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0 views
Notes
Transcript

사도행전 2:1-42 오순절 사건과 베드로의 설교

사도행전 2:1–42 NKSV
1 오순절이 되어서, 그들은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다. 2 그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3 그리고 불길이 솟아오를 때 혓바닥처럼 갈라지는 것 같은 혀들이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4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5 예루살렘에는 경건한 유대 사람이 세계 각국에서 와서 살고 있었다. 6 그런데 이런 말소리가 나니, 많은 사람이 모여와서, 각각 자기네 지방 말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어리둥절하였다. 7 그들은 놀라, 신기하게 여기면서 말하였다. “보시오,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이 아니오? 8 그런데 우리 모두가 저마다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이오? 9 우리는 바대 사람과 메대 사람과 엘람 사람이고, 메소포타미아와 유대와 갑바도기아와 본도와 아시아와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와 이집트와 구레네 근처 리비아의 여러 지역에 사는 사람이고, 또 나그네로 머물고 있는 로마 사람과 11 유대 사람과 유대교에 개종한 사람과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인데, 우리는 저들이 하나님의 큰 일들을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있소.” 12 사람들은 모두 놀라 어쩔 줄 몰라서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오?” 하면서 서로 말하였다. 13 그런데 더러는 조롱하면서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서, 목소리를 높여서, 그들에게 엄숙하게 말하였다. “유대 사람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이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15 지금은 아침 아홉 시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듯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16 이 일은 하나님께서 예언자 요엘을 시켜서 말씀하신 대로 된 것입니다. 17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들과 너희의 딸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18 그 날에 나는 내 영을 내 남종들과 내 여종들에게도 부어 주겠으니, 그들도 예언을 할 것이다. 19 또 나는 위로 하늘에 놀라운 일을 나타내고, 아래로 땅에 징조를 나타낼 것이니, 곧 피와 불과 자욱한 연기이다. 20 주님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오기 전에, 해는 변해서 어두움이 되고, 달은 변해서 피가 될 것이다. 21 그러나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22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이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께서 기적과 놀라운 일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증명해 보이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서 이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 23 이 예수께서 버림을 받으신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계획을 따라 미리 알고 계신 대로 된 일이지만, 여러분은 그를 무법자들의 손을 빌어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24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서 살리셨습니다. 그가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말하기를 ‘나는 늘 내 앞에 계신 주님을 보았다. 나를 흔들리지 않게 하시려고, 주님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기 때문이다. 26 그러므로 내 마음은 기쁘고, 내 혀는 즐거워하였다. 내 육체도 소망 속에 살 것이다. 27 주님께서 내 영혼을 지옥에 버리지 않으시며, 주님의 거룩한 분을 썩지 않게 하실 것이다. 28 주님께서 나에게 생명의 길을 알려 주셨으니, 주님의 앞에서 나에게 기쁨을 가득 채워 주실 것이다’ 하였습니다. 29 동포 여러분, 나는 조상 다윗에 대하여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는 죽어서 묻혔고, 그 무덤이 이 날까지 우리 가운데에 남아 있습니다. 30 그는 예언자이므로, 그의 후손 가운데서 한 사람을 그의 왕좌에 앉히시겠다고 하나님이 맹세하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31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미리 내다보고 말하기를 ‘그리스도는 지옥에 버려지지 않았고, 그의 육체는 썩지 않았다’ 하였습니다. 32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일의 증인입니다. 33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높이 올리셔서, 자기의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서 우리에게 부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일을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굴복시키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 하셨습니다.’ 36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안은 확실히 알아두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37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려서 “형제들이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말하였다. 38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39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또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 곧 우리 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40 베드로는 이 밖에도 많은 말로 증언하고, 비뚤어진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그들에게 권하였다. 41 그의 말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그 날에 신도의 수가 약 삼천 명이나 늘어났다. 42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
1) 말씀 속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
