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711 인싸맘스 구역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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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막 1:16-20

'내 동생'이라는 오래된 동요가 있습니다.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개, 엄마가 부를때는 꿀돼지 아빠가 부를때는 두꺼비 누나가 부를때는 왕자님' 그리고 이 노래 목소리의 주인공인 누나는 이렇게 마무리 짓습니다. '어떤게 진짜인지 몰라몰라 몰라'
그런데 어떤게 진짜인지 모르는 것이 비단 이 누나 뿐일까 생각이 듭니다. 평소에 어떻게 호명이 되십니까? 저는 주로 ‘목사’, ‘아빠’로 호명이 됩니다. 그러다 보니 제 정체성이 어느순간부터 ‘아빠’이고 ‘목사’가 된 것 같아요.
물론 우리는 관계 안에 거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관계가 우리의 정체를 형성하기 때문에 저는 아빠이고 또 목사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다보니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내 이름으로 불리었던 적이 과연 언제인가?’ 하고 말이지요.
어떤 연구 결과를 보니 은퇴자들은 종종 우울을 겪곤 하는데, 여러 요인들 중에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던 ‘호칭’이 사라진 것이 큰 몫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은퇴와 함께 나를 부르던 ‘호칭’, ‘호명’ 사라진 것이지요. 말하자면 더 이상 대표님, 사장님, 선생님이 아니게 된 사람들, 평생 ‘그렇게 불리던 나’가 지워진 듯한 경험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더불어 공허함이 거친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것 아닐까요?
비슷한 경험을 ‘엄마’들도 한다고 합니다. 자녀들이 독립할 시기가 되면, 나를 의존하던 아이들이 점차 성장해갈수록, 덩달아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 아이를 돌보는 역할이 축소될수록, 내 삶을 구성하던 이름이 작아지고, 그 삶의 자리가 점점 빈 공간으로 채워질 때 엄마들이 겪는 것은 ‘내 이름을 잃어버리는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 때 우리 마음이 덩달아 헛헛해지는 것이겠지요.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공적생애를 시작하시고 처음 하신 일입니다. 세례를 받고, 첫 선포를 하시고, 처음 하신 일이 사람들을 찾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을 부르십니다. 그 이름을 부르며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나를 따르라.’ 그리고 앞으로 그들에게 하실 일을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리라.’
하나님이 우리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 어느 교회 집사, 일터에서의 어떤 직책, 우리 정체를 규정하는 수많은 호칭, 그 호명 이전에 하나님이 우리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예레미야서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다.’ 영원 가운데 거하시는 주님은, 우리를 모태에서 그 손으로 빚기 전에 우리 이름을 아시고, 그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그 울림은 하나님의 영원하심으로 인해 영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상속자, 당신의 딸이라 부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도, 그리고 제자로 부르십니다.
구역장께 기도제목을 여쭈었을 때 ‘모두가 아이들의 엄마라 가족의 건강과 육아 문제가 제 일의 기도제목’이라고 답을 하셨습니다. 한 가정의 구성원이자, 아이들의 엄마인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귀한 기도제목이지요. 그 기도제목은 가장 평범하지만, 그만큼 우리 내밀한 소원에 맞닿아 있는 기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엄마’로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이름’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엄마’로 살아가는 동안, 혹여 영원 가운데서 울려오는 우리의 ‘이름’을 잊었다면, 이 울림이 새로운 떨림으로 다가올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름에, 그 울림에 이런 떨림으로 반응합니다. ‘아버지와, 그물과, 품꾼들을 버려두고 따라가니라.’ 이 반응은 예수님의 부름에 ‘엄마’라는 이름에 얽힌 관계들과 ‘절연’하고 예수님을 따라나서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7장에서 성전에 헌물한다는 핑계로 부모 섬기기를 외면하는 이들을 질책하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면, 우리의 이름 부르시는 그 울림에 우리의 ‘호칭’과 관계한 것들을 ‘절연’하는 것은 합당한 응답은 아니지요. 오히려 제자들의 반응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자신의 이름을 아는 것, 하나님의 이름 부르심 위에서 자신의 다른 정체성, 그 호명에 응답하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우리의 이름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여러 어려움과 변화 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소망과 위안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는 그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기도의 응답에 감사와 찬양이 고백되는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주로 초등~고등자녀를 키우는 엄마들이여서 가족건강 아이들 육아문제가 제일 큰 기도제목이예요
‘내동생’이라는 예전 동요. 아마 다들 아실 듯.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개, 엄마가 부를때는 꿀돼지 아빠가 부를때는 두꺼비 누나가 부를때는 왕자님’ 이 노래를 부르는 누나의 목소리는 마지막에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떤게 진짜인지 몰라몰라 몰라’
그런데 어떤게 진짜인지 모르는 것이 비단 이 누나 뿐일까.
