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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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26편은 공동체의 운명의 회복을 찬양하면서 감사시처럼 시작하지만, 둘째 부분에서 우리는 이 시편이 공동체의 애가시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셨던 이전 시기를 회상하면서, 그 자비를 새롭게 베풀어 달라고 간구하는 공동체의 탄식입니다.
1-4절까지의 주어가 1인칭 복수 대명사입니다. 백성들이 집단적으로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절에서 백성들의 집단적인 간구가 있고, 5-6절에 응답이 있습니다. 이 시편이 예배 중에 쓰일 때는 백성들이 1-4절을 낭독하고, 5-6절은 제사장들이 낭독했을 것입니다.
1절: 이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벨론 포로 귀환을 떠올리게 합니다. 돌리셨다는 말은 운명을 회복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포로 된 이스라엘의 운명을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때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꿈꾸는 것 같았다고 표현합니다.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는 것이지요.
당시 이스라엘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지 우리에게는 역사적 경험이 있습니다.
일본의 지배 하에 있다가 해방되었을 때, 우리나라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당시 상황에 대한 기록을 보면 1945년 8월 15일에 일왕의 항복 선언이 라디오로 전국에 방송되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독립을 사람들은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8월 15일 당일은 유야무야 혼란 속에서 넘어갔고, 다음날 형무소에 갇혀있던 죄소들이 석방되기 시작하면서 경성 시민들은 해방을 반기고 환호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트럭 짐칸에 가득 올라타 태극기를 휘날리고 환호하면서 서울역에서 총독부 건물까지 거리 행진했던 자료 사진도 남아 있습니다.
개인에게는 사탄과 죄의 압제에서 해방되었던 개인 구원의 순간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구원을 받고, 천국 소망을 얻게 되었을 때, 회개의 눈물과 기쁨의 눈물이 뒤섞이는 그때의 기쁨이 있습니다.
2절: 기쁨이 극에 달하여 웃음을 그칠 수 없고,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상상해보십시오. 35년간 일본에 의해 극심한 억압을 받으며 죽지 못해 살아왔던 우리 국민이 해방되었을 때의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사탄의 압제에서, 종노릇하던 사람이 강한 자 되신 예수님을 만나 구속되어 자유를 얻었을 때의 기쁨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이 되겠습니까?
자유를 얻은 이들을 보며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행하심을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해 이런 일을 하셨다. 하나님이 행하신 것이 아니면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 받은 것을 보며 이방인들도 하나님을 인정하였습니다.
3절: 이스라엘 공동체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행하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큰 일을 행하셨다. 우리가 기쁘고 기쁘다.
우리도 이런 기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나라가 해방되었던 기쁨. 제가 경험했던 나라의 기쁨은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에 올랐을 때 온 나라가 기뻐했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그때는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우리 나라 국민이라면 기쁨에 넘쳐 한 마음으로 기뻐했습니다. 단지 스포츠 경기에서의 승리를 넘어서서 오랜 기간 국가적 상처를 안고 살아온 한국의 국민들에게 세계 무대에서의 성공이 민족적인 자긍심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또한,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구원의 경험이 있을 것이고, 구원 받았을 때에 경험했던 기쁨과 감격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큰 일을 행하셨습니다. 우리는 기쁘고 기뻤습니다.
4절: 4절의 말씀을 보면 1-3절이 과거에 대한 회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
아직도 포로가 남아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돌아왔지만, 모두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이전에 이스라엘에 큰 일을 행하셨던 하나님께 다시 간구합니다. 우리의 포로를 돌려보내주옵소서. 이전에 행하셨던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 자비를 보여주옵소서.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라고 하였는데, 남방이라고 번역된 네겝은 유다의 남부지역으로 건조한 곳입니다. 네겝 지역에 와디가 있는데, 와디는 건기에는 물이 흐리지 않다가 우기나 집중호우 시에만 일시적으로 물이 흐르는 건천이나 계곡을 말합니다. 네겝 지역의 와디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건조한 하천 바닥으로 존재하다가 우기나 집중호우가 발생하면 갑작스러운 급류로 변해 사막에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이때 네게브 사막과 주변 지역에서 다양한 야생화들이 만개하여, 평소에는 황량한 사막이 화려한 꽃밭으로 변모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런 은혜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네겝 사막같이 건조한 이스라엘에 단비와 같은 하나님의 은총을 내리셔서 남은 포로를 돌려보내주옵소서. 그리하면 사막에 꽃이 피어 정원처럼 바뀌듯이 이스라엘에 다시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간구합니다. 이 나라를 다시 회복하옵소서. 메마른 이 나라를 다시 회복시키소서. 우리 교회를 다시 회복시키소서. 메마른 나의 가정을 다시 회복시키소서. 메마른 내 심령을 다시 회복시키소서. 예전에 구원하셨던 그 은혜를 다시 회복시키소서. 기쁨이 넘쳤던, 그 시절 우리나라처럼, 은혜가 넘쳤던 그 시절 우리 교회처럼, 사랑이 넘쳤던 그 시절 우리 가정처럼, 눈물과 헌신이 넘쳤던 그 시절 내 심령처럼.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우리도 간구합니다.
5-6절: 이렇게 간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둘 것이다.
씨를 뿌리는 자는 4절과 같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메마른 현재 상황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 하나님 앞에 탄식하며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일하시기에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응답이라는 열매를 얻기 위한 씨 뿌림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거둔다고, 기쁨으로 거둔다고 확실하게 말씀하십니다.
6절에서도 5절의 내용을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반복은 강조를 의미합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 눈물로 하나님 앞에 응답을 얻기 위해 기도하는 자가 얻을 기쁨의 응답이 얼마나 확실한지 알려주십니다. 그가 얻을 것은 단입니다. 곡식 단입니다. 그가 뿌린 것은 씨앗이나 그가 얻을 것은 곡식 단입니다. 뿌린 씨앗에 수백 배에 이르는 수확은 얻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변화를 간절히 바랍니다. 대부분 공동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바라게 됩니다. 기도를 하고 바로 변화되기를 기대합니다. 한번, 일주일, 혹은 1달, 길면 1년 정도 기도하고 공동체가 변하기를 기대합니다. 변화는 그렇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변화는 한 번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역사적인 부흥의 사건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의 귀환과 우리나라의 광복과 나의 구원은 한 순간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변화는 점진적으로 일어납니다. 점진적으로 일어납니다. 그 또한 하나님의 역사의 결과입니다. 모든 선한 일은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물로 씨를 뿌리라고 하셨습니다. 씨를 뿌리면 다음날 바로 곡식을 거두지 못합니다.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가 그동안 내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눈물로 씨를 뿌리지 않았다면, 거둘 열매가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씨를 뿌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러면 때가 이르매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누릴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