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이야기-10. 사사 삼손

주일오후예배(인물설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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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사기 16장 17~20절(구약 390쪽)
설교제목: 성경인물이야기-10. 사사 삼손
17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18 들릴라가 삼손이 진심을 다 알려 주므로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을 불러
이르되 삼손이 내게 진심을 알려 주었으니
이제 한 번만 올라오라 하니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그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19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20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우리 서로를 축복하며 인사합시다.
“잘 오셨습니다. 함께 예배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먼저, 몇 장의 사진을 보여드릴게요.
이 사진에는 제목이 있습니다. ‘도시락 뚜껑이 안 열려’ 인터넷에 올라온 한 게시물에 붙여진 이름인데요. 뉴질랜드에 있는 ‘오라나 야생동물 공원’입니다. 보통 동물원은 사람인 우리가 동물을 가둬두고 관찰하잖아요. 그런데 사진에서는 반대로 되어 있어요. 마치 사자가 사람을 관찰하는 것 같은 모양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도시락 뚜껑이 안 열린다’라고 불평할 수 있죠.
다음 사진을 보여주세요.
이 사진은 본래 짧은 영상, 이른바 ‘쇼츠’라고 하죠. kbs뉴스 인터넷 게시물에 2017년에 올라온 영상인데요. 영상의 내용은 이래요. 중국의 한 공원에서 한 아이가 킥보드를 타려고 아장아장 걸어옵니다. 이때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이 킥보드를 훔쳐갑니다. 이 킥보드를 훔친 것은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공원을 산책 중이던 강아지입니다. 영상을 보면, 아이가 쫓아가는데, 강아지가 노련하게 아이를 따돌리고 킥보드를 훔쳐 달아나는 영상이 재미있습니다.
다음 사진을 보여주세요.
이 사진은 2020년 폴리뉴스에 올라온 기사에 첨부된 사진입니다. 사진은 당시 세종시의 한 스타벅스 매장의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기사에 따르면 새벽 2시부터 8명이 줄을 서는 것을 시작으로요. 새벽 4시에는 28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새벽부터 커피숍에 줄을 선 까닭은요. 이날 예정된 행사 때문이었는데요.
그 행사란 스타벅스에서 제작한 한정판 상품 흔히 ‘굿즈’라고 하는데요. 이를 얻기 위해 사람들이 새벽부터 나와 줄을 서는 희한한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굿즈를 얻기 위해서는 또 많은 양의 음료를 구매해야 했는데요. 그 결과로 누군가는 이렇게 기이한 행동을 벌이기까지 했습니다.
마지막 사진입니다.
저렇게 수십 잔의 음료를 주문하고 굿즈만 챙겨서 음료를 버리고 가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당연하지만, 이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사실 제가 보여드린 몇 장의 사진은요. 하나의 사자성어를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주객전도’입니다. 이는 문자적으로 주인과 손님의 위치가 뒤바뀐다는 뜻인데요.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이 뒤바뀐 상태를 말합니다. 가령, 앞서 보여드린 사진에서처럼 커피숍에서 굿즈를 얻기 위해 수십잔의 커피를 버리고 가는 일이라든지, 사람의 킥보드를 강아지가 빼앗아 버리는 일이라든지, 사람이 철장에 갇혀 동물의 도시락처럼 보이는 일이 그것입니다.
어떤 것은 웃고 넘길 수 있는 일이지만요. 이는 사실 삶에 있어서나 신앙생활에 있어서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가령,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시간을 낭비하게 될 것입니다. 부끄러운 고백인데요. 언젠가는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들고자 누웠습니다. 처음엔 잠들기 전에 가볍게 유튜브의 영상 몇 개만 볼 생각이었는데요. 그런데 이런 영상이 있죠. 결론이 너무 궁금해서 계속 그 영상을 끝까지 시청하게 만드는 것 말입니다. 가령, 영화나 드라마를 소개하는 영상은 끝까지 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은 새벽까지 거기에 빠진 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잠깐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몇 시간이 훌쩍 넘어 버린 것이지요. 혹시 경험 있으신가요? 저만 이상한 사람인거죠?
