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만을 의지한다는 것(렘29:11-14)

예레미야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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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5년 7월 13일 주일 청년부
제목 : 주님만을 의지한다는 것
본문 : 예레미야 29:11-14
1. 절망에 놓인 포로를 향한 두 메세지
1) ‘2년 뒤 제자리’의 하나냐 vs ’70년 포로’의 예레미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 예레미야는 선지서 중 한 권이죠. 그리고 이 선지서는 본문의 내용보다 먼저 배경을 바로 이해해야,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메세지를 더 풍성히 발견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우리 삶에 더 가까이 적용해 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배경을 이야기 해봅시다. 유다의 말기, 이들은 점차 힘이 사라졌습니다. 반면 주변국인 바벨론은 점차 강해지고 있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바벨론은 여러 차례 유다의 백성들을 포로 삼게 됩니다.
포로된 이들 중에는 높은 권력을 지닌 자들도 있었습니다. 또 이들 중에는 뛰어난 학문과 지혜를 가진 자들도 있었죠. 그런 이들을 모아 노예를 삼고, 종으로 부리니 이들 입장에서는 너무나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선지자 하나냐가 포로된 이들 앞에 나타나 ‘2년 안에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 말하죠. 즉 포로된 이들에게 자유의 메세지, 희망의 메세지를 선포합니다.
반대로 예레미야는 이들에게 ‘아직 너희의 포로됨은 70년이나 남았다.’ 라고 말을 합니다. 하나냐의 메세지를 들은 이들에게 예레미야의 메세지는 훨씬 더 절망적으로 들렸을 겁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포로된 자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라면 어떤 선지자의 메세지가 더 현실적으로 귀 기울여 지겠습니까? 만약 여러분들이 삶의 고난과 미래에 대한 막막함 속에 있을 때, 어떤 메세지가 더 여러분들에게 힘이 되고, 여러분들에게 소망이 될 수 있겠습니까?
2) ‘2년 뒤 제자리’를 택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나, 그것이 반드시 진리는 아니다.
최근 우리 부목사님들과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설교 피드백을 받을 때, 주로 어떤 스타일의 피드백을 더 선호하는가?’ 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저는 생각보다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를 포함한 우리 부목사님들 모두, ‘이건 이렇게 했어야 하고, 저건 저렇게 했어야지.’ 라는 직설적인 피드백 보다는, ‘설교 좋더라. 잘 하더라. 은혜롭더라.’ 라는 칭찬과 격려의 피드백을 더 선호한다는 겁니다.
이 결과가 의외라고 느낀 이유는 여러분들을 담당하고 있는 김기락 목사님 때문이었어요. 이분은요, 사모님이 ‘극T락’이라고 부를만큼, MBTI 중 T가 상당히 높습니다. 즉, 피드백도 이성적인 피드백보다 근거와 논리에 기준삼아 하는 피드백을 더 선호할 것만 같았어요.
그러나 오히려 그런 피드백보단 칭찬과 격려의 피드백을 더 선호한다고 하니, 의외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사람이라면, T나 F나, 객관적인 사람이나 주관적인 사람이나 결국 절망적인 메세지보단 희망적인 메세지에 더 귀 기울일 수 밖에 없구나. 사람은 그런 존재구나.’ 라고 말입니다.
다시 본문의 배경으로 돌아와 볼까요? 여러분, 포로되어 절망에 놓인 이들이 ‘2년 안에 제자리로 돌아가게 될 거라’ 말하는 하나냐의 메세지와 ‘70년은 더 포로의 삶을 살아야 한다’ 말하는 예레미야의 메세지 중 어떤 메세지에 더 귀 기울이겠습니까? 
마음같아선 예레미야보다 하나냐의 메세지를 더 붙들고 싶은게 우리의 본심 아닙니까? 그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어쩌면 하나냐의 메세지를 더 듣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 아닐까요?
2. 절망 속에 심어진 희망
1) 당신의 인생은 평안하십니까?
포로된 유다 백성들도 하나냐의 메세지를 더 듣고 싶었을 거에요. 그런데 하나냐, 어떻게 됩니까? 거짓 메세지를 선포한 이 거짓 선지자는 끝내 하나님의 예언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요.
그럼 이제 포로들에게 남은 메세지는 무엇입니까? 절망적이게도 '2년 뒤 제자리’가 아니라 ‘70년 포로 생활’이에요.
여러분, 우리의 삶이 포로의 삶만큼 절망적이지 않고, 또 포로된 자들의 고통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여러분, 여러분들의 삶은 정말 평안하십니까?
