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다와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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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매 순간 선택하는 삶이다. 복음이 우리 인생의 우선 순위다. 먼저, 복음 앞에 서기를 선택하는 삶을 살다.

Notes
Transcript
서론
할렐루야!……..아멘?
많은 분들이 오후 예배를 드리시지 않고 가시는데, 이렇게 오후 예배까지 드리시는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예배를 사모해서, 또 말씀을 사모해서 남으신 줄 믿습니다.
우리 안에 이런 사모함은 있지만, 사실 오후 예배가 쉽지는 않습니다.
항상 이 시간이면 우리를 엄습해오는 식곤증이 있기 때문이죠.
장사도 졸음은 못 이긴다는데, 이 시간에 미리 예방을 좀 하고 말씀을 시작할까 합니다.
여러분, 졸음이 우리 몸 어디서부터 시작될까요?
우리의 머립니다. 그래서, 한 번 이렇게 해 보십시오. 머리 마사지…..
그리고, 졸음이 오면 가장 먼저 반응하는 곳이 어디죠? 눈입니다.
졸음은 눈을 자동으로 감기게 하죠… 그래서 또 이렇게 해 보십시오.
눈을 가볍게 마사지 해 줍니다. 그리고, 눈 가도 마사지를 해 주시고,
그리고, 뒷목도 마시지 해 주시면 좋습니다.
자…또 말씀을 잘 들어야 하니까요…
귀를 마사지 하겠습니다. 이렇게 귀를 댕겨 주세요.
어떠십니까? 식곤증이 다 사라졌습니까?
이제 마지막으로 제가 선포하겠습니다.
이 시간에 말씀을 못 듣게 하고, 예배를 방해하는 식곤증과 졸음아! 예수 이름 앞에 떠나갈 지어다! 아멘!
할레루야! 이제 말씀을 시작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누가복음 10장 38절에서 42절까지입니다. 
함께 본문을 읽겠습니다.
누가복음 10:38–42 NKRV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오늘 누가복음  본문의 이야기는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가, 어느 한 마을에 들어가시면서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 마을 이름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성경에 나오는 힌트를 통해, 이 마을의 이름이 베다니 마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베다니 마을에는요…..예수님의 친구가 한 명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잠깐 퀴즈를 낼까요?
베다니에 사는 예수님의 친구가 누군지 아시는 분?
힌트를 드릴까요?  이 사람에게는 누이가 두 명 있습니다.
그럼, 결정적인 힌트…그 두 명의 누이가 바로 오늘 말씀에 나오는 두 여인입니다.
누구죠?………마르다와 마리아가 누이인 사람……네……맞습니다. “나사로”
요한복음 11장 11절 말씀인데요.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1장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여기서,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가리켜 “우리 친구”라고 부르시죠.
여러분, 예수님에게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 모르셨죠?
그런데, 여러분….예수님은 생각보다 친구가 많으신 분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15:14–15 NKRV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예수님은 자신이 명하는 대로 행하면 그가 곧 나의 친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뜻 대로 행하며 살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도 예수님의 친구가 됩니다. 아멘?
다시, 본문 이야기로 돌아가서요.
예수님은 베다니라는 마을에 사는 친구, 나사로의 집에 들르신 겁니다.
오늘 이야기에는 나사로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오늘 이야기에는 그의 두 누이인 마르다와 마리아만 등장하죠.
예수님이 지금, 어디를 향해 가시는 중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지나 가시는 길에 친구의 집을 들리시게 됩니다.
여러분, 아시는 모르겠지만, 유대 문화는 요손님 접대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홥니다.
모르는 사람이 지나 다가 잠시 쉬어 가더라도, 유대인들은 그 손님을 아주 극진하게 모시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주 좋은 문화죠….
우리 나라도 손님 접대를 귀하게 여기긴 하지만, 유대인들 만큼은 못합니다.
유대에서는요….어떤 손님이든, 집 안에서 가장 비싸고 좋은 음식으로 그 사람을 대접했습니다.
모르는 사람도 극진하게 모시는데, 가족의 친구라면 더더욱 극진하게 모시겠죠.
