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된 시대, 교회는 돌봄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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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2:25-27(신약 278쪽)
설교제목: 변화된 시대, 교회는 돌봄이 필요합니다.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요사이 청년들과 모임을 하면서요. 미래에 변화들에 관한 얘기를 나눴는데요. 최근에는 A.I에 따른 변화에 관한 얘기를 나눴고요. 일전에 이 시간을 통해서도 간략히 소개한 바가 있죠. 그리고 어제는 이 시간에는 기후 변화에 따른 문제를 얘기했고, 그것도 신앙에 관계된 문제임을 얘기했어요. 제가 이렇게 미래의 변화에 관해 생각을 하면서요. 과연 교회는 어떤 변화를 맞이할지를 생각하는데요.
이에 관해서 지혜를 나눠주신 목사님이 계셨어요. 제가 다른 내용으로 몇 차례 소개했는데요. 현재 포항제일교회를 담임하시는 박영호 목사님이신데요. 이 목사님이 ‘대한민국 목회자 포럼’이란 세미나에서 하신 강의가 유튜브에 올라와 있어서요. 살펴보게 되었는데요. 그런 얘기를 해요. 앞으로의 교회는 더 이상 성장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요. 돌봄에 집중해야 한다고요. 그래서 미래의 교회는 돌봄을 이루는 교회가 된다는 거예요.
사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러한 일을 해왔어요. 본래 목회라는 것이 단지 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것 외에도 교인들의 삶에 찾아가고 교인들의 삶을 돌보는 이른바 심방이 포함이 되어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분 얘기는 이래요. 그러한 전통적인 기능을 이제는 목회자 혼자서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행해야한다고요.
저는 그것과 관련해서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이 가르침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고린도전서 12장 25~27절을 다시 한번 같이 읽습니다.
고린도전서 12:25-27(신약 278쪽)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사도 바울은 교회를 몸에 비유해서 이야기하고 있어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몸이라는 것이지요. 서로 다른 모양과 능력을 지닌 각각의 지체가 함께 있는 것이 바로 교회인데요. 이러한 교회는 각자도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를 돌보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 또한 돌봄을 이루는 것임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이 돌봄이라는 것이 뭘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서 쓰인 돌봄이라는 말의 본래적은 뜻은 걱정하다는 말이에요. 달리 말하자면 이는 다른 이에게 마음을 쏟는 것이지요. 그래서 돌봄이라는 것은요. 다른 사람에 관심하고 그것에 마음을 쏟는 일이에요.
이것에 관해서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어요. 꼭 물질이 많아야 하거나, 건강해야하거나 능력이 출중해야하는 것은 아니에요. 때로는 안부전화 한 통이 누군가를 돌보는 귀한 일이 될 수 있고요. 그렇게 작고 사소해 보이는 관심이 모여지고 함께 웃고 울고 할 수 있는 관계를 이뤄가는 것이 귀한 돌봄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될 수 있어요.
이러한 돌봄이요. 단지 약한 지체들에게 해줘야하는 어떤 도움이 아니라요. 사실은 저와 같은 목회자를 포함해서요.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것이 돌봄을 이뤄가는 교회의 모습이에요. 누구나 삶에서 문제를 만나게 되죠. 그 문제를 위로받고 또한 그 문제 관해 함께 마음을 나눠주는 관계를 이룬다면요. 우리의 신앙생활은 보다 더 의미 있어질 것이고요. 훨씬 더 우리의 삶에 큰 울림을 줄 거에요.
문제는 대부분 교회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요. 감추고 살다보니까요. 비극적인 일들이 생기곤 하는데요. 정말로 열심히 사역을 하던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사역에 지쳐 탈진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죠. 속은 곪았는데, 그것을 나누고 그것을 위로해 줄 이를 교회에서 만나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는 오늘날의 교회가 돌봄의 기능을 잘 수행하지 못함을 말해줘요.
제가 미래를 생각하면서요. 저의 목회적 미래를 생각하는데요. 아직은 뚜렸하게 목회적 방향이 잡히지는 않는데요. 그런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어요. 언젠가 휴가를 이용해서 어떤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어요. 그 교회는 건물도 없고요. 이른바 평신도도 없었어요. 교회를 세운 몇몇의 목회자 부부가 주일에 함께 모여 예배하는 곳이었는데요. 물론 그 분들은 전통적인 목회자와는 달리 각자 평일에는 생업을하고 주일에 모여 함께 예배하며 교회를 이뤄가고 있어요.
