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죽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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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새로운 관계를 추구하라
714기도회
다시봄
수련회 회비 부담
Esther 4:5–17 NKRV
5 에스더가 왕의 어명으로 자기에게 가까이 있는 내시 하닥을 불러 명령하여 모르드개에게 가서 이것이 무슨 일이며 무엇 때문인가 알아보라 하매 6 하닥이 대궐 문 앞 성 중 광장에 있는 모르드개에게 이르니 7 모르드개가 자기가 당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왕의 금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액수를 하닥에게 말하고 8 또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 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보여 알게 하고 또 그에게 부탁하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하니 9 하닥이 돌아와 모르드개의 말을 에스더에게 알리매 10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전하기를 11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 12 그가 에스더의 말을 모르드개에게 전하매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15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

🗣 설교 시작

지난주에 이어 에스더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 보통 강해설교는 한 장씩 차례대로 살펴보는데, 4주 시리즈이기 때문에 주제별로 살펴보겠습니다.
지난주 우리는 에스더 1, 2장의 내용을 중심으로 유대인들이 페르시아 제국 안에서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흩어져 살고 있음을 보았고, / 왕비 와스디가 왕의 명령을 거부하여 폐위되고, / 그리고 그 빈 자리에 유대 고아 소녀인 에스더가 왕비로 세워지게 됩니다. / 하지만, 에스더는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숨긴 채 궁정 생활을 이어 나갑니다.
에스더 초반 이야기는 불편합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에스더의 순종적인 모습에 불편함을 느끼죠. / 오히려 와스디의 당당함을 높게 평가합니다.
보수 진영에서도 에스더는 다니엘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고, 모세 율법을 어기며, 결혼 전에 왕과 동침한 에스더의 타협적인 모습에 당황해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일하실 수 있는가?
지난주에도 언급했듯이,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 살아가는 오늘 우리의 모습과도 같죠.
그렇다면, 내가 속한 일터와 캠퍼스, 세속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가? / 하나님은 매일 넘어지는 나의 연약한 속에서 일하고 계신가
에스더서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너무나 분명하게 일하고 계신다.”
오늘 설교 제목이 “죽으면 죽으리라”여서, ‘목사님 우리 보고 죽으라고 하겠지’라는 그런 표정인데,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오늘 ‘소명’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팀 켈러의 “일과 영성”을 보면, 왕궁에서의 에스더와 관련해서 소명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 그 내용을 기초로 세가지 주제로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오늘 왕궁에서의 에스더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세가지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1) 왕궁의 중요성, 2) 왕궁의 위험성 3) 그리고 에스더처럼 위대하게 사는 법