그래서, 마르다는 아마도, 예수님을 위해 성대한 식사 준비를 했을 겁니다.
자,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죠.
예수님이  평소에 혼자 다니셨을까요?
아니죠? 예수님은 항상 제자들과 함께 다니셨습니다.
예수님은 홀로 기도하는 시간만 빼고는 늘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셨어요.
그렇다면, 마르다가 준비해야 하는 식사는 몇 인분일까요?
적어도 13인분….예수님의 제자가 열 두명이니까…
그런데, 어쩌면요, 그 숫자가 더 될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 이야기가 나오는 누가복음 10장의  첫 장면을 보면, 예수님이 70명의 제자들을 전도로 파송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이들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예수님의 또 다른 제자들입니다.
열 두명은 성경에 이름이 나오는 공식적인 제자들이었고요.
아마도 예수님 주변에는 비공식적인 제자들도 많이 있었던 거죠.
공시적인 제자와 비공식적인 제자들까지…예수님은 많은 무리들을 몰고 다니셨을 겁니다.
어쨋든…..마르다는 상당히 많은 양의 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여기서, 예수님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많은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면서, 끼니 때마다 다 먹이셨을 거 아녜요.
여러분, 한 사람만 데리고 다녀도요….내가 쓸 돈의 두 배는 들어갑니다. 그렇죠…밥 값만 두배 아닙니까?
밥 값만 듭니까? 까페도 가고, 야식도 시켜 먹고….
그런데, 열 두명이나 데리고 다니셨으니……
제 생각엔 제자들이 엄청 잘 먹었을 것 같은데…제자들 데리고 다니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아요.
예수님이 재벌 집 아들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물론, 하나님은 재벌이시지만…. 어쨋든 이 땅에서는 목수의 아들로 사셔야 헸거든요.
아마도, 제자들은 예수님 따라 다니면서, 정말 많은 은혜를 경험하지 않았을까.
그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 따라 다니면서, 굶지 않고, 때마나 채우시고 먹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않았을까.
여러분, 사실 은혜라는게 다른 게 아닙니다. 
우리가 잘 먹고 사는 거, 굶지 않는 거, 그게 정말 큰 은혜거든요.
오늘도, 교회에서도 맛있는 점심을 먹은 거….이게 은혭니다.
이렇게 점심 잘 나오는 교회 다니는 거….여러분 은혭니다. 할렐루야!
네…이야기가 잠깐 삼천포로 빠졌는데요…
자, 우리가 마르다의 입장에서 한 번, 상상해 볼까 합니다.
여러분의 집에 갑자기 열 명이 넘는 손님들이 오셨다고 해보죠.
저희 집 같은 경우에는 전기 밥솥이 4-5인분 용이예요. 
그렇다면, 전기 밥솥으로 밥을 세 번은 해야 됩니다. 아니며, 어디서 큰 밥솥이라도 빌려 와야겠죠.
어쨋든 밥만 준비하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국도 큰 솥이 필요하겠죠.
또 중요한 건 메인 요립니다. 예수님을 극진히 대접할 메인 요리라…..어떤게 떠오르십니까?
LA 갈비? 갈비찜, 해물찜, 아니면 닭복음탕?
요즘처럼, 새벽 배송이나 근처 마트에서 좋은 식재료를 쉽게 구하는 시대에도 메인 요리는 준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죠?
하물며, 2천년전이라면…. 갑자기 푸짐한 음식을 준비하는 게 쉽지 않겠죠?
그 때는 냉장고도 없고, 전자렌지, 가스렌지도 없던 시절입니다.
뭐…유대 음식이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긴 하겠지만, 
어쨋든, 그 나라도 메인 요리가 있으면, 사이드 메뉴들이 있겠죠…우리나라 밑 반찬같은….
그 음식들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하고, 또 요리할 불을 지피고, 이런게 보통 일이겠습니까?
그것도, 한 두명도 아니고요…..몇 명이요?   최소 십 삼인분….
