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치는 절망의 바다 앞에서

인생의 벼랑 끝에 선 그대에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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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본문 해설

출애굽기 14:13–16 NKRV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유업(遺業)으로 받고, 400여 년 동안 종살이 하던 애굽에서 탈출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으로 향할 때 요셉의 유언을 기억하고 그의 유골(遺骨)을 취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항상 이스라엘에게 현존하는 기적(寄跡)을 보여 주시며 함께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인도(引導)하시며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을 비춰 낮이나 밤이나 늘 그들 곁에서 떠나지 않게 하셨습니다.(출 13:21).
오늘 우리 앞에 있는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한 후 첫 번째로 만난 민족적인 위기(危機)를 보도합니다.
인간의 이성(理性)으로 생각할 때, 그것은 어떠한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완벽한 절망(絶望)의 상황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탈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바로는 자신이 이스라엘을 놓아준 것에 대해 심히 후회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로의 이러한 완악함조차 이미 하나님의 커다란 구원(求援) 계획 안에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14:4 NKRV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II. 파도치는 절망의 바다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Moses)의 인도를 따라 홍해 앞바다에 이르렀고 바로는 이들을 잡기 위해 특수부대 병거 600대를 비롯하여 애굽의 거의 모든 병거(兵車)를 최대한 동원하여 추격했습니다(출 14:7).
이스라엘은 이제 외통수에 걸린 장기판(將棋板)의 말과 같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가자니 바다요, 뒤돌아가자니 애굽의 병거와 군사(軍士)들이 질풍처럼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A. 두려워하지 말라.