우리 한 번 솔직해져봅시다. 우리 정말 인생 멋지게 살아내려고 열심히 살았잖아요. 그쵸? 직장에서도 하나님 욕 보이지 않으려고 우리 정말 성실히 살아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우리에게 주어진 결과가 뭐에요? 어쩌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을 살아내고 있지는 않나요? 어쩌면 가정의 상처로, 그 상처는 아물지도 않았는데 그저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쩌면 내 신앙이 곤두박질 치고 있는데, 그저 아무렇지 않은 척. ‘이만하면 됐지. 이만하면 할만큼 했지.’ 생각하며 겨우 겨우 그 신앙 유지하며 살아내고 있는게 우리 아닙니까? 생각해봅시다. 이게 평안입니까? 이건 절망 아닙니까?
2) 당신의 절망은 평안입니다. 미래입니다. 희망입니다.
그런 절망 가운데 놓인 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세요. 11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여러분, 포로로 죽지 못해 살아내고 있는 이들에게 ‘너희들의 삶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야.’ 라고 말하면, 이 말에 아멘이 쉽게 나올 수 있을까요? ‘오 주님, 지금 제 삶이 너무나 평안합니다.’ 라고 고백이 나오겠냐는거에요?
심지어, 직전에 이들의 포로됨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 말해줘요. 7절a,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지금 나는 고통스러워 미칠 것 같은데, 포로된 게 하나님의 뜻이래요. 덧붙여 그 삶이 ‘평안’이고 ‘미래’고 ‘희망’이래요.
3) 희망은 절망을 이기게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절망과 고난은 평안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고통은 희망입니다. 이 말에 위로가 되십니까? 도대체 왜 하나님은 이미 고통 가운데 놓인 이들을 향해 그것이 미래고 희망이라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절망 중에 있는 이들이 더이상 낙담하는 대신 희망을 붙들길 소망하셨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절망 가운데 희망은 정말 중요합니다. 희망은요, 무너진 삶을 다시 일어서게 하고, 어둠 가운데 빛을 보게해요.
이 희망이 얼마나 중요하냐면요. 미국에 한 의사 이야기 입니다. 이 의사는 아무리 치료를 해도 암환자의 회복 성공률이 22%를 넘지 못하는 거에요. 그런데, 자신의 동료의사이자 친구는, 자신과 똑같은 약처방, 똑같은 방법을 사용하는데 회복 성공률이 무려 74%나 됩니다.
그래서 이 의사가 친구에게 물어요. “나는 너랑 똑같은 약을 처방하고, 똑같은 방법을 사용하는데, 어떻게 너는 암환자 치료 성공률이 74%나 되는거야?”
이 질문에 친구가 답해요. “너는 암환자에게 이 약을 먹으면 아마도 살 수도 있을거란 절망적인 진단을 주었지만, 난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었어. 우리가 처방하는 복합 항암제, ‘epoh’를 난 그들에게 주며, 거꾸로 읽어주었지. ‘Hope’. 소망이라고 말이야.”
이 일화는 서로의 능력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에 놓인 이들에게 희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게 합니다. 여러분, 절망 가운데 계십니까? 하나님 말씀의 희망을 품으십시오. 희망은 절망을 반드시 이기게 합니다.
3. 고난 중 주님만을 의지한다는 것
1) 고난 중 희망을 품는 방법 : 1. 기도가 살아나야 합니다.
그럼 우리는 고난 중 어떻게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요? 12절 입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고난 중 희망을 품는 방법. 첫번째, 기도가 살아나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선지자로 부름받아 정말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메세지를 이들에게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선포를 이들이 듣지 않아요. 회개해야 한다고, 돌이키지 않으면 심판이 임할 것이라 말하는데, 아무도 안듣는 거에요. 예레미야 입장에선 굉장히 힘이 빠질만한 상황 아닙니까?
그런데 여러분, 힘이 빠지더라도 잘 빠져야 해요. 예레미야가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안나오니까 하나님한테 불평, 불만 섞인 기도를 무려 6번이나 해요. 하나님을 의심해요. 또 하나님을 원망하고 저주하기도 해요.
여러분, 기도에 생기가 사라지면 아무리 기도해도 힘이 안나요. 아무리 기도해도 은혜가 안되요. 불평과 불만만 가득한 기도는 계속해서 우리를 절망 안에 허우적 거리게 해요.
예레미야가 불만을 담아 여섯 번 기도하는 동안 환경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예레미야는 기도하면서 불만이 점점 커질 수 밖에 없는 마음밭이었다는 거에요.
그런데 예레미야의 기도가 살아나니까 어떤 변화가 일어납니까? 여전히 환경은 그대론데요, 기도를 통해 예레미야가 ‘참된 나’를 발견하게 되요. ‘아, 나는 정말 연약한 존재구나. 나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존재구나. 이 고난을 이겨내는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실 일이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요.
윌리엄 필립의 ‘왜 기도하는가’ 라는 책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기도하면 바뀐다’ 이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왜 위험한가? 하나님의 선택권, 즉 하나님의 주도권을 배제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에 대한 인식이 ‘기도하면 바뀐다’에서 ‘기도는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하는 것이다’라고 바뀔 때 온전한 기도가 된다.”고 말해요. 기도가 살아나면 내가 바뀌어요. 하나님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님을 비로소 고백하게 되요.