이렇게 우리의 시간을 낭비하게 될 때, 우리는 삶의 가치와 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누구도 삶의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로봇이 아니고 사람이니까요. 때로는 낭비되는 것 같은 휴식 혹은 여가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시간에 너무 큰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고요. 그것이 삶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본래 일찍 잠자리에 들려다가 늦게까지 유튜브 영상을 보았던 날은요. 결국,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온종일 피로감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루, 이틀, 삼일 이렇게 쌓인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안타까운 결과를 맞이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무가치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포함한 창조세계를 향해 ‘좋다 혹은 심히 좋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 중에서 쓸모없거나 가치 없는 것은 없음을 뜻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요.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시간을 낭비해서 우리의 가치를 훼손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주객전도’는 피해야 할 삶입니다. 다시 말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삶의 우선순위와 질서를 세워가는 일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오늘 소개할 성경 인물은 우리의 반면교사가 되는 인물입니다. 그는 사사 삼손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이셔서 그의 연약함과 문제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일들을 이뤄가십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할 때, 삼손은 주객전도 된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그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을 통해 이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사기 16장 17~20절을 같이 읽습니다.
사사기 16장 17~20절(구약 390쪽)
17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18 들릴라가 삼손이 진심을 다 알려 주므로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을 불러
이르되 삼손이 내게 진심을 알려 주었으니
이제 한 번만 올라오라 하니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그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19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20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사사 삼손은 구약성경 사사기에 나오는 마지막 사사인데요. 그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가장 힘이 센 영웅 헤라클레스에 비견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삼손은 맨 손으로 사자를 떼려잡았고요(삿 14:5-6). 수십명의 블레셋 사람과 싸워서 이겼고요(삿 14:19). 낙타 턱뼈 하나로 천 명을 죽였습니다(삿 15:14-15). 이러한 괴력으로 인해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블레셋에 삼손은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이는 요즘 표현으로 ‘국가권력급’ 힘을 가졌습니다. 나라를 대표하고 혼자서 나라에 맞설 수 있을 만큼의 힘을 지녔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삼손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는 어린 저에게는 참 영웅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교회학교에서 들었던 삼손의 이야기는요. 당시 키가 작고 힘이 약한 초등학생인 저에게는 마치 슈퍼맨처럼 우리를 지키고 보호해줄 영웅의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삼손의 모습은 이게 다가 아닙니다. 당시에 삼손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목사님은 아마도 수위조절을 하셨던 것 같은데요. 제가 수위조절 않고 삼손의 다른 모습을 말하면요. 좀 점잖게는 삼손은 ‘정력가’였고요.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성중독자’였습니다.
삼손은 딤나에 있던 당시 이스라엘의 적국인 블레셋 여인을 보고 충동적으로 아내로 삼겠다고 난리를 피웁니다.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자 삼손은 블레셋의 수도였던 가사로 가서요. 한 기생과 밤을 보냅니다. 이러한 삼손의 행동은 매우 비상식적입니다. 왜냐하면, 블레셋은 삼손을 붙잡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삼손이 가사로 간 것은 마치 적지 한가운데로 뛰어든 모양과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기생과의 하룻밤을 위해 목숨을 내거는 모습을 통해 삼손의 모습을 통해 그가 성적으로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삼손의 성중독이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킨 것이 방금 읽은 성경 구절에 나오는데요. 삼손은 또다시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 여인을 통해 삼손의 힘의 비밀을 캐내어 그를 붙잡고자 합니다. 여인은 엄청난 보상을 약속받고 이에 삼손에게 힘의 비밀을 계속 묻습니다.