1. 왕궁에 있다는 것의 중요성

오늘 본문을 보면 모르드개는 굵은 베옷을 입고, 성문 앞에 있다고 말합니다.
이 ‘성문’은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가 아니라 ‘왕궁’의 문입니다. / 에스더서에 나오는 수사라는 도시는 페르시아의 수도인데,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이 솟은 위치에 왕궁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마치 그리스의 아크리폴리스와 같은 곳인데 페르시아 제국의 문화와 권력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죠 / 에스더는 바로 그곳에서 왕궁 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모르드개가 그 왕궁 문 앞에서 들어가지고 못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애통해 하고 있는 것이죠. / 왜냐하면 하만(에스더서의 빌런)이 왕의 이름으로 유대인들을 모조리 죽이라는 조서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이 위기 앞에서 모르드개는 왕궁에 있는 에스더에게 “너가 그 자리에 있으니 무언가를 해야하지 않냐”라고 말합니다.
이제 에스더는 왕궁 안에 있는 자신의 위치와 영향력을 사용할 때가 온 것이죠.
하나님의 일은 '밖'에서도 일어난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배울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그분의 일을 위해 “공동체 내부”사람들, 즉, 목사, 선교사 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 그러면, 목회자나 선교사를 생각합니다. / 하지만 성경에서 요셉, 다니엘, 에스더는 일반 평신도였습니다. /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 전임사역자가 아닌 일반 직장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고, 중요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 왜냐하면,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만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세상의 왕궁에서도 일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레이 바키(Ray Bakke)라는 기독교 작가는 말합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사람들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같은 시기를 배경으로 한 세 가지 책을 주셨다” / 무슨 책일까요?
첫 번째는 에스라서입니다. /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제사장, 즉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목사나 전임사역자를 말합니다.
두 번째는 느헤미야입니다. /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함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인데, / 느헤미야는 평신도였죠 / 탁월한 행정가이자, 도시 재건 전문가였습니다.
마지막은 에스더서입니다 / 에스더는 교회 안에도, 교회 밖 거리에도 있지 않았죠. / 그녀는 왕궁이라는 특별한 공간에 있으면서 유대민족을 구원하는 데 하나님께 쓰임받았습니다.
만약에 이 세 사람 중에 한명이라도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성도 사용하시고, 여성도 사용하십니다. / 성직자도 사용하시고, 평신도도 사용하시죠. / 이렇게 모두를 사용하시면서 영적인 성숙과, 도시의 발전, 경제적 번영, 사회 정의를 이루시는 것이죠.
📌 적용 1: 성도는 어디에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배워야 할 첫 번째 교훈은 믿는 자들은 세상의 모든 영역 가운데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러분 대부분이 서울 중심 한복판에서 학교를 다니거나 직장을 가지고 있을텐데, 저는 여러분이 왕궁에 있는 것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목사님, 저희가 무슨 왕궁입니까?’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여러분 잘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체감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고, / 여러 글로벌 IT기업을 가지고 있는 기술 강국이고, 교육도 뛰어납니다.
요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난리죠 / (낙산공원이 나와서 깜짝 놀랐는데) / 문화강국을 꿈꾸던 김구 선생님의 꿈이 이루어진 것만 같습니다. / 여러분, 대한민국은 문화적으로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는 문화강국입니다.
이러한 나라의 수도인 서울은 이제 세계적인 도시죠 / 게다가 여러 대학과 여러 공관이 있는 중심지에 종로 지역에 여러분은 있는 겁니다. / 페르시아 수사에 우뚝 솟은 왕궁과 같은 곳이죠. / 여러분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여러분은 지금 왕궁 안에 있는 겁니다.
이 중에 많은 분들이 제주도에서부터 전국 각지에서 서울 이곳으로 올라와 자리를 잡았죠. / 캠퍼스와 직장에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자신의 실력을 쌓아가고, 경제적 자립도 이루고, 자신의 커리어를 개발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을 여러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누리고, 사용하고 있다면, / 여러분은 이 도시를 이용하고 있을 뿐, 하나님의 사람으로써 도시를 섬기고 있지 않은 겁니다.
목회자 컨퍼런스에서 어떤 목사님께서 목사님들 대상으로 이러한 도전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성도들에게 말해야 합니다. 그들은 지금 궁전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채, 그들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자신만의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하지만 궁전 밖에 있는 우리들에겐 그들이 필요합니다. 그들의 인맥과 자원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가진 지위와 위치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때를 위하여 왕후가 된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그들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 주세요.”
그래서, 여러분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려고요. / 여러분은 지금 왕궁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에스더와 같은 처지에서 이렇게 느낄 수 있습니다. / “목사님, 제 코가 석자입니다. 겨우 여기에 왔는데, 전 언제 짤릴지 몰라요”
또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 “목사님, 이 자리까지 오는데 많은 타협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어느정도 영향력은 가지고 있지만, 저는 이미 오염되서 하나님이 쓰실 깨끗한 그릇이 되지 못해요”
그런데, 여러분, “과연 에스더의 양심은 깨끗했을까요?” /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지금이라도 너의 위치를 깨닫고, 내가 너를 부른 이 때를 위해 살아가라.”
여러분,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 “이 때를 위함이 아니겠는가”
오늘도 여러분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 앞에 믿음으로 반응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2. 왕궁에 있다는 것의 위험성