2) 고난 중 희망을 품는 방법 : 2. 교제가 살아나야 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고난 중 희망을 품는 두번째 방법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제가 살아난다는 겁니다. 
예레미야 1장엔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모태에 짓기 전에 알았고, 나오기 전에 성별하였고,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부르시기를 이미 결정하셨습니다. 즉 예레미야의 인생은 이미 태초에 결정된 거에요.
그런데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포로된 백성들이 회개하지 않고, 주변의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 15장에 와선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원망’하며 인생을 허망해 하는 예레미야를 보게 되요.
이미 원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어찌 예레미야는 점점 원대한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 걸까요? 그건 바로 예레미야가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어서 점점 무더졌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나 오늘 본문 속 예레미야는 다릅니다. 13절 입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이젠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됐어요. 다시 말해, 상황이 변하지 않아도 이젠 하나님이 행하실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겁니다.
여러분 명심하십쇼. 하나님과의 교제가 살아나 내 안에 그리스도가 점점 커질 때, 두려움은 점점 작아질 것입니다.
4. 정리하며
사랑하는 청년,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성도 여러분. 고난 중 희망을 선포하신 주님만 의지해 나아가는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무엇보다 새벽이슬과 같은 우리 청년들, 이번주 금요일부터 3일간 정선에 위치한 덕천교회로 국내선교를 다녀옵니다. 모두의 바램은 누구하나 다치지 않고 안전히 잘 다녀오는 것이겠지만, 개인적인 바램은 우리 청년들이 그 시간을 통해 ‘여러분들에게 변화’가 이뤄지는 시간이길 원해요.
이 변화는요, 다녀와서 더 열심히 봉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더 최선을 다해 사회에서 살아남으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 국내선교 다녀온다 해서 주변 환경이 바뀌진 않을 겁니다. 여전히 고난이고 억눌림의 시간들이겠지만, 기도가 살아나고, 교제가 회복되어 그 환경을 희망으로 바라보는 ‘내 변화’를 누리라는 겁니다.
바라옵기로는 기도가 살아나고, 교제가 회복되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걸어간 예레미야의 은혜가 이번 한 주, 그리고 정선에서의 국내선교 모든 일정 가운데 차고 넘쳐 흐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정말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결단찬양 : 1. 주만 의지해]
1. 절망적인 환경이 예배를 드린다 하여 극적으로 바뀌지 않을 때가 사실 더 많습니다. 또 기도한다해서 그 즉시 모든 문제가 해소되거나 정체된 신앙이 뚤리진 않습니다. 오히려 더 절망적일 수 있고, 더 막막해져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견디고 또 이겨낼 수 있음은 오직 ‘주님만 의지할 때’ 비로소 가능케 됩니다. 우리 이 시간 함께 결단합시다. 함께 선포합시다. 주님, 오직 주님만 의지하는 내가 되길 소원하오니, 나의 기도가 살아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 한 번 부르짖으며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며 나아갑시다.
2. 예레미야가 변화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결국 그가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갔다는 것’ 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레미야 뿐 아니라 수많은 이들이 역경 속에 하나님을 찾아갔음을 보게 됩니다. 요셉도 가족에게 버려지는 아픔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요나도, 베드로도, 사도 바울도 그렇게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아뢰었습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실 때,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 아뢰는 우리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작고 사소한 문제라 할지라도 그것조차도 하나님께 아뢰는 내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내가 되겠노라, 주님의 이름 한 번 부르짖으며 선포하며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결단찬양 : 2. 주만 의지해(후렴) +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후렴)]
3. 이번주 국내선교로 나아가는 우리 청년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길 소망합니다. 국내선교의 모든 시간이 결코 아름답진 않을 겁니다. 육체적으로도 힘들겠지만, 어쩌면 정신적으로도 힘든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라옵기로는, 그래서 이 시간 우리가 기도할 것은, 먼저 내 힘듬보다 ‘덕천리에 있는 한 영혼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우리 청년들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 청년들이 ‘물 떠온 하인의 은혜를 누려 세상을 바라보는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하여주시옵소서. 마지막으로 ‘3일간 모든 환경과 날씨, 안전까지도 하나님께 의탁하오니 가장 좋은 환경’을 주께서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이 시간 청년들의 국내선교를 위해 함께 주님의 이름 한 번 부르짖으며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고난 중에도 희망을 선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변함없는 사랑과
날마다 우리 삶 가운데 일하실 성령 하나님의 감동 감화 역사 임재 충만하심이
여전히 삶은 고난일지라도, 희망을 선포하신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길 소원한 자들과
삶의 변화를 누리고자 기도와 교제의 회복을 위해 삶을 결단하고 다짐한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과
이어진교회와 덕천교회 그리고 가정과 이 나라와 세계 열방 곳곳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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