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세상을 이기신 주님 안에 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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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 16:33(신약 864쪽)
설교제목: 7월, 세상을 이기신 주님 안에 거하십시오.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제가 오늘 월삭기도회를 준비하면서요. 알게 된 이야기입니다. 일본에서는 이번 7월에 ‘대재앙’이 있을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의 만화 ‘내가 본 미래’라는 작품에서 비롯된 이야기인데요. 이 만화는 1999년에 작가가 꿈에서 본 미래의 일 15가지를 정리한 것인데요. 출간 당시에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요. 그로부터 약 10년 뒤에 2011년 3월에 대재해가 온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해는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나면서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후 2021년에 작가는 몇 가지 예언을 더 추가하여 완전판을 내었는데요. 그 이야기 중에는 2025년 7월에 대지진이 발생해 동일본 대지진을 뛰어넘는 쓰나미가 일어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마치 예전에 1999년 무렵에 오래 전에 노스트라다무스가 세계 3차 대전을 예언했다느니 그것이 종말의 날이라느니 하던 이야기와 닮아 있지요. 당시에도 그것이 세간에 회자되어서 진짜 종말이 오면 어떡하지하는 불안감을 가지게도 했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 Y2K 버그 이른바 밀레니엄 버그 라고 해서요.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바뀌는 것을 컴퓨터가 제대로 인식을 하지 못해서요. 컴퓨터에 입력된 숫자가 오류를 일으켜서 핵미사일이 발사될 수도 있고 은행 잔고가 사라질 수도 있고 하는 등의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20년이 넘게 지났지만,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을 보면요. 그 예언은 허무맹랑한 소리가 되었죠. 저는 처음에 ‘7월 일본대재앙’ 얘기를 접하면서 과거에도 비슷한 유형의 이야기가 다른 형태로 나도는 것이라 생각하면서요. 그저 웃고 넘어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냥 허무맹랑한 소리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실제로 올해 초 일본 지진조사위원회는 일본의 남해지역인 난카이 해곡에서 향후 30년 내 대지진이 발생할 확률을 80%로 상향 조정했고요. 이 이야기가 이렇게 세상에 주목을 받기 시작하니깐, 우리나라에서도 지진전문가를 초대해서 이것에 관해 묻고 답하는 방송이 여럿 있었는데요. 사실 일본에서 이러한 대지진의 발생은 당장 오늘 아니면 내일 일어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해요. 왜냐하면, 일본의 지정학적 위치가 지진이 잘 발생하는 곳에 있고요. 특별히 난카이 지진의 경우 100~150년마다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는데요. 이미 그 주기를 넘어섰기 때문에 언제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무서운 얘기를 하는 것은 이래요. 만약 이 대지진이 발생하면 최대 규모 9정도의 지진이 발생하는데요. 이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알려진 9.5규모의 지진에 버금가는 것이고요. 최대 30만명 사망에 우리 돈으로 약 2800조원에 가까운 피해가 생겨나는데요. 이는 일본의 연간 국가총생산량을 넘는 금액입니다. 쉽게 말해서 일본에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죠. 더욱이 일본의 지진 여파가 우리나라의 서울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보면, 7월의 일본대재앙에 관한 이야기가 그저 웃고 넘어가거나 우리랑 관계없는 일이야하고 간단히 치부할 문제는 아닐 수 있죠.
그리고 이러한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의 미약함을 깨달을 수 있었는데요. 지진전문가가 이런 얘기를 해요. 전문가들도 사실 지진을 정확히 며날며칠로 예측하기 어려울뿐만 아니라요. 현재와 같이 이러한 지진의 위험이 예고되어도요. 이에 관해서 대비할 수 있는 것이 크게 없다는 거에요. 또 막상 지진이 일어나도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는데요.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일전에 지진이 몇 차례 있었잖아요. 저도 밤에 자다가 지진을 경험하면서 매우 두려운 느낌을 받았어요. 흔들림이 있는 그 짧은 순간에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다만, 지진전문가의 조언에 따르면 지진경보가 발생하면 무조건 높은 산으로 이동하라고 해요. 특히 해안가에 있는 분들은 쓰나미의 영향을 받을 수 있고 이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높은 곳을 향하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제가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생각하게 된 거예요. 우리가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지만요. 사실 종말의 때는 언제 어떻게 오더라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이지요. 왜냐하면, 인간이 어찌해볼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는 여전히 있고요.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언제 어느 때든 종말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우리가 종말에 관해서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요. 특별히 신앙 안에서 종말을 대하는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기독교적 종말에 관해 그릇된 이해를 가지고 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비극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하는데요. 굉장히 유명한 얘기입니다.
