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들어가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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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가시는 하나님
본문 말씀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합니다.

26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을 때에, 그 처지가 어떠하였는지 생각하여 보십시오. 육신의 기준으로 보아서, 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권력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가문이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으며,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28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29  이리하여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30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되시며, 의와 거룩함과 구원이 되셨습니다.

제가 작년 추석에 유행하는 베스트셀러 소설 하나를 읽게 습니다.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제목인데, 내용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한 노숙자 독고씨가 서울역 지하철에서 땅에 떨어진 파우치 하나를 줍게 되는 걸로 소설의 내용이 시작됩니다. 
그 파우치를 주운 것을 본 노숙자들이 그 파우치 안에 있는 돈을 사용하기 위해서 독고씨가 주운 지갑을 뺏으려고 했는데 끝까지 지키며 주인에게 그 지갑을 찾아줍니다. 
근데 이 파우치 주인이 교회 권사님이고 편의점 사장인거에요. 그것이 인연이 되어 노숙자가 편의점 알바까지 하게 됩니다.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기가 왜 여기있는 지도 모르고 서울 지하철 역 한복판에서 매일 술을 마시며 살았지만, 편의점 사장님을 만나면서 술을 끊게 되고, 그곳에서 알바를 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납니다. 
입시준비를 하는 알바생, 인생에 사연이 있어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는 아저씨, 매일 오는 진상 손님, 뒷담하기 좋아하는 아주머니 등
노숙자 독고씨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하며 점점 독고씨와 그 주변 사람들이 변화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참,, 저도 이 소설에 빠져들어서 그날 다 읽었던거 같은데,  
이 소설이 어떻게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 가 너무 궁금해서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를 찾아서 읽어보았는데, 이런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코로나 19 때 힘든 이때의 마음의 온도를 높여주는 따뜻한 이야기였습니다. 
편의점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들을 통해 현실의 따뜻함과 공감의 순간을 전달하면서 독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거 같았습니다.
라는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즉 이 책을 읽는데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것이죠.
저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도 마음이 참 많이 따뜻해지는거 같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생각해보니깐 인생이 완전히 무너지고 기억상실에 걸려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조차 잘 알지 못했던 한 사람이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여러 상황들을 만나면서 변화되는 과정이 너무나 아릅답게 보였던거 같습니다.
(한번 더 반복이니 굳이 보면서 읽지 않아도 됌)
기억을 잃고 인생의 방향조차 잃은 한 사람이, 특별한 노력을 한다기보다는, 지금 주어진 일상—어쩌면 아주 평범하고 소소한 편의점 아르바이트라는 자리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으며 조금씩 변화해 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억지로 애쓰거나 인위적으로 어떤 상황들을 잘 이겨내기위해 발버둥치며 더 높은 곳으로 가려고 열심히 변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자리에서 주어진 만남과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을 마주하기도하고 때로는 아픔을 마주하기도 하면서 회복되고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주었던거 같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바로 신앙생활과 닮아 있지 않을까?” “주님 안에서 우리가 변화되어 가는 모습도 이와 같지 않을까?”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독고씨 처럼 초라해보이는 편의점 야간 알바라는 각자의 영역에서 여러가지 상황과 여러 순간들을 마주하면서
우리는 그 순간 순간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조금씩 닮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요, 하나님께서도 성경의 인물들을 다양한 상황 속에 두시며 그들을 주님의 사람으로 빚어가시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어떻게 주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시는지, 그 과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함께 볼 성경인물은 모세입니다.
먼저 성경부터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애굽기 3장 1절부터 5절까지의 내용입니다. 
1 모세는 미디안 제사장인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 그가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서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갔을 때에, 
2  거기에서 주님의 천사가 떨기 가운데서 이는 불꽃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에 불이 붙는데도, 그 떨기가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3  모세는, 이 놀라운 광경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어째서 그 떨기가 불에 타지 않는지를 알아 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4  모세가 그것을 보려고 오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떨기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모세가 대답하였다.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5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어라.” 
처음에 노숙자 독고씨 이야기하다가 제가 모세 입니다. 하니깐 엥 ? 모세 ? 라고 의문점을 품으신 분도 있을거 같다고 생각이 듭니다.
모세를 보면 우리는 항상 거룩함 이라는 단어를 먼저 생각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세의 모습을 한번 봅시다. 자 무엇이 있을까요? 
홍해? 맞아요 홍해가 있습니다. 
