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말씀을 찾아서; 힐기야
믿음의 영웅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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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머리말
머리말
도입
도입
주변에 앉아 계신 분들과 인사 나누겠습니다.
따라하겠습니다. “잃어버린 말씀을 찾아서; 힐기야”
지난 주부터 우리는 믿음의 영웅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오바야에 이어 오늘은 힐기야입니다.
힐기야는 요시야 왕 때의 대제사장입니다.
힐기야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분깃”이라는 뜻입니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몫”, “얘는 하나님 꺼야.”이런 뜻입니다.
예전에 뜨겁게 신앙생활 하시던 어머니들이 아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 이 아들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면서 기도하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제 어머니도 제가 어렸을 적에 그렇게 기도하셨던 분입니다.
그 기도를 들으며 자랐고, 저도 그런 소망을 가지고
목사로 살겠다고 결단하고, 그쪽으로만 쭈욱 살아왔습니다.
힐기야와 힐기야의 어머니도 그랬나 봅니다.
그래서 이름도 힐기야, ‘하나님 꺼’라고 지은 것이고,
힐기야도 그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왔기에 성전을 수리하는 일,
성전 리모델링을 위해 일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직책이 대제사장이라는 것으로 보아
그의 나이는 이미 장년이었을 겁니다.
대제사장은 레위 제사장 가문 중 가장 높은 직책이기 때문에
충분히 나이도 있고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맡게 되거든요.
그렇다면 므낫세와 아몬 왕의 재위 동안에도
제사장으로 살아왔다는 건데,
우상숭배가 만연하고, 우상숭배의 문화가 가득한 세상에서
제사장으로 사는 것, 과연 그게 쉬운 일이었을까요? 아닐 겁니다.
하나님께 제사하고 예배하는 제사장으로 살기로
어려서부터 마음 먹었는데,
제대로 수행하지도 못하면서 나이만 먹어가고,
그러는 동안에 자기 존재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제사장이면 뭐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여러분, 그렇잖아요.
우리가 아이들을 낳아 기르면서 내가 가난해서
아이들 뒷바라지를 제대로 해주지 못할 때 드는 자괴감,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통해 선출된 임직자이긴 한데,
이런저런 이유로 직임을 감당하지 못할 때,
“아이고, 이름만 올려 놓고 내가 지금 뭐하는 거냐?”
할 때 드는 자괴감.
힐기야가 그런 자괴감에 빠져 있다가,
이제 요시야 왕이 즉위하고 성전을 고치고
예배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오랜 기간 눈물로 간구했던 기도가 이루어졌으니,
이제 그에게 맡겨진 사역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사명을 감당하고 싶었을 거예요.
오늘 여러분들이 바로 이같은 힐기야의 심정으로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논지
논지
힐기야는 요시야 왕 때의 대제사장입니다.
그는 성전을 고치는 과정에서 율법책을 발견하고 알립니다.
율법책이 성전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쭉 있었을 뿐인데,
발견했다고 말하는 이유를 통해,
‘나’라고 하는 성전에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고 점검하는 성답의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자, 힐기야 당시 성전과 율법책은 도대체 어떤 상태였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몸말
몸말
관리되지 않으면 기능하지 않습니다.
관리되지 않으면 기능하지 않습니다.
첫째로, 요시야가 즉위하기 전 오랜 세월 동안 예루살렘 성전은
거들떠보지 않는 방치 상태였습니다.
따라하겠습니다. “관리되지 않으면 기능하지 않습니다.”
관리되지 않으면 기능하지 않습니다.
요시야 전 므낫세의 55년, 아몬의 2년의 재위 시간은
예루살렘 성전이 망가져가는 기간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과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믿음은
사용하지 않으면 그 상태 그대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
조금씩 망가져 갑니다.
성전과 믿음은 사용하는 만큼 닳아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용하는 것이 관리하는 것입니다.
어르신들 중에서 무릎 관절 치환 수술을 한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평생 고된 일을 하느라 무릎을 많이 써서
연골이 다 닳아 없어진 분들이 이 수술을 합니다.
무릎을 비롯해서 우리가사용하는 많은 도구들도
오래 쓰면 대부분 닳고 닳아 망가지기 마련입니다.