참고로 들릴라가 약속받은 보상은 은 1100개로 나오는데요. 당시 블레셋은 5개의 지방으로 나뉘어 있었고요. 들릴라에게 은 1100개를 주겠다는 이들은 이 5개의 지방을 다스리는 이들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들릴라가 받게 될 총 보상이 은 5500개인데요. 이는 현재로 따지면 수백억에 해당하는 큰 금액입니다. 달리 보자면 삼손은 그만큼 블레셋에게 골칫거리였고 영향력 있는 인물임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들릴라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죠. 그는 삼손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을 뿐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은 이런 겁니다. 들릴라가 계속해서 삼손에게 힘의 비밀을 말해달라 했는데요. 들릴라의 집요한 요구에 결국, 삼손은 자신의 힘의 비밀을 털어놓습니다. 삼손은 자신의 힘의 비밀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실인 서약에 따라 한 번도 자르지 않은 머리카락에 있다고 말입니다. 성중독에 빠진 삼손은 어리석게도 자신을 사지로 내몰 비밀을 털어놓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비참한 것이었는데요. 결국, 삼손 힘의 비밀을 알게 된 들릴라는요. 삼손의 머리카락을 밀고 그를 블레셋에 넘겨줍니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잘린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히고요. 두 눈이 뽑힌 채로 블레셋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삼손은 사실 자신의 진짜 힘의 비밀을 몰랐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 대부분도 삼손 힘의 비밀이 머리카락에 있었다고 여길지 모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사기 16장 20절을 같이 읽습니다.
사사기 16장 20절(구약 390쪽)
20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방금 읽은 성경구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삼손 힘의 진짜 비밀은요. 사실 머리카락에 있지 않습니다. 여호와 곧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더욱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삼손은 참으로 주객전도된 사람임을 말입니다. 그는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어리석게도 자신의 힘이 자신의 머리카락에서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삼손의 힘은 결코 머리카락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삼손의 힘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삼손은 이렇게 착각을 하고 어리석은 생각을 하며 살았던 것일까요? 그는 사사였고 나실인이었음에도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는 나실인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습니다. 가령 죽은 사자의 몸에서 난 꿀을 가지고 와 먹거나 잔치에 가서 술을 마시거나 죽은 낙타의 머리뼈를 잡는 것 따위의 일을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파기하는 일이었고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일입니다. 게다가 사사는 나라와 민족의 구원을 위해 일하는 영웅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과 능력을 사사로이 사용할 뿐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는 일에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끄럽게도 12명의 사사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심을 가졌음에도 유일하게 나라를 구원으로 이끌지 못한 사사가 되었습니다.
삼손은 이러한 삶을 살면서 착각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자기를 앞세워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요. 더욱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해서, 적진의 한 가운데로 사사로운 욕망을 채우고자 들어가는 일도 서슴치 않고요. 자신을 곤경에 빠트리는 들릴라에게도 기꺼이 자신의 힘의 비밀을 털어 놓습니다. 이러한 삼손이 삶이 결국 자신의 힘의 원천이 하나님이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결과를 낳게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도 반복될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내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하나님이 당장에 벌을 내리시지 않기 때문에요. 현재 내 삶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삶을 지속하고 반복함으로써 이를 바탕으로 어리석은 확신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괜찮게 잘살고 있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시편 81편 11~12절은 이렇게 섬뜩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 성경인데요. 화면을 보고 같이 읽습니다.
(새번역) 시편 81:11-12
11 내 백성은 내 말을 듣지 않고,
이스라엘은 내 뜻을 따르지 않았다.
12 그래서 나는 그들의 고집대로 버려 두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가게 하였다.