그런데 참 놀라웠던 것이요. 마땅한 예배의 처소도 없고 우리 교회처럼 변변찮은 시설도 없지만요. 거기서 드리는 예배가 참 편안하다고 느껴졌어요. 정해진 예배의 순서를 따라 예배를 하면서요. 설교시간에 담당 설교자 말씀을 전하고요. 그 후에 말씀을 듣고 자유롭게 나눔을 가지는 거예요. 말씀에 관해 사전에 묵상을 하고 자신이 느낀 것에 관해서요. 우리가 공동체 모임하는 식으로 서로 얘기를 나눠요. 또 예배가 마쳐지면 함께 식당으로 가서 식사하며 교재하는데요. 교회가 이런 곳이었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교직원이니까요. 주일에 사실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일을 하는 경우가 많죠. 그러니 온전히 예배에 집중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요. 주일에 여러 민원을 처리하기도 해요. 가령, 주보에 오타라도 있거나하면, 그것에 관해 조정도 해야하고 때로는 그 일로 혼나기도 해요. 교직원으로써의 책임이 있으니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그런데 그와 같은 주일 계속 보내다보면,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하나도 기쁘지 않고요. 어서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커질때가 있어요. 참 불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교회가 일하는 공간이 되어 버려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성도들과 서로 교제하는 장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서 적어도 내가 미래에 담임 목회할 교회에서는 이런 부분을 어떻게라도 개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는데요. 사실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미래의 교회가 돌봄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에 관해서 의미있게 생각해 보게 돼요. 그것이 어쩌면, 저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해요. 저 또한 돌봄이 필요한 대상이고요. 저에게도 교회가 그저 일하는 터전이 아니라요. 하나님을 경험하고 서로 교제하는 참 편안하고 좋은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끝으로 한 분 이야기를 하고 설교를 마치려는데요. 변상호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세요. 현재는 전남 보길도라는 섬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데요. 원래는 이분이 캐나다에서 배타는 선원들을 섬기는 사역을 하셨고요. 주변의 한국 이민자들을 섬기며 목회를 했는데요. 주로 어른들을 돌보는 일을 했다고 해요. 우리로치면, 요양원의 센터장 같은 일을 하신 것 같아요. 그러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목회를 하기 위해서 섬으로 가서 사역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섬사람들이 대체로는 무속신앙을 가지고 있다보니 교회가 세워지는 것에 관해서 그렇게 환영하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이 목사님이 섬사람들에게 어떻게 가까이 다갈 수 있을까를 생각했는데요. 섬사람들 대부분이 어르신들이라서요. 처음에 한국에 사역으러 올때 가졌던 마음처럼, 교회에 전도하려 하기보다는 그분들을 잘 돌보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르신들의 집을 방문하면서 고장난 거 수리해주고 전등갈아주고 이렇게 어르신들의 필요를 돕는 일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희안하게도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혹시라도 이거 고쳐줬다고 교회오지는 말라고요. 정말 교회 오고 싶을 때 오시라고요.
자신이 어른들을 돌보는 일이 단지 전도의 수단으로가 아니라 정말로 어른들에 관한 관심과 사랑으로 나타나길 바라서였지요. 그런데 그와 같은 정성이 쌓이기 시작하니까요. 그렇게 교회에 오지 말라고 해도 오시는 분이 늘어나기 시작해요.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보통 교회에서는 커피 같은 거 나눠주면서 전도하는데, 자기는 커피 얻어 마시면서 전도한다고요. 그 섬사람들이 커피를 준다는 것은 그에 마음을 열었다는 좋은 신호이지요. 그래서 목회를 응원하는 주변 분들에게 그렇게 기도해달라고 해요. 앞으로도 더 많은 커피를 얻어 먹게 해달라고요.
제가 이 분의 이야기를 듣고서요. 스스로를 굉장히 돌아보게 된 것 같아요. 내가 목회자로써 교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되었고요. 과연 나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돌보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대해본 적이 있을까? 어쩌면, 그것이 하나의 전도 방법뿐이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다보니 누군가를 진심으로 살피기보다는 어찌보면 일로써 상대를 바라봤던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들었어요.
그런데, 교회가 어떤 곳이어야하지를 생각하면서요. 앞으로 교회는 더 이상은 많이 모이는 숫자를 자랑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와 같은 숫자가 교회의 건강함을 담보해 줄 수 없고요. 오히려 그와 같은 숫자로 인해서 우리는 서로에게 더욱 무관심해줘요. 그러면서 나만 예배 잘 드리는 것만을 추구하게 되었어요. 교회가 그와 같이 숫자 놀음을 하게 된다면요. 현재에도 많은 이들이 특히나 젊은 그룹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데요. 앞으로는 더욱더 미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미래에 교회는 참으로 서로에게 관심하는 돌봄이 필요한 공동체여야 할 것이라 생각해요. 상대를 어떤 수단을 이루기 위한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요. 순수하게 상대에게 관심함으로써 어지러운 세상을 사는 이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면서 고립되지 않도록 지켜주는 일을 앞으로의 교회가 해야겠다 생각해요.
바라건대, 오늘 우리 성도님들께서 모인 우리 교회의 모습이 이렇게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며 돌봄을 이루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진정으로 서로에 관한 관심을 통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귀한 공동체를 모두 함께 이뤄가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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