푯대를 향하여 뭐라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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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 사도신경(천천히)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85장
하나님의 말씀 빌립보서 3:12-16절 교독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그리스도께서 먼저 붙잡아 주신 우리(12-14)
그리스도께서 먼저 붙잡아 주신 우리(12-14)
빌립보서 말씀으로 계속 나누는 중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기도의 사명을 맡기셨고, 또 그리스도 예수의 겸손과 사랑으로 하나되는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 길을 지치지 않고 완주할 수 있는 비결을 소개해줍니다.
먼저 12절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되었다”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잡혔다는 표현은 좀 더 강한 뜻으로 바울이 사울일 적에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예수님께 체포되었다’는 표현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체포되어 그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며, 그 다음 주의 사도로 징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주께 선택받고, 사랑의 대상이 된 사건인 것이며, 구원의 시작이었고, 사도로서의 사명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바울은 이제는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잡기 위해 달려간다는 고백이 12절입니다.
주님께서 먼저 바울을 붙잡는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바울도 역시 그리스도를 붙잡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죠. 저희가 언제 먼저 주님을 찾았고, 주님을 붙잡았나요? 주님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먼저 우리를 붙잡아 주셨기에, 구원을 받았고, 비로소 저희도 주님을 붙잡을 수 있게 되었죠.
그러나 이 붙잡음의 행동은 결코 끝나지 않았고 현재진행형이기에, 바울은 여전히 예수를 붙잡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달려간다고 고백합니다. 저희도 예수님을 알지만, 아직 온전히 알지 못하고, 온전히 취하지도 못했습니다. 이는 구원은 이미 이루어졌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죠.
바울이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유는 당시 이미 구원이 완성되었고, 끝났다고 주장하는 완전주의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오늘날의 구원파의 주장처럼 말이죠. 이미 구원받았으니, 자만하여, 회개도, 성화도 필요없다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의 구원을 대하는 태도는 자만심과 우월감이 아니라, “두렵고 떨림”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구원의 삶을 마치 단거리 달리기 선수가 자기 몸을 앞으로 쭉 내밀고, 두 눈은 오직 저 멀리, 아직 다다르지 못한 결승선인, 그리스도라는 푯대만을 바라보며 전력으로 쉬지않고 달리는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달리기 선수는 뒤돌아봐서는 안 됩니다. 오직 앞만 보고 달리기에도 부족하죠. 그래서 바울은 뒤에 있는 것들, 즉 자신이 과거 유대교에 있을 때, 가졌던 것들, 성취한 것들, 그리고 심지어 교회를 핍박한 모든 죄악까지도 모두 버렸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과거의 성취에 연연하며 자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먼 과거에 받은 은혜 하나로만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대로 과거의 실패나 죄에 대한 애석함과 죄책감에 짓눌려 있어 마음이 병들고, 믿음이 뒤틀려, 건강한 성화의 길을 가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뒤를 보며 달리는 자와 같습니다. 넘어지기 십상이죠.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과거의 것은 다 잊어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가 쓸 데 없다는 말이 아니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에” 과거의 성공도, 처절한 실패와 큰 죄악도 이제 그리스도를 향한 구원의 여정에 있어서 유의미하지 않다는 것이죠.
바울도 과거 교회와 성도를 핍박하고 죽인 것이 마음에 큰 걸림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 죄악을 용서하시고, 잊어주셨기에, 그리스도께서 먼저 사랑으로 붙잡아 주셨기에, 바울도 그 죄악을 잊고, 그리스도를 붙잡고 부름의 상을 위하여 감사함으로 열심히 달려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나에게 어떤 과거와 실패가 있을지라도 이미 저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씻어주시고, 저희를 강권적으로 붙잡아주셨기 때문에, 이제 저희도 담대히 그리스도를 붙잡기 위해 푯대를 향하여 최선을 다해 달려가야할 사명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성화의 삶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15-16)
성화의 삶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15-16)
다음으로 15절에서는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이라고 말하는데, 12절에서는 온전히 이루지 못했다고 해놓고, 15절에서는 온전히 이룬 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12절에서는 “아직” 구원이 완성되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말한 것이고, 15절에서는 “이미” 구원이 이루어졌음에 강조점을 두고 말하는 차이입니다.
