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믿고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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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시편 119:105~112
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06.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107.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108.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이 드리는 자원제물을 받으시고 주의 공의를 내게 가르치소서109.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110.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111.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112. 내가 주의 율례들을 영원히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들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롬 10:17).” 믿음이 없이는 행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믿고, 의지를 갖고 따르는 순서가 있습니다. 믿음은 추상적이고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바른 믿음은 바른 지식을 토대로 형성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면 알수록, 말씀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깊어질수록 믿음은 더욱 좋아질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믿음의 내용인 ‘앎’입니다. 두 번째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정서적 동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로봇으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유 의지를 가진 인격체로 지으셨으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동의를 받으시길 원하십니다. 강제하지 않으십니다. 정서적, 감정적 동의가 되어야 수용이 가능합니다. 세 번째는 충성, 즉 신실함으로 반응하는 의지의 단계입니다. 본문을 이 세 가지 구조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듣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어떠한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발의 등이고, 나아갈 길의 빛이 맞습니까(105)? 고대 근동 사회에서 빛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전기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호롱불 하나 들고 어둠을 밝혔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빛은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신자에게 있어 하나님의 말씀이 그와 같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바가, 귀에 들리는 바가 없이 앞길이 칠흑같이 어두울 때, 인간은 자기 감각과 경험을 따라갑니다. 말씀이 등이 되어 앞을 세밀하게 비춰줍니다.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이전에 암송하고 기억한 말씀으로 조명해 주실 것입니다. 순간순간 기지와 지혜로 우리가 삶을 개척해 나가도록 하나님께서 말씀의 등으로 앞을 비춰주실 것입니다. 발 앞만 비추는 등보다 더 상위 개념이 빛입니다. 말씀은 우리 인생 전체를 비추심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디서 와서 이 땅에서 무엇을 하다 어디로 가는지, 하나님의 말씀 66권을 읽는다면 길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성취된 말씀이 있음에도 우리는 노심초사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길 소망합니다.
정서적으로 동의하고, 지켜 행하겠다고 굳게 다짐합니다(106). 맹세하고 굳게 정한다는 것은 다른 시편에 나온 ‘확정한다’입니다. 과학도, 역사도 뒤바뀔 때가 많지만, 말씀은 아무리 흔들어 보아도 사실이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믿고 깨닫습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증거가 됩니다(히 11:1). 증거는 변치 않습니다. 가변하는 역사, 문화, 그 어떤 배움과는 대조적으로 히브리서 기자는 말씀이 흔들리지 않는 반석, 받침대 같다고 기록했습니다. ‘실상’은 ‘휘포스타시스’입니다. ‘휘포’는 ‘아래’, ‘스타시스’는 ‘서다’로, 곧 받침대를 의미합니다. 삶의 근거인 말씀의 받침대가 확실하다면 따라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우리 인생에 확정되었고, 확실한 믿음의 근거라면 뒤로 물러나지 마시고, 말씀을 지켜 행하겠다고 맹세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고, 따르는 일에 쓰임 받는 우리 삶이 되길 축원합니다.
말씀을 듣고, 믿고, 따르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어려움을 묘사합니다(107-110). 시인은 말씀을 듣고, 믿고, 따르는 여정에서 고난을 경험합니다(107).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감화 감동시키사 믿음이 생깁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실천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와 방법, 가치와 다르기에 조롱받고 불이익을 당하기도 합니다. 우리 마음과 심령은 굉장한 고뇌와 난관에 처합니다. 고난은 잠깐 당황스럽고, 난처하고, 수치스럽습니다. 말씀을 고수해 주님을 따라가다 보면 말씀이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시는 은혜를 더하사 심령과 양심이 살아나는 경험을 합니다. 감정이나 시간과 금전적 손실이 있었더라도, 잠깐임을 깨닫는 순간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배에서 생수가 터지는 평강이 회복됩니다. 그것이 우리를 살리실 줄 믿습니다.
자원 재물(108)은 억지로가 아닌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과 예배를 가리킵니다. 우리 입이 열리길 소원합니다. 큰 소리로 찬양하십시오. 침묵 기도는 졸릴 수 있으니, 기도도 자신에게만큼은 들리게 하십시오.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고, 선포된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자원하는 심령으로 시간과 예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듣고, 믿고, 따르는 3원칙을 준수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우리를 심판하시고, 사랑은 우리를 덮습니다. 공의와 사랑을 충족시키는 현장이 십자가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공의로 인한 진노를 예수님의 어깨에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성정임에도 우리가 준수할 수 없는 올곧음을 행하사 우리를 구원할 대표자로서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키셨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약속에 신실하심이 솟구쳐 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창조하셨는데, 아들 예수가 죄의 형틀에 매여 진노를 받으사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키심으로 하나님의 신실함은 언약 백성을 생각하시고 그들을 끝까지 추격하셔서 구원하시는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자원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할 때 하나님의 공의가 깨달아집니다. 구약은 공의만 강조된 무서운 하나님 같지만, 신구약에 흐르는 맥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줄기차게 말씀하심을 기억하며, 위험과 힘듦과 어려움에도 뒤로 물러나지 않길 축원합니다.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다”(109)란 히브리 문학은 ‘스스로 위기를 자초한다’라고 달리 표현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으면 반드시 지켜집니다. 그러나 우리 감정, 태도, 의지에 비춰볼 때 우리 생명은 위태롭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택한 사울 왕은 참 독보적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준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자를 기다리지 못해 직접 제사를 올리다 하나님의 마음에서 멀어집니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도 모두 진멸하라는 말씀을 어기고 자기 소견대로 전리품을 남기고 아각 왕도 살려둡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믿지도 않은 증거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멀어지니 신접한 여인을 찾아갑니다(삼상 28). 사무엘이 죽고 신접한 여인을 이스라엘에서 전부 몰아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하나님 앞에 서려다 보니 외부로부터의 침공 등의 압박에 두려움을 못 견디고 결국 신접한 여인을 찾아갑니다.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의 법을 잊지 않는 것이란 말씀을 듣고,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소원합니다.
영원히 하나님 말씀을 따릅니다(111,112). 시인은 하나님 말씀이 자신의 기업이라 고백합니다(111).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 꿀보다 달 만큼 얼마나 큰 기쁨인지 후손에게 계승할 수 있길 바랍니다. 돈, 명예, 권세가 부분적으로 유익할 수 있습니다. 없는 것보단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돈, 명예, 권세를 관리하는 자녀가 되도록 유업으로 남기길 소망합니다.
주의 율례를 행하려고 의지를 발동합니다(112). 하나님이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동의하면, 의지를 발동해야 합니다. 감동이 영원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창조하셨기에, 감동이 있을 때 우리의 마음을 기울여 발걸음을 재촉해 행함과 진실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누군가의 현관 문고리에 맛있는 걸 걸어주는 것,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것, 전화하는 것, 말씀 한 장 읽는 것에 마음을 기울임으로 듣고, 믿고, 따르는 은혜가 충만하길 소망합니다.
기도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게 하소서!
행함이 있는 믿음을 경험하게 하소서!
주찬양, 박예경 성도(하나, 하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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