[도입]
첫째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는 이스라엘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있을 때였습니다(출 14:10).
[현실 분석-이스라엘의 절망, 인간 본성]
그들의 부르짖음은 기도라기보다는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대한 절망(切望)과 하나님께 대한 원망(怨望)의 부르짖음이었습니다. 급기야 그들은 하늘처럼 여기던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들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출 14:11).
절망에 사로잡힌 이스라엘(lsrael) 백성들의 한탄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으니, 마치 이성 없는 짐승처럼 막말을 퍼부었습니다.
출애굽기 14:12 NKRV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신학적 분석-두려움의 본질->불신->절망]
하나님께 대한 신앙(信仰)을 잃어버린 사람은 즉시 마귀의 노리개가 됩니다. 그러면 마귀(魔鬼)는 무엇으로 그들을 노리개로 삼을까요?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두려움"(fear)입니다.
두려움은 불신(不信)의 씨앗이니, 그것은 점점 자라서 자신에게서 모든 희망이 절대적으로 사라진 상태, 즉 절망(絶望)에 이르게 됩니다.
[절망과 믿음-키르케고르]
유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였던 쇠렌 오브에 키르케고르(S.O.Kierkegaard 1813-1855)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는 1849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에서 절망(切望)이야말로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라고 하였습니다.
절망에 관한 그의 철학(哲學)을 신학적으로 해석하면 "우리 안에 희망을 갖게 하는 어떠한 믿음도 완전히 사라져 버린 상태"를 뜻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절망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앞에서 오직 하나님 때문에 희망(希望)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설득(說得)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신앙(不信仰)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판단(判斷)하고 행동하게 하며, 신앙(信仰)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때문에 나빠 보이는 것들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갖게 합니다.
[믿음의 본질-히브리서]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히 11:1). 그리고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은 결코 우리에게 나타난 것으로 말미임아 된 것"이 아닙니다.(히11:3 하)
그래서 우리는 비록 천지창조(天地創造)의 과정을 직접 보지 못했어도 믿음으로써 이 모든 세계(世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것을 압니다(히 11:2).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시험]
우리가 인생을 살다가 보면,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극한(極限)까지 몰아 붙이셔서 절망(切望)의 벼랑 끝에 서게 하십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試驗)하시는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에게 하나님 때문에 우리 자신을 희망(希望)으로 설득할 믿음(faith)이 있는지를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 때문에만 희망을 갖고, 또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依支)하며 기도"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내 심사를 통촉하시고 부르짖는 소리 들으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
세상만사(世上萬事)가 순조롭게 풀리고 모든 일들이 자기 뜻대로 되어갈 때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불신자(不信子)도 할 수 있습니다.
성경(聖經)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때는 언제나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現實)을 배경으로 합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나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 때문에 자신을 희망(希望)으로 설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히브리서 11:32–34 NKRV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모세의 반응-지도자의 믿음]
다시 홍해로 돌아가 봅시다. 앞으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가 놓여 있고, 뒤로는 애굽 군대(軍隊)들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유난히 겁쟁이들이었기 때문에 벌벌 떨며 부르짖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상황에서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그랬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은 두려워서 우왕좌왕(右往左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것을 이스라엘에게 직접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모세를 통하여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출애굽기 14:13 NKRV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똑같은 상황에 놓여 있었으나, 모세는 믿음이 없어 절망하는 그들과는 달리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갖는 지도자(指道子)가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실천 강조-말씀, 기도, 성찬]
신앙은 누군가의 전유물(專有物)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불신앙(不信仰)도 그것을 갖기로 된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지속적으로 유지(維持)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매순간 우리의 것으로 삼으려는 마음과 정신(精神)의 활동(㓉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순간 기도(祈禱)하고, 하나님을 묵상(默想)합니다. 매일 성경을 읽으며 우리의 삶의 모습을 거기에 비춰봅니다.
또한 때마다 성찬(聖餐)에 참여하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립니다. 우리가 이러한 믿음의 활동에 참여하고 성령(聖靈)께서 함께하실 때 그것들은 우리의 영혼(靈魂)을 살아나게 합니다. 생명으로 충만하게 합니다.
그래서 현재적으로 이러한 믿음의 활동에 게으르고 나태해 질 때, 과거에 어떠한 기적을 체험했어도 믿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상황별 대응]
모세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넘실거리는 홍해의 파도와 질풍같이 달려 오는 애굽의 수많은 병거(兵車)들, 그리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엇을 행(行)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난관(難關)을 만나거나 큰 환란(患亂)을 겪게 되었을 때,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우리 스스로 부지런히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勞力)해야 하는 경우입니다. 이때 우리는 간절히 기도할 뿐 아니라 부지런히 어려움에서 벗어날 길을 찾으며 스스로 타개(打開)해 나가야 합니다.
또 하나는 우리 스스로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서 고요히 침묵(沈默)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만 할 때입니다.
지금 홍해 앞에서의 이 상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Israel)에게 큰 믿음을 요구하시는 상황(狀況)입니다.
왜나하면 자신이 아무것도 행하여 보탤 것이 없는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의 기적(奇跡)만을 바라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단지 마음을 오롯이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커다란 믿음(faith)입니다.
[A. 결론-하나님을 붙드는 믿음->두려움을 극복]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1525년 에 쓴 그의 책 「의지 선택의 노예 상태」(De Servo Artiuri)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붙들어 질 수 있는 분이시다"
왜나하면 그가 그렇게 하나님만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생사(生死)를 초월하여 자기 인생(人生)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두려움을 이길 힘이 그러한 믿음에서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 눈앞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그 믿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붙들라!