주제와 내용
베드로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 내용은 첫째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요엘의 예언의 성취라고 말한다. 그 내용은 마지막날에 하나님의 영이 모든 사람들에게 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징조가 있을 것이며 고난(?)의 시간이 오겠지만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둘째로,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께서 증명한 사람이며,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지만, 여러분이 무법자들의 손에 빌어서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분이 다시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고, 성령을 부어주셨다고 말한다.
베드로의 말을 듣던 사람들은 마음이 찔려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물었다. 베드로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를 받아들은 자들은 세례를 받았고 삼천 명의 신도가 늘어났다. 이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
질문들
땅의 징조인 ‘피와 불과 자욱한 연기’는 무얼 의미할까?
전형적인 마지막날에 대한 이미지. 베드로는 이런 이미지가 실제로 일어나지않았음에도 그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함. 즉 베드로도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종말의 이미지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불과 연기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주요한 이미지다.
‘해가 어두움이 되고, 달이 변해서 피가 된다는 것’의 의미는?
광명들은 세상의 권세자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다신론적 사회에서 해와 달은 하나의 ‘신’으로 여겨졌고, 세상의 권세자들은 이들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해가 지고, 달이 피가 된다는 묘사는 권력의 몰락을 의미할 수 있다.
이런 종말의 이미지들은 성경에 종종 나타나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에도 등장한다.
사13:9-10, 사60:18, 겔32:7, 욜2:10, 2:31, 3:15, 암 8:9, 전12:2
마24:29, 막13:24, 눅21:25, 행2:20, 계6:12
시편의 말씀을 다윗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내다보고 말한 것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성경에서 숫자 ‘삼천’의 의미는?
3은 ‘완전함, 충분함’을 의미한다. 삼천명은 ‘충분한 매우 많은 인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그러나 3은 4나 7과 같은 완전수와 다른 점이 있는가? 왜 하필 3을 사용했을까..?
가르침, 사귀는 일, 빵을 떼는 일, 기도… 왜 이걸 했을까?
예수님이 하셨던 일..
해석
베드로는 오순절 사건을 요엘의 예언의 성취라고 말한다. 그것은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이다. 베드로는 성령이 임재하신 사건을 곧 ‘종말’의 사건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종말에는 재난과 광명이 힘을 잃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고, 세상의 권력들이 힘을 잃을 것을 의미한다. 베드로는 이 종말의 때가 ‘지금’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살 것’이라고 요엘서를 인용하면서 선포한다. 종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미 시작되었다. 베드로는 예수와 그를 따르는 자들의 고난을 곧 종말의 때의 ‘재난’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므로 그들은 고난을 기뻐할 수 있었다. (행5:41) 이들은 마지막 때에 대한 예언처럼 하나님께서 세상의 권력들을 심판하실 것을 믿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주님’이 곧 ‘나사렛 예수’라고 선포한다. 그리고 바로 ‘여러분’이 이 주님을 죽였다고 말한다. 이들이 예수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불의하게 사형을 선고당한 예수에 대해서 그 누구도 예수의 편에서 대변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모두 공범인 것이다. 모두가 그의 죽음을 묵인하고 외면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를 살리셨고, 예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셨다고 말한다. 이는 예수의 죽음이 끝이 아니며, 예수에게 임했던 그 영이 이제는 자신들에게 임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예수가 외쳤던 것처럼 “회개하라!”고 선포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했지만,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것’을 말한다. 이는 실상 같은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격화된 하나님 나라다. 하나님 나라는 사회화된 예수 그리스도다. 이것은 이제 이전에 ‘나’는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땅에 있는 성령을 받은 자들의 공동체를 통하여 나타난다. 우리가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것(행1:11)”이 아니라,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살아가기를 바라신다.
2) 나와 우리의 상황과 나에게 주시는 말씀
혹시 오늘도 우리가 예수를 죽이고 있지는 않은가? 성령을 따라 예수가 하셨던 일들을 하는 이들이 여전히 있다. 사랑과 정의와 평화와 생명을 외치는 이들이 있다. 많은 이들이 세상의 권력에 의해 고난받는다. 우리는 이들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는가? 외면하고 있는가? 우리는 불의한 구조를 묵인함으로써 여기에 동조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에게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을 다시금 돌아보아보자. 세상이 당연하다고 말했던 것들 안에 차별과 폭력은 없었는가? 나는 거기에 일정 부분 동조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마 여기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진지하게 수용할 때, 우리가 진정 ‘죄인’이라고 고백할 수 있다.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돌이키라고 말한다. 예수를 죽이는 자리에서, 예수의 자리로 자리를 옮기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3) 진실한 응답과 기도

