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회 저녁집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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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인생의 운전대는 누가 잡고 있는가?

여러분 ‘네 삶의 주인이 되십시오’ 이런 말 들어본 적 있으시죠. 내 인생에 내가 주인되어 살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끌려 다니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 말하면서 주인되어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제가 어릴때 광고 노래중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하는 신용카드 광고가 있었습니다. 인생의 주인되어 신용카드를 퐉퐉 긁으며 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안 좋아하실 거 같아요.
우리는 인생에 주인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주인되어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저도 주인되어 살고 싶지만 아침부터 실패합니다. 제가 알람을 수없이 많이 등록합니다. 새벽 6시, 6시 5분, 6시 10분 그렇게 쭈욱가다가 7시까지 가게 됩니다. 내 인생을 내 맘대로 살아가는게 쉽지 않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난 계획을 안해’ 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계획해봤자 계획된대로 되지 않으니까 계획하기를 멈추신 겁니다.
인생의 주인되고 싶지만 사실 쉽지 않습니다. 특히 어려움을 만나면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작은 어려움에서도 분노하는 나를 보면 내가 또 얼마나 통제되지 않는 악한 존재인지도 가끔은 깨닫게 됩니다.
내 삶에 주인되는 거 사실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처음 살아보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오늘을 처음 경험합니다. 여러분 고3 한번 더 경험해본 친구들 있나요? 재수생이 되면 두번 경험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아요. 재수생도 재수가 처음이라 내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제가 어머니랑 다투다가 ‘이럴거면 왜 낳았어?’ 이런 말을 한적이 있어요. 저희 어머니 ‘너 같은게 나올줄 알았으면 나도 안 낳았어’ 이렇게 말하시더라고요. 어머니도 괴물 같은 아들이 처음이시죠. 우리는 모두 처음 인생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초행길을 달리는 운전자나 다름 없습니다. 그러기에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거 불가능한 일입니다.
뉴스를 보는데 저를 분노케 하는 뉴스가 하나 있었습니다. 한 어머니가 군대 휴가 나온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여러분 어머니가 얼마나 설레이는 마음으로 가셨겠습니까? 아들 알아서 오라고 해도 됐을텐데 빨리 만나고 싶고, 편하게 아들 집에 오게 하고 싶어서 그 먼길을 직접 데리러 간 겁니다. 그런데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역주행 하는 차가 달려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차량을 박습니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습니다.
가해자 차량을 알고 보니 무면허 운전자였습니다. 그는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음주운전을 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알콜농도 0.08로 면허 취소 정도의 음주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무면허 사건이 매해 수없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제가 뉴스를 보다가 무슨 생각으로 운전대를 잡을까 고민해봤습니다. 분명 자신만만하게 잡았을 겁니다. 나는 분명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잡았겠죠.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운전대를 잡고 출발합니다. 그리고 들이박는 겁니다.
제가 이 뉴스를 보면서 우리도 우리 삶의 운전대를 잡으려고 하는 구나, 내가 어떤 상태인지도 알지 못하고 내 인생의 주인되겠다고 운전대를 잡고 여기저기 들이박는구나, 연약함을 알면서도 운전대를 내려놓지 않고 꾸욱 잡고 살아가는구나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성경 안에서 ‘죄’가 등장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죄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의 운전대를 내가 할 수 있다고, 내가 주인되겠다고 잡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저도 제 인생의 운전대를 잡고 아내를 들이박습니다. 너가 틀렸고, 내가 맞고 막 들이박습니다. 또는 친구들과 부모님과 막 들이박는 겁니다. 초행길을 가면서 알지도 못하고 그냥 자신을 믿고 운전대를 꽉 잡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죄된 인생입니다. 내가 내 인생을 이끌어갈 수 있다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 죄입니다.
반대로 믿음은 무엇일까요? 아주 쉽습니다. 내 인생의 운전대를 하나님에게 맡기는 겁니다. 내가 할 수 있다 말하며 꽉 잡은 그 운전대를 내려놓고 하나님에게 맡겨드리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세상이 말하는 ‘돈, 명예 등’ 세상에서 반짝 거리는 것에 인생을 맡깁니다.
대표적으로 여러분은 입시가 그렇습니다. 대학에 운전대를 맡깁니다. 대학만 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조금씩 느끼고 있으시죠? 대학이 내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안함과 두려움 때문에 대학에게 운전대를 맡깁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입시 때문에 목숨을 끊습니다. 수많은 청년들이 대학을 가서도 자퇴하거나, 과를 바꾸거나, 취업하지 않고 숨어버립니다. 대학만 나오면 다 해결될거라 말했는데 우리 사회를 조금만 둘러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운전대를 하나님에게 맡겨 드려야 합니다. 돈과 대학이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저 내가 내 인생의 운전대를 잡고 살아가는거나 다름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나의 운전대를 맡겨드려야 합니다. 나보다 나를 잘 아시는 그 하나님에게 내 삶을 맡겨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누군대?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이 도데체 누구시길래? 우리 인생을 맡겨야 할까요.
운전대를 맡기려면 적어도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전에 저희 아버지가 제 친구를 태워서 집에 데려다주신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제 친구가 가는 길이 조금 다르고 이상해서 아버지에게 저기로 가면 더 빠르다고 말해주는 거에요. 저희 아버지가 친구에게 ‘운전수 마음대로 가겠습니다’ 말하더라고요. 제 친구가 감동을 하면서 ‘아버지 쿨하시고 멋지시다.’ 말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전혀 쿨하지 않았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내비를 안 보세요. 그리고 자꾸 길을 잃으세요. 운전수를 알아야 신뢰하며 맡길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누구실까요?
제가 유퀴즈를 보다가 참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택시 기사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소개 영상을 1분짜리인데 짧게 한번 보겠습니다.
(영상)
여러분 저 기사님의 마음이 느껴지시죠? 차는 택시지만 구급차에 역할을 하기도 하고, 또는 상담가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또는 아버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의 운전대를 맡겨드리는 하나님도 그러합니다.