두번째는 왕궁에서의 위험성입니다.
지금 우리가 다 죽게 생겼는데, 뭐라도 해야 되는거 아니냐’라는 모르드개의 말에 에스더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Esther 4:11 NKRV
…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
자, 이게 무슨 말일까요? / “전임 왕비가 왕에게 함부로 했다가 폐위됐는데, 저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이죠,
게다가 에스더는 30일 동안 왕이 자신을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왕에게서 멀어진 것은 아닌가 불안해합니다. / “이런 상황에서 함부러 왕에게 나아갔다가, 금 홀을 받지 못하고 죽을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금 규라고 되어 있는데, 금으로 된 왕의 지팡이로, 왕이 금 홀을 내밀어야 접근이 가능한데, 그냥 나아갔다가 죽을수도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모르드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에스더서의 가장 중요한 구절 중 하나죠.
Esther 4:13–14 NKRV
13 …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네가 왕궁에 있다고 해서 너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추호도 생각하지 마라. / 너가 침묵하면, 하나님은 다른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유대인을 구원하겠지만 /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망할 것이다.”
즉, “왕궁에서 쫓겨날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라는 경고인 것이죠.
“유대인 모두가 죽으면, 너의 정체도 드러날 것이고, 유대인들이 살아남는다해도 너는 배신자로 낙인찍힐 것이다”
그러면서 말하는 겁니다. “네가 왕후가 된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 핵심 교훈: 궁전은 이미 감옥일 수 있다
모르드개의 이 말 속에는 이러한 의미가 있는 겁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과 인맥과 재정 / 그 모든 것을 너 자신만을 위해서만 사용한다면, 당신은 이미 그 왕궁의 노예가 된 것이다.”
세상 왕궁 노예가 되어 위태위태한 안락한 삶을 살 것인가 /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누가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드시는데
흥미로운 점은 나사로는 이름이 있지만, 부자는 이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 그냥 부자에요 / 왜 그런걸까요?
그의 정체성 전체가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 이 사람의 존재의 기반은 재물인 것이죠 / 그러다보니깐 부를 잃으면 어떻게 됩니까? / 자기 존재도 사라지는 겁니다.
여러분이 왕궁에서의 성공과 돈과 지위 같은 것들을 나의 정체성으로 삼았다면, 여러분은 이름을 잃고 살아가는거에요.
예를 들어 이런겁니다. 명함이 그 사람의 정체성이라고 치자면
하나님께 정체성을 둔 사람들은 명함에 아무것도 없고, 자신의 이름 석자만 있어도 당당합니다. / 그게 내 이름이고, 하나님 앞에서의 나 자신의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왕궁에 정체성을 둔 사람은요. / 명함에 자신의 이름이 써있는 것이 아니라 / 내가 무엇을 가졌고, 어떠한 자격증이 있고, 어떤 일을 해냈고, 어떤 상을 받았는지가 써있죠. / 자신이 없는 거죠. / 정체성이 빈약하다보니 여기저기 갖다 붙이는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안정감을 찾지 않죠 / “내 계좌에 충분한 돈이 있어 / 나는 이 정도에 학력과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깐 괜찮아” / 거기에서 나의 안정감을 찾습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잠시 머물러야 할 왕궁생활이 전부가 된 것이죠 / 왕궁 영주권을 넘어 시민권까지 따버린 겁니다. / 아예 왕궁 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다보니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왕궁이 