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고린도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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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고린도후서 6:14-7:1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찬송가 420장 ‘너 성결키 위해’ 2025. 7. 14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향해서 마음을 넓히라고 권면했습니다. “마음을 넓히라” 성도들이 지금 왜 바울을 의심하고 배척하는가? 그 이유가 마음이 좁기 때문이에요. 마음이 좁아서 바울을 품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을 넓히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서는 또 하나의 권면을 하는데요. 그것이 오늘 본문 14절에 있습니다. 14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멍에가 뭡니까? 소가 밭을 갈 때 메는 거죠. 이스라엘에서는 보통 소 두 마리가 같이 멍에를 멥니다. 이것을 “겨릿소”라 그래요. 소 두 마리가 멍에 하나를 같이 메는 것. 이게 겨릿손데, 만약에 소하고 나귀가 같이 멍에를 메면 어떻게 될까요? 밭을 제대로 갈 수가 없겠죠. 소하고 나귀하고는 안 맞아요. 힘도 다르고, 걸음거리도 다르고, 속도도 다르고. 같이 멍에를 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22장 1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 소와 나귀를 겨리하지 마라. 소와 나귀를 한 멍에를 메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소는 소끼리, 나귀는 나귀끼리 메야지, 소와 나귀가 같이 메서는 안 돼요.
오늘 본문에서 하는 말이 그 말입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같이 멍에를 멜 수가 없어요. 멍에를 함께 멘다는 것은, 일을 함께 한다는 말도 되고, 고난을 함께 겪는다는 말도 되고,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을 할 수가 있는데요. 어쨌거나 뭐가 됐든지간에 함께 한다는 겁니다.
믿는 자는 뭘 하더라도 믿지 않는 자와는 해서는 안 돼요.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는 서로 안 맞아요. 뭔가 발란스가 맞아야 똑바로 밭을 갈 텐데, 한쪽은 빨리 가고 한쪽은 천천히 가고, 한쪽은 오른쪽으로 가고 한쪽은 왼쪽으로 가고. 서로 박자가 안 맞아요. 신자와 불신자는 함께하면 망합니다. 서로 떨어져 있어야 돼요.
고린도교회 안에 안타깝게도 불신자들과 함께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불신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불신자하고는 달라요. 단순히 예수 안 믿고, 교회 안 다니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이 말하는 불신자는 우상숭배를 하는 자들이에요.
고린도에 우상이 정말 많아요. 제우스, 아프로디테, 바커스… 수많은 우상들과 신전들이 있는데, 고린도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그 신전들을 찾아가서 제사를 지냅니다. 우리가 볼 때는 우상숭밴데, 고린도 시민들 입장에서는 그냥 일상적인 일이에요. 여러 신을 같이 믿기 때문에, 오늘은 제우스 신전에 가고 내일은 아프로디테 신전에 가는 것이 문제가 안 됩니다. 믿고 싶으면 우상을 100개 200개도 믿을 수가 있어요.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그런 삶을 살던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어느날 예수 믿고, 모든 우상을 딱 끊은 겁니다. 어느날 술 딱 끊고, 안 마시듯이 우상을 다 끊었어요. 그런데 성도들 중에 제대로 끊지 못한 사람들이 있어요. 자꾸 우상이 생각나고, 신전에 가고싶고… 왜냐면 신전에서 하는 제사가 재밌거든요. 그래서 성도들 중에 일부가 계속해서 신전을 들락거리는 겁니다. 그리고 우상숭배자들과 계속 교제를 하는 거예요.
바울이 바로 이것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다시 말해서, 우상숭배자들과 상종하지 말라는 겁니다. 애초에 말이 안 통해요. 신자와 불신자는 연합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14절부터 16절까지, 바울이 다섯 가지 질문을 하면서 강조하고 있죠? 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어찌, 어찌, 어찌… 총 다섯 번이나 같은 질문을 해요. 서로 맞지 않는 것끼리 어찌 함께할 수 있냐는 겁니다. 의와 불법, 빛과 어둠, 그리스도와 벨리알,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 절대로 함께할 수가 없어요. ‘그래도 어떻게 잘 하면 함께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안 된다니까요. 하나님의 성전에 우상이 들어갈 수가 있습니까? 될 수가 없는 거예요.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같이 어울려 놀다보면 자동적으로 물이 들어요. 내가 물이 안 들려고 해도 어느샌가 물이 들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까마귀 노는 곳에 가지 말아야 돼요.
궁금해도 아예 관심을 주지 마세요. ‘신천지가 도대체 뭔데 사람들이 빠지는 거야? 나는 안 빠질 자신 있는데, 뭔지 한번 들어만 볼까?’ 이러면 안 된다니까요? 스레기봉투 안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다고, 쓰레기봉투 열어볼 겁니까? 그럴 필요가 없는 거예요. 열어봤자 냄새만 나고, 손만 더러워져요.
마찬가지로, 이단 사이비가 궁금하다고 해서 열어볼 필요 없어요. 어차피 말도 안 되는 사이비 교리만 있습니다. 애초에 궁금해하지도 마세요.
오늘 본문 17절에서 바울이 이것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17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으라는 겁니다. 격리가 필요해요. 우상숭배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겁니다. 한창 코로나가 유행할 때, 우리가 밖에만 나갔다 오면 뭘 했습니까? 손을 씻었죠. 바이러스며 먼지며 다 씻어내기 위해서 손을 씻고, 또 곳곳에 손소독제가 있어서 틈만 나면 손을 소독했어요.
이처럼 우리가 더러움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는 씻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7장 1절에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 말씀해요. 자, 7장 1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아멘.
우리는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깨끗하게 하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카타리조” 라는 말인데, 이 말은 “씻어내다” 라는 말이에요.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을 다 씻어내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야 돼요.
우리는 불신자들, 우상숭배자들, 이단 사이비들과 함께 해서는 거룩함을 온전히 이룰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물이 들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과 거리를 둬야 돼요. 그리고 스스로를 씻어내야 합니다.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 방법 두 가지, 하나는 접촉하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잘 씻는 것이죠. 바울이 명령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하나는 멍에를 함께 메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을 깨끗하게 씻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엉뚱한 것에 관심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 말씀에 관심을 두시기를 바랍니다. 한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같은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예배 드리고, 함께 교제하고, 함께 봉사하면서, 나 자신을 거룩한 곳에 두고,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스스로를 씻어내야 합니다. 그리하여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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