집사님들은 평소에 어떤 호칭으로 불리는가? 어떻게 호명되는가? 나는 주로 ‘목사’ ‘아빠’로 호명된다. ‘나’의 정체성이 ‘아빠’이고 ‘목사’란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는 관계 안에 거하는 존재이기에, 우리가 맺는 관계가 우리 자신을 만들어간다.
그런데 늘 ‘목사’, ‘아빠’로 불리며 살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적 있다. ‘내 이름으로 불리었던 적이 언제인가,’하고.
어떤 연구 결과를 보니, 은퇴자들이 겪는 어려움 중에 ‘우울’이 있다 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나를 호명하던 내 정체성’이 없어진 까닭에. 은퇴하면서 더 이상 대표님, 사장님, 선생님이 아니게 된 사람들, 평생 그렇게 불리던 호칭들 잃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찾아오는 공허함 아닐까.
비슷하게 ‘엄마’들도 자녀들이 독립할 시기가 되면 우울감을 경험한다 한다. ‘엄마’로서 역할이 축소되고, 나에게 의존하던 이들이 점차 독립하면서 엄마들이 겪는 것은 ‘내 이름을 잃어버리는 일’이 아닐까 싶다. 내 삶을 구성하던 이름이 작아지고, 텅 빈 공간이 되었을 때 우리 마음이 헛헛하게 되는 듯하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공생애, 공적인 생애의 첫 시작. 세례를 받고, 첫 선포를 하시고, 첫 활동을 하실 때 예수님은 어떤 사람들을 찾아가신다. 그리고 그들을 부르신다. ‘나를 따르라.’ 그리고 그분이 앞으로 그들에게 하실 일들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리라.’
하나님이 우리의 이름을 부르신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 어느 교회 집사, 어느 기업의 어떤 직책, 어떤 사업의 대표, 우리의 정체를 규정하는 수많은 호칭 이전에 하나님이 우리의 이름을 부르신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다.’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은, 모태에서부터 그 이름을 부르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상속자, 그 자녀라, 딸이라 부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도로, 또 제자로 부르신다. 그리고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는 이가 영원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이름도 영원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기도제목을 여쭈었을 때, “가족 건강, 아이들 육아 문제가 가장 큰 기도제목”
한 가정의 구성원이자, 아이들의 엄마로서 너무나 당연하고, 또 귀한 기도제목이라 생각한다. 가장 평범하지만, 그만큼 가장 우리 내밀한 소원에 맞닿아 있는 기도제목.
하지만 ‘엄마’로 사는 동안 우리의 이름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엄마’로 살아가며 우리의 이름을 잃어버렸다면, 모태에서부터 우리 이름을 부르신 그 울림이 새로운 떨림으로 다가오실 수 있기를 축복한다.
오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름에 이렇게 반응한다. ‘아버지와, 그물과, 품꾼들을 버려두고 따라가니라.’ 이것이 곧 예수님의 부름이 ‘절연’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7장에서 예수님은 성전에 재물을 바친다고 부모를 외면하는 것을 질책하시기 때문에. 오히려 제자들의 이 반응은 이런 것 아니었을까? 자신의 이름을 아는 것, 하나님이 이름 부르심 위에 자신의 다른 정체성들에 응답하는 것.
우리 서로 민망하니, 입밖으로 내뱉지는 말고 마음 속으로 함께 불러보면 좋겠다. ‘OO아, 나를 따르라.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른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우리의 이름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여러 어려움과 변화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소망과 위안이 되시기를, 우리 이름 부르시는 그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기도의 응답에 감사와 찬양이 고백되는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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