하라는대로 하는 겁니다. / 양심에 걸리는 일을 보더라도 침묵하죠. /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었다가 내 경력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왕궁에서의 온갖 돈과 권력과 지위를 얻기 위한 오징어 게임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여러분 오징어 게임을 보면 투표를 해서 게임을 멈출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게임을 멈추지 못합니까? / 이미 왕궁에 노예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왕궁을 떠나지도 버릴 수도 없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이번 오겜 마지막 시즌을 보면서 / 자신의 이름 없이 왕궁이 부여한 번호로 살아가고 있는게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 정체성이 '왕궁 밖'에 있는 사람
하지만, 빌립보서에서 말하듯 하늘의 시민권을 둔 사람은 어떠합니까?
일과 영성에 나오는 예화인데요. / 어느날 한 여성이 교회에 와서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이곳이 뭔가 특별한거 같아서 왔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 그래서, 누구의 소개로 이곳에 왔는지 물으니깐, 이 여성이 말하는 겁니다.
최근 직장에서 큰 실수를 했는데, 커리어도 잃고. 직장에서 짤려도 할 말이 없는 실수였다고 합니다. / 그런데, 그 책임을 상사가 대신 졌다는 것이죠. / 그래서, 그 상사는 자신의 입지가 줄어드는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고 합니다.
아니, 왜? /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손해보면서까지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거죠. / 그래서 물어봤다고 합니다. / “아니, 도대체 왜 그런 겁니까? 저는 몇년동안 직장 생활해봤지만, 직원들의 성과를 자기 공으로 가로채는 상사는 수없이 봐았지만, 직원들의 실수를 책임지는 상사는 당신이 처음입니다” / “왜 그런거죠?”
그러자 이 상사는 처음에는 얼버무리다가, 계속해서 물어보니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 “전 기독교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저의 죄와 실패를 대신 지신 분이시기 때문에 저 또한 다른 이들의 잘못을 대신 진 것 뿐입니다”
이 말을 듣고, “당신이 다니는 교회가 어딥니까?” 그렇게 해서 교회에 왔다라는 것이죠.
이러한 상사 만나시기를 축복합니다. / 아직까지 그런 상사를 만나지 못했다면, 여러분이 그러한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이 상사는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던 걸까요?
이 사람의 정체성은 왕궁이 아닌 다른 곳에 뿌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이 땅에 왕궁의 시민권이 아닌 하늘의 시민권을 둔 사람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 있어 왕궁은 뭐에요? /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 그러다보니깐, 절대로 휘둘리지 않는 것이죠 / 오히려 자유롭습니다. / 이 사람은 자신의 이름 석자만으로도 당당함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 것이죠.
그래서, 왕궁에게 사용당하지 않죠. / 오히려 왕궁을 사용합니다. / 이게 바로 모르드개가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정체성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바사의 궁전에 있습니까? 예루살렘에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시민권은 어디에 있습니까? / 이 세상의 궁정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나라입니까?
여러분의 캠퍼스와 일터에서 예수님의 향기를 드러내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궁전 아닌 곳에 정체성을 둘 수 있을까요?