자, 마르다와 마리아는 이 상황을 과연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0:38–40 NKRV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재미있게도, 이 상황에서 마르다와 마리아는 서로 다르게 대처를 합니다.
먼저, 마르다를 볼까요?
40절에,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라고 나옵니다.
마르다는 이 상황을 분주하게 준비했습니다.
앞서 살펴본 상황 그대로, 많은 손님들의 식사를 차리려면 준비할 게 많았죠.
그래서, 마르다는 마음이 분주하고 바빴습니다.
그리고, 마르다는 마리아 때문에라도 마음이 더 초조하고 분주해졌을 겁니다.     
왜요?  왜냐하면….자기를 도와서 같이 저녁 준비를 해야 할 동생이 일은 내팽개치고 예수님 앞에 앉아 있기 때문이죠.  
오늘, 메인 요리는 뭘로 하나? 사이드 메뉴는 뭘로 하지?
그러면, 필요한 재료는 다 있나? 더 사와야 할 건 없나?
물 끓이고, 재료를 다듬고, 소스도 만들고….이것 저것 할 일은 많은데…. 보니까, 그걸 다 마르다 혼자서 하고 있는 거죠.
아니, 동생 마리아는 어디 간거야? 예는 같이 준비하지 않고 어딜 간거야?
하고 찾아 봤더니, 동생 마리아가 예수님 앞에 앉아 있네요?
자, 마르다는 참다 참다…결국 예수님께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40절 말씀이죠.
누가복음 10:38–40 NKRV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여러분, 지금 마르다의 마음이 어떤 것 같습니까?
마음이 상한 것 같지 않습니까?  화가  좀 난 것 같지 않습니까?
누구 때문에? 동생 마리아 때문에….그리고, 또 누구 때문에?……예수님 때문에…
마르다의 말 속에는요. 도와주지 않는 마리아도 문제지만,
그런 마리아를 그냥 내버려 두고 있는 예수님도 문제라고…..말하고 있습니다.
마르다가 예수님께 한 말을 좀 더 적나라하게 바꿔서 말하면, 이런 말이 되는 거죠.
“예수님, 지금 생각이 있으신 겁니까? 나 혼자 일하잖아요……마리아에게 나를 도와주라고 말해 주세요”
여러분이 마르다라면 어떻겠습니까?
마르다의 심정이 이해가 되시나요?
저는 이해가 됩니다.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하는 시급한 일이 있는데, 혼자 하기엔 벅찬 일인데….
같이 일 할 사람은 그 일에는 관심도 없고요
한가하게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다면…….
저라도 화가 났을 것 같습니다.
자, 그런데…이런 마르다의 말에 예수님은 어떻게 답변하셨나요?
41절입니다.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을 다른 버전의 성경으로 한 번 보겠습니다.
우리말 성경입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정신이 없구나.  그러나 꼭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것을 선택했으니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의 답변을 보면, 예수님은 마르다를 책망하시기보다는, 그녀의 '염려'와 '분주함'을 지적하십니다. 
예수님이 지적하시는 마르다의 문제는 일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일로 인해 '염려'하고 '정신이 없는' 상태가 된 것……그것을 지적하고 계시죠. 
여러분, 예수님을 위해 음식을 준비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입니까?
하지만, 아무리 귀하고 복된 일이라 해도, 그 일을 염려하면서 정신이 없이 한다면, 그것은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이 됩니다.
왜냐하면, 염려와 분주함은 우리를 본질에서 벗어나게 하고,…… 다른 것에 얽매이게 하기 때문이죠.
지금, 마르다의 본질은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예수님을 기쁘게 하고,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되야 합니다.
그런데 그 본질이 바꼈어요.
마르다는 지금 자기가 힘 들어 하는 것에 매이고, 또 그 일을 해내야 한다는 것에 매여 있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며 해야 하는 일이, 자신을 생각하며, 또 상황만 생각하며 하는 일이 되버린 거죠.
그래서, 그렇게 본질이 바뀌니까….마르다의 마음에 불평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그 불평이 원망이 됩니다.
마르다는 동생 마리아를 원망하게 되고, 급기야…예수님까지 원망하게 됩니다.