1992년, 우리나라는 종교적 광풍에 휩싸였습니다. 그 중심에는 이장림 목사가 이끌던 다미선교회가 있었지요. 다미선교회는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는 의미를 담고 1980년대 후반부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장림 목사는 성경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며 곧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그는 1992년 10월 28일 자정에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신실한 신도들이 육신 그대로 하늘로 들려 올라가는 '휴거'가 일어날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러한 이장림 목사의 메시지는 그의 책을 통해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는 이 책과 끊임없는 설교를 통해 신도들에게 세상의 모든 물질은 휴거 이후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설파했습니다. 휴거를 통해 구원받기 위해서는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고, 오직 재림을 준비하는 데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말에 현혹된 이들은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을 내던졌습니다. 많은 이들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녀들을 학교에서 자퇴시켰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집과 재산을 교회에 헌납하고, 휴거의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오직 기도와 전도에만 몰두했습니다. 당시 다미선교회는 전국적으로 173개의 지부 교회를 운영했고, 약 8,000명에 달하는 신도들이 활동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의 움직임은 언론을 통해 연일 보도되었고요.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고대하던 1992년 10월 28일이 되었습니다. 다미선교회 신도들은 흰옷을 맞춰 입고 전국 각지의 교회와 집회 장소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예배하며 휴거의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언론은 이들의 모습을 생중계하며 전국에 이들의 모습을 생중계 했습니다. 그러나 자정이 지나고 10분, 한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믿음처럼 하늘로 들려올라가는 휴거는 일어나지 않은 것이지요. 새벽이 밝자 침통한 표정으로 그들은 뿔뿔히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더 충격적 사실은 이러했습니다. 그 일이 있기 한 달 전에 이장림 목사는 사기 혐의로 구속이 되었습니다. 그는 신도들에게서 받은 헌금을 이용해서 서울 여러 곳에 빌딩을 사두는 등의 부동산 투기를 벌였는데요. 이는 스스로도 믿지 않는 것을 신도들에게 믿도록 하여서요. 처음부터 신도들의 재산을 빼앗을 목적으로 사기를 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장림 목사는 구속되었고요. 휴거 불발 이후 다미선교회는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해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기독교 종말론에 관한 잘못된 이해가 어떤 사회적 파장을 불러오는지를 잘 보여준 사건인데요. 방금 소개해드린 사건에서 다미선교회는 종말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었죠. 종말의 정확한 때가 있고요. 그때가 되면, 세상의 모든 것은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어진다고요. 또한 이러한 종말의 때에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신앙활동 곧 기도하고 전도하는 것에만 전념해야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죠. 그래서 다미선교회에 속했던 신도들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교회에 가져다 바쳤고요. 직장도 학교도 다 내버리고 기도와 전도에 몰두했지요. 어떠신가요? 이러한 종말에 관한 이해에 동의하십니까? 물론 다미선교회의 믿음이 결과적으로 틀렸음이 입증되었으니까요. 당연히 동의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종말을 생각할 때, 가지고 있는 많은 생각은요. 세상이 붕괴하거나 큰 혼란에 휩싸이는 부정적인 상태로 여길지 모릅니다. 흔히들 ‘말세다’라는 말을 할때는 세상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보다 부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생각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는 종말에 관한 잘못된 이해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종말은 분명 예수님의 재림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때가 바로 종말의 때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재림은 파괴와 심판으로 얼룩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재림은 세상의 회복과 세상에 대한 전적인 다스림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재림은 주께서 세상을 완전히 다스리신다는 뜻이고요. 그것이 바로 종말의 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말이 오면 세상은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말미암아 더이상 어둠이 자리할 수 없고요. 불완전했던 모든 것이 완전한 상태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그속에는 평화와 안녕 곧 샬롬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말은 주께 속하여 다스림을 받게 될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종말을 어떻게 준비하며 살아야 할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은 이에 관해 이야기해 줍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을 같이 읽습니다.
요한복음 16:33(신약 864쪽)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방금 읽은 성경 구절은 주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 전날 밤 제자들에게 주신 교훈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환난을 당하겠지만 담대하라’고요. 왜냐하면 주께서 우리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고요. 주께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를 믿고 따르는 일이 결코 녹녹치는 않겠지만요. 염려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누리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평안을 이렇게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설교에 나온 예화인데요. 어떤 미술학교에서 졸업반 학생들에게 졸업 작품으로 평화를 상징하는 것을 그려 오라고 했습니다. 여러 학생들이 여러 모양으로 평화에 관한 그림을 그려 왔는데요. 그 가운데 특별히 두 개의 그림이 뛰어났습니다. 하나는 산간의 호수를 그렸습니다. 아름답고 푸른 산에 둘러싸인 잔잔한 호수와 푸른 풀밭이 있고요. 풀밭에는 양과 소가 유유히 풀을 먹고 있습니다. 정말 평화로운 풍경 그 자체였습니다.