또요
지팡이 
믿음의 사람
위대한 지도자
뭐 등
한 친구에게 제가 물어봤는데, 불멍이라고 이야기하더라구요. 제가 왜 그렇게 생각하냐 물어보니깐, 모세가 불멍하다가 하나님을 만났다고, 불멍이 참 중요한거 같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아무튼
우리는 모세에 대한 설교를 들을 때 믿음에 대한 설교를 굉장히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이름을 들으면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 위대한 지도자, 이런 단어들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모세에 대한 설교도 이런식으로 풀어나가시죠. 카리스마와 능력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선택한 그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합니다. 뭔가 우리는 범접할 수 없는 그런 인물, 그러면서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이런 이야기로 연결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사용받기 위해서 광야의 학교에서 단련을 받았다. 모세는 하나님께 40년동안 준비가 되었다. 
라는 식의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우리는 들었고 지금도 듣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제가
“여러분 !!! 우리의 신앙은 모세처럼 살아야 합니다 !!! 모세처럼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 라고 이야기하면 여러분 어떠신가요? 
“아니 뭔가 아 잠만 그 삶은 못살거 같은데,, 모세는 떡잎부터가 달랐자너 훈련도 40년이나 받았고 말이야” 라고 생각을 많이하게 된다는 것이죠
제가 저번주에 한친구랑 교회에서 같이 자게 되서 그 친구에게 물어봤습니다. 친구야 너 모세와 같은 삶을 살라고 이야기하면 살 수 있을거 같아? 라고 물어보니깐 그 친구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제가 어떻게 그런 인생을 살 수 있어요. 그건 모세나 되니깐 가능했던 거죠. 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그 친구 말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삶은 모세나 되니깐 가능했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니깐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만들어 가실 때 준비가 된자 즉 준비를 부단히 한 자를 사용하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을 인도하게 하신 일을 대할 때면, 하나님은 모세가 믿음이 좋고 담력이 큰 지도자 감이어서 그에게 ‘출애굽’이라는 막중한 사건을 맡기셨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이 모세가 광야에 들어갔다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던 그 상황에 대해서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려고 합니다. 
다시 3장 1절로 가시죠. 
모세가 부르심을 받았던 때의 모세의 모습이 나옵니다. 
모세는 미디안 제사장인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 그가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서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갔을 때에, 
모세가 40년 동안 광야에 있다가 주님께 부르심을 받은 순간에 성경에서는 모세에 대해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치는 목자’
모세가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모세 나이가 대략 80세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배경에 의하면 그 당시에 가장 비천한 직업 중 하나가 무엇이냐면 양 떼를 치는 거였어요. 근데 더 웃긴건 그 비천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모세가 80세가 됬는데 자신의 재산조차 없어서 자신의 장인어른의 양뗴를 치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자 보세요, 애초에 모세가 하나님 앞에 부르심 받았던 그 상태는요. 일단 세상적으로만 봐도 제대로 된게 하나도 없는 상태입니다. 직업도 변변치 않지, 그리고 자신의 재산도 하나 없어 자신의 장인어른의 양 떼를 치는 그 당시 모세가 세상적으로 준비되었다고 하기에는 애매모호합니다. 그쵸? 맞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참나 그것도 모르세요,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세상적으로 준비하지 않으셨잖아요.
맞아요.
모세는 세상적으로 준비가 되있지 않았죠.
그리고 이렇게 이야할겁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세상적인 준비가 아니고 성품적으로 준비가 되어있었다고요!!!
하나님이 사용하시기에 올바른 상태로 그리고 마음의 자세를 하나님께서 40년 동안 준비를 시키셨다고요. 라고 이야기합니다.
자 좋습니다. 그러면 정말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좋은 마음의 자세로 하나님께 잘 반응했는지 함께 계속해서 봅시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자신의 계획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같이 보시죠. 
3장 6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6  하나님이 또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뵙기가 두려워서, 얼굴을 가렸다. 
7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 
8  이제 내가 내려가서 이집트 사람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하여, 이 땅으로부터 저 아름답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이 사는 곳으로 데려 가려고 한다. 
9  지금도 이스라엘 자손이 부르짖는 소리가 나에게 들린다.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을 학대하는 것도 보인다. 
10  이제 나는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게 하겠다.” 
자 여러분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 떼를 치며 준비되어있는 모세라면 어떻게 반응을
해야 올바른 반응의 자세일까요?
질문입니다. 