사실, 이런 일은 교회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죠.
특별히 주방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식사를 준비하는 일, 정리하고 설거지 하는일, 이 일들의 본질은 교인들을 섬기고 교인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죠. 그리고 나아가서는 이것이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에게 이 일들을 염려하고 근심하며 분주한 마음으로 하는 순간이 찾아 오죠.
그때, 이 일의 본질이 바뀌게 됩니다.
주님이 보이지 않고, 나만 보이게 되고, 상황만 보이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오늘 마르다와 같은 불평과 원망이 우리 마음에 생겨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의 이 문제를 지적하시면서, 한 가지 해결책을 제시해 주십니다.
어떤 해결책이죠?
그러나 꼭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것을 선택했으니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 인생이란 늘 선택의 기로에 서는 것이 인생입니다.
한 가지를 선택하면, 나머지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생각하죠. 이것도 선택하고 저것도 선택하면 되잖아….라고요
이 말이 맞는 것 같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요….이 말은 틀린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며 살기 때문입니다.
똑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두 가지를 한 꺼번에 선택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지금, 바나나와 딸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바나나도 먹고, 딸기도 먹고….둘 다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여러분….둘 다 먹긴 하지만, 바나나를 먹는 동안 딸기를 먹을 수 있습니까?
결국, 둘 중에 하나를 먼저 먹고, 하나는 나중에 먹게 됩니다. 
바나나와 딸기를 먹을 때도 둘 중에 우선 순위가 정해진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 하겠죠…
바나나와 딸기를 동시에 먹으면 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우리는 순순한 바나나 맛과 순수한 딸기 맛을 맛볼수 있나요?
없습니다.
바나나에 딸기가 섞인 맛을 맛보는거죠..
무슨 말입니까?
바나나만 먹어야 바나나 맛을 제대로 맛 볼 수 있습니다.
결국, 한 가지를 제대로 누리려면, 그 순간에 반드시 한 가지만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여러분, 결혼은 어떻습니까?
결혼할 때, 이 사람도 선택하고 저 사람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불가능하죠.
요즘은 여러번 결혼하는 사람이 많아지긴 해지만,
그래도 한 번의 결혼은 한 사람과만 하죠.
이처럼, 인생은 본질적으로 한 순간에 한 가지를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오후 예배를 선택하면서, 사실, 이 시간에 누릴 수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하신 겁니다.
어떤 사람은 오후 예배를 포기하고, 집에서 tv 보는 것을 선택한 사람도 있죠.
또 어떤 사람은 오후 예배를 포기하고, 근사한 곳에 놀러간 사람도 있습니다.
아…이것은 우리 교인들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우리 교회 말고…다른 교회 이야깁니다.
우리 교회분들은 다 사정이 있어서 오후 예배를 못 드리신 거죠…
몸이 아프서 가시거나,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또 누굴 도와줘야 해서 빠지신 겁니다.
이처럼, 한 순간에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인생인데요…
여기서, 예수님은 마리아가 좋은 것을 선택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마리아가 선택한 좋은 것….
이 좋은 것이 무얼까요?
여기서 좋은 것을.....헬라어 원어로 보면, 단순히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최고의 것', '가장 귀한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마리아가 무얼 선택했길래, 예수님이 그것을 최고의 것, 가장 귀한 것이라고 하셨을까요?
38절 말씀 다시 볼까요?
누가복음 10:38–40 NKRV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모습은 사실, 유대 문화에서는 파격적인 장면입니다.
왜냐하면, 유대 문화에서는요 여자들이 랍비의 발치에 앉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랍비의 말씀을 들을 수 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오직 남자들에게만 허용된 것이었죠.
보통, 랍비들 주변에는 랍비의 제자들이 모였고요. 랍비는 그 제자들에게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유대 회당에는 남자들만 들어갈 수 있었죠.
랍비의 제자는 남자들만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도 다 남자 아닙니까?
그래서…이 장면은 정말 파격적인 장면입니다.
그 당시 유대 문화를 완전히 거스르는 것이죠.