3. 궁전에서 위대하게 사는 법

은혜만이 정체성을 바꾼다
그 답은 모르드개의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sther 4:14 NKRV
….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이 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얻은 것”이라는 동사인데, 히브리 원어로 보면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 네가 노력해서 왕후의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라 “얻었다”라는 것이죠. / 즉, 은혜 없이는 네가 왕후의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라는 것입니다.
“생각해봐라. 너의 뛰어난 외모는 네가 노력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얻은게 아니냐? / 왕후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기회도 너가 스스로 만든게 아니라 은혜로 얻은 것이 아니냐?”
에스더는 억울했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런 말을 하십니까?”
여러분들도 그럴겁니다. / “내가 얼마나 노력해서 이 학교에 왔는데,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이 회사에 왔는데”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 여러분의 그 재능은 누구에게서 받은 건가요? / 여러분이 만들어내 낸 건가요? / 아닙니다. 주어진 것이죠 /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재능으로 기회를 얻은 것도, 하나님이 열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지, 여러분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 모든 것이 은혜라는 것이죠.
여러분이 있는 캠퍼스와 일터, 어디에 있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이 은혜의 깨달음이요. / 에스더를 변화시킵니다.
Esther 4:15–16 NKRV
15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여러분, 어떻습니까? / 우리가 지금껏 보았던 1, 2장에서의 순종적인 에스더가 아니죠. / 절대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에스더가 “당신은 이렇게 이렇게 해라, 나는 이렇게 이렇게 하겠다” 명령을 내리기 시작하죠. / 그리고 그 유명한 말을 합니다. / “죽으면 죽으리다”
원래부터 에스더가 영웅적이서가 이런 말을 한 게 아닙니다. / 은혜를 깨닫고 각성하고 난 후에 한 말이죠 / “죽으면 죽으리다”
자, 이쯤되면, 아 목사님이 우리보다 죽으라고 하겠구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마 이 본문을 가지고, 죽으라는 말 여러번 들었을 겁니다.
다른 얘기이기는 한데, 저희 아내가 저한테 가끔 에스더와 같은 기백으로 이러한 믿음의 고백을 할 때가 있습니다.
“여보, 하나님이 오늘 당신을 데려간다해도 전 괜찮아요.” / “당신이 불구가 된다해도 난 여전히 당신과 함께할거에요”
언뜻 들으면 감동적인데 / “왜 날 자꾸 죽이려고 하는거냐” / 사고나게 만들고, 자꾸 어디를 못쓰게 만들고, 죽이지 말고, 그냥 좀 사랑하면 안되는거냐”
여러분, 대부분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믿음의 고백 앞에 감동을 받고 결단을 하죠.
“그렇지, 나도 에스더처럼 살아야지, 나도 믿음을 드러내고 복음을 전해야지. 침묵하지 말고 용기있게 말해야지. 내일부터 나는 일터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으로 살아야지” / 좋습니다. / 귀하고 아름다운 결단이죠.
그런데, 여러분 이미 경험해보셨겠지만, 이러한 결단은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 왜냐하면 그 동기가 뭐에요? / 내가 그렇게 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있기 때문입니다. / 여러분 이러한 죄책감은 부정적인 감정만 일으키지 나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그리고, 어쩔 땐 지나치게 과잉반응을 해서 문제가 될 때가 있죠 / 자꾸 회사에서 믿음으로 죽을려고만 하니깐, 누가 그러한 사람과 일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 “나는 믿음을 숨기고, 회사 생활하는 자들과는 달라. 나는 믿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
그런데 여러분 아십니까? / 나를 그렇게 괴롭히고, 회사에서 악명이 높은 상사에 방에 들어갔는데, 성경이 놓여져 있고, 말씀 액자가 걸려있었다는 얘기를 저는 자주 듣습니다.
겉으로는 굉장히 거룩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이러한 사람들도요. 여전히 궁전 안에 있는 겁니다. / “자기 의로움”이라는 궁전이죠. / 여전히 자신의 의로움과 성과를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 오직 복음만이 모든 것을 바꾼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에스더를 모범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표지판으로 바라보는 겁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오늘 설교를 듣고 에스더처럼 살려고 한다면 매일 절망할 것입니다. / 여러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산다고 그렇게 결단했지만, 그렇게 살아지던가요? / 아니죠. 결단만으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에스더를 표지판으로 보는 겁니다. / 이게 무슨 말이냐면, 에스더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가를 보는 겁니다.
여러분, 에스더는요.
얼마든지 안전한 길을 택할 수 있었지만, “죽으면 죽으리라” / 내 민족이 죽겠다면 얼마든지 자신도 죽겠다고 말합니다. / 자신과 민족을 동일시 한것이죠.
그리고,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방법으로 왕의 보좌로 나아가 은혜를 구했고, / 그 은혜가 백성에게 전가되어 유대민족은 구원을 받습니다. / 왕과 백성 사이에 중보 역할을 한 겁니다.
이쯤되면 여러분 에스더가 가리키고 있는 그분, 어떠한 분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반주]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최고의 궁전, 하늘 보좌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말에 자신의 목숨을 내걸었지만, 예수님은 스스로 하늘 보좌로 버리시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에스더는 죽음의 위험을 감수한 정도지만, 예수님은 실제 죽임을 당하셨습니니다.
