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제1: 더러움을 씻는 정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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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레위기 5:1-6
1.5가지 제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있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성막을 지으셨습니다. 성막에서 백성들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죄인 된 백성들은 그 상태로 곧장 나올 수 없었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들었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게끔 만드는 원흉이었습니다. 만약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가는 누가 되었든지 그 자리에서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있고 싶으셔서, ‘5가지 제사’를 정해주셨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5가지 제사는 하나님께서 발부하신 초대장과 같습니다. 이 제사를 통해서 백성들은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 역시 이 제사를 통해 백성들을 용납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발부하신 초대장이기 때문에, 초대를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율에 맞게 제사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만약 그렇게 제사를 준비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오히려 하나님을 모욕하거나, 성막을 더럽히는 행위로 간주되어서 심하게는 그 자리에서 죽기까지 했습니다.
레위기 5가지 제사를 살펴보는 목적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나의 예배를 점검해보자’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오랜 전통을 따라서 순서가 많고, 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어떤 교회는 복잡한 순서를 덜어내고, 상대적으로 더 자유로운 예전을 취하며 예배를 드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교회 공동체의 예배를 평가합니다. 어느 교회 예배가 뜨겁고, 어느 교회 예배는 너무 무겁고 말입니다. 그러나 어떤 공동체 예배의 흐름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하기에 앞서, 나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나의 예배는 5가지 제사를 통해 말씀하셨던 하나님을 위한 그 무엇인가가 녹아져 있습니까?
번제는 내게 있는 가장 소중한 것, 손으로 직접 기른 가축 중에 흠이 없는 수컷을 제물로 바쳐, 하나님께 남김없이 모두 태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속죄가 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소제는 곡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고운가루와 기름과 유향을 붓는 것은 짐승을 잡는 것에 못지않은 수고가 들어갑니다. 다만 누룩이나 꿀은 넣지 말고, 소금은 반드시 넣어야 하는데, 이것은 곧 우리의 부패한 마음이 아니라,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화목제는 하나님 앞에서 영적잔치입니다. 기름과 콩팥은 제물의 가장 중요한 부위이며, 여호와께만 드리는 음식입니다. 화목제물의 다른 부위는 제사를 집례 한, 제사장들의 몫으로 나누어주고, 그러고도 남은 부위는 제사를 드린 백성이 집으로 가져가, 가족과 이웃과 나누어 먹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게 됩니다.
구약의 제사는 신약에 와서,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모든 것이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를 드리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십자가에 달리사, 우리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셨고,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9장 11절과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이제 우리는 제사가 아닌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갑니다. 짐승의 피가 아닌,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5가지 제사의 담겨 있는 영적인 의미까지 폐한 것은 아닙니다. 번제를 통해 하나님께서 요청하셨던 것처럼, 나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예배해야 합니다. 소제를 통해 명령하셨던 것처럼 부패하여 썩어질 양식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구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화목제는 어떻습니까? 나의 예배가 나눌수록 풍성함이 더해지는 영적인 잔치가 되는 것을 소망해야 합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그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오늘은 여기에 한 가지가 더해집니다. 바로 속죄제입니다. 말씀을 상고하며 ‘속죄제’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 속에 담겨있는 영적인 의미들을 우리의 예배에 적용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2.속죄제
속죄제의 원어는 ‘하타트’라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학자들은 사실 이 단어를 ‘속죄’라는 의미보다는 ‘정결, 정화’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 맞다고 의견을 모읍니다. 왜냐하면 속죄의 개념은 이보다 훨씬 더 크고,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 제사의 목적은 ‘깨끗하게 함, 정결하게 하심’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이 속죄제의 이름도, ‘정결제’라고 부르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정결제라고도 부르는 속죄제를 하나님께서는 ‘왜’ 드리라고 하시는 걸까요?