B. 하나님이 싸우신다

[도입]
둘째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대신 싸우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었습니다. 뒤로는 애굽의 군대가 물밀듯이 들이닥치고 있었고 앞으로는 끝없이 깊은 바다가 가로놓여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절망과 불신앙]
커다란 두려움에 놀란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온갖 원망(怨望)을 쏟아 붓고 있었으니, 할 수만 있다면 당장 애굽 군대에게 항복하고 그들을 위해 노예살이 하던 옛 시절로 돌아가고자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4:12 NKRV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그들은 이런 절망(絶望) 끝에 도달한 결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결국 자신들이 약속에 땅에 도착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이 당시 이스라엘의 믿음(faith)의 수준이었습니다.
방금 전에는 기적적으로 애굽을 탈출하는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과 생전 처음으로 연애(戀愛)하는 감격을 누렸으면서도, 얼마 지나지도 않은 시간에 이처럼 마음이 변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감격(感激)과 불신앙의 반역(叛逆)이 종이 한장 차이임을 절감하게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해결책-가만히 있으라고 명령]
이때 하나님은 모세(Moses)를 통해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무 소망(所望)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내놓으신 놀라운 해결책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홀로 싸우셔서 문제를 해결하시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출애굽기 14:13 NKRV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먼저 모세는 두려움으로 요동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 라" (출 14:13 상).
[히브리어 원어 분석 및 동사의 신학적 해석]
여기 우리말 번역 성경에서 "서서"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는 "히트 야체부" (הִֽתְיַצְב֗וּ)인데, 두 발로 굳게 서 있는 동작 외에 "당하다, 견디 다" 라는 은유적인 뜻이 있습니다.(신 11:25)
지금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을 자신(自身)들의 힘으로 변경(變更)하려고 시도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감내(堪耐)하라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직 하나님이 홀로 싸우셔서 애굽 사람들을 진멸(殄滅) 하실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단 말입니까?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이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있었을까요?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解答)을 모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출애굽기 14:14 NKRV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여기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언가를 행히도록 요구(要求)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한 것은 다만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희망의 증거를 못 보게 하는 불신]
그 직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망 속에 울부짖었습니다. 반드시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절망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랬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들 앞에는 파도치는 검붉은 바다가, 뒤에는 물밀듯이 진격해 오는 애굽의 군대들이 있었습니다.
이것들은 분명히 이스라엘에게 피할 수 없는 위기임에 분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앞에는 그런 절망적인 조건(條件)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눈앞에는 기적(奇蹟)의 거대한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그 불기둥은 애굽 군대(軍隊)가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 가까이 왔을 때, 더 이상 접근(接近)하지 못하도록 소용돌이치며 갈길을 막고 있지 않았습니까?(출 14:19-20).
여기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아무리 신자(信子)라고 할지라도 일단 마음이 믿음(faith)에서 미끄러지게 되면, 그토록 명백하게 보이는 희망(希望)의 증거들을 모두 무시(無視) 해버립니다.
그리고 오직 절망 (絶望) 해야 할 이유들만 찾으면서 스스로 좌절(挫絶)의 구렁텅이 속으로 굴러 떨어져 버립니다.
이때 신자는 하나님 때문에 자신을 희망(希望)으로 설득할 모든 근거를 일시에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는 실제로 희망의 근거(根據)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불신(不信)으로 마음의 눈이 어두워져 희망의 증거(證據)를 보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실존적 믿음-키르케고르]
우리는 종종 도저히 우리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벽(絶壁)과 같은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때는 특별한 시험(test)의 때입니다. 비상한 믿음이 요구되는 때입니다.
이때 우리는 스스로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서 고요히 침묵(沈默)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때는 우리가 모든 불확실한 상황을 견디며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런 믿음에 관하여 키르케고르는 말했습니다.
