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들: 정념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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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스타일

제가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많은 목사님들의 설교 말씀을 들어왔는데요, 목사님들마다 설교하시는 걸 들어보면 각각 스타일들이 다양하게 있으시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그 말씀들을 들으면서 크게 두가지로 분류하는데요, 하나는 학자 스타일입니다. 그런 목사님들의 말씀은 들으면 일단 졸려요.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졸린데 돌아서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깨닫는게 많은 좋은 말씀들을 전해주십니다.
다른 하나는 믿쓥니다! 스타일입니다. 아주 강렬한 카리스마와 파워를 가지고 설교를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루어질 줄 믿쓥니다!”하면 아멘이 절로 터져나오는 스타일이 있습니다. 제가 기독교 기숙사 학원에 있을 때 그렇게 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목사님 설교를 많이 틀어줬었는데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삶을 인도해주실 줄 믿쓥니다”하는 그런 설교가 믿쓥니다 스타일입니다.
저희 담임목사님이신 이영찬 목사님은 한 중간 어딘가에 계신 것 같아요. 일단 이 십자가부터 들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대듯이) 오늘도 함께 예배하시는 여러분들 가운데,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일단 처음엔 잘 안들려야되요. 그리고 후반부가 되면 인상을 쓰시면서 “그것이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를 이끌어 나가는 것입니다! 예?! 아닌가…”했다가 웃으시면서 “(십자가를 가슴에 대고)그렇게 함께 믿음의 역사를 감당해나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하는 식으로 말이죠.
이처럼 설교에도 다양한 스타일이 있는데요, 그렇지만 거의 대부분의 목사님의 설교에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먼저 말씀을 잘 해석하는 것, 주석이라고도 하는데요, 말씀을 잘 풀어서 설명하고, 그 말씀에서 삶의 원리를 발견하고 오늘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것은 대부분의 설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저도 수요예배 설교를 강해설교처럼 하고 있기 때문에 주석만 이따만큼 하고 있기는 하지만 보통은 이 주석 -> 원리 -> 적용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럼 예언자들의 말씀은 어떨까요? 저희가 다양한 예언자들을 지금까지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들을 둘러싼 세계사를 함께 보면서 다양한 역사적 상황 가운데 예언자들을 통해서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이 다양한 말씀으로 나타나는 걸 함께 보았는데요, 그럼 거기에 어떤 공통점이 들어가 있을까요?

정념의 신학

오늘의 설교 제목을 제가 “예언자들: 정념의 하나님”이라고 정했는데요, 오늘 알아볼 예언자들을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의 공통점은 바로 하나님의 정념,입니다. 한번 따라해볼까요? “정념” “정념” 네 맞습니다. 예언자들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정념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럼 이 정념이라고 하는 단어가 무슨 뜻이냐, 사전을 찾아보면 “감정에 따라 일어나는, 억누르기 어려운 생각”이라고 나와있는데요, 다르게 말하면 “감정과 함께 터져나오는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예언의 말씀에 하나님의 정념이 담겨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감정과 함께, 억누를 새도 없이 마구 터져나오는 말씀”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또한 정념은 영어로 번역하면 passion, 그리스어로는 pathos라고 해서 원래는 고통을 뜻하는 단어에서 비롯된 말인데요, 만약에 여러분, 발가락을 책상다리에 꽝! 하고 찧으면 어떻습니까? “아이고 아파, 아이고 죽겄네 죽겄어”하면서 누가 듣지도 않는데 막 말이 터져나오죠. 예언의 말씀이 하나님의 정념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것처럼 예언자들이 전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서 마구 쏟아져 나오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도 하나님의 정념을 나타내는 구절들이 있는데요,
Isaiah 59:17 NKRV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
하나님께서 “열심”을 겉옷으로 삼으셨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열심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정념입니다. 히브리어 단어를 보시면 킨아(קִנְאָה)라고 하는 단어인데요, 사람이 감정이 너무 격해지면 화가 나서 막 얼굴이 붉어지거나 반대로 당황해서 새파래지기도 하잖아요? 이 단어는 바로 너무 감정이 격해서 얼굴색이 변한다는 것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저희가 흔히 하나님 아버지,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가 있을 겁니다. 인자하고 자비롭고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시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아버지의 모습의 그런 이미지를 생각하기 마련인데요, 하지만 예언자들이 만난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얼굴이 붉어지고, “왜 내가 아니라 쟤를 더 좋아하는 거야? 질투나!”하면서 길길이 날뛰고, 새파래진 얼굴로 가슴을 부여잡으면서 슬퍼하고 애통하는 하나님, 감정적이고 격렬하고 역동적인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신 정념의 하나님이었습니다.