레위기 4장 1절과 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 하나님께서 속죄제를 드리라고 한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죄는 ‘과녁을 벗어났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과녁에 정조준을 해서 정중앙을 맞추듯이 하나님의 계명을 준행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속죄제는 ‘하나님이 주신 명령과 법의 과녁을 벗어난 죄인이 그 죄에서 청결과 자유를 얻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속죄제는 앞선 3가지의 제사와 다르게 반드시 드려야 하는 제사입니다. 앞선 3가지의 제사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였다면, 속죄제나 다음에 살펴볼 속건제는 잘못한 것을 깨닫고 꼭 드려야 하는 제사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속죄제는 ‘어떻게’ 드리는 것일까요?
앞에 3가지 제사는 희생 제물 중심으로 순차적으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더 가치 있는 짐승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번제를 예로 들자면, 먼저 소로 번제를 드릴 때는 이렇게 이렇게 제사를 드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만일 번제의 예물이 가축 떼의 양이나 염소이면...하면서 그에 따른 방법이 설명되어지고, 또 이어서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로 번제를 드릴 수밖에 없는 사람을 위한 방법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소제 역시 그랬습니다. 요리하지 않은 소제, 요리한 소제 이런 식으로 나열했고, 화목제도 번제와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속죄제는 방식이 다릅니다. 3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의 허물이 되었으면 그가 범한 죄로 말미암아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 속죄제는 제물중심이 아니라, 누가 어떤 잘못을 지었는지에 따라 제사의 희생제물과 방법이 달라집니다. 3절에서는 기름 부음 받은 제사장이 우선 나왔습니다. 그런데 13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볼까요?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이번에는 온 회중이 지은 집단적인 죄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2절에 족장이 지은 죄, 그리고 27절에 평민이 지은 죄들이 순차적으로 나옵니다. 왜 속죄제의 배열은 앞의 제사들과 달랐을까요?
이것을 이해하려면, 또 한 가지 다른 부분을 봐야 합니다. 앞에 3가지 제사는 제물을 잡아 제단에 불사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자원해서 드리는 예물이 태워질 때, 그것은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속죄제는 제물을 불태우는 것보다는 오히려 제단이나 휘장에 피를 뿌리거나 바르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피는 곧 생명이고,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속죄제물을 드리는 사람들을 대신해 잡은 짐승들의 피를 어디에 바르는지 한 번 보십시오. 우선은 제사장이 드리는 속죄제물의 피입니다. 6절과 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 제사장이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의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제사장은 또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들에 바르고 그 송아지의 피 전부를 회막 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 어디에 피를 뿌리고, 피를 바릅니까? 지성소 다음으로 중요한 성소에 들어가 그 피를 뿌리고, 향단 뿔에 피를 바릅니다. 왜 피를 성소에 뿌리고 바른 것일까요? 모두에게 그렇게 명령하셨을까요? 평민은 다릅니다. 3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제단 밑에 쏟고” 평민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그 제물을 잡아 피를 어디에 바릅니까? 성막 뜰에 있는 번제단에 바르라고 명령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차별을 하시는 것일까요?
속죄제는 죄가 일으킨 더러움을 다루는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심방을 다니고 있는데, 가정마다 얼마나 깨끗한지 모릅니다. 만약 여러분의 집에 손님이 오신다면, 어느 곳을 가장 깨끗하게 해놓으실 것 같습니까? 주로 거실이나 화장실이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곳에 주로 머물 것이고, 사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실에는 먼지가 날리고, 옷가지들이 널부러져 있는데, 창고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속죄제도 같은 원리로 생각하면 됩니다. 죄를 지은 제사장이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성소입니다. 지성소는 1년에 한 번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이곳은 열외라고 치겠습니다. 만약 제사장이 죄를 짓고 성소에 들어간다면 그곳은 죄로 더러워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이 죄를 짓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거룩한 장소를 더럽히는 무거운 죄를 짓는 것이기에, 흠 없는 수송아지를 잡아 그 피를 성소의 휘장에 뿌리고, 향단에 바르게 하신 것입니다. 죄의 경중으로 보자면, 민족 전체인 회중이 죄를 범하는 것도 하나님 앞에 큰 범죄였습니다. 그러므로 동일한 곳에 피를 뿌렸습니다.
