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2:18-29) 껍데기 신앙, 알맹이 신앙
Notes
Transcript
서론: 껍데기 신앙인가, 알맹이 신앙인가?
서론: 껍데기 신앙인가, 알맹이 신앙인가?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부릅니다. 교회를 다니고, 예배를 드리며,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누군가 종교를 물어 본다면, "저는교회다닙니다", “예수 믿어요”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질문을 다시 던지신다면, 우리는 똑같이 대답할 수 있을까요? 웬지 죄송한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외적으로 많은 것을 이루었습니다. 웅장한 교회 건물들이 도시 곳곳에 서 있고, 수만 명이 모이는 대형교회들이 있으며, 세계 선교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교회는 많은데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많은데 그리스도의 향기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로마서 2장 후반부에서 사도 바울은 이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그는 당시 유대인들의 모습을 통해 오늘 우리의 민낯을 보여줍니다. 율법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다고 자부하면서도 정작 그들의 삶은 율법과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신앙의 사람처럼 보이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과의 진실한 관계가 없는 삶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표면적 유대인"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이와 대조되는 "이면적 유대인"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표면적'이란 겉으로 드러나는 것, 보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이면적'은 숨겨져 있으나 본질적인 것, 즉 마음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표면이 아니라 이면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이 말씀은 2천 년 전 유대인들만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여기,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나는 진짜 성도인가? 아니면 겉모습만으로 신앙인 행세를 하고 있는가?
본론 1: 앎과 삶이 분리된, 표면적 신앙의 민낯
본론 1: 앎과 삶이 분리된, 표면적 신앙의 민낯
본문 18절부터 24절까지 바울은 유대인들의 자기 확신을 나열합니다. 그들은 율법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스스로를 맹인의 길잡이요, 어둠 속에 있는 자의 빛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즉시 그들의 위선을 폭로합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면서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하면서 도둑질하느냐?"
이것이 바로 표면적 신앙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분리되어 있고, 가르치는 것과 사는 것이 다릅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주일에는 거룩한 표정으로 예배당에 앉아 있지만, 월요일의 삶의 현장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됩니다. 교회에서는 사랑과 용서를 말하지만, 사회생활에서는 생존을 핑계로 동료들과 부딪히고 갈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십일조는 철저히 드리면서도 세금은 교묘히 회피합니다. 새벽기도회에는 열심히 나가면서도, 정작 가장 사랑해야 할 가정에서는 이기적인 말과 행동으로 가까운 이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이처럼 개인의 삶에서 나타나는 모순이 만연할 때, 우리는 이것을 그저 개인의 연약함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개인의 이중적인 모습들이 모여 교회의 영적인 힘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번지게 됩니다. 최근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여러 사건들을 보십시오.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세습 문제, 교회 재정의 불투명한 운영, 성도들 간의 금전 사기, 교회 지도자들의 성추문. 이런 일들이 왜 계속 일어날까요? 바로 우리 안에 만연한 표면적 신앙에 안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앙을 하나의 '스펙'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좋은 교회 다니는 것이 자랑거리가 되고, 교회 직분이 명함에 들어갈 타이틀이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이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수단이 되고, 교회가 비즈니스 인맥을 쌓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입니까?
바울은 24절에서 충격적인 선언을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바울의 이 날카로운 지적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들립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 때문에 불신자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리가 이해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습에 실망하고 상처받기 때문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더 나쁘다'는 말이 농담이 아닌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의 표면적 신앙이 복음의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본론 2: 외적 증표가 아닌 내적 변화, 마음의 할례
본론 2: 외적 증표가 아닌 내적 변화, 마음의 할례
25절부터 바울은 유대인들이 자랑하던 또 다른 표지인 '할례'를 다룹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증표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네가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고 선언합니다. 아무리 거룩한 표시를 가지고 있어도, 삶이 따르지 않으면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무엇일까요? 세례, 교회 등록, 직분, 신학 학위, 신앙 경력. 우리는 이런 것들을 내세우며 자신이 진짜 그리스도인임을 증명하려 합니다. 그러나 바울의 논리는 명확합니다. 이 모든 외적 표지는 내적 실재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바울은 혁명적인 주장을 합니다.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기지 아니하겠느냐?"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다면, 그가 진짜 그리스도인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교회 출석부에 이름이 있으면 구원받았다고 안심합니다. 세례증서가 있으면 천국 시민권을 가진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교적부가 아니라 생명책입니다. 외적 소속이 아니라 내적 변화입니다.