1) 하나님은 공감하시는 하나님

먼저는 하나님은 공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능력이고 성품이 바로 ‘공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고통을 보고, 신음을 듣고, 근심을 알았기에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겁니다. 그저 하나님의 크심을 나타내기 위한 행동이 아닙니다. 우리의 고통을 알기에, 우리의 아픔을 느끼시기에 우리를 고통 속에서 끄집어 내신다는 겁니다.
출애굽기 3: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그런데 여러분 공감이 무엇일까요? 가끔 티비에서 불쌍한 아이들이 나옵니다. 우리나라에도 태어날때부터 희귀병을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들 있잖아요. 우리는 티비를 보면서 불쌍해 합니다. 마음 아파합니다. 또 마음이 있으면 후원도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공감일까요? 이건 리액션입니다. 슬픈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거 뿐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하나님이 말하는 공감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어려운 일 있을때 제가 공감한다고 막 아파하고 슬퍼하면 위로가 되겠죠. 그런데 여러분이 시험을 망쳐서 속상합니다. 그때 친구가 나도 이번 시험 망쳤어. 우리 같이 맛있는거나 먹자. 피씨방이나 가자. 여러분 제 위로보다 친구의 위로가 더 클 것입니다. 왜그래요? 나와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브리서 4장 1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아픔을 공감하십니다. 왜 공감하시냐 우리의 고통을 똑같이 느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겪는 그 고통들, 내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예수님도 느끼고 아파하고 결국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고통을 똑같이 느끼쎴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마음을 잘 아신다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감입니다.
나보다 나를 잘아시는 하나님이라고 표현하죠. 그것은 단순히 나를 지식적으로 잘 아시는 것을 넘어서서 나와 똑같이 느끼시고, 경험하시고, 그래서 그 문제가 얼마나 나를 괴롭게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 아픔을 아십니다. 내 맘대로 살아가지지 않는 내 인생의 고통을 주님이 잘 아신다는 겁니다. 내가 운전대를 붙잡고 열심히 살아가는데 또 박고, 또 관계 넘어트리고 하는 그 아픔, 상처, 문제들을 아신다는 겁니다. 왜 주님도 느끼셨기 때문입니다.