즉 예수님께 붙잡힌 바 된 거룩한 성도는 아직 불완전하지만, 마지막 때를 생각할 때 이미 온전히 이룬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온전하게 된 성도들의 아주 중요한 특징이 나오는데, 15절에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라는 표현입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이냐면, 우리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혹은 잘못된 생각이나 선택을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런 성도들을 올바르게 깨우쳐 주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저희는 항상 고백하기를, 하나님께서 다 이루신다고 하죠. 그러나 어떻습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법입니다. 저희가 이렇게 기도하지 않았고, 또 전도하지 않았고, 청년들을 세우지 않았다면, 교육부서가 일어났겠습니까? 결과적으로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셨다고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지만, 그 과정과정마다 저희를 인도하시고, 보내시고, 사용하신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푯대를 향해서 열심히 달려가는 동시에, 그렇게 나아가는 성도의 삶의 적극적으로 개입하셔서 올바르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또한 믿어야 할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항상 같이 가야하는 것이죠. 그저 앞뒤없이 달리기만 하면, 저희의 의만 드러날 것이고, 믿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말뿐인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저희는 “뭐라도 해야” 합니다.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나 저희 교회로 치면, 시골 교회라서 안 돼, 전도해봤자 누가 여기를 오겠어. 사람이 없어서 안 돼 등의 부정적인 생각으로 마치 한 달란트 받은 자처럼 저희에게 주어진 것을 사용하지 않고, 땅에 묻어둔다면 불의한 종이라는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족하지만, 연약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거룩한 성도들이 모여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될 때, 실수하고 부족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일들을 바르게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뭐라도 계속해야 합니다. 믿음의 도전, 믿음의 실패를 계속해야 합니다.
기도할 줄 몰라도 계속 함께 기도하고요. 또 저희 담임목사님께서 부임하시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강조하고 행하시는 것이 뭡니까? 전도입니다. 사람이 많이 오지 않더라도 새생명초청축제도 하시고, 장날에 나가서 함께 전도지를 전달하고, 매주 동네마다 칼갈이 봉사도 나갑니다.
항상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런 행위들이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서가 아니라, 아무 열매가 없어 보여도 하나님께 그 열심과 헌신으로써 마음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새로운 열매들을 맺게 해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희가 다 이 말씀의 참 증인이 아닙니까?
그러니 저희 함께 믿음의 경주, 믿음의 도전들을 계속합시다. 한번에 잘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을 믿고 일단 해보는 겁니다. 그렇게 저희 교회는 임마누엘 센터도 세웠고, 이제 미얀마 선교도 가고, 또 전도하고, 기도하고, 봉사하고 계속 합니다.
최종적으로 16절 말씀에서처럼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즉 우리 각자가 믿음의 경주에서 어느 지점에 도달했든지, 그 지점에서 남들과 비교하거나 뒷걸음질치거나 방황하지 말고, 자신의 수준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그 길을 따라 그대로 행하여 푯대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옆 사람과 비교하지 맙시다. 1년 전, 10년 전의 나와도 비교하지도 맙시다. 중요한 것은 오늘 내가 서 있는 이 믿음의 자리에서, 그리스도께서 나를 붙드심을 믿고, 단 한 걸음이라도 푯대를 향해 내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완벽함이 아니라, 그 믿음의 한 걸음을 기뻐 받으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주님을 알기 이전에 먼저 저희를 강권적으로 붙잡아 주시고, 자녀 삼아주시니 그 크신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는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닌, 여전히 넘어지고 부족한 자들임을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이제 저희가 과거의 성공이나 실패에 얽매였던 것을 모두 뒤로하고, 오직 푯대이신 그리스도를 향하여 힘껏 달려가는 믿음의 용기를 주시옵소서. 저희가 부족하여 잘못된 길로 갈지라도, 친히 저희의 삶에 개입하여 바른길로 인도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믿음의 도전을 멈추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도님들의 가정을 위해 기도합니다. 각 가정이 세상의 가치관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라는 푯대를 향해 함께 달려가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잠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자녀들이 있다면, 주님께서 친히 붙잡아 주시는 은혜로 다시 믿음의 자리로 돌아오게 하소서.
우리 교회가 서로의 성취를 비교하며 낙심하는 곳이 아니라, 함께 푯대를 향해 격려하며 달려가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를 통해, 우리 아이들과 청년들이 세상의 헛된 것을 뒤로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푯대로 삼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육신의 연약함으로 경주를 잠시 멈춘 듯한 성도님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질병이라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치유의 주님을 푯대 삼아 소망을 품게 하시고, 특별히 담임목사님을 강한 팔로 붙잡아 주사 온전히 회복되어 저희와 함께 힘차게 달려가게 하여 주옵소서.
땅끝에서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선교사님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낯선 땅에서 헌신하는 그들에게 하늘의 위로를 더하시고, 특별히 핍박받는 미얀마 교회가 고난 속에서도 푯대이신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곳곳에서 전쟁과 기근과 환난이 일어나고 있는 어지러운 이 세계를 평안으로 다스려주시고, 주님이 붙들어주셨던 우리나라도 강하게 붙들어주셔서, 주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쓰임받는 귀한 나라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 저희가 머물러 있는 각자의 자리에서 비교하며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우리를 붙드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믿음의 한 걸음을 내딛는 복된 날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푯대요 상급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천천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