반면 다른 하나는 얼핏 보면 평화와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폭풍우가 부는 큰 바다 옆의 절벽을 그렸습니다. 바람에 바다물결이 요동합니다. 파도가 절벽을 칩니다. 또 절벽 위에 있는 나무 가지도 꺾어지고 풀은 다 쓰러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절벽 바위틈에 어떤 갈매기 하나가 집을 지었고요. 그 갈매기 둥지에는 갈매기 새끼이 평화롭게 고요히 눈을 감고 자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첫 번째의 그림이 평화를 가장 잘 표현하는 것 같았는데요. 그러나 최우수 작품은 두 번째 그림이 받았습니다. 수상에 관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첫째 그림은 분명 평화를 잘 표현하고 있지만 이건 일종의 상상적 평화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이런 평화는 없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항상 풍파가 있습니다. 그러니 풍파 속에서 갈매기 새끼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 같은 이런 평화가 참다운 평화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주시는 평화는 두 번째 그림 속의 평화와 같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또는 주의 뜻을 따라 살면서 우리는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지만요. 그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고요하게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두려움없이 세상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평화롭다는 것이 단지 전쟁이 없고 고요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뜻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을 통해 누리게 되는 평화인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평화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여 있을 때, 누리게 되는 것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세상 가운데 성공을 이루면 평화로울 것으로 여겨지지만요. 사실 성공을 이룬 많은 이들은 평화롭기 보다 불안에 시달리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저는 최근에 개그맨 조원석 씨의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려 11번의 시험을 치르고 어렵게 개그맨이 되었고요. 한때 ‘죄민수’라는 캐릭터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렇게 개그맨으로써의 성공을 이뤘을 때, 그는 오히려 편히 잠을 잘 수 없었고요. 알 수 없는 불안으로 술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불행하게도 알콜중독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를 연예계를 떠나야하는 지경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런 그가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요. 바로 예수님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주변 개그맨 선배들의 권유로 교회에 나갔고 새벽기도회를 통해 또한 예배를 통해 만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 그는 불안을 떨쳐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인생에 크게 변화를 가져다 주어서 그는 트로트 가수로 새롭게 활동을 하고 있고요. 자신의 신앙변화에 따른 일기를 유튜브를 통해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인생이 어떤 삶을 누리게 되는지를 생각합니다. 그것은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입니다. 또한 이것이 종말의 때를 준비하며 살아가는 신앙인에게서 발견되는 것임을 생각하는데요. 몇 차례 소개한 적이 있을 거에요. 이은상 선교사님이라는 분의 이야기인데요. 이분은 이른바 오지선교사로 불리는데요. 아프리카, 파키스탄, 인도, 미얀마, 차마고도 등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복음을 들고 가는 사역을 감당하고 계신 분이에요.
본래 이분은 50대 중반까지 미국 상류층에서 안락하고 고고한 삶을 살아왔던 분인데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순종함으로 오지선교사라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가 향하는 곳에는 늘 여러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데요. 총을 든 무장세력의 위협에서부터 험난한 지형과 작지만 치명상을 줄 수 있는 벌레들의 위험까지 늘 위험이 산적한 곳을 다니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때로는 정말로 피를 통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하였다고 하는데요.
그 과정을 통과하면서 그는 괴로워하기보다 더욱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고 그 일을 통해서 죽음 위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어요. 제가 참 인상적으로 보았던 그의 이야기는 이런 거예요. 선교지로 떠나면서 자녀들에게 그렇게 인사한다고 해요. ‘천국에서 만나자’라고요. 이는 자신의 행보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지요. 또한 그는 이렇게 말해요. ‘이번에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실지 너무 기대가 된다’라고요. 사역을 함에 있어서 그는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으로 그것을 행하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것이죠. 저는 이 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참 놀랍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삶의 현장에서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가 하고요.
어쩌면, 이것이 기독교적 종말론을 가지고 있는 삶의 모습이 아닌가를 생각하는데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어떤 두려움도 없는 것이고 삶이 평안할 수 있는 것 말이지요.
우리의 삶은 사실 매일매일이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고도 할 수 있지요. 그런 점에서 우리는 늘 죽음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이러한 죽음에 관해 어떤 태도를 보이냐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줄 것을 생각하게 돼요. 오늘 내 삶에서 종말이 찾아올 그때를 후회없이 살아가고 계십니까? 여전히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불안하고 두려워함으로 삶을 어렵게 살아가고 계십니까? 바라건대, 세상을 이기신 주님께 속하여 살아가실 바랍니다. 그 분께서 우리의 삶에 평화를 주시고 그분께 이끌려 살아가는 삶을 참으로 복됩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주께 속하여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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