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습니다.(마 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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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1–12 NKRV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2013년에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는, 세상을 무한으로 돌고 도는 기차로 표현해, 기차의 가장 앞쪽 칸부터 뒤로갈수록 하층민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칸의 사람들은 결코 앞 칸으로 갈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뒤쪽 칸에 있는 사람들이 앞쪽 칸으로 이동하는 것은, 혁명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고, 이 혁명도 대부분 실패해 강력한 보복을 당하게 됩니다.
때문에, 꼬리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극심한 빈곤과 열악한 환경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지만, 때마다 주어지는 최소한의 식량은 그들의 저항의 불씨를 꺼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식량이 바퀴벌레로 만든 식량이었다는 점을 알게 된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식량을 먹을 수 없었고, 급기야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강력한 열망으로 봉기를 일으키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세상이 주는 수많은 먹을거리들이 있습니다.
음식 뿐만 아니라, 성공, 돈, 명예, 쾌락, 인기 등등의 먹을거리들 말이죠.
하지만, 우리의 육신과 영적인 배를 채웠던 것들이 모두 썩은 음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것들로 우리의 배를 채우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을 버리고, 더 나은 것들을 향한 갈망으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배고픔과 목마름은 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력한 갈증입니다.
배고픔과 목마름을 느끼는 사람은 누구든지, 음식과 물에 대한 강력한 열망을 갖게 됩니다.
굶주림에 대한 갈증이 얼마나 강력하고 무서운 열망인지를 보여주는 예를,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데, 열왕기하 6장에는 아람 왕 벤하닷이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자, 식량이 완전히 고갈되어 극심한 굶주림을 느낀 이스라엘의 모습을 묘사하는데,극심한 굶주림으로 인해 자식까지도 먹는, 이런 끔찍함은, 인간의 굶주림이 얼마나 강력한 갈증인지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갈증이, 하나님의 의에 대한 갈증으로 바뀐다면 어떨까요?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이 팔레스타인을 해방시킨 내용을 실은 ⟨마지막 십자군⟩이란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산상수훈: 마태복음 5〜7장 주리고 목마른 자

“영국과 호주와 뉴질랜드 연합군은 브엘세바에서 건조한 사막 너머로 퇴각하는 터키군을 추격하고 있었다. 진격부대는 물을 운반하는 부대와 멀리 떨어져 있었다. 물병들은 동이 났다. 태양은 잔인하게 작열하고 하늘에는 독수리들이 시체를 찾아 빙빙 돌고 있었다. 우리는 머리가 아팠다. 태양의 뜨거운 열기 때문에 우리의 눈은 침침하고 충혈이 되었다. ……혀는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입술은 검게 타고 터질 것 같았다. ……행진 대열에서 낙오된 자들은 결코 다시 보이지 않았다. 주력 부대는 세리아를 향해 사력을 다해 행군하고 있었다. 세리아에는 샘들이 있었다. 해 떨어질 때까지 세리아를 점령하지 못하면 수천 명이 갈증으로 죽을 판이었다. 우리는 그 날 목숨을 걸고 싸웠다. ……우리는 퇴각하는 터키군 뒤편에서 세리아로 들어갔다.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첫 번째 물체는 차갑고 깨끗한 음료수가 있는 돌샘들이었다. 조용한 밤공기 속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샘이 가까워지자 미칠 것 같았다. …우리는 브엘세바에서부터 행진하는 동안 성경의 교훈을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와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그렇게 갈망한다면……성령의 열매들이 얼마나 풍성하게 맺힐 것인가.”

목마름으로 깨끗한 물을 갈망하는 군사들이 물을 얻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울만큼, 그 물에 대한 열망이 하나님의 의를 향한다면, 이 땅에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 의를 이루기 위해서 이 땅에서 치열한 영적 전쟁을 싸워낼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의’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선, 본문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라는 말씀은, 여기서 말씀하는 ‘의’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미 주어진 의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미 주어진 것이라면, 그것에 주리고 목마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의’가 바울이 말하는 이신칭의에서의 ‘의’와는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마태복음에서 말씀하고 있는 ‘의’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의’라는 개념에 대한 단서는 마태복음 6:33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6:33 NKRV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서 우리가 일 수 있는 ‘의’는 하나님의 나라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하나님이 소유하신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의’라는 개념은 기본적으로 ‘올바름’을 의미합니다.
이 의를 사회에 적용하면, 불합리한 차별이 없고, 공정하고, 공평하며, 법에 따라 정확하게 판단 받는 세상이 의로운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의를 법적 영역에 적용한다면, 국가에서 정한 법을 지킬 때, 우리는 의로운 신분을 얻게 됩니다.
반대로 법을 지키지 않으면 ‘죄인’의 신분을 얻게 되겠죠.
그리고 이 ‘의’를 영적 영역에 적용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의’에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완전한 의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완전하게 의로우신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에 의로운 곳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주기도문에는 하늘과 땅을 대조하면서, 하늘은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하게 이루어진 곳이고, 이 통치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짐으로써,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간구합니다.