원래 준비된 모세의 자세였다면 드디어 하나님께서 나를 준비시키시고, 나를 보내기로 하시는구나, 내 하나님 내가 주님 앞에 내 신을 벗은 것 처럼 하나님 내가 순종함으로 나아가겠습니다 !
라는 말이 정상이 아닐까요? 
제가 모세였다면 장인어른을 찾아갔을 거에요. 장인어른 !!! 완전 기세등등해져서
보세요. 장인어른 저 그렇게 쓸모없는 사람 아닙니다. 네? 장인어른 드디어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제가 광야에서 훈련받고 드디어 하나님은 저를 부르셨습니다. 저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달려나갈겁니다 !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준비된 자의 자세 아닌가요? 
주님의 말씀에 토를 하나도 달지 않고 그냥 주님을 따라가는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지 않냐 이 말이죠. 
그래서 우리 이런 찬양들도 많이 부르잖아요.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다~‘ 하면서 말이죠. 
근데 제가 이 모세가 부르심을 받았던 장면을 묵상하고 있는데, 그 모세에 반응에 ‘엥?’ 했습니다. 잠만 이게 뭐야, 이렇게 반응을 한다고? 
자 한번 보시죠. 
출애굽기 3장 11절 입니다.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겠습니까?” 
모세의 대답이 예상과는 너무 다릅니다. 하나님의 40년의 광야 학교를 끝낸 사람이 처음 하나님께 내뱉은 말은
네 하나님 제가 준비 되었으니 사용하십시오.!!
주님 제가 연약하여도 주님이 부르셨으니 주님을 따라 나서겠습니다 !!
 가 아니라 아니 하나님께 말대답을 합니다. 하나님 제가 어찌 감히 갈 수가 있겠습니까? 
아 여러분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건 겸손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상황을 보고ECB주석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누구기에 파라오에게 가야 합니까? 내가 누구기에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야 합니까? 라는 말은 전임 왕이 자신의 목숨을 노렸다는 사실을 알기에 모세는 이집트 궁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워 함 즉 ‘두려움’에서 나온 말이다.” 
여러분들 모세의 반응이 참 아이러니 하지 않나요? 40년 동안 광야에서 준비된 모세의 반응은 대꾸에요. 말대답입니다.  하나님에게 제가 어떻게 거길 갑니까? 거기 가면 저 죽습니다. 네? 
음,, 제가 하나님이였으면, “아 그래? 넌 아직 준비가 덜 됬구나 광야 40년 추가” 라고 이야기했을거 같아요.
그러나 저와 다르게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가 발견됩니다. 
그런 모세를 보시고 하나님의 설득이 시작됩니다. 
3장 14절입니다. 
14절: 하나님이 모세에게 대답하셨다. “나는 곧 나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나’라고 하는 분이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고 하여라”
15절: 하나님이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라고 이야기 하시면서
14절부터 22절까지 모세에게 너가 가야하는 이유와 그리고 하나님의 원대한 꿈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그분의 비전을 모세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분이 모세에게 광대한 꿈을 보이셨다는 것이죠. 
그 상황에서 모세는 그 하나님의 기나긴 하나님의 설명을 듣고 나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자 보세요.
4장 1절: 그러나 모세는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그들이 저를 믿지 않고, 저의 말을 듣지 않고, ‘주님께서는 너에게 나타나지 않으셨다’ 하면 어찌합니까?”
여기서 다시 한번 모세가 얼마나 고집이 세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인지를 보게 됩니다. 
ecc주석에는 이 상황을 보고 모세가 전에 이집트에서 있었던 사건을 지속적으로 회상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봤을 때 모세는 계속해서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났던거 같아요. 하나님의 일을 해보겠다고 열심히 공부도 하고 왕이 되려고 노력도 했고 더 나아가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해서, 나의 열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겠다고 부당하게 불법을 행했던 애굽 백성도 죽였는데, 결국 결과가 도망쳐 나오는 결과 밖에 없었잖아요…
그니깐 그 상처가 이제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모세를 부르셨는데, 자꾸 발목을 붙잡는거에요. “아니 대체 왜 내가 준비됐다고 생각했던 때는 그렇게 침묵하시고 아무 이야기도 안하시더니, 이제 와서 이렇게 하십니까” 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여러분들 어떠신가요? 이 단계에 계신 분이 계신가요? 하나님이 이제 나에게 어떤 일을 행하려고 하시는데, 나의 과거 나의 상처 나의 어려움이 나의 발목을 잡아서,, 아 하나님 못하겠어요. 두려워요. 라고 이야기하는 분이요.
