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막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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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막으십니까?
제목: 왜 막으십니까?
본문: 사도행전 16장 6-10절
본문: 사도행전 16장 6-10절
찬송: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찬송: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아침 일찍 일어나 논에 나가려던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장화를 신고 문을 나서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기예보에도 없던 비였습니다. 순식간에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그 농부는 막막했습니다. "왜 하필 오늘? 왜 지금?" 하루 계획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경험들을 하게 됩니다. 모든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마쳤는데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 우리의 길을 가로막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묻게 됩니다. "왜 이렇게 될까? 왜 하필 나에게?"
그런데 놀라운 것은 2천 년 전 사도 바울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도 완벽한 선교 계획을 세웠습니다. 1차 전도여행의 성공적인 결과를 바탕으로 2차 전도여행을 위한 치밀한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령께서 두 번이나 바울의 길을 막으신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왜 바울의 길을 막으셨을까요? 오늘 성령의 막으심 속에는 어떤 하나님의 뜻이 숨어있었지 본문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성령의 깊은 뜻
성령의 깊은 뜻
첫 번째 막음: 6절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첫 번째 막음: 6절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바울과 실라, 그리고 루스드라에서 새로 합류한 디모데는 이미 방문했던 성읍들을 재방문한 후 다음 계획을 추진하려 했습니다. 그것은 아시아, 곧 지금의 터키 서부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에베소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는 당시 로마제국에서 가장 부유하고 문명화된 지역 중 하나였습니다. 바울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고 논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막으셨습니다. 원어로 '콜뤼덴테스'라는 이 단어는 '막힘당한'이라는 뜻으로 이는 바울 자신의 의지나 선택과는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개입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는 절대적인 막힘이었습니다.
성령께서 바울의 진로를 어떻게 막으셨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환상을 통한 계시로 막으셨을 수도 있고, 특별한 환경을 통해서 막으셨을 수도 있으며, 사람의 가르침을 사용하셔서 막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바울이 성령의 인도를 강하고 분명하게 느꼈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 막음: 7절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두 번째 막음: 7절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아시아 선교가 막히자 바울 일행은 북쪽으로 방향을 바꿔 비두니아로 가려 했습니다. 비두니아 역시 복음 전파에 적합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막혔습니다. 이번에는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6절에서는 "성령"이라고 하시더니 7절에서는 "예수의 영"이라고 표현하고 계십니다. 이 "예수의 영"이라는 표현은 신약성경에서 오직 여기에만 나타납니다. 이는 성령님이 곧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이시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이 하나가 되어 역사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하나님 나라에만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영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시고, 우리를 도우시며, 우리를 통해 주님의 뜻을 이루고 계십니다.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논에서 30년간 벼농사를 지어왔습니다. 그런데 2년 연속 극심한 가뭄이 찾아왔습니다. 저수지 바닥이 드러나고, 물을 구할 길이 없었습니다. 모내기 철이 지나가는데 논은 갈라진 흙덩이뿐이었습니다.
그 농부는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조상 대대로 지켜온 논농사를 내 대에서 포기해야 하나?'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마음을 돌려 고구마와 땅콩을 심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해 가을, 고구마와 땅콩이 풍성하게 열렸습니다. 시장 가격도 좋았습니다. 30년 논농사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소득을 올렸습니다. 그제야 그 농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뭄으로 자신의 길을 막으신 것이 오히려 더 큰 축복이었음을...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의 영이 두 번이나 그의 길을 막으셨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계획과 고집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성령의 인도와 지시에 순종하여 자신들의 원래 일정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드로아로 향했습니다.
