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반응하는 지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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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 5:38-42(신약 7쪽)
설교제목: 어떻게 반응하는 지가 중요합니다.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제가 설교를 들으면서 감동하는 순간이 있는데요. 설교 나오는 예화가 좋을 때도 있지만, 대체로는 성경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얻게 될 때에요. 정말 그런 경험을 하는 순간에는 성경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생각하고요. 또 그와 같은 지혜를 나눠주신 분께 참 감사한 마음이 드는데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도 동일한 경험을 했어요.
제가 평소에 종종 찾아보는 기독교 방송 중에 ‘잘잘법’이라는 것이 있어요. ‘잘 믿고 잘 사는 법’이라는 말을 줄여서 잘잘법이라는 부르는데요. 유튜브로 이 방송을 볼 수 있는데, 근래에 올라온 영상중에서 감동적인 내용이 있어서요. 좀 같이 나누려고 합니다. 이런 지혜를 나눠주신 분은 현재 포항제일교회를 담임하시는 박영호 목사님이십니다.
유튜브 잘잘법 채널이 이분의 영상 제목이 이렇게 나와요. “오른뺨을 맞았다고요? 당신도 때려도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본문에 관해서 해설해주는 이야기였는데요. 이런 거예요.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에서 이렇게 나오죠. ‘누가 네 오른 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대라’고요. 이게 그 유명한 산상수훈에 나오는 예수님의 보석과도 같은 설교인데요. 사실 우리 같은 신앙인들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운 이야기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 아래에 이런 말씀도 나오죠. ‘원수를 사랑하며, 너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마 5:44)’라고요.
이것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마땅이 이렇게 살아야 함을 설교하신 것이니까요. 우리로써는 정말 부담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오른뺨을 맞고 왼뺨을 돌려되고 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느냐는 것이죠.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아요. 그리고 이것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 신앙인들에게 매우 큰 부담감과 죄책감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흔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이렇게 엄격한 규율 또는 율법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박영호 목사님이 이에 관해 흥미로운 해설을 내놓습니다. 오른뺨을 맞았다고 해서 무조건 왼뺨을 돌려될 필요도 없으며, 심지어 나도 상대의 뺨을 때릴 수도 있다고요. 이것이 신앙인으로써 아무런 문제도 더욱이 구원에 있어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그 말씀을 접하면서 이렇게 살지 않으면 천국에 못가거나 그렇게 살아야만 천국에 가는 것으로 이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실상 예수님의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니지요.
특히나 신앙생활은 우리의 삶을 괴롭게하고 힘들게 하기 위한 목적에 있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에 목적이 있어요. 그래서 구원받은 인생은 삶에서 자유를 누리는 인생이지 율법에 치여 속박을 강요당하는 인생이 아닙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면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더 높은 도덕과 더 높은 율법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요. 신앙인에게 전혀 다른 차원의 선택을 할 수 있으며, 그것은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으로 얻게 된 놀라운 자유라는 것입니다.
이런 거예요. 만약 내가 오른뺨을 맞았다고 할 때요. 우리는 자연스럽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생각으로 나도 상대의 오른뺨을 칠 수 있죠. 그러나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의 전부는 아니라는 거예요. 상대의 뺨을 치지 않을 수도 있고요. 심지어 왼뺨을 내줄 수 있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이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있어서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하고 반응할 수 있는 존재이고 그것이 신앙인으로써의 삶이고 그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다운 삶입니다.
종종 담임 목사님이 설교에서 소개하신 유명한 분이 있는데요. 빅터 프랭클린이라는 유대인 심리학자입니다. 그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로 인해서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갔고요. 거기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삶에서 있어서 의미를 발견하고 찾는 것이 중요함을 설파했고요. 그것이 사람들의 심리상담을 돕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유대인 수용소는 사람을 짐승처럼 취급하거나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환경이었는데요. 좁은 공간에 사람들을 몰아 넣고 소처럼 일을 시키고 노동력이 없어지면 가스실로 보내어 죽임을 당하는 환경이었죠. 비인간적이고 죽음의 그림자가 늘 도사리고 있으며 삶이 매우 불행한 곳이었죠. 그런데 빅터 프랭클린은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인간의 자유가 있음을 이렇게 소개하는데요. 그의 말을 옮기자면 이러합니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지만 단 하나,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신의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
아무리 극한 환경에 처할지라도 그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관한 인간의 자유는 있다는 거예요. 그것을 삶의 의미를 가져다 주는 것이지요.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삶이 고달플 때 이런 말을 하죠. ‘내가 죽지 못해서 산다.’ ‘이번 생은 망했다.’ 그런데 설령 내 삶이 그렇게 불행한 처지에 있다고 하더라도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결국 내 선택이라는 거에요. 그리고 그 선택이 어떠하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게되는 거에요.