방금 읽은 성경구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때로는 우리의 잘못을 벌하시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신다고요. 심지어 우리의 고집대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가게 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당장에 주님의 뜻에서 벗어나 있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요. 그것이 더 무서운 결과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멀어지면서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함으로 비극적인 결말로 치달을 수 있는 것이지요. 삼손의 이야기를 통해 교훈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자신을 의지한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되는 것인지를 말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삼손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참 놀라운 것은요. 삼손은 12명의 사사들 중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였고요. 개인으로서도 결코, 아름답지 않은 삶의 모습을 보였는데요. 히브리서 11장 이른바 믿음에 관한 기록으로 알려진 것에 삼손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삼손의 최후 때문일 텐데요. 어쩌면 삼손의 일생에서 유일하게 믿음으로 온전했던 때가 아닐까 합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삼손은 결국, 들릴라의 꼬임에 넘어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혀 두 눈이 뽑히고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됩니다. 그러나 삼손은 그제서야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께 힘을 달라고 기도하고 사사로써 그의 임무를 수행해 냅니다. 삼손은 다곤 신전의 기둥을 뽑아버림으로써요. 그곳에서 우상을 섬기던 무리들을 몰살시켜 버립니다. 성경은 이때 삼손은 살아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써 죽게 했다고 말합니다.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고 의지한 인생이 참으로 놀라운 일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끝으로 한 분을 소개하고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이 분은 브레넌 매닝이라고 미국의 영성가입니다. 2013년에 80세의 나이로 돌아셨는데요. 앞서 이분을 영성가라고 소개했는데요. 이분에게는 그에 걸맞지 않은 특이한 이력이 있습니다. 이분은 본래 가톨릭 신부였는데요. 후에 신부복을 벗고 결혼도 하셨고요. 안타깝게 이혼도 했습니다. 그리고 알콜중독자이기도 했고요. 6.25 참전 용사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이력에 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있습니다. 신부였다가 결혼에 이혼도 하고 알콜중독자였다는 것이 그러하죠. 언뜻 우리 생각에도 영성가라고 하면 이와는 거리가 먼 종류의 사람을 생각하기 마련이니까요. 오히려 결혼도 안 하고 알콜은 전혀 입에도 대지 않는 세상과 멀리 떨어져서요. 나는 자연인이다와 같은 느낌으로 산속 깊은 곳에서 기도하는 사람을 떠올릴지 모릅니다. 저도 처음에 이분을 영성가로 소개받았을 때, 이분의 이력을 듣고서는 의야 해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롭게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영성이라는 것이 뭔가하고요. 이분은 자신의 삶을 또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을 한 마디로 ‘은혜’라고 표현하는데요. 하나님의 은혜가 거저 주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잘나서, 완벽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심지어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짓고 부족해도, 그런데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게 아니라요. 우리의 죄와 잘못 자체가 우리라는 존재인데, 그런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거예요.
다시 얘기할게요.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이분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정체성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로 세우라는 거예요. 이는 우리의 삶에 죄가 있을 때도 여전히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잊지 말라는 것인데요.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받는 일을 할 때만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라, 본래부터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것이죠. 다시 말해 불완전한 우리의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고요. 하나님 앞에서 완벽해지려는 우리의 열망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커져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해요. 그는 깨어지고 망가진 자신의 삶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라고 해요.
저는 이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영성가라는 것이 결코 도덕적으로 흠이 없고 순결한 사람이 아니라요.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는 사람이라고 말이지요. 우리는 본래부터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지요. 죄인이고요. 흠결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를 잊지 않고 이를 기억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도움이심을 믿고 사는 것 그것이 다름 아닌 영성이라는 것이죠.
저는 삼손의 이야기 보면서요. 삼손이 그것을 잊어버렸을 때, 불행한 삶으로 치닫게 됨을 바라봅니다. 자신의 힘이 본래부터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믿고 살아온 삶의 시간이 삼손을 비극에 치닫게 했습니다. 반면에 삼손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야말로 자신의 힘의 원천임을 깨달았을 때, 그의 인생은 전과 다른 완전히 새로운 것이 되었습니다. 바라건대, 우리가 이를 기억했으면 합니다. 내 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실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의 능력은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힘의 원천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분을 통해 우리의 역사가 새로워집니다. 오늘도 주를 의지함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가는 우리 귀한 성도님들 다 되시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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