사도행전 2:43-47 초대 공동체의 생활

사도행전 2:43–47 NKSV
43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사도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과 표징이 많이 일어났던 것이다. 44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45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다. 46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1) 말씀 속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
주제와 내용
질문들
이들은 무엇을 두려워했을까?
이것은 ‘경외’라는 의미도 있다. 그들은 일상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에 대한 반응이자 그 권위에 대한 인정.
왜 성령의 임재가 이들로 하여금 모든 것에 대한 공유로 이끌었는가?
사랑은 하나되게 하는 것이다.
이들은 왜 성전에 모였을까?
유대인의 예배 관습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음. 요세푸스에 의하면 “경건한 자들은 3,6,9시에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고 함.
다 같이 모일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성전밖에 없었을 수도
해석
본문은 성령을 받은 공동체의 모습을 서술한다. 곧 이는 교회가 추구해야 할 이상을 서술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성은 교제로 이어진다. 성령이 충만한 자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모든 것을 함께하며, 모든 것을 나눈다.
하나님 나라의 경제 원리. 희년.
2) 우리의 상황과 메시지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하나님을 너무 가벼이 여기고 살아가지는 않는가?
진정한 전체주의가 무엇인지 알게된다. 그것은 지배층을 중심으로 하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두가 자신의 것을 내어놓음으로 없는 자들의 필요가 채워지는 것이다.
기적은 자신의 것을 내어놓는 것에서 시작된다.
3) 응답과 기도

사도행전 3:1-10 못 걷는 사람의 치유

사도행전 3:1–10 NKSV
1 오후 세 시의 기도 시간이 되어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올라가는데, 2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을 사람들이 떠메고 왔다. 그들은 성전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게 하려고, 이 못 걷는 사람을 날마다 ‘아름다운 문’ 이라는 성전 문 곁에 앉혀 놓았다. 3 그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 구걸을 하였다.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그를 눈여겨 보고, 그에게 말하였다. “우리를 보시오!” 5 그 못 걷는 사람은 무엇을 얻으려니 하고,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았다. 6 베드로가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하고, 7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는 즉시 다리와 발목에 힘을 얻어서, 8 벌떡 일어나서 걸었다. 그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다. 9 사람들은 모두 그가 걸어다니는 것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보고, 10 또 그가 아름다운 문 곁에 앉아 구걸하던 바로 그 사람임을 알고서, 그에게 일어난 일로 몹시 놀랐으며, 이상하게 여겼다.
1) 말씀 속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
주제와 내용
질문들
베드로와 요한은 왜 은과 금이 없었을까? 모두 공유했기 때문일 수도.
해석
예수가 하신 일을 다시금 재현한다.
“눈여겨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는 예수의 권세를 힘입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직역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라고 한다면, 그것의 이미지는 우리가 그의 정체성이나 통치 안에 있음을 더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2) 우리의 상황과 메시지
3) 응답과 기도

사도행전 3:11-26 베드로의 설교

사도행전 3:11–26 NKSV
11 그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 곁에 머물러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크게 놀라서, 솔로몬 행각이라고 하는 곳으로 달려와서, 그들에게로 모여들었다. 12 베드로가 그 사람들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어찌하여 이 일을 이상하게 여깁니까? 또 어찌하여 여러분은, 우리가 우리의 능력이나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하기나 한 것처럼, 우리를 바라봅니까? 13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이삭의 [하나님] 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자기의 종 예수를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일찍이 그를 넘겨주었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작정하였을 때에도, 여러분은 빌라도 앞에서 그것을 거부하였습니다. 14 여러분은 그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거절하고, 살인자를 놓아달라고 청하였습니다. 15 그래서 여러분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16 그런데 바로 이 예수의 이름이,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고 잘 알고 있는 이 사람을 낫게 하였으니, 이것은 그의 이름을 믿는 믿음을 힘입어서 된 것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은 그 믿음이 이 사람을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완전히 성하게 한 것입니다. 17 그런데 동포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해서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1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빌어서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아야만 한다고 미리 선포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습니다. 19 그러므로 여러분은 회개하고 돌아와서, 죄 씻음을 받으십시오. 20 그러면 주님께로부터 편히 쉴 때가 올 것이며,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해서 미리 정하신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보내실 것입니다. 21 이 예수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 자기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빌어서 말씀하신 대로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 마땅히 하늘에 계실 것입니다. 22 모세는 말하기를 ‘주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동족 가운데서 한 예언자를 세워 주실 것이다. 그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라. 23 누구든지 그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백성 가운데서 망하여 없어질 것이다’ 하였습니다. 24 그리고 사무엘을 비롯하여 그 뒤를 이어서 예언한 모든 예언자도, 다 이 날에 있을 일을 알려 주었습니다. 25 여러분은 예언자들의 자손이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의 자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의 자손으로 말미암아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6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악에서 돌아서게 하셔서, 여러분에게 복을 내려 주시려고, 먼저 자기의 종을 일으켜 세우시고, 그를 여러분에게 보내셨습니다.”
1) 말씀 속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
주제와 내용
앞선 베드로의 설교와 거의 동일한 주제를 반복하고 있다.
질문들
해석
"왜 우리를 주목하십니까?” 이 능력은 우리로부터 난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온 것임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다는 것은 내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시인해야 한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해서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
“편히 쉴 때가 올 것” = 아나프식스 ( 시원함, 상쾌한, 편안함, 생기, 활기) = 생명력 있는?
2) 우리의 상황과 메시지
3) 응답과 기도

