의 이야기를 통해서 말씀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1. 우리의 꿈은 때론 거절당할 때도 있다.
1. 우리의 꿈은 때론 거절당할 때도 있다.
다윗은 성경에서도 가장 위대했던 왕으로 알려져 있어요.
단순히 국가의 힘이 강해서가 아니라,
다윗왕은 하나님이 너무나 사랑하시는
신실하고 훌륭한 성군이었어요.
인품이 굉장히 좋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너무나 좋은 사람이 왕이다?
진짜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죠.
무엇이든 할 수 있을겁니다.
무엇을 해도 백성들과 신하들이 지지하고 응원해줄겁니다.
그런 다윗왕에게 소원이 한 가지 있었어요.
바로 성전을 짓는거였습니다.
성전은 지금으로 치면 교회라고 생각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다윗 이전시대까지는
성전이 아니라 그냥 성막,
텐트정도 쳐놓고 성전을 대신했어요.
왜냐하면 계속 이동하면서 지내야했기 때문에
이동식 성전으로 천막을 쳐놓고
그곳을 하나님이 머무르시는 집이라고 했었던거죠.
그게 다윗한테는 너무 안타까웠어요.
내가 사는 궁전은 이렇게 으리으리한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하나님의 집은 백성들의 집보다도 초라한거죠.
주님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원수에게서 다윗 왕을 안전하게 지켜 주셨으므로, 왕은 이제 자기의 왕궁에서 살게 되었다.
하루는, 왕이 예언자 나단에게 말하였다. “나는 백향목 왕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도 휘장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성전은 건축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짓는거지만,
성전을 지음으로써 얻게 될 다른 좋은점들도 있었어요.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으로
묶어줄 수 있는 구심점의 역할을 해줄 수 있었습니다.
흩어져서 각자 드리던 예배를
한 곳으로 집중해서
우상숭배의 가능성도 차단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거룩한 질서를 만들 수도 있는 것이었죠.
여러모로 좋은점이 훨씬 더 많은 꿈이
다윗의 꿈이었어요.
다윗의 꿈을 보니까,
자연스럽게 전도사님이 청소년 시절에
꿨던 꿈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내 꿈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내 꿈을 통해 기뻐할 사람은 누구지?”
스스로 좀 돌아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다윗은 그 중심에
하나님을 두었던 사람이었고,
저는 꿈의 중심에 항상 내가 있었던 사람이었더라고요.
그렇게 하나님을 꿈의 중심에 둔 다윗은
그 선한 꿈을 이뤄내기 위해
모든 열정을 다 쏟아부어서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역대상 22:5,14
다윗은 이런 혼잣말을 하였다. “나의 아들 솔로몬이 어리고 연약한데, 주님을 위하여 건축할 성전은 아주 웅장하여, 그 화려한 명성을 온 세상에 떨쳐야 하니, 내가 성전 건축 준비를 해 두어야 하겠다.” 그래서 그는 죽기 전에 준비를 많이 하였다.
내가 주님의 성전을 지으려고, 금 십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를 준비하고, 놋과 쇠는 너무 많아서 그 무게를 다 달 수 없을 만큼 준비하고, 나무와 돌도 힘들여 준비하였다. 그러나 네가 여기에 더 보태야 할 것이다.
열정이 넘치죠.
하나님을 위한, 모두를 위한
선한 꿈을 품은 사람이
능력도 되고 열정도 넘쳐요.
참 부럽습니다.
그런데,
너무 허무하게도
다윗의 꿈이 무너져버립니다.
정확히는 다윗의 꿈이 거절당해요.
아니 왕의 꿈을 거절 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어디 있을까요?
너의 생애가 다하여서, 네가 너의 조상들과 함께 묻히면, 내가 네 몸에서 나올 자식을 후계자로 세워서,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바로 그가 나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집을 지을 것이며, 나는 그의 나라의 왕위를 영원토록 튼튼하게 하여 주겠다.
다윗의 꿈을 거절한 존재는
다름아닌 하나님이었습니다.
참 어이없죠?
다윗은 하나님을 위한 꿈을 품고
최선을 다했는데,
하나님께 거절당해서
인생의 목표가 사라졌어요.
그런데 그 이유가 더 어이없습니다.
“임금님께서 아시다시피, 나의 아버지 다윗 임금은 주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주님께서 원수들을 그의 발바닥으로 짓밟을 수 있게 하여 주실 때까지 전쟁을 해야 했으므로, 자기의 하나님이신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 성전을 짓지 못하였습니다.
거절당한 이유는 이거 하나에요.
손에 피를 너무 많이 묻혀서…
그런데 다윗이 전쟁을 한 건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해서
전쟁을 한거란 말이죠?
하나님께서 그의 원수들을
짓밟으시기 위해서
다윗을 통해서 전쟁을 하신겁니다.
결국 하나님이 손에 피를 묻히라고 해놓고는
손에 피가 너무 많이 묻었다고
성전을 짓는걸 허락해주시지 않는
억지스러운 상황이 발생한거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억지를 부리시는게 아니라
다윗에게는 국가를 안정시키고
세워가는 역할을 맡기신거였어요.