바울은 29절에서 결정적인 기준을 제시합니다.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 것이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진짜 하나님의 백성은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할례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굳은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인 마음이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겉모습을 꾸미는 데 급급했던 마음이 내면의 거룩함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너무 많은 것을 외면화시켰습니다. 예배가 화려한 공연처럼 변하고, 기도가 종교적 퍼포먼스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삶의 예배로 이어지고,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교제가 되며, 우리의 찬양이 마음 깊은 곳의 감사에서 우러나올 때, 비로소 말씀은 순종으로 완성됩니다. 이 모든 것이 마음의 진정한 변화에서 시작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훌륭해 보여도 결국은 공허한 껍데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본론 3: 누구의 칭찬을 구하는가? 사람인가, 하나님인가?
본론 3: 누구의 칭찬을 구하는가? 사람인가, 하나님인가?
참된 신앙이 이처럼 내면의 문제라면,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내면의 동기와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가 중요해집니다. 바울은 29절 마지막에 그 방향을 명확히 제시합니다.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이것이 표면적 신앙과 이면적 신앙을 가르는 궁극적인 차이입니다.
표면적 신앙인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신앙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보이는 곳에서는 열심을 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느슨해집니다. 사람들이 주목하는 사역에는 앞다투어 참여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섬김은 기피합니다.
오늘날 SNS 시대에 이런 현상은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신앙생활마저도 '인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새벽기도 인증샷, 성경 읽기 인증, 봉사활동 인증. 하나님께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신앙이 되어버렸습니다.
교회의 직분 선거를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경쟁과 로비가 있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려는 마음보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직분이 섬김의 자리가 아니라 명예의 자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반면 이면적 신앙인은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합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갑니다. 숨은 곳에서 기도하고, 은밀한 구제를 행하며, 아무도 모르는 희생을 감당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구하는 것은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교회에서 눈에 띄지 않습니다. 화려한 간증거리도 없고, 극적인 신앙 체험도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주목하십니다.
결론: 이제, 가면을 벗고 하나님 앞에 서라
결론: 이제, 가면을 벗고 하나님 앞에 서라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거울과 같습니다. 이 거울 앞에서 우리는 자신의 민낯을 봅니다. 화장으로 가려진 얼굴이 아니라 진짜 얼굴을 봅니다. 그리고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대부분이 표면적 신앙인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우리의 위선과 가식을 고백해야 합니다. 겉모습에만 치중했던 삶을 돌이켜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변화를 구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마음의 할례는 평생에 걸친 과정입니다.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날마다 하나님 앞에 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의 평가에서 자유로워지고, 오직 하나님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어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실 때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돌같이 굳은 마음이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뀝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위기라고 합니다. 젊은이들이 떠나고, 사회적 신뢰도는 바닥이며, 복음의 능력은 약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위기는 외적인 것이 아닙니다. 진짜 위기는 우리가 표면적 신앙에 안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신앙의 화려한 껍데기를 벗고 진실한 알맹이를 붙잡아야 할 때입니다. 더 이상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한 종교적 위선에서 벗어나,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참된 신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변화는 표면이 아닌 이면에서, 형식이 아닌 본질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진짜 성도는 이면에서부터 하나님을 향해 걷는 사람입니다. 마음에 천국이 임한 사람입니다.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한 명, 두 명 늘어날 때, 교회는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회복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결단합시다. 더 이상 표면적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않겠다고. 가면을 벗고 진짜 얼굴로 하나님 앞에 서겠다고. 비록 부끄럽고 초라할지라도,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겠다고.
그것이 바로 마음에 할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면적 성도가 되는 길입니다. 그 길은 좁고 험하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그 길을 가는 자가 하나님께 칭찬받는 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