분노의 정념: 질투와 공의

그럼 하나님의 정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Jeremiah 4:4b NKRV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첫째는 분노의 정념입니다. 그냥 화가 조금 난 정도의 분노가 아니라, “내가 너희들을 싸그리 불살라 버릴 것이다!”라고 쏟아져내리는 하나님의 분노입니다.
Ezekiel 22:20 NKRV
사람이 은이나 놋이나 쇠나 납이나 주석이나 모아서 풀무 불 속에 넣고 불을 불어 녹이는 것 같이 내가 노여움과 분으로 너희를 모아 거기에 두고 녹이리라
“내가 너희들을 광물을 녹이는 것처럼 풀무불에 집어던져놓고 싸그리 녹여버릴 것이다!”
Isaiah 13:9 NKRV
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 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
“봐라! 내가 아주 잔혹하고 맹렬한 분노로 너희 땅을 완전히 황폐하게 만들것이고 죄인들을 싸그리 멸해버릴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분노는 굉장히 저희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정념입니다. 저희가 아는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저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셔야 할텐데, 특히 사랑하셔서 다른 민족에게서 구별하신 이스라엘 백성에조차 아주 불타는 분노를 마구마구 쏟아내시는 모습을 저희가 예언자들 시리즈를 통해서 보았습니다.
게다가 그 하나님의 분노의 정념은 감히 저희가 감당할 수 있는 분노가 아닙니다.
Nahum 1:6 NKRV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
Jeremiah 10:10 NKRV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이방이 능히 당하지 못하느니라
특히 하나님의 진노는 단순히 사람만 벌벌 떠는 진노가 아닙니다. 감히 사람의 손으로 깨뜨릴 수 없는 큰 바위를 깨뜨리시고, 감히 사람의 손으로 흔들 수 없는 땅을 흔들어 제껴버리시는 분노입니다.

질투의 분노

그럼 대체 왜 하나님은 분노하실까요? 이유가 있으니까 화를 내실 텐데, 어떤 이유에서 분노하시죠?
Zephaniah 1:18 NKRV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켜지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주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라
먼저 하나님의 분노는 질투하시는 분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내셨을 때부터 엄중하게 경고하셨습니다. 십계명에도 이렇게 등장하죠
Exodus 20:4–5 NKRV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우상 숭배하지 마라!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애굽에서 구해내셨는데, 만약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우상들을 사랑해버린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질투를 유발하는 것이지요.
Ezekiel 8:3 NKRV
그가 손 같은 것을 펴서 내 머리털 한 모숨을 잡으며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천지 사이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환상 가운데에 나를 이끌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시니 거기에는 질투의 우상 곧 질투를 일어나게 하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나도 하나님을 시험하듯이 다른 우상들을 섬겨왔고 그것이 하나님의 맹렬한 질투의 분노를 샀습니다.

공의의 분노

두번째는 바로 공의의 분노입니다. 본문말씀 15절 하반절 말씀.
Isaiah 59:15b NKRV
여호와께서 이를 살피시고 그 정의가 없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정의가 바로 서 있는 것을 기뻐하시고, 만약에 그것이 무너져 있다면 또한 그 공의가 무너진 것에 크게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Micah 3:1–3 NKRV
내가 또 이르노니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아 들으라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권세잡은 자들아! 하나님의 정의를 이 땅에 세우는 것이 너희들이 할 일이 아니냐? 감히, 감히! 내 백성의 피부를 벗기고 살을 뜯어먹고 다진 고기처럼 만들다니!”
Isaiah 5:23–24 NKRV
그들은 뇌물로 말미암아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공의를 빼앗는도다 이로 말미암아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 같이, 마른 풀이 불 속에 떨어짐 같이 그들의 뿌리가 썩겠고 꽃이 티끌처럼 날리리니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
“악하고 더러운 자들을 정의롭다고 하고, 의로운 이들의 공의를 빼앗는 놈들아! 내가 너를 뿌리까지 썩어버리게 하고 마른 풀처럼 불 속에 집어던져버릴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 그리고 불의를 범하는 자들에게 크게 분노하시는데,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본문말씀 18절 말씀
Isaiah 59:18 NKRV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원수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공의가 무너지고 악이 강성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분노하십니다. 또한 그 분노와 함께 하나님은 죄악의 행위대로 갚으시는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잘못을 했으면 그에 따른 벌을 줄 수 밖에 없는 분노의 정념입니다.