마태복음 6:10 NKRV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따라서 ‘의’는,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질 때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의’입니다.
그리고 이 ‘의’는 오늘 본문에 가장 가까운 5:20에서도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5:20 NKRV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기서 ‘의’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하는 의로,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가진 의와 대조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마태복음 내에서 예수님에게 계속해서 혼이 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혼나는 주된 이유는, 그들은 외면적으로 드러나는 율법은 잘 지키지만, 그들의 마음, 즉 내면은 하나님에게서 멀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5:8 NKRV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를 받지 못한 자들이기 때문에, 겉으로만 율법을 잘 지키는 척 했지, 정작 내면에는 온갖 불의로 가득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보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자들이라는 점에서 ‘더 나은 의’를 가진 자들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율법만을 지키는 자들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면까지도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더 나은 의를 가진 자들인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마태복음 5:48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48 NKRV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즉, ‘의’는, 우리 각 개인이,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를 받으면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그 명령을 따르고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의 결론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7:24–26 NKRV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또 마태복음 전체가 끝나는 부분에서도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8:20 NKRV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마태복음 16:27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6:27 NKRV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동일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마가복음 8:38과 비교해보면, 마태복음이 무엇을 강조하는지 알 수 있는데, 마가복음 8:38의 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8:38 NKRV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마가복음에서는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오리라”는 말씀 뒤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마태복음은 “각 사람이 행한대로 갚으리라”라고 말씀함으로써, 예수님의 가르침을 지키고 따를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마태복음에서 말씀하고 있는 ‘의’는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믿음으로 주어지는 신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와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하며, 이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통해 나타났고, 우리가 그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지키고 행할 때,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고, 그럴 때, 바로 이 ‘의’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란,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자들이며, 자신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를 열망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매우 참혹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고백한다는 이유로, 유대 종교로부터 나사렛 이단 취급을 받으며 버림받았고, 로마 정부로부터는 황제가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분리주의자라는 이유로 그리스도인들은 핍박받았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자신의 구주되시는 주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마태복음이 기록된 시점에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 16:24의 말씀에서 주님께서는 자신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6:24 NKRV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 자신의 부귀, 자신의 평안과 같은 자기 자신을 향해 있는 모든 것을 부인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고난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이 마태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마태복음이 기록될 당시에, 마태복음의 독자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러한 고난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런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과 핍박을 당하는 그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열망하는 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시편 107:9의 말씀에서도, 하나님은 사모하고 주린 자들을 채워주시는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07:9 NKRV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오늘 본문 6절의 말씀과 동일하게 10절의 말씀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10 NKRV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은, 언제나 세상의 핍박을 받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다가 동족들로부터 배척받고 죽을 위기에 처해지기도 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인해서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갔지만 사울 왕으로부터 수없이 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겨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수차례 매질을 당하고, 굶주림에 처하기도 하고, 조롱과 배신을 당하기도 했으며, 깊은 옥에 갇히기도 했고, 죽음의 온갖 위험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위대한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타락한 로마 카톨릭을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개혁하려고 했지만, 이것으로 인해 그는 가톨릭으로부터 엄청난 박해와 핍박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잘못된 인종차별 철폐와 평등을 외쳤지만, 이로 인해 여러 차례 투옥되었고 결국 1968년 암살을 당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신앙에 따라 일본 천황 숭배를 거부했다가 일본으로부터 엄청난 고문과 투옥을 당하시다가 결국 순교하셨습니다.
지금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싸움들을 싸워나가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신앙을 위해 꿈과 직업과 좋은 기회도 포기합니다.
또 어떤 이는, 신앙을 위해서 가족으로부터 핍박받고 폭력을 당하기도 합니다.
세상은, 온갖 과학과 이성의 무기를 들고 우리가 가진 신앙을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세계 열방에 복음을 전하고 있는 많은 선교사님들은 물질적 빈곤과 세상의 박해와 살해의 위협 속에서도 믿음의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가진 믿음과 신앙은 너무나 작고 초라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이 작고 초라한 믿음을 끝까지 붙들고,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열망하고, 나를 통해 내가 속한 곳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자들에게, 그들을 반드시 채워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과 기쁨으로 채워주실 것이며, 죽음 이후에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참된 안식과 평안으로 우리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우리가 가진 믿음을 조롱하고, 비웃고, 박해하고, 핍박할지라도,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썩은 음식을 향한 갈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에 대한 주림과 갈망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내가 세상에서 얼마나 부한지가 아니라, 내가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인기와 명예와 즐거움을 누리며 살아가는지가 아니라, 나를 통해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는가, 나를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가, 내가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지가, 나에 대한 평가의 기준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타락하고 썩어가는 이 세상에서,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면서, 이 땅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어두운 세상에 나를 통해 복음의 빛이 비춰지고, 나를 통해 썩어져 가는 세상에 복음의 맛을 낼 수 있기를 갈망하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그런 갈망과 열망이 있는 자들만이,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를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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