그와는 다르게 백성 개인이 죄를 범하면, 그의 행동은 제한된 구역에서만 성소를 오염시키기 때문에 흠 없는 암염소를 잡아 그 피를 성막 뜰에 있는 번제단 뿔에만 발랐습니다.
이제 왜 속죄제가 앞선 3가지의 제사와 드리는 방식이 다른지 이해가 되셨습니까? 죄는 사람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소까지도 오염시키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고 이를 속죄하지 않거나 그 죄를 제거하지 않았을 때, 거룩하신 하나님은 진노하실 뿐 아니라 죄로 인해 오염된 성소에 거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반대로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막은 죄에서 격리되어 깨끗해야 했습니다.
왜 제사장이 먼저 나오겠습니까? 영적지도자들이 바로 서야 백성들이 바로 서기 때문입니다. 영적 지도자들의 죄악에 대한 책임이 제일 무거운 것은 그만큼 백성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선지서나 열왕기서들을 보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통치한 많은 왕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백성들을 다스리는 리더들이죠. 그런데 그들을 영적으로 이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이 민족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끄는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만약 영적지도자인 선지자들이 돈과 명예와 권력에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선지자들이 죄에 대해서 민감하지 않고, 둔해지면 도대체 누가 왕에게 가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영적지도자가 죄와 타협하면, 백성들을 다스리는 지도자들도 마음대로 합니다. 그리고 지도자를 따르는 백성들 역시 도미노처럼 순식간에 무너져 버릴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레위기 4장과 5장을 보면, 하나님이 죄라고 언급하신 항목들이 세 가지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범한 경우, 둘째는 자신의 몸이 부정한 짐승이나 사람에게 접촉되었을 경우, 셋째는 자신의 실수로 인해 이웃에게 어려움을 주게 되었을 경우입니다. 정리하자면,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그리고 이웃에 대한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는 것보다, 기억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죄까지 포함한다면 우리 스스로가 죄를 찍어내는 공장과도 같은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생각으로 짓는 죄, 마음으로 짓는 죄, 입술로, 행동으로 얼마나 많은 죄를 양산해내고 있습니까? 만약 이 죄를 해결하기 위해 짐승을 잡아야 한다면 아마 이 땅에 남아있는 소와 양, 비둘기는 없을 것입니다.
3.완전한 속죄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짐승의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되도록, 완전한 속죄제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그 완전한 속죄제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내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배로운 피입니다. 예수님의 그 보혈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먹보다도 더 검은 죄로 물든 나의 영혼을 눈보다 더 희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언제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은 죄의 중에 괴수였던 나의 신분과 상태를 변화시키셔서, 하나님과의 영원한 사귐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능력입니다. 전에는 나의 죄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하나님의 성로를 더럽혀 하나님과 멀어질까 두려웠다면, 이제는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힘입어 담대히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9절부터 22절까지의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실 속죄제를 살펴보면서 회개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5장 본문을 정하였던 것이고요. 그런데 설교를 작성하다보니 4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하나 둘, 정리하다보니 회개에 대한 내용도 언급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함께 나눈 말씀을 통해서도, 속죄제에 담겨있는 영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속죄제를 통해서는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성소까지 나아가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성소의 휘장을 찢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보좌 앞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누구이든, 어디에 있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평민도, 족장도 아닌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의 백성임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가정과 일터, 주방과 공장에서조차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의 백성들이 있는 그곳에, 하나님도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더, 속죄제는 매번 같은 방식으로 짐승의 피가 필요합니다. 매일 짐승을 잡아서 그 피를 뿌리고, 발라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유효기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은 우리의 심령을 예배하는 선한 마음으로 고칠 것입니다. 나의 죄를 정죄하는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모든 죄로부터 자유케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힘입어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 태화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