애통의 정념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화만 내시는 분은 또 아니시죠. 하나님께서는 “불의하고 우상숭배하는 너희들 내가 다 쓸어버리리라!”라고 분노에 가득차서 말씀하시면서도 사실은 백성들에게 배신당하고 공의가 무너지고 죄로 인해서 멸망할 수 밖에 없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고 너무나도 슬퍼하시는 애통의 정념을 나타내십니다.
Jeremiah 8:21–9:1 NKRV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
“내 딸 이스라엘, 내가 너무나도 아끼는 이스라엘아, 어쩌다가 너가 이렇게 됬느냐? 길르앗, 저기 요단 강 동쪽에 약으로 쓸 유향이 있지 않느냐? 의사도 있지 않느냐? 저렇게 상하고 다치고 죽어가는 내 백성이 있는데, 의사가 있는데도 왜 치료를 못하느냐! 아이고 내 딸, 죽게 생겼구나! 슬프다 슬프다”
Isaiah 22:4 NKRV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내 딸 백성이 패망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나를 위로하려고 힘쓰지 말지니라
“이제 나를 쳐다보지도 마라! 내 딸 내 백성이 이제 망하게 됐으니 어떤 말로도 날 위로하려고도 하지 마라! 슬프다 슬프다! 나는 슬피 통곡하고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Jeremiah 31:20 NKRV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사랑하는 아들, 에브라임을 생각만 해도 내 창자가 뒤틀리는 구나! 저 불쌍한 내 아들을 대체 어찌하면 좋을까?”
하나님께서는 불의하고 우상 숭배하는 백성들을 벌하실 수 밖에 없는 분노를 가지셨지만, 그 분노에 의해서 멸망하고, 엎드러진 백성들을 향해서 크게 애통하시는 정념을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범하는 백성들을 그냥 참고 넘어가실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하나님께서는 그 죄 때문에 그냥 망하고 넘어지고 죽게 되기를 원하지는 않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모순되고 역설적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노하시고, 또한 애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Ezekiel 33:11 NKRV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내가 악한 백성이라고 한들, 죽고 사라지는 것을 내가 기뻐하겠느냐? 그 악한 일로부터 돌어켜서 살아남기를 내가 기뻐한다! 이스라엘아 이스라엘아! 제발 제발 좀 돌이키고 돌이켜라. 내가 너가 살기를 기뻐하는데 왜 죽음을 향해서 달려가기만 하느냐!”

사랑의 정념

하나님의 분노에 의해 백성들은 죽게 되었고, 그 죽음에 하나님을 슬퍼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절대 백성들을 죽게 내버려두실 분이 아니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사랑의 정념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Hosea 11:8–9 NKRV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사랑하는 내 아들, 내 딸. 내가 어떻게 너를 놓아버리겠니. 내가 어떻게 너를 버리겠니? 내가 어떻게 너를 포기하겠니? 내가 불같이 화나고, 바다를 적실 만큼 슬펐지만, 이제는 내 마음을 돌이켜 너를 향한 긍휼이 불타는 구나! 내가 다시는 진노하지 않겠다. 내가 다시는 너를멸하지 않겠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Zephaniah 3:17b NKRV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나는 너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네가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너무나도 기쁘다! 절로 노래가 터져나올 만큼 너를 기뻐한다”
Isaiah 49:15 NKRV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비록 너희가 나를 잊고 나를 배신하고, 나를 분노케하고, 나로 애통하게 했지만, 너희가 나를 잊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 여인이 그 자녀를 사랑함과 같이 나도 너를 그렇게 사랑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에 분노하시고, 그 분노로 죽을 백성들을 위해 애통하시고, 다시 그 사랑을 회복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사랑만 할 수는 없습니다. 잘못된 행동에는 반드시 벌하십니다. 그렇지만 그 벌 받는 것으로 망하는 백성들을 위해 반드시 슬퍼하시고, 뜻을 돌이켜서 다시금 그 사랑을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의 하나님