2) 작은 자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아까 그 기사님이 돈을 벌겠다면 그 아이를 태울 이유가 없습니다. 그 아이는 돈도 되지 않고, 시간만 쓰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기사님은 그 아이를 태웁니다. 돈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 어린아이의 생명을 위한 운전이었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운전대를 잡으시는 거 우리가 뛰어나서, 우리가 강한 자여서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은 그러한 사람들을 태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자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연약한 우리를 태우시는 하나님이라는 거에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때 대표로 부르신 사람이 바로 모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처럼 작은 자가 아니라 강한 자를 부르셨다면 모세가 아니라 애굽의 왕 바로를 부르셨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가 아니라 모세를 부르십니다.
왜 바로가 아니었을까요?
[출7:13, 개역한글]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여 그들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출애굽기 7장 13절 개역한글 예 성경 버전에는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다고 말합니다. 강퍅 발음도 어려운 말입니다. 강퍅을 사전에서 찾으니

신실하신 하나님

기사님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기사님의 목적은 돈이 아닌거 같습니다. 돈이었다면 그 아이를 태우지 않았을 겁니다. 그 아이를 태워도 저렴한 가격보다 오히려 빙빙 돌아서 갈 수 있었습니다. 또 저녁에 갑자기 아이가 병원에 가야한다는 연락을 받고도 나가지 않았을 겁니다. 기사님의 목적은 돈이 아니라 그 아이였습니다. 아이의 아픔을 공감하였기에 그 아이와 함께 한 겁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지, 암환자가 아니라 정말 소중한 아이라는 것을 기사님은 알았기에 그 아이를 태워 병원까지 안전하게 이끈 겁니다.
하나님의 모습도 그러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공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아픔을 잘 아시는 하나님입니다. 그 공감은 우리가 해외에 고통 받는 아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슬픔이 아닙니다. 그건 그저 슬퍼하는 감정이고 리액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감은 다릅니다. 우리와 같이 고통을 느끼시고, 또 우리보다 더 큰 고통과 아픔을 당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히브리서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가 겪는 그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입니다. 공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슬퍼하는 감정이 아니라 우리의 아픔을 겪으시고 느끼시며 또 그것을 이겨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시험을 망쳐서 힘들어할 때 제가 공감하는 것과 함께 시험을 망친 친구들의 공감이 더 위로가 되고 힘이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그 공감을 하시는 겁니다. 우리처럼 아프시고, 우리와 같이 슬퍼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멈추지 않으시고 우리를 고통에서 건져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 41:10–13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우리는 우리의 고통을 보고 두려워하고, 슬퍼하며, 절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의로운 팔로 우리를 건져내심을 이야기합니다. 더이서 수치와 욕을 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셔서 우리를 기쁨의 땅으로 인도하시겠다는 선포입니다. 선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운전대를 잡으시는 겁니다.
그 아이가 멀미를 할까 조심조심 운전하는 기사님처럼, 아이가 더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운전하는 기사님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고, 때로는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심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되시겠다는 겁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에게 인생의 운전대를 맡겨드리는 겁니다.