"위험이 없으면 믿음도 없다. 믿음은 객관적인 불확실성을 견뎌내는 것이다." (part 2. Concluding Unscientific: Postscript to Philosophical Fragment)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광야의 놋뱀과 신약의 그리스도를 연결]
이스라엘이 광야(廣野)에서 하나님을 원망(怨望)하다가 불뱀에게 물려서 죽게 되었을 때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뱀에 물린 자들을 위해 놋뱀을 만들어 장대(pole)에 매달게 하셨고 그것을 바라보는 자는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민 21:8).
놀라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사건을 당신의 십자가 죽음, 그리고 부활(復活)과 연결시킵니다.
요한복음 3:14–15 NKRV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고 바로 그 뒤에 이어서 성경 전체의 요절(要節)이라고 할 수 있는 요한복음 3장 16절이 등장합니다.
요한복음 3:16 NKRV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믿음의 재정의-신자의 신앙적 자세]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가 우리의 죄(罪)를 위해 죽고 다시 부활(復活)하셔서 하늘에 오르신 그분을 영혼(靈魂)의 시선으로 응시(應視)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응시다(Believing is seing).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응시함으로써 하나님 때문에 모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희망(希望)으로 자신을 설득(說得)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게 하는 믿음의 힘이 여기서 나옵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잠잠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는 것을 직관하면서 그분을 찬양(讚揚)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는 방식-히브리어 동사 분석]
여기서 하나의 구절이 우리의 눈길을 끕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어다" 이 부분을 구약 히브리어 원어 성경에는 "그리고 너희는 조용히 있을지어다.(וְאַתֶּ֖ם תַּחֲרִישֽׁוּ)"라고 되어 있습니다( 출 14:14).
여기서 두 번째 단어는 히브리어 동사(動詞) "하라쉬(חרשׁ)"의 히필형 미완결 2인칭 복수 동사인데, 이는 "말뿐이 아니라 행동에 있어서도 일체의 움직임을 멈추는 동작이나 상태"를 뜻합니다.
가만히 있으라니,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리켜 "죽은 믿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약 2:17).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명령(命令) "...너희는 조용히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것은 우리가 위기나 시련을 만났을 때, 대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일하십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의 도움 없이 오직 하나님(God) 홀로 행하시는 때가 있음을 알라"고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는 방식에 대한 우리의 태도]
물론 이때에도 우리는 간절히 기도(祈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때 우리가 하나님 홀로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것을 그저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칠흑(漆黑) 같은 인생의 밤바다에서 불꽃처럼 타오르는 하나님의 영광(榮光) 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그 광경을 봄으로써 하나님만이 우주(宇宙)의 주인이시며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fighting) 분이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認定)하게 되며, 이로써 그분은 영광(榮光)을 받으십니다. 이를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한 전쟁에서 싸우시는 용사(勇士)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탄(Satan)에 의해 일어난 지상과 천상의 반란(叛亂)을 종식시키기 위해 오신 반란군 진압 사령관(司令官)이십니다.
그리고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救援)의 역사는 바로 사탄(Saton) 과 싸우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마귀(魔鬼)의 일을 멸하심으로써 완성된됩니다(요일 3:8).
[실천적 적용]
하나님은 이처럼 인류 구원을 위한 우주적 전쟁(universal warfare)에 있어서만 싸우시는 용사(勇士)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日常的)인 삶에 있어서도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적 전쟁(spiritual warfare)이기 때문입니다.(엡 6:12).
성령(聖靈)께서 죄와 싸우는 우리를 도우시고, 성자(聖子)께서 죄에서 구원해 주시며, 성부(聖夫)께서 승리를 보장해 주십니다.
이러한 신앙 안에서 당신이 처한 상황을 보십시오. 그리고 여호와께서 이 절망적 상황에서 어떻게 나를 위해 싸우시는지를 웅혼(雄渾)한 기상으로 기대하며 바라는 것이 믿음입니다.
성도는 이러한 믿음 안에서 보채지 않으며 들레지 아니하며 잠잠히 기대 (期待)하는 마음으로 인생의 칠흑 같은 밤을 지냅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너희는 가만히 있어 주가 하나님 됨 알지어다 열방과 세계 가운데 주가 높임을 받으리라~)
[B. 결론- 하나님이 싸우심을 믿고 침묵 속에서 시선을 고정]
그는 이런 때에 사람의 도움을 구걸하지 않으며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能力) 제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의 사람들을 위해 싸우십니다.
단 한순간도 하나님을 바라는 영혼의 시선(視線)을 거두지 말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친히 싸워 주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라.
오직 주님의 도우심만이 인생의 벼랑 끝에서 당신을 구해 낼 수 있습니다.