막힘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사랑
막힘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이 드러나다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이 드러나다
바울 일행이 드로아에 도착한 후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였습니다.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말하기를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했습니다. 이는 복음이 아시아 대륙에서 유럽 대륙으로 건너가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바울이 유럽 선교의 첫 번째 사도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만약 성령께서 바울의 아시아 선교를 허락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약 예수님의 영이 비두니아 진입을 막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바울은 아시아와 비두니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만족했을 것이고, 유럽 선교는 훨씬 늦어졌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바울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보다 훨씬 크고 원대한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단순히 아시아 한 지역의 복음화가 아니라 온 유럽 대륙의 복음화를 위한 계획이었습니다. 로마제국 전체의 복음화를 위한 계획이었습니다.
"우리"라는 단어에 숨겨진 비밀
"우리"라는 단어에 숨겨진 비밀
그런데 10절에서 더욱 놀라운 일이 나타납니다.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지금까지 사도행전에서 바울 일행은 줄곧 "그들"이라고 기록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라는 표현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는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바로 이 드로아에서부터 바울의 일행에 합류했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누가는 의사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평소 지병을 앓고 있는 병약한 체질이었습니다. 바울 역시 병약한 체질이었던 것입니다. 앞으로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은 3차 전도여행으로 이어질 것이고, 생애 말년 로마를 찾아가 예수님을 위해 참수형을 당하기까지 바울의 삶은 매질과 채찍질과 옥살이의 연속이 될 것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미리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방법으로 바울과 누가가 만나게 하시고, 누가의 마음을 감동시키시어 바울이 살아 있는 동안 바울과 밤낮 동행하며 그의 건강을 보살펴 주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재벌이 아니었습니다. 최고 권력자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다치거나 병이 들어도 의사를 찾아갈 경제적 여력도 없는 가난한 전도자일 뿐이었습니다. 그 가난한 전도자 바울이 자신이 죽는 날까지 자신을 돌보아 줄 의사를 대동하고 다닌다는 것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님의 방법으로 바울과 누가가 만나게 하시고, 누가로 하여금 바울의 일거수일투족을 사도행전 속에 기록하게 하셔서, 그 기록이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예레미야 29장 11절 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로마서 8장 28절 에서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막으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계획을 좌절시키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왜요? 왜 막으십니까?"라고 묻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막으심은 더 좋은 'Yes'를 위한 것입니다. 더 큰 축복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 교회도 때로는 연약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자신도 부족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원하던 만큼 신앙이 성장하지 않는 것 같고, 기대했던 만큼 은혜가 넘치지 않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 우리도 묻게 됩니다. "하나님, 왜 우리가 이렇게 연약합니까? 왜 우리의 믿음이 이렇게 작습니까?"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우리를 통해서도 당신의 놀라운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기회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성령 충만, 믿음 충만, 말씀 충만한 성도로 빚어가시며, 우리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바울의 경험을 통해 중요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No'는 더 좋은 'Yes'를 위한 것입니다. 막힘은 하나님의 거부가 아니라 더 큰 축복을 위한 인도입니다.
때로 우리의 인생 앞길이 가로막히고 우리의 계획이 무산될 때, 절대로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그것이야말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를 위해 친히 예비하신 드로아로 우리를 인도하시려는 그분의 손길입니다.
연약한 우리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기회가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 우리의 삶을 온전히 의탁하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보잘것없는 우리의 인생을 영원한 사도행전으로 엮어 주실 것입니다.
오직 부활하신 예수님만 우리의 영원한 힘이시요, 소망이십니다.
막힘 속에서도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을 믿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때로 우리의 길이 막히고 계획이 좌절될 때, 원망하고 불평했던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 알겠습니다. 하나님의 막으심은 거부가 아니라 더 큰 축복을 위한 사랑의 인도였음을...
연약한 우리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기회가 되게 해주십시오.
앞으로 우리의 길이 막힐 때마다, 바울처럼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게 해주십시오. 우리 각자에게도 드로아에서 만난 누가와 같은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있음을 믿습니다.
성령 충만, 믿음 충만, 말씀 충만한 교회와 성도가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어 드리게 해주십시오.
막힘 속에서도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을 믿고 소망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