그런데, 누가복음에는요…. 이런 파격적인 장면들이 여러번 나옵니다.
사실, 랍비 앞에 나갈 수 없는 건, 여자만이 아니라, 이방인과 사마리아인, 부정한 병에 걸린 사람들도 랍비 앞에 감히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그것이 가능한 랍비가 있었죠. 누굴까요? 바로 예수님이죠.
여러분,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남자나 여자나 주인이나 종이나, 혹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을 초청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선택한 좋은 것은 바로 복음 앞에 나아가는 것이었죠.
예수님과 함께 하고, 그분의 말씀 가운데 거하는 것. 복음 앞에 나아가는 것.
이것이 마리아가 선택한 좋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선택한 이 좋은 것을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은 이것이 영원한 가치를 지닌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복음은 영원한 가치를 지닙니다.
복음은 복된 소식이죠.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셨다는 소식, 그분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소식. 그 복된 소식이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으로 우리에게 오시고, 그 복음으로 우리를 가르치시는 예수님,
우리는 인생의 모든 순간에 이 복음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복음 앞에 나아가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마리아는 이 복음 앞에 나아가는 선택을 했죠.
여러분도 오늘, 복음 앞에 나아가기 위해 오후 예배를 선택하신 줄 믿습니다.
여러분, 그런데…오늘 말씀에서 이런 오해를 하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복음 앞에 나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니까…. 교회 봉사하는 것, 차량 운행, 교회 청소, 식사 준비, 설거지,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구나….예배만 열심히 드리면 되는 구나…
이러시면 안 됩니다.
가장 좋은 것이 그 다음으로 좋은 것들, 나머지 좋은 것들을 다 무시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선 순위의 문젭니다.
복음 앞에 나아가는 것을 우선 순위에 두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면서 우선 순위 1번만 하고 삽니까? 그것만 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 앞에 나아가는 것…이것을 가장 먼저 하고, 나머지는 그 이후에 하라는 겁니다.
우리는 먼저, 복음 앞에 나아간 후에….그리고 봉사도 해야 합니다.
여러분, 마르다의 이름의 뜻을 아십니까?
재미있게도 마르다라는 이름의 뜻이요…’아씨’, ‘여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복음 앞에 나아가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가 주인됨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주인되기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마르다가 염려와 근심으로 분주하게 된 것은, 곧 자신이 주인이 되어서 그 일을 했기 때문이죠.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주인 됨을 내려놓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주인됨을 내려 놓고, 복음 앞에 나아가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 듣는 것을 사모하고 
그것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러분….이제는 인생에서 자꾸 무얼 할까? 고민하지 마십시오.
그 보다는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생각하십시오.
우리 인생에서 복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구원 받기 위해서 자꾸 무언가를 하려고 합니다.
열심히 무언가 의로운 일을 해서 구원을 얻어내려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열심히 무얼 해내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요….우리가 그분의 발치에 앉아 있기를 가장 원하십니다.
그분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것, 복음을 듣는 것…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고요.
그리고 그것을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결말이 어떻게 됐을까요?
마르다는 예수님이 하신 이 말을 듣고 어떻게 했을까요?
마리아 없이 홀로 기쁜 마음으로 식사를 준비했을까요?
제 생각엔….마르다도 즉시로, 예수님의 발치에 앉았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잖아요.
그럼, 식사는 어떻게 됐을까요?
예수님이 눈치껏 말씀을 빨리 끝내시고, 마리아와 마르다를 식사 준비하게 보내셨을까요?
아님, 배달 음식 시키고, 계속 말씀 하셨을까요?
제 생각엔…. 하실 말씀을 다 하시고, 예수님과 제자들이 식사 준비를 같이 도와 주지 않았을까…
참 파격적이죠…..그런데, 예수님이  성경에서 파격적인 일을 워낙 많이 하신 분이라…
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모든 순간에 먼저 복음을 선택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복음 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복음이 되시는 예수님 앞에 나아가기를 사모하십시오.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십시오.
그것이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일이고요.
이것은 그 누구도 뺏을 수 없는 복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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