그 하나님께서는 그래 그러면 너 더 기다려라 라고 말씀하시지도 않고 조급해하시지도 않으시며,
그 두려워하는 모세에게 이번에는 말로 안되니깐 하나님께서 이제는 이적을 보여주십니다. 야 너 지팡이 끝에 잡아봐 해서 잡으니깐 뱀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손을 넣다 뺐다 하니깐 피부병에 걸렸다가 안걸렸다가를 반복합니다. 
이거 엄청난 이적이잖아요?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어떤 일들을 하나님이 보여주신 거잖아요.
그렇게 또 하나님께서 놀라운 이적을 보여주셨는데,
모세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거에요. 
주님 죄송해요 저 말 재주도 없는 사람이에요. 혀가 무뎌요. 
그니깐 이제 하나님도 어느정도 한계에 다 다르신거 같아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니 모세야. 그 혀 누가 만들었냐 내가 만든거 아니냐? 내가 말도 잘하게 해준다니깐?
내가 다! 전부! 뒷받침 해준다니깐 !
자 여러분 여러분도 이제 조금 답답하지 않으신가요
그 위엄 있으신 하나님께서 이 정도 했으면 이제 잘 따라와야 할거 같은데 모세의 반응은 우리의 생각과 우리가 배웠던 것하고는 너무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득하셨으면 따라올만도 한데 그 모세가 마지막 클라이 막스를 찍게 됩니다. 
자 4장 13절 
13절: 모세가 머뭇거리며 “주님 죄송합니다. 제발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하고 말씀드리니 
이제 핑계 댈 것도 없는 모세가 하나님께 이렇게 말하는거죠. 아우 됐어요. 저는 그래도 못가겠습니다. 그냥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세요. 저는 못하겠어요. 제가 대체 뭐라고 이걸 합니까? 제가 뭐라고 거길 갑니까?
지속적으로 모세는 자신의 상처와 자기 자신을 보고 그 상황을 회피합니다. 모세는 자신의 부르심 앞에서 계속 회피했던 이유는 준비되지 않았던 ‘나’ 뭔가 아직 사용 받기에는 부족한 ‘나’에 계속 집중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 듣고 하나님께서 화가 나십니다.
4장 14절: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크게 노하시어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창세기에서도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을 때, 바벨탑 사건 때도 노하시여 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모세에게 노하셨다라는 표현을 쓰십니다.
노하시면서
그래 너네 형 아론을 데리고 가거라. 너를 도와줄 테니깐 너네 형 데리고 가라고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죠. 
이제 진짜 핑계가 될 것이 없는 상태가 되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잘 보세요. 모세가 부르심을 받았던 그 순간에는 모세가 잘났기 때문이 아니고 모세가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고 모세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준비된 상태여야만 하나님이 그 삶을 인도하시고 이끌어 가신다는 생각에 빠지곤 합니다. 그렇지 않으신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준비하신 그 때의 모세의 반응은 처참했습니다. 
자 지금까지 어떠신가요. 모세가 처음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던 과정이요. 우리가 생각했던 과정과는 조금 다르게 보이지는 않나요? 
끊임없이 잘 분별해서 이 길과 이 길을 잘 따라가야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다는 생각과는 다르게 주님께서는 모세의 멱살을 딱 잡고 끌고 가시는 것 같습니다. 
이 겁이 많던 모세가요. 그 이집트로 들어갑니다. 처음에 모세가 많이 두려웠던거 같아요.
뭐 옛날 상처도 떠오르고 내가 막 열심히 했는데 잘 안되고 했고, 또 말도 잘 못하니깐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을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아론이 주님의 계획을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들에게 말을 했습니다. 
한번 성경을 보죠
출애굽기 4장 28~31절 입니다.

28  모세는, 주님께서 자기를 보내시면서 하신 모든 말씀과, 자기에게 명하신 이적들에 관한 모든 것을, 아론에게 말하여 주었다.

29  모세와 아론은 이집트로 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를 불러 모았다.

30  아론이 주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그들에게 일러주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31  백성이 그들을 믿었다. 그들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굽어살피시고 그들이 고통받는 것을 보셨다는 말을 듣고, 엎드려 주님께 경배하였다.

백성들이 그걸 믿고 절하는 거에요. 그러니깐 모세가 갑자기 어 뭐야? 이거 진짜 되네? 라고 생각을 하게 된거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이 모세가 처음에는 두려워서 끌려온거 같았던 것만 같았는데, 
갑자기 없던 힘이 생겼는지 곧 바로에게 찾아갑니다. 그전에 모세였다면 그 전에 바로가 자기를 죽일 것에 대해 두려워 했었잖아요. 근데 그런 모세가 하나님과의 대화가 하나도 없이 그리고 당당하게 바로에게 가서 이야기합니다. 
