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하소서
Notes
Transcript
변호
변호
시편 54편1.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2. 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3. 낯선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들이 나의 생명을 수색하며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셀라)4.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5. 주께서는 내 원수에게 악으로 갚으시리니 주의 성실하심으로 그들을 멸하소서6. 내가 낙헌제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주의 이름이 선하심이니이다7. 참으로 주께서는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건지시고 내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이 똑똑히 보게 하셨나이다
시편 54편의 표제는 십사람이 사울에게 뭔가를 말하는 사무엘상 23장, 26장과 연관된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렇다고 후대 사람들이 추측해 붙인 표제가 본문과 100% 연관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십 사람들이 사울이 통치하고 있던 기브아로 찾아가 다윗이 숨어 있는 장소를 밀고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 군사들을 이끌고 다윗을 추적한(삼상 23:16) 배경을 학자들은 본문 3, 4절이 잘 묘사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배경을 사무엘상 23장, 26장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죠.
‘낯선 자들’(3)이란 다윗의 거처를 몰래 사울에게 일러바친 이방인 십사람들로 볼 수 있습니다. ‘포악한 자들이 나의 생명을 수색한다’는 표현은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다윗을 찾으려 수색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사울왕과 그의 군대를 가리킬 수 있는 ‘포악한 자들’이란 자비와 긍휼 없이 누군가를 무차별 공격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사울왕은 정신이 흐려지면 창을 들고 다윗을 죽이려 던졌습니다. 또한 수천의 군대를 동원해 다윗에게 무차별적 공격을 가했던 무자비하고 무분별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그런 사울을 피해 도망쳤습니다.
4절을 사무엘상 23:16에 배경을 두었을 것이라 학자들은 추측합니다. 다윗이 사울의 추격을 받을 때, 절친 요나단이 다윗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북돋아 주어 다윗이 그런 위기 속에서도 자신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추측일 뿐일 수도 있지만, 전혀 개연성이 없는 것도 아니니 사무엘상 23장, 26장을 배경으로 본문을 바라본다면 ‘낯선 자들’이 일어나 다윗을 쳤다는 표현은 다윗이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십사람들이고, 성경을 읽어 보면 배신한 사람의 종류는 더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그일라 지역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다윗이 그일라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삼상 23:7). 그 어떤 사람도 다윗을 배신한 낯선 사람으로 볼 수 있겠죠. 또한 다윗은 블레셋에게서 그일라 사람들을 구원하는 힘겨운 전투를 치렀으나(삼상 23:5), 잠시 다윗의 편을 들던 그일라 사람들도 다윗을 배신합니다(삼상 23:12).
타인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물리적, 정서적 피해를 입었던 경험이 있으시겠죠? 무조건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관계의 어려움이 생기면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갔듯, 누군가와 관계를 멀리하고 피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그 누군가는 의도적으로 불편한 관계 안으로 밀고 들어와 계속 힘들게 할 때도 있습니다. 또한 성경에서처럼 불편한 관계를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을 때가 있죠. 그 불편한 관계의 누군가를 본문의 포악하고 낯선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그들의 특징은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않는다’(3)라는 데 있습니다. 곧 자기 멋대로 살아감을 알 수 있습니다. 신의 존재,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이신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음에도 뒷짐 지고 세상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신의 존재를 믿지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이 운영되도록 태엽을 감아 놓고 뒷짐 지고 지켜보는 신에 불과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는 무신론자나 이신론자 같은 속성이 없을까요? 큰일입니다.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을 ‘코람데오’라고 합니다. 이런 하나님을 배역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앞에 두고 사는 우리를 괴롭힌다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들에게서 다윗을 보호하신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우리도 보호하심을 믿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을 괴롭힌 낯선 사람들, 포악한 사람들로부터 주의 이름으로 구원해 달라고 간구합니다(1). 주의 이름이란 하나님 아버지의 명성, 그분의 전 존재를 가리킵니다. 만천하에 알려지고 유명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전 존재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부패하고 부도덕하고 타락한 존재인 우리로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이름, 그의 명성과 전 존재, 그의 사랑의 속성으로 우리를 추격해서라도 구원하실 분이십니다. 당신 스스로를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시 23:3).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라도 결코 자기 백성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이름에 속한 의미, 그 명성이나 책임 때문에라도 보호하시고 도우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자식을 위해 그러겠지만, 하나님과의 결정적 차이는 힘(1)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같은 힘과 능력이 없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능력 부족으로 자식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린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모두 사랑하는 자녀를 구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위험한 현장에 뛰어들겠죠. 그러나 수영을 못 하거나 소방훈련을 잘 받지 못했다면, 분명 마음은 원이로되 능력 부족으로 위험에 처한 자녀를 구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와 이 세상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밖에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연약하지 않으십니다. 이 세상처럼 깨어진 분이 아닙니다. 힘과 능력이 무한하십니다.
그 힘으로 ‘변호하소서’라고 다윗은 구합니다. 우리는 유한한 힘이라 주변을 변호하고 지키며 보호할 수 없습니다. 다윗을 구원한 하나님의 힘은 사울이라는 왕과 비교될 수 없이 강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추격할 때마다 하나님은 다윗을 사울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도리어 사울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다윗이 사울의 칼과 물병을 가져오게 하심으로 사울의 생명이 다윗의 손에 있음을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 없는 자들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면 절대 그들 앞에서 기죽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위해 우리를 구원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변호하소서’는 법정 용어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법정에서 변호하십니다. 사울에게 쫓기는 도망자 신세라고 좌절했을지 모를 다윗을 하나님은 변호하십니다. 사울은 다윗 앞에서는 막강한 왕이지만, 절대자 하나님 앞에서는 도망자요, 다윗 앞에서의 죄인일 뿐이라고 변론해 주고 있습니다. 마귀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음을 줄 때도, 실제 눈에 보이는 적 사울과 낯선 사람, 포악한 사람이 다윗을 치려고 할 때도 하나님은 그렇게 놀라운 역사로 변호해 주십니다.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고결한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나타난 그 이름을 우리는 믿고, 전 존재를 인정합니다. 그분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재판관 되신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로 신앙을 고백하는 우리에게 죄 없다 여겨 주시는 판결을 내려주시는 능력자이십니다. 비록 우리 안에 연약함이 있더라도, 의롭다 여겨 주시는 이름 예수님이 내 안에 있다면, 우리를 낯선 자, 포악한 자들로부터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라도 변론해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나님이 예수님을 변론해 주셨듯, 예수님도 우리를 변론해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로 살고, 예수로 죽고, 예수를 믿는다면, 우리 연약함에도 그 이름을 위하여, 그분의 힘으로 우리를 변론하고 계신 예수님을 눈으로 볼 수 있길 축원합니다. 법정적 변호와 보호를 받고 있는데도, 우리 안에 예수의 흔적과 그 이름이 있음에도 무서워하고 자신을 죄인이라 닦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다윗이 경험한 주의 이름과 주의 힘을 경험하시길 소원합니다. 그러니 더 이상 뒤로 물러나지 마시고, 우리 안의 예수님을 믿고 바라보시길 축원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는 코람데오의 삶입니다.
낯선 사람들, 포악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않는 무신론자, 이신론자이기에 하나님은 그들을 변론해 주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그 앞에 두고 살아가고, 우리 연약함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신 예수의 이름 때문에, 그 이름을 위해서라도 우리를 끝까지 변호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패배의식을 뒤로 제쳐 버리고, “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뒤로 물러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걸 아시고 앞으로 달려 나가시길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하나님이여,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
김미혜 집사님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