그리고 사랑을 회복하신 하나님은 그 사랑으로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본문말씀 16절 말씀.
Isaiah 59:16 NKRV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하나님께서 공의가 사라져서 죄를 범하는 백성들 가운데 아무도 그것을 돌이키고자 하는 이가 없으니,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고자 다짐하십니다.
Isaiah 59:20 NKRV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죄를 속량할 구속자를 이 땅에 보내시는데, 다만 이전처럼 이스라엘 백성이기 때문에, 야곱의 자손이기 때문에 “그냥” 애굽에서 구원해내신 것과 같은 구원은 아니십니다. 분노하시고 애통하시고 사랑을 회복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자기 죄를 떠나서 회개하는 이들”에게 구원을 베푸십니다.
본문말씀 2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Isaiah 59:21 NKRV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네 입에 둔 나의 말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제 신약, 곧 새로운 언약을 백성들과 세우십니다. 우리 위에 계신 하나님의 영, 성령과 우리 입에 둔 하나님의 말씀, 육신을 입어 이 땅 가운데 오신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토록 떠나지 않으셔서, 사랑으로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저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정념의 하나님

저희가 흔히 하나님은 변치 않으신다, 언제나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저는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변치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무엇이 변치 않죠? 전지전능하시고, 사랑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신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희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과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마음마저 변치 않다고 이야기해버리면 그것은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죽은 신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Malachi 3:14 NKRV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난 주에 읽은 말라기 말씀에 등장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다 헛되다!”라고 말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변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벌도 안주시고, 착한 일을 해도 상도 안주시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변치않는 사랑과 공의를 모르는 사람들인겁니다. 하나님은 분노하시고 애통하시고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정념의 하나님이십니다.

정념의 예언자들

그러니 여러분, 저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흔히 어른이 된다라고 하는 것은 잘 참고, 잘 견디고, 잘 변하지 않게 되는 것을 어른이 된다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특히 직장에서나 삶에서 잘못된 것을 보아도 그냥 잘 꾹 참고 견디는 것이 좋은 어른이 된다고 많이들 이야기합니다. 오히려 조그만 일에도 화내고 울고 웃고 하는 것은 어린 아이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 즉 예언자들은 아주 작은 불의를 보더라도 불같이 화를 내고, 아주 작은 상처를 보더라도 가슴을 찢으며 울부짖고, 아주 조금이라도 죄에서 돌이키는 모습에 기뻐하고, 저 큰 제국에 비해서 너무나도 작고 초라한 이스라엘 백성에 너무나도 큰 사랑을 쏟아붇는 하나님의 정념을 전했던 사람들입니다.
본문말씀 21절 말씀을 다시한번 함께 읽겠습니다.
Isaiah 59:21 NKRV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내 말이 너와 네 후손과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설교 단상에 서서 지금 말씀을 전해드리고 있는 저나, 이주혜 전도사님이나, 아니면 목사님이나, 아니면 앉아계신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 입에서 떠나지 않는, 새 언약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정념이 가득 담긴 말씀이 저희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라고 하신 말씀은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정념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 시대의 예언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세상의 불의와 우상숭배를 보고 참을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은 불의를 보고 우상숭배를 보고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들입니다. 상처입고 죽어가는 이들을 보고 기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은 아픈 이들을 보면 펑펑 눈물을 쏟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이키고자 하는 사람들을 “저런 놈이 교회에 왜 왔어?” 하면서 미워하고 멀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복음을 접하지 않은 사람을 지나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여러분과 저는 구원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분노하고 애통하고 사랑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 분노만 하거나 애통만 하거나 사랑만 하거나 구원만 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가령 분노하는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가지고 정죄합니다. “세상은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 하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이 죄라고 하는 것입니다!”라고 외칩니다. 당연히 잘못된 것은 잘못 되었다고 이야기해야죠. 불의에 분노해야죠. 그런데 애통과 사랑과 구원이 없어서 교회에서도 내쫓아버립니다.
애통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처받고 아프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애통하기 때문에 “아이고 저 사람들 불쌍해서 어쩌나… 아이고 불쌍해 마음아파”하면서 분노와 사랑과 구원이 없어서 그 사람들을 위해서 아무일도 하지 않습니다.
사랑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보살펴주고, 아낌없이 내어주지만 분노와 애통과 구원이 없어서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하기만 하게 되고, 죄인들은 계속 죄만 저지르는데 사랑으로 내어주기만 하고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구원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열심히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님 믿으세요!” 하고 복음을 전하지만 그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분노와 애통과 사랑이 없어서 물에 빠져서 허우적 대고 있는 사람한테 스피커를 대고서 “예수 믿으면 거기 빠져죽어도 천국가요!”만 외치는 경우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정념은 불의에 분노하고, 상처에 애통하며, 죄인을 사랑하고,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어느것 하나 빠질 수 없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바로 그런,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정념을 품고서 분노하고 애통하고 사랑하고 구원하는 믿음의 역사를 이뤄나가는, 예언자들로 살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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