5장 1절입니다.
1절: 그 뒤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하셨습니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주체가 아론에서 모세와 아론으로 바뀌었습니다. 분명히 4장에서 장로들에게 말할 때는 ‘모세가’ ‘아론에게’ 전달하였다 였는데,
그니깐 아,, 형이 쫌 이야기해봐 쫌,,,, 이렇게 했는데, 갑자기 어디서 자신감이 생긴건지 아론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깨가 이따만큼 올라와서 바로에게 이야기를 하는겁니다.
이 모세가 기세가 등등해진거죠.
전에는 모세가 감히 제가 바로에게,, 저 죽이면 어떡합니까,, 했다가 이제 뭔가 조금 되는거 같으니깐 바로에게 담대하게 이야기를 한거에요.
자 보세요. 그러면 주님의 말씀에도 순종을 했겠다.
 이 바로의 반응이 좋으면 너무 좋은데,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거죠. 
너 뭐야? 너 뭔데 나한테 와서 이래라 저래라야 어? 야 너 하나님이 누군데 그래?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한번 더 강하게 이야기를 해요. “아니 하나님께서 보내라고 하셨다구요!!”
 앞에 있었던 제사장들 처럼 바로가 그 하나님 앞에 엎드렸던 것을 예상을 했던거 같은데,  반응이 모세가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바로가 야 너네가 뭔데? 너네 뭐 돼? 얼른 나가 이렇게 된거죠. 
그리고 그렇게 화난 바로가 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 힘든 노역을 시키는거에요. 
그러니 이 백성들이 와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니 모세야,,,, 너네 왜 온건데, 너네 오니깐 더 힘들어졌잖아 !!!!!!!
그러니깐, 이 모세가 또 쭈굴이가 되서 다시 주님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거에요.
아 하나님, 나 왜 부르셨어요? 아니 하나님 나 가만히 있겠다고 했잖아요. 왜 괜히 불러서 이 일 더 크게 일으키냐고요.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생각하신 하시는건가요? 
차라리 부르지 말지를 그랬어요…..
그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야 내가 어 한다면 하는거지 쫌 기다려라
 너 장로들이 머리 조아리는거 못봤어? 쫌 기다려봐라 왜 나를 쫌 신뢰하지를 못하냐
라고 이야기를 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장
2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주’ 다.
나는 주다 , 나는 주다, 나는 신실하신 주다. 라고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왜 믿지 못하니? 너 왜 나를 믿지 못하는거야? 내가 너 괜히 부른거 같아? 라고 이야기 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아들아 나는 신실한 하나님이야. 그거 알아? 내가 너희의 기도소리에 마음이 너무나 아파서 내가 그래서 왔다 모세야. ‘
모세는 그때 알았을 것 같아요.’ 내가 이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보다 더 강한 사랑으로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으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나보다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구원하기 원하시는 구나 ‘아 하나님이 이런 마음이시구나’ 주님께서 향하신 마음이 이런 마음이시구나를 알게 된거 같아요. 
참 아이러니한게 모세를 부르시면서 하나님께서는 높은 기준을 제시하시며 모세를 끌고 가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하나님이신지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신지를 지속적으로 말씀해 가시면서 모세를 바꿔가십니다.
모세는 자기가 처한 상황 자기의 자격을 바라보았을 때 두려웠지만 시선을 하나님의 크심으로 초점을 지속적으로 맞춰 나가시며 바꿔가십니다.
그니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에게만 초점을 두는 방법들을 지속적으로 훈련을 시키시는 것 같았습니다. 
계속 보시죠. 
그리고 다시 모세는 두려워하지만 다시 바로에게 나아갑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욱 더 본격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본격적으로 그분의 질투를 가지고 일을 하기 시작하세요.
하나님의 10가지 재앙이 시작되는데요. 
여기서 모세는 또 하나님의 기가막힌 위대하심을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첫번째 재앙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나일강이 피로 변합니다. 
두번째는요? 
개구리 재앙입니다. 
그렇게 하나씩 해서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죽음까지 가게되죠. 