성전의 본질은
하나님의 집이자, 하나님이 머무르시는 곳이기 때문에
평화의 상징, shalom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평화가 이뤄진 후에
평화의 시대에 평화의 집을 건축하는 역할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시려고 하신거였어요.
그래도 제가 다윗이었으면 굉장히 서운했을 것 같아요.
서운하다는 말로 끝날 수 있었을까? 싶어요.
그렇게 나를 통해서 평화를 이뤄내셨으면
오히려 내가 성전을 짓는게 맞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다윗이라면 이런 질문도 했을 것 같아요.
왜 하필 그게 제 역할인가요?
왜 나의 역할은 손에 피를 묻히는 숨막히는 전쟁이고,
평화의 상징인 성전을 건축하는 일은 나의 역할로 안 정해주셨나요?
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게끔 하시나요?
이런 수많은 질문과 불만으로
몇날 며칠 밤을 설쳤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2.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고 오히려 기뻐했다.
2.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고 오히려 기뻐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어요.
자신의 선한 꿈이 거절당해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어요.
주님, 위대함과 능력과 영광과 승리와 존귀가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도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만물의 머리 되신 분으로 높임을 받아 주십시오!
부와 존귀가 주님께로부터 나오고, 주님께서 만물을 다스리시며, 주님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으시니, 사람이 위대하고 강하게 되는 것도 주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다윗은 인간적인 서운함이
충분하게 있을 법한 상황에서도
서운함에서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인정하는 자리로 나아갑니다.
내 계획, 나의 꿈, 나의 인생
굉장히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 맞지만
그보다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계획이
더 중요하고 더 선하고 더 가치있다는 것을
깨달은겁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분명히 내가 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계획에 불순종하여 분쟁을 일으켰을 거에요.
그런데 다윗은 왜 그랬을까요?
왜 원망하지 않고 기뻐했을까요?
성격이 좋아서일까요? 아닙니다.
비록 눈 앞에 보이는 꿈은 좌절되겠지만
좌절된 나의 꿈을 다른 선한 꿈으로
replace해주실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은 다윗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너는 돌을 가지고 내 집을 짓고 싶어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더 큰 계획이 있단다.
당장 네가 성전을 짓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나는 너의 가문을 통해서
온 세상을 구원할 자를 보낼거다.
그를 통해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것이라고 말씀하세요.
그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실
예수님께서 다윗의 그 가문에서
나오게 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꿈이 좌절되었더니
하나님께서 더 큰 축복으로 replace
해주신거죠.
그래서 저는 우리 산성교회 청소년 여러분들도
다윗처럼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으로 replace 되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진짜 복된 인생이고, 진짜 행복한 인생이에요.
내 계획, 내 인생, 내 꿈, 내 목표,
되게 주체적인 삶인 것 같고,
남들이 보기에도 멋진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그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에요.
이것도 참 아이러니하죠.
아버지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주권 앞에서 과감하게 자신의 꿈을 포기했는데,
그 아들 솔로몬은 자신의 인생에서 눈에 보이는,
보고 듣고 맛볼 수 있는 누리고 싶은거 하고 싶은거
이루고 싶은거 이런 것들만 고집하다가
그 인생의 마지막이 파국으로 치닫게 되었고,
솔로몬 때문에 이스라엘이 북 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을 replace 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계획, 하나님의 계획으로 replace 하십쇼.
그러면 여러분들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실패, 좌절, 부정적인 감정들 모두 기쁨과 행복으로 replace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내 삶은 내것이라는 거짓된 속임수로부터 귀를 닫고
진짜 내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으로 여러분의 삶을
replace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꿈이 뭐니? 라고 질문을 했을때
오늘 말씀을 들은 우리는 이제
그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을 가질 수 있어요.
교사요! 의사요! 운동선수요! 음악인이요!
이런 대답을 하기 전에
우리는 더 근본적으로 중요한 대답을 할 줄 알아야 해요.
제 꿈은, 제 인생의 주인을 하나님으로
replace하는겁니다.
하나님으로 replace되면
어떤 삶을 살게 되든 뭐든지
감사함으로 감당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대답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게 된 다윗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은게 아닙니다.
오히려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이에요.
당장 눈에 보이는 성전을 짓는 꿈,
그 꿈을 포기했을때
다윗의 가문에서 영원한 왕(메시아)가 나오게 될 것이라는
비교할 수 없이 더 크고 영원한 축복을 받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바라는 꿈이 이뤄지지 않아도
절대 낙심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다.
우리의 꿈이 거절당할 때, 그것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한 더 좋은 것으로
우리의 꿈을 replace 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싸인이다.
우리 청소년 여러분 모두의 삶의 주인이 하나님으로 re-place 되어서,
여러분의 계획이 하나님으로 re-place되고,
여러분이 가진 슬픔과 좌절도 기쁨으로 re-place되는
귀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