C. 놀라운 일을 기대하라

[도입]
셋째로, 놀라운 일을 기대(期待)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실 것이라는 사실을 선포(宣布)한 후에,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4:15–16 NKRV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하나님의 일하심의 지연]
아마도 모세는 오랫동안 기도했던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싸워 주신다는 확신(確信)은 있었으나 어떻게 일하실지에 대해서는 모세 자신도 추측(推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의 때는 끝났고, 이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이 일하실 시간(時間)가 왔습니다. 하나님은 명령하셨습니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출 14:16).
그런데 이 광경을 보면서 우리는 두 가지 의문(疑問)을 갖게 됩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울부짖는 이스라엘을 위해 즉시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奇蹟) 보여주지 않으십니다.
또 하나는, 모세가 바다 위에 손을 내민 후에도 상당한 시간(時間)이 흐른 다음에 이 일을 행하십니다(출 14:1, 20 참조). 그것도 모세에게 명령하심으로써 기적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두 질문은 모두 시간의 연장에 관한 것입니다.
어차피 이 싸움은 모세나 이스라엘(lsrael)이 함께 도울 일이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홀로 싸우실 싸움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적이 일어 나기 전, 한동안 시간(時間)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지연의 이유]
이처럼 하나님께서 즉시 기적을 행하시지 않으신 것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lsrael) 백성들로 모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을 바라보도록 훈련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막 애굽을 탈출하여 아기처럼 어린 신앙을 가진 백성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장성한 분량(分量)에 이르기까지 믿음을 자라게 하시고자 하셨습니다(엡4:13 참고).
특이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능력(能力)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분을 원망(怨望)만 하는데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이단 한 군데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원망이 나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어린 신앙(信仰)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연약(軟弱)함 알고 긍휼히 여겨 주십니다.
[하나님의 기적-놀라운 일-의 특징]
이런 일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기적을 자연(自然) 현상에 의해 홍해 바닷물이 썰물처럼 양쪽으로 빠져나가고 땅이 드러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왜나하면 성경(聖經)은 둘로 갈라진 바닷물이 "죄우에 벽(壁)이" 되었다고 두 번이나 반복해서 보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출 14:22, 29).
바닷물이 좌우로 벽처럼 서고 마른 땅이 드러났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바다를 건너 행진(行進)하였습니다. 이어서 애굽의 병거들과 마병과 군사들이 따라 들어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안전하게 홍해를 건넜을 때,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명령하사 갈라졌던 두 물을 합쳐지게 하셨습니다. 애굽의 병거와 말들과 병사들은 합쳐지는 바다의 물결에 힘쓸려 낙엽처럼 구르다가 모두 몰살했습니다.(출 14:30).
[하나님의 놀라운 일-기적-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
그때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을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었고 큰 영광을 그분께 돌렸습니다.
출애굽기 14:31 NKRV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인간의 이성(理性)과 상식의 범위를 뛰어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오직 당신만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이시며 만군(萬軍)의여호와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신자의 삶의 위기와 히브리서 11장을 부연 설명]
우리는 때때로 커다란 위기(危機)를 만납니다. 그래서 마치 우리가 인생의 벼랑 끝에선 것과 같은 때를 만납니다.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위해 친히 싸울 준비를 하십니다.
믿음의 장(章)이라고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에는 기라성(綺羅星)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위기(危機)와 시련(試驗)을 만난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믿었고, 눈에 보이는 환경(環景)보다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約束)을 더욱 믿은 사람들이었습니다.
[C.결론-하나님의 놀라운 일-기적-을 기대하라]
그래서 남들이 기대하지 못하던 놀라운 기적(奇跡)을 보았고, 자신들이 그 위대한 일의 실현에 아무것도 보탤 능력(能力)이 없을 때, 하나님 홀로 싸우사 모든 대적(對敵)을 꺾으시는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하나님이 곧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놀라운 일을 기대(期待)하라.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올 기적(奇跡)을 기대하라!

Ill. 적용과 결론

인간의 힘이 다한 시점(時點)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 시작(時作)되는 지점이고, 사람의 지혜가 바닥을 보이는 시점(時點)이 바로 하나님이 크고 비밀스러운 일을 행하실 시점(時點)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3:3 NKRV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생(人生)의 벼랑 끝에 세우신 것은 거기서 절망하고 원망하게 하심이 아닙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우리들 위해 홀로 싸우심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온 평생 어떻게 사셨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은 세상에 사시는 동안 당신의 신성(神性)을 감추시고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의지(依支)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눈물의 기도(祈禱) 속에서 사셨고, 당신의 운명(運命)을 미쁘신 하나님의 두 손에 의탁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을 믿음으로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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