하나님께서는 그냥 10가지 재앙을 그냥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애굽시대에 만연했던 우상들을 깨트리려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고대 문헌에 의하면 
애굽에는 나일강을 섬기고 있는 ‘하피‘ ‘누누‘ ‘오시리스‘라는 신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신들이 강을 지켜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하나님이 그곳을 전부 피로 만들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것은 헛된 우상이야, 그 신은 가짜야 그 신보다 위에 있는 신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나란다. 
모세는 그 때 알았을 거에요. 이 강보다 크신 하나님을 말이죠. 사람들은 전부 이 강이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아니야 ! 이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자는 나야”
두번째 신 
개구리 해게크 - 개구리 머리를 가진 출산과 다신의 여신 
그 당시에 개구리는 이집트에서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제할 수 없는 재앙으로 변하게 하심으로 그 능력을 조롱하시는 것이죠. 
모세의 세계관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합니다. 
‘아 하나님이 이 신보다 더 높으신 분이시구나, 아!!! 하나님이 정말 강하시고 위대한 분이시구나, 아!!!! 하나님은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시구나‘
저 애굽에 신들보다 우리 하나님이 강하시구나 위대하시구나
자 생각해보세요. 갑자기 하늘 위에서 돌덩이 만한 우박이 떨어져요. 근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도 맞지 않아요. 내가 피한게 아니라 그 우박이 나를 피하는 이 아이러니한 사건들.
그리고 마지막 장자의 죽음 재앙이 다가왔을 때 어린양의 보혈을 바르며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죽지 않았죠. 그때 알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 주의 보혈이 능력이 있구나 주의 보혈이 이 모든 것들 위에 계시는구나. 주님의 사랑이 주님의 보혈이 우리를 구원했구나 !
그렇게 모세는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리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지 점점 경험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런 것이 있지 않으신가요?
 
내가 붙들어야지만 내가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그 어떠한 것 그 어떤 대학
내가 이거가 있어야지 내가 이것만 되면 진짜 잘 될 수 있을텐데 했던 친구의 관계
내가 이거 하나는 기가막히게 하지 라고 생각했던 나의 능력들
우리의 삶속에 그 주님으로 부터 오지 않은 소망들을 주님이 들춰내시고 그 하나님의 가치와 위대함을 계시하시며, ’아 ! 주님이 진짜 나의 소망이 되구나 아 진짜 주님만이 나의 삶의 이유이구나’
그렇게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이 어떤 마음으로 지금 이 일들을 하고 계시는지가 보이기 시작하는거에요. 
모세가 알았던거 같아요. 
‘아 하나님은 이 백성을 향한 마음이 이렇게 크시구나’
‘아 하나님은 이렇게 능력이 많으신 분이시구나’
‘아 하나님은 우리를 신실하게 이끄시는구나’ 
많은 학자들이 출애굽이 된 과정을 단기간에 된것이 아니라 대략 1년 정도의 시간을 지녔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못말리고 고집 불통이였던 모세를 하나님의 열심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어’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들을 산전수전 다 경험해 온 모세가 홍해의 자리까지 이르게 됩니다. 
마침내 홍해가 갈라지고 가던 도중에 뒤에 있던 병마들이 다시 오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또 모세에게 불평을 하기 시작합니다.
전에 기억나시나요?
모세는 분명히 사람들이 자기에게 불평했을때 이제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하지 못한 상황이 되었을 때,
“하나님 도대체 당신의 백성들을 생각하기는 하시는 겁니까?” “또 나를 여기에 왜 부르신 겁니까?” 라고 불평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수 많은 성품들을 경험하고 그 하나님을 맛보아 알게 된 모세는 처음으로 전과는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드디어 우리가 아는 우리가 많이 들었던 모세의 모습이 나옵니다.
같이 보시죠.
출애굽기 14장 13~14절
13  모세가 백성에게 대답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가만히 서서, 주님께서 오늘 당신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지켜 보기만 하십시오. 당신들이 오늘 보는 이 이집트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14  주님께서 당신들을 구하여 주시려고 싸우실 것이니, 당신들은 진정하십시오.” 
3장에서 그렇게 두려워해서 무서워했던 모세를 하나님이 주님을 신뢰하는 모세로 만들어가시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잘 성장하고 주님 앞에 아무런 말도 안하고 순종했기 때문에 사용했던 것이 아니라요. 모세를 사용하시기로 결정하시고 모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셨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원대한 계획을 보이셨지만 그는 그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두려움이 훨씬 더 컸죠.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았던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점점 알아갈 수록 그 마음을 더 깊이있게 알아가기 시작했다라는 것이죠. 그는 놀라운 계획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따라갔죠. 아니요. 하나님이 그를 이끌고 가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런 하나님을 경험하면 할 수록 그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는거에요. 그 놀라운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이 백성과 얼마나 함께 있고 싶으신지. 자신께서 얼마나 위대하시고 얼마나 신실하게 자신의 백성을 이끌고 가는지를 말이죠. 