2. 하나님의 꿈

하나님이 우리의 운전대를 잡으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도 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꿈은 바로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짜 누구인지 하나님은 찾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누구일까요? 여러분은 여러분을 누구라 말합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내 소유’라고 부르십니다. 여기서 ‘소유’의 어원은 히브리어로 ‘세굴라’입니다. 보물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체성 반짝 반짝 빛나는 보물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꿈입니다.
천국은 마치에서 밭에 감추인 보화를 찾으려고 ‘집 팔고, 냉장고 팔아서’ 보물을 사지 않습니까? 그 찬양의 보물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모든 것보다 가치 있는 분이심을 고백하는 찬양이죠. 근데 반대로 그 말씀이 우리가 보물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발견했다면 어떻게 보이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밭에 감추인 보물인 우리를 발견하신 겁니다. 보물인데 흙과 오물로 더럽혀져 있습니다. 그 누구도 보물인지 몰랐던 겁니다.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점수로 매기고, 못생긴 외모로 매기고, 이러한 더러움으로 뒤덮인 정체성 속에서 보물을 발견하신 겁니다. 그리고 집 팔고, 냉장고 팔아야 하는데 하나님은 집이 없고, 냉장고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줍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십니다. 자신의 생명을 내어줌으로 보물인 우리의 정체성을 생명의 값으로 사신 겁니다.
하나님의 꿈입니다. 우리의 더럽혀진 정체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찾으신 겁니다. 우리는 생명의 값으로 주어진 정체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반짝 반짝 빛나는 보물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운전대를 잡으시고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 우리가 얼마나 반짝 반짝 빛나는 존재인지 찾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세상이 주는 정체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물,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 나의 생명으로 구한 귀한 생명임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꿈이 조금 상상되십니까? 우리는 그런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에게 반짝 반짝 빛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못 발견하는 거 같아요. 왜 못볼까요? 자꾸 나에게 주어진 환경을 보고, 나의 점수를 보고, 나의 외모를 보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을 우리의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봅시다. 그때 우리가 얼마나 반짝 반짝 빛나는지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정체성을 발견하기 위해 하나님에게 시선을 드려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게되고, 하나님이 나의 운전대를 잡으시고 인도하심을 통하여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게 되는 겁니다.
이건 우리의 꿈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힘과 노력 때로는 자격으로 이룰 수 있는 꿈이 아닙니다. 이 말은 내가 자격이 되어야 꿈을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내가 자격이 되지 않더라고 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꿈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꿈꾸셨습니다. 보물인 그들을 되찾아 그들을 통하여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되게 하셨습니다. 반짝 반짝 빛나는 인생들이 그 빛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 누군가의 어두워진 인생을 다시 빛나게 하고, 내가 하나님의 소중한 보물임을 발견하고 또 빛으로 나아가서 어두어진 인생을 빛나게 하는 그 나라, 그 백성으로 살게 하신 겁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수련회에 주제이고 핵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구한 소중한 자녀입니다. 우리는 반짝 반짝 빛나는 존재입니다. 그 빛을 가지고 세상의 어두워진 사람들의 인생을 밝히 비추며 살아갑시다’ 저는 오늘 이 한문단을 여러분에게 전하기 위해 긴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론 아이들