사도행전 4:1-12 대제사장의 신문

사도행전 4:1–12 NKSV
1 베드로와 요한이 아직도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데, 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몰려왔다. 2 그들은 사도들이 백성을 가르치는 것과, 예수의 부활을 내세워서 죽은 사람들의 부활을 선전하고 있는 것에 격분해서, 3 사도들을 붙잡았으나,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다음 날까지 가두어 두었다. 4 그런데 사도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서 믿는 사람이 많으니, 남자 어른의 수가 약 오천 명이나 되었다. 5 이튿날 유대의 지도자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6 대제사장 안나스를 비롯해서,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그 밖에 대제사장의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 모두 참석하였다. 7 그들은 사도들을 가운데에 세워 놓고서 물었다. “그대들은 대체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하였소?” 8 그 때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그들에게 말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장로 여러분, 9 우리가 오늘 신문을 받는 것이,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과 또 그가 누구의 힘으로 낫게 되었느냐 하는 문제 때문이라면, 10 여러분 모두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이 성한 몸으로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은,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서 된 것입니다. 11 이 예수는 ‘너희들 집 짓는 사람들에게는 버림받은 돌이지만,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 입니다. 12 이 예수 밖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구원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가 의지하여 구원을 얻어야 할 이름은, 하늘 아래에 이 이름 밖에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1) 말씀 속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
주제와 내용
질문들
해석
2) 우리의 상황과 메시지
3) 응답과 기도

사도행전 4:13-22 대제사장의 압박

사도행전 4:13–22 NKSV
13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본래 배운 것이 없는 보잘것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그들은 그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다녔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14 병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들 곁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아무 트집도 잡을 수 없었다. 15 그래서 그들은 그 두 사람에게 명령하여 의회에서 나가게 한 뒤에, 서로 의논하면서 말하였다. 16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들로 말미암아 기적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고, 우리도 이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17 다만 이 소문이 사람들에게 더 퍼지지 못하게, 앞으로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엄중히 경고합시다.” 18 그런 다음에, 그들은 그 두 사람을 불러서, 절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명령하였다. 19 그 때에 베드로와 요한은 대답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인가를 판단해 보십시오.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1 백성이 모두 그 일어난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으므로, 그들은 사도들을 처벌할 방도가 없어서, 다시 위협만 하고서 놓아 보냈다. 22 이 기적으로 병이 나은 이는 마흔 살이 넘은 사람이다.
1) 말씀 속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
주제와 내용
질문들
해석
2) 우리의 상황과 메시지
3) 응답과 기도
묵상
나의 불안. 어디서부터 왔을까? 잘하고 싶다는 생각. 더 나아가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
잘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고 떠날 것 같고, 내 인생이 비참해질 것 같다.
이런 생각이 하나님의 음성인가? 그렇지 않다.
성경은 우리가 자신의 능력이나 의로움으로 구원받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직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이다.
그렇다면 누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는가? 능력주의적인 사회.
누구의 음성을 들을 것인가?
중요한 것은 내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고 있는가의 문제.
무엇을 향해 가는가? 어느 편에 서고 있는가?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가?
알고 있었으면서도, 솔직히 내 마음 속으로는 믿지 못했던 것.
오늘 말씀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놀라운 일들을 행한다.
그러나 그 일을 행하고 나서 사람들이 자신들을 주목하자
“어찌하여 여러분은, 우리가 우리의 능력이나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하기나 한 것처럼, 우리를 바라봅니까?”라고 말한다.
이들이 대제사장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할 때에도 사람들은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본래 배운 것이 없는 보잘것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래서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힘입어 나는 지금 내가 해야할 일을 할 뿐이다.
그렇다고 열심히 할거 덜 열심히하고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기로 했다.
그러자 내 마음이 평안해지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이 편안해졌다.
뿐만 아니라,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나오는 능력주의적인 말들을 조심해야겠다.
그 말은 성령으로 나오는 말이 아니라 악령으로부터 나오는 말이다.
내 말이 또 누군가에 마음에 이런 생각과 불안을 심어줄 수 있겠다.
오직 나의 생각과 말이 성령으로 충만해지길 기도한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