그리고 그 하나님의 가치가 보이기 시작하니깐, 온 삶으로 온 맘으로 동참하는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게 됐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과의 여러가지 일을 경험한 후에 홍해를 건넌 후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으로 하나님께 찬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출애굽기 15장 1절 부터 입니다. 
출애굽기 15장
1절: 그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를 불러서 주님을 찬양하였다. “내가 주님을 찬송하련다. 그지없이 높으신 분, 말과 기병을 바다에 처넣으셨다.
2절: 주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하고, 주님이내 아벚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련다. 
3절: 주님은 용사이신, 그 이름 주이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18절 까지 그 하나님이 행하셨던 일들 마음 껏 높여드립니다. 
여러분들 이것이 찬양이죠. 내 삶에 경험되어졌고, 비춰졌던 하나님의 성품들을 경험하며 그 하나님을 찬양으로 높여드리는 것, 
나를 구원하셨던 그분이 나에게 행하셨던 그 놀라운 예수님의 액션에 우리의 리액션으로서의 반응하는 것 진짜 그분이 행하신 그 놀라운 일들로 말미암아 찬양과 찬사를 올려드리는 것 저는 경배와 찬양이 이런 것이 아니라까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모세는 하나님이 부르신 시점부터 온 삶을 걸쳐서 하나님을 점점 더 깊게 알아가는 과정을 가졌습니다. 
사람들이 기도할 때 종종 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나님 모세와 같은 믿음을 주십시오. 하나님 어떠한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주십시오’
맞아요. 이런 기도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는 것이 하나가 있는데, 마치 그렇게 믿음만 구하면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모세 아브라함 등 믿음의 조상들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는 우리는 전혀 보지 않죠. 어떤 하나님과의 추억이 있는지는 전혀 보지 않죠.
그 믿음의 조상들 다니엘, 요셉, 모세와 같은 분들이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가 최선을 다해서 해봐야겠다 라는 다짐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구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점점 경험할 수록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확신이 생기고, 그 알아고자 하는 열망들이 그들이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성경의 인물들을 보면요. 그분을 만나고 그분을 경험할 수록 우리 안에는 그분을 향한 믿음이 점점 자라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다른 사람들과 여러분들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할 것은 그날 그분의 사랑을 얼마나 깊게 얼마나 더 알아갔냐는 거죠.  이런 하나님을 경험할 수록 우리의 삶은 점점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독고씨의 인생이 어쩌면 우리의 신앙 인생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처음 모세를 부르셨던 때와 같이 초라하고 준비도 되있지 않은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신다 라는 것이죠.
 이 좋으신 하나님이요. 이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과정
제가 서두에 나눴던 것 처럼 여러가지 사람들과 환경을 만나며 그곳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분을 만나며 하나니님의 사람으로 변화해 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붙드시며 나를 신실하게 이끌어가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생각해본적이 있으신가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이 땅에 우리를 부르시고 주님을 만나게 하시며 주님의 사랑을 알려주시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거에요.
멋진 우등생 만들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맨날 순종하고 어느 순간에도 멋지게 반응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그런 일들을 하시는 걸까요?
모세가 그렇게 출애굽을 한 뒤에 하나님께서 시내산으로 모세를 얼른 부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모세가 시내산에서 독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십니다.  그런데요. 하나님께서 너무 빨리 알려주고 싶으셨나봐요. 너무 빨리 알려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셨나봐요.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글을 직접쓰십니다. 
여러분 십계명의 첫계명이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말라’ 입니다. 
이건 번역이 조금 애매합니다. 이렇게 번역하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하다고 합니다.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 ‘
이 말은 즉 너와 내 사이에 다른 것을 두지 말라는 것에요. 
이제는 다른거 말고 너와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말도 안되는 역사를 일으키셔서 결국 우리에게 가장 알려주고 싶었던 첫번째는 ‘너 내가 구원했으니깐 너 이제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일해’ ‘너 이제 열심히 안 살면 안된다’ 가 아니라.
