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 자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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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들어가면서
수련회가 시작되었다
1일차: 정체성 - 나는 누구인가? (영적 눈이 열린 새 사람)
2일차: 삶의 방식 -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믿음으로 행하는 삶)
3일차: 사명과 목적 - 무엇을 위해 사는가? (세상의 소금과 빛)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다.
이 말씀은 우리가 단순히 종교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새로운 존재로 변화된 자들임을 선포합니다. 특히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라는 표현은 우리의 사고방식,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현실을 해석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데도 어떤 사람은 절망하고 어떤 사람은 희망을 품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같은 문제를 겪으면서도 어떤 사람은 원망하고 어떤 사람은 감사하는 것을 목격하신 적이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의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불신자들과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일까요? 같은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왜 그리스도인은 다른 결론에 도달하고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단순히 성격의 차이나 개인적인 성향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인 차원의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의 인물들을 통해 이 비밀을 발견해보고자 합니다.
본론 1: 엘리사와 사환 - 영적 눈이 열린 차이
아람 왕이 엘리사를 잡기 위해 군대를 보내어 도단 성을 에워쌌습니다. 이른 아침 엘리사의 사환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보니 군대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6:15 “15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군대가 포위했습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엘리사는 전혀 당황하지 않습니다.
뭐라고 합니까?
열왕기하 6:16 “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사환이 이 말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압도적인 적군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엘리사가 기도합니다.
열왕기하 6:17 “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하나님이 그 청년의 눈을 여시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엘리사와 사환은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둘 다 아람 군대에 포위되어 있었고, 인간적으로 볼 때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사환은 두려워 떨고 엘리사는 평안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영적 눈이 열려 있느냐 닫혀 있느냐의 차이였습니다.
사환은 현실을 보았습니다. 적군의 숫자, 무기의 위력, 인간적인 가능성과 불가능성만을 계산했습니다. 그래서 절망했습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전혀 다른 현실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적군보다 더 크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앞서 읽은 에베소서 본문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에베소서 1:17–19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바울은 여기서 '마음의 눈을 밝히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과 불신자의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께서 마음의 눈을 밝혀주셔서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를 보는 자들입니다. 같은 현실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본론 2: 요셉의 고백 - 하나님의 섭리를 보는 눈
요셉이 자신을 팔아버린 형들에게 어떤 고백을 하였나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그냥 불쌍히 여겨서 용서한 것으로 여기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용서는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45:4–8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요셉은 분명히 억울한 삶을 살았습니다.
형들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17세의 나이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충성스럽게 섬겼지만 주인의 아내의 거짓 고발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감옥에서도 선행을 베풀었지만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원망하고 분노해도 충분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요?
시편 105:16–19 “16 그가 또 그 땅에 기근이 들게 하사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17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8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요셉의 고난은 단순한 우연이나 인간의 악행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 더 큰 계획을 이루어가고 계셨음을 보여줍니다.
요셉이 형들을 용서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영적 눈이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고난을 단순히 개인적인 불행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더 큰 구원 계획의 일부로 이해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지식, 새로운 관점입니다.
본론 3: 스데반의 순교 - 하늘이 열린 것을 본 자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이 순교당할 때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스데반은 유대인들 앞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그들의 분노를 샀습니다. 그들은 이를 갈며 스데반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7:55–56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이 장면을 상상해보십시오. 사람들이 돌을 들고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오는 순간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두려워하고 절망합니다.
도망칠 방법을 찾거나 자신을 변호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하늘이 열린 것을 보았습니다.
스데반에게는 두 가지 현실이 동시에 존재했습니다.
하나는 땅의 현실이었습니다. 분노한 군중들이 돌을 들고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현실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하늘의 현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하늘의 현실에 더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어갈 때 한 기도를 보십시오
사도행전 7:59–60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이것은 단순히 인간적인 관용이나 도덕적인 수준을 넘어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의 관점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스데반은 자신의 죽음조차도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의 일부로 이해했습니다. \
실제로 그의 순교는 초대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그 자리에 있던 사울이 후에 바울로 변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눈이 열린 자의 삶입니다.
본론 4: 하박국 선지자 - 절망적 현실 속에서의 믿음
구약의 하박국 선지자는 매우 어려운 시대를 살았습니다.
유다 왕국은 내적으로 부패했고, 외적으로는 바벨론의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박국은 이런 현실을 보며 하나님께 질문했습니다.
하박국 1:2 “2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박국의 고민은 오늘날 우리의 고민과 다르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은 악이 번성하는 것을 허용하시는가?
왜 의인이 고난받는 것을 방관하시는가?
이런 질문들은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져보는 의문들입니다.
그런데 하박국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는 놀라운 신앙 고백을 발견합니다.
하박국 3:17–18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이 고백은 단순히 긍정적인 마음가짐이나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이것은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하박국은 모든 것이 무너져도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비록"이라는 단어에 주목해보십시오.
설령 모든 것이 절망적이어도 하나님을 신뢰하겠다는 무조건적인 믿음의 표현입니다.
하박국은 환경이나 상황에 좌우되지 않는 영적 눈이 열린 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았습니다.
비록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시고 신실하시며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지식입니다.
현실의 어려움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본론 5: 성령께서 열어주시는 새로운 시각의 특징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성경 인물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모두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상황을 다르게 해석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본문의 내용의 핵심입니다.
바울은 "지혜와 계시의 영"을 구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지적 능력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현실을 이해하는 영적 통찰력입니다.
바울은 또한 "마음의 눈을 밝히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영적 현실을 보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우리가 알아야 할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며, 영원한 소망이 있습니다.
둘째,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들이며, 영광스러운 미래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셋째,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지식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현재의 상황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과 약속과 능력을 보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 사람들과 다른 반응을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적용과 도전: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혹시 엘리사의 사환처럼 적군에 둘러싸인 것 같은 느낌이 드십니까? 취업의 어려움, 인간관계의 갈등,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여러분을 압도하고 있습니까?
혹시 요셉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고 계십니까? 노력했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선행을 베풀었지만 오히려 손해를 보고, 정직하게 살았지만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십니까?
혹시 스데반처럼 신앙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때로는 손해인 것 같고, 세상의 방식을 따라가는 것이 더 쉬워 보입니까?
혹시 하박국처럼 하나님의 침묵하심 때문에 답답해하고 계십니까?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고,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할 수 없어서 혼란스럽습니까?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황의 변화가 아니라 영적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결론:
골로새서 3장 10절이 말하는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가 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같은 현실 속에서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 현실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엘리사처럼 하나님의 군대를 보는 눈이 열리고, 요셉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지혜가 주어지고, 스데반처럼 하늘의 영광을 보는 시각이 생기고, 하박국처럼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에베소서 1장 17절에서 바울이 기도한 것처럼, 우리에게는 "지혜와 계시의 영"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눈"이 밝아져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 성령님께 간구합시다. "주님, 제 영적 눈을 열어주소서. 세상의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주님의 임재와 능력을 보게 하소서. 제가 처한 모든 상황을 주님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제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하소서."
그리할 때 우리는 진정한 새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자로서, 지식에까지 새롭게 함을 입은 자로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현실이지만 다른 결론에 도달하고, 같은 상황이지만 다른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절망할 때 우리는 소망을 품고,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할 때 우리는 담대하며, 세상 사람들이 원망할 때 우리는 감사하고, 세상 사람들이 포기할 때 우리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입니다. 우리는 이 어둠의 세상에서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의 다른 반응, 다른 삶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하고,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게 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