“죽으면 죽으리라”가 아니라 “나는 죽을 것이고, 반드시 또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죠. / 그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는 죄로 인한 죽음에서 구원을 얻게 된 것이죠.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늘 아버지의 보좌 앞에 나아가 친히 우리를 위한 중보자가 되셨고, 그분의 은혜가 우리에게 전가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에스더를 하나의 모범으로 본다면, 에스더처럼 살수 없기 때문에 절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여긴다면, / 그분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된다면, 나의 정체성, 나의 가치, 나의 안정감이 모두 그분 안에 있다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그래요. / 나의 결단이 아니라 복음이 나를 변화시키는 겁니다. / 내가 무엇을 해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를 위해 하신 일 때문에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세상의 궁전에서의 화려함과 성공, 재물과 영향력은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죠. / 그보다 더 아름답고도 영원한 가치가 있는 분이 나의 구원자이기 때문입니다. / 얼마든지 버릴 수 있고, 아낌없이 내어드릴 수 있고, 위험을 감수할 수 있습니다.
왕궁을 얻기 위한 게임에서 우리는 엑스 버튼을 누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은혜를 깨닫고, 복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기쁨으로 아낌없이 하나님께 삶을 내어드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더디 여러분, 예수 안에서 친구된 여러분, 세상이라는 궁전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
여러분이 있는 그 자리는 그냥 주어진게 아닙니다. / 이 때를 위함이 아니겠는가 /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은사와 재능, 경험, 기질과 성격. 상처와 아픔까지도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궁전에서 그저 살아가는 인생이 아닌 궁전 안에 세상을 치유하는 자로 사용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기억하세요. “죽으면 죽으리다”는 진짜 위대함의 출발이라는 것을요.
성경을 보면 “죽으면 죽으리다”전에는 그냥 에스더라고 불렸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는요. 13번이나 왕후 에스더로 불리워지기 시작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에스더는 위대해지기 위해 위대해진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했기 때문에 위대해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너무 살려고 해서 문제죠. / 다들 자기가 살려고 하고, 자기가 빛나려다 보니깐, 오히려 세상은 어두워지는 것이죠. / 이 어두움을 환하게 밝힌 분이 누구이십니까? / 세상 죄를 짊어지시고,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이시죠.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잃고자 하는 자는 얻을 것이요 얻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다”
여러분, 그 생명의 길, 순종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진정한 위대한 인생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하나님의 부르심G / 그가 이 땅에 오신 이유(후렴) G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네 내가 이 자리에 선 것도 주의 부르심이라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결코 실수가 없네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네
작은 나를 부르신 뜻을 나는 알 수 없지만 오직 감사와 순종으로 주의 길을 가리라 때론 내가 연약해져도 주님 날 도우시니 주의 놀라운 그 계획을 나는 믿으며 살리
날 부르신 뜻 내 생각보다 크고 날 향한 계획 나의 지혜로 측량 못하나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완전한 길로 오늘도 날 이끄심 믿네
지으신 그대로 회복시킨 우리의 창조주 그리스도 십자가의 길로 아버지 뜻 이루셨네 그가 이 땅에 오신 이유
이제 우리에게 맡겨진 그 소망 그 사랑 그 생명 아름답고 눈부신 십자가의 길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갈 이유

🙏 통성 기도 제목

하나님,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게 하소서.
내게 주어진 왕궁 같은 환경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시고, ‘이때를 위함’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소서.
하나님, 내가 왕궁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소서.
성공, 명예,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정체성을 삼는 사람 되게 하소서.
하나님, 예수님이 나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셨음을 믿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나를 변화시키고, 어떤 위험 속에서도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게 하소서.

🌾 봉헌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인생을 이 땅 가운데 보내시고,
이 때, 이 자리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수고와 노력으로 여기까지 온 줄 알았지만,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임을 고백합니다.
에스더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와 재능을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사용하게 하소서.
우리가 드리는 이 예물 또한,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우리의 순종이며, 고백이며, 헌신임을 믿습니다.
주님, 이 예물을 받아주시고, 우리를 복음의 통로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축도

이제는 궁전의 화려함을 버리시고, 십자가의 길을 택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우리를 각자의 자리로 부르시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과,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시며, 순종의 길을 걷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화, 감동, 교통하심이,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때를 위함’이라 믿고, 복음의 빛을 따라 살아가길 원하는
이곳에 모인 청년들에게 항상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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