“야야 이제 나랑 사랑하자 이제 나랑만 사랑하자’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랑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즉 출애굽 시킨 백성들에게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은 그분과의 사랑을 하기 위해 그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우리와 사랑하고 싶어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하박국서 3장 17절 
17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여러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대요. 밭에서 거두어 드릴 것이 없대요. 이거 완전히 망한거잖아요. 내가 준비했던 모든 대학교가 다 떨어진거에요. 결혼 준비를 열심히 했는데 결혼 전 날에 이혼을 해버린거에요. 1년 동안 열심히 일을 했는데 모든 취업에 다 실패 했어요.
근데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에요.
18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
하박국 선지자는 명확하게 알았던거 같아요. 아 나의 기쁨의 원천은 다른 곳이 아니라 ‘오직’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구나.
하나님은 그분 만으로 즐거워하고 그분만으로 기뻐하는 진짜 lover를 만드시길 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삶을 살았던 그 동력은 하나님이 나를 죽기까지 사랑하셔서 그 사랑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삶을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존파이퍼가 자신의 책 ‘하나님을 기뻐할 수 없을 때’ 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한번 뿐인 인생 정말 정말 속히 지나갈 것인데,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일만이 영원하리라’ 라고 말이죠. 
우리의 마음 한편에는 늘 스스로의 자격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만하면 괜찮은 신앙인이라는, 하나님 앞에 떳떳할 수 있다는 안도감을 얻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이처럼 스스로에게 자격됨을 부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만하면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는 모습을 보면요. 하나님은 모세의 준비됨을 보신 것이 아니라, 그저 '모세'라는 한 존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당신의 사람으로 친히 '만들어' 가셨습니다. 그 모든 과정의 목적은 결국, 멋지게 사용하시기도 하셨지만,. 결국 그분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와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기 위함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신앙 여정이란, 나의 자격을 쌓아가는 여정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허물어뜨리는 여정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자격됨이 아닌 그분의 자격 됨으로 나아가는 자리, 그곳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원래의 부르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예수님을 택했다고 생각하며 어깨에 힘을 주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그 반대임을 깨닫게 됩니다. 자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우리를 예수님께서 먼저 택하여 주셨고, 당신의 의로 옷 입히시어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해 오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의 신앙은 나의 결단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한 그분의 포기 없는 사랑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사랑 안에서, 나는 비로소 진정한 나를 발견합니다.
요즘 하나님께서 나에게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나의 아들아 너는 존귀한 자란다. 너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을 받은 자란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은 나를 부드러운 음성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다시 돌아오라고, 더 이상 혼자 막 애쓰지 말고 그저 그 큰 사랑을 받는 자리, 그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자리로 돌아오라고 말입니다.
더 높은 곳을 향하여 가는 것 이전에 지금 있는 자리에서 나의 사랑을 충분히 누리고 경험하라고. 너의 모든 순간에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알려주고 싶은 그 마음을 너가 알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만을 알고 사랑하는 자리 즉 lover에 자리로 우리를 초청하고 있지는 않으실까요?
저는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고 우리교회에서 말하는 십자가 복음의 첫번째, 하나님 목적하신, 그분만을 알고 사랑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저와 이곳에 계신 청년분 한분 한분을 하나님께서 이 자리로 초청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성경본문을 보겠습니다.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합니다.

26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을 때에, 그 처지가 어떠하였는지 생각하여 보십시오. 육신의 기준으로 보아서, 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권력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가문이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으며,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28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29  이리하여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30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되시며, 의와 거룩함과 구원이 되셨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우리 같은 자들을 택하셔서 지금까지 인도해 오신 하나님 앞으로도 우리를 신실하게 이끌어 가시며 우리를 하나님만 사랑하는 Lover로 만들어 가는 하나님의 그 부르심에 우리가 다시금 그 사랑에 초점을 두고 회복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부를 찬양이 나를 부르신 이라는 찬양입니다.
찬양 가사가 이러합니다.
주는 강하고 언제나 동일하시니 내가 겸손히 주 앞에 나아갑니다.
주는 선하고 언제나 동일하시니 내가 겸손히 주 앞에 나아갑니다.
나의 연약함과 모든 죄 아시는 주님 나의 모든 것 다 하여서 경배합니다.
나를 부르신 주를 찬양합니다. 온 맘 다하여 주님을 경배합니다.
나를 부르신 주를 찬양합니다. 나의 모든 것 되신 주님을 소리 높여 찬양합니다.
그 강하고 선하고 동일하신 주님께서 우리의 연약함과 모든 죄를 다 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 그 하나님 앞에 다시 나아가서 그 하나님을 온 마음 다해 찬양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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