제가 수련회에 오기 전에 제가 21살때 군대가기전 처음 맡았던 중등부 아이들에게 연락이 왔어요. 지들끼리 만나서 밥먹고 커피마시는데 제가 생각나서 연락했더라고요. 그래서 안부를 묻고 중학생때 기억을 이야기해주더라고요. 그때 하나님을 처음 만났던 경험들, 부족하지만 저의 사랑 그것에 엄청 감동했다고 고백해주더라고요. 수련회를 준비하는 기간이라 제가 고민도 많고 두렵기도 했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같았어요. 그리고 이 아이들이 하나님의 꿈을 이루신 아이들이겠구나, 그래서 오늘 여러분에게 이친구들 이야기를 좀 나눠주면 우리 고등부친구들도 꿈을 꿔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어서 바로 그 자리에서 너희 얘기를 해도 되겠니 물어보고 허락받고 여러분에게 이 친구들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한 친구는 ‘새이레 기독학교’에서 교사도 하고, 사역자이기도 합니다. 부모님이 새이레 기독학교에 교장선생님이고 목사님이세요. 그래서 꿈이 없는 친구들, 학교에서 적응을 못하는 친구들, 하나님 안에서 자라나기 바라는 아이들이 모여서 기숙학교 형태로 공부하고 예배하며 자라나는 학교입니다. 저는 가서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아이들의 눈이 반짝 반짝 빛나더라고요. 거기서 선생님으로 사역자로 많은 일을 맡고 있습니다. 한 친구는 서울 모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해서 인터뷰도 하고 신문도 작게 나왔다고 자랑하더라고요. 또 한 친구는 필라테스 강사입니다.
이렇게 보면 참 예쁘고 멋있고 그러죠? 참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는 뭐 이런 애들이 다 있나 싶었습니다. 중등부 겨울 수련회에 이 아이들과 다른 친구들 10명이 참석했습니다. 저 새이레 기독학교 친구만 우리교회를 다녔고 9명을 전도한 겁니다. 그런데 딱 왔는데 머리가 빨주노초파람보로 막 난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당시 20대에 써클렌즈를 애들이 많이 껴서 눈도 색이 다 달랐습니다. 노스페이스 패딩 입고 머리 막 이상하고 그런 애들 있잖아요. 딱 그런 애들이었습니다.
그런데 10명의 친구들 중 사실 4~5명만 교회에 계속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1년이 지나고 저 아이들의 반을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새이레 기독학교 친구는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중 1때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전학을 가서 그 학교에서 일진놀이를 시작하게 된겁니다. 왕따로서 그런 억압을 풀 공간이 필요했나봐요. 그래서 정말 해서는 안되는 일들을 막 하고 다녔습니다. 저도 어린 나이에 저 친구 합의를 하러 경찰서를 간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간호사인 친구는 한부모 가정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부재를 항상 느끼고 아파하는 친구였습니다. 한 친구는 자신의 외모에 혐오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밥을 먹으면 손가락을 넣어서 토를 합니다. 이걸 계속 반복하는 거에요. 저 아이들과 함께 1년을 지내며 정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씨름했습니다. 그러면서 수련회에서 함께 예배하며 기도하다가 아이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갑자기 변화 되었습니다.
관계에 문제로 고민하던 친구는 하나님과의 관계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또는 왕따를 당하는 친구들을 위한 교사가 되겠다 결심합니다. 그 아이가 새이래 기독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또 한 아이는 아버지의 부재를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지금 의료선교를 통해 가난한 아이들,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섬김을 매년 하고 있습니다. 또 먹고 토하던 아이는 하나님을 만나고 자신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필라테스 강사가 되어 몸과 마음을 위로하는 선교사다 생각하며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저 아이들에게는 이런 삶이 꿈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살면서도 이렇게 살아야지 결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꿈을 꾸신 겁니다. 그리고 이 모습이 하나님의 꿈이 다 이루어진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계속 이 아이들을 통하여 꿈을 이루어 가실 겁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저 언니들처럼 되라고 말하는 거 아닙니다. 저 언니들도 이 시간 속에 수많은 고난을 만나고 어려움을 만납니다. 하나님을 수없이 원망합니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나의 정체성을 붙잡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 속에서도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그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묵묵히 폭풍 속에서도 걸을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가지만 또 하나님이 자신들을 어떻게 빚어갈까 소망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붙잡고 살아가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꿈이 무엇이냐? 많이들 물어보시죠. 꿈 없어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한 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붙잡고 살아갑시다. 그 꿈은 ‘내가 누구인지?’아는 질문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보물, 반짝 반짝 빛나는 인생입니다. 그러기에 그 무엇도, 어떠한 어둠도 우리를 감추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으로 구한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입니다. 그 사랑은 무엇도 끊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자신을 혐오하고 미워해도, 아니 누군가 여러분을 미워하더라도 그 사랑을 끊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입니다. 그런 나를 통해 누군가의 인생을 빛나게할 하나님의 꿈을 소망하며 살아갑시다. 말씀은 여기서 끝나지만 하나님의 꿈은 이제 시작될 겁니다. 그 소망을 붙잡고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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