다시 처음의 얘기로 돌아가 볼게요. 오른뺨을 맞았어요. 그것에 나는 여러 가지 반응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요. 그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그것을 이루는 것이 신앙생활이고요.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 굴복해서 그건 어쩔 수 없어라고 지레 포기하거나 그것에 겁먹는 것은 신앙적인 삶이 아니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른뺨을 맞고 왼뺨을 돌려대라는 것은요. 내가 고난을 당하더라도 무조건 참고 견디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상대의 영향에 휩쓸리지말고 보다 자유인으로써 선택하며 살아가라는 얘기이지요.
내가 다른 사람에 행동에 영향을 받고 그것에 전전긍긍한다면요. 나는 결코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죠. 왜 이런 경우 있잖아요. 어느 날 누군가로부터 기분 나쁜 말을 들었어요. 사실 그 말은 옳은 말도 아닌데, 내가 그 말로 인해서 속상해 한다는 것은요. 내 삶을 자유롭게 살아가지 못하는 거에요. 그 사람의 영향력에 끌려서 살아가는 셈인 것이지요. 자유롭게 산다면 그게 뭐 대수라고하면서 그냥 넘겨버릴 수 있는 것인데요. 그것이 속이 상하고 그것이 일상에 지장을 준다는 것은 불행한 일일 뿐더러 속박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끝으로 얘기 하나만 드리고 마칠게요. 시각장애를 가지고 찬양사역을 하고 계신 목사님과 사모님이 계세요. ‘에필로그’라는 찬양사역팀으로 활동하는데요. 목사님과 사모님 둘다 어린 시절부터 시각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삶이 순탄치 않았고요. 사실 둘다 장애를 가지고 있으니 생활적인 어려움도 많은데요. 그 두 분이 장애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참 뜻깊은 사역을 하고요. 장애에 관해서도 참 놀라운 태도를 지고 있음을 두 분의 간증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요.
그 두 분에게는 어린 딸이 있어요. 어느 날 딸이 그러더라는 거에요. ‘엄마 아빠는 왜 눈이 안 보여’ 그래서 이렇게 답을 했데요.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 거야, 그 덕분에 불이 꺼져 있어도 딸에게 책도 읽어 줄 수 있잖아.’ 또 언젠가는 딸이 이렇게 묻더래요. ‘엄마는 눈이 안 보여서 이런 것도 못하지’ 딸이 아직 어리다보니 엄마에게 상처가 될 말을 깊이 생각지 못하고 한 거예요. 그러자 엄마인 그 사모님이 그랬데요. ‘그래, 맞아 엄마는 눈이 안 보여서 딸이 말한 것처럼 그런 걸 못해서 속상해. 하지만 하나님은 엄마에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주셔서 그것을 통해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게 하셨고 그래서 엄마와 더불어서 딸을 사랑해줄 많은 사람을 곁에 보내주셨어.’
이러한 얘기가 어린 딸에게 진심으로 전달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딸이 학교에서 체육대회가 있던 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랬데요. ‘우리 엄마 아빠는 눈이 안 보여서 저랑 함께 이런 활동을 할 순 없지만요. 항상 뒤에서 저를 지켜줘요. 그래서 저는 엄마 아빠를 너무 사랑해요.’
저는 그 목사님과 사모님 간증을 들으면서요.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를 어떻게 받아들냐하는 것이 삶을 새롭게 보게 만든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그것을 마냥 불행이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요. 그것을 새롭게 바라보고 그것을 통해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이지요. 이렇게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요. 오른뺨 맞으면 왼뺨 돌려되야하고 원수도 사랑해야하는 고달픈 길이 아니라요. 오히려 그와 같은 환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된다는 거에요.
오늘 우리 성도님들은 어떠십니까? 신앙생활 안에서 참 자유를 맛보고 계십니까? 오히려 남들 쉬는 날 나와서 예배하고 교회에서 봉사니 뭐니 해서 힘들게 일하는 것들이 더 짐스럽게만 느껴지십니까? 사실은요.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지옥가고 그런 건 분명 아닐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비록 힘이 들고 고생하지만, 누군가를 돕고 섬기는 자리에 선다는 것은 또는 내가 그와 같은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것은 신앙이 주는 특별함일 수 있는 것이지요.
바라건대, 오늘 예배하고 봉사하는 시간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기쁨을 누리는 은혜로 경험되길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주시는 참 자유를 누리시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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