반대로 안 써서 망가지는 것도 있습니다.
닦고 조이고 기름 치면서 쓰면 오랜 동안 잘 쓸 수 있는데,
내버려둬서 망가지는 것, 뭐가 있을까요?
대표적으로는 주택이나 건물이그렇습니다.
주택은 써서 망가지기도 하지만 안 써서 망가지기도 합니다.
사람이 살면 괜찮은데, 안 살면 빨리 여기저기 망가지더라고요.
사람들이 빈집에 쓰레기를 갖다 버리기도 하고,
괜히 가서 유리를 깨뜨리기도 하고요.
유리가 한 장 깨지기 시작하면
다른 유리도 금새 누가 와서 깨뜨립니다.
요시야가 왕 위에 오르기 전, 성전은 오랜 기간 빈 집 상태였습니다.
므낫세의 55년, 아몬의 2년의 재위 기간 동안
예루살렘 성전은 망가져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성전이 어느 정도로 망가졌느냐?
성전 마당까지 일월성신을위한 제단을 쌓았습니다.
성전이라고 해서 갔는데,
뜰 밖에서부터 우상을파는 자들이 가득하고,
뜰 안쪽으로 들어오면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음란하게 뒹굴고 있고,
거기를 지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제단에서
우상한테 바치는 제물이 줄을 서 있으니,
성전은 그 기능으로도, 존재로도 망가져 간 것입니다.
무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망가져 가듯이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성전은 성전일 수 없고, 망가져 갑니다.
단지 건물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성전으로서의 우리 존재도 그렇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3:16)
성경은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성전이라고
선명하게말하고있습니다.
그렇다면저와여러분들의존재자체가성전답게,
성전으로쓰여야하는겁니다.
겉보기에는분명하나님의성전같아보이는데,
실상우리의마음에는하나님이아닌내 욕심과내 생각만가득하면
망가지고훼손된성전꼴이되는거예요.
사람이 살면서 관리를 하고, 가꾸고, 사용해야
집이 편하고 좋은 것처럼,
우리의 존재 또한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경건 훈련, 영성 훈련을 하고, 복음에 합한 삶을 살아야,
결정적인 때에 우리의 믿음이 믿음으로 기능을합니다.
죄와 싸울 용기를 내고, 죄의 유혹을 뿌리치고,
불법에 대하여 저항하는 믿음은
평범한 우리의 일상이 하나님의 성령이 계시는 성전이어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요시야는 성전에 부서진 것을 수리하게 합니다.
때때로 우리의 믿음도 부서진 것처럼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작동하지 않는것처럼, 유혹에 넘어가고,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죄를저지르고
뻔뻔하게 아닌 척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 있어요.
그러나 그냥 내버려둬서는 안 됩니다. 부서진 것을 수리해야지요.
여러분, 요즘 여러분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부서진 곳이 있다면 고치시기 바랍니다.
작동하지도 기능하지도 않는것 같으면,
매일 경건의 훈련으로 기름 치고, 닦고 조여야 하고요.
바라기는 매일 믿음으로 기도하고 말씀에 순종함으로
성전으로서의 일상을 살아가는 성답의 온 교우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읽지 않는 말씀은 없는 것입니다.
읽지 않는 말씀은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율법책을 성전 밖에 어딘가로 가져갔던 게 아닙니다.
쭉 성전 안에 있었습니다. 다만, 보는 사람이 없었을 뿐입니다.
따라하겠습니다. “읽지 않는 말씀은 없는 것입니다.”
읽지 않는 말씀은 없는 것입니다.
힐기야가 율법책을 발견한 곳은 성전입니다.
율법책이 성전에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오히려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게 이상한 일입니다.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율법책을 찾지 않고 말씀을 듣지 않았다는 반증입니다.
8절입니다. (o)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왕하 22:8)
성전보수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대제사장이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했다고 말합니다.
이걸 요즘 우리 상황에맞춰 다시 말하자면,
교회 예배당 보수 공사를진행하다가
담임목사가예배당에서 성경책을 발견했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우와! 여기 성경책이 있어!
우와! 어떻게 여기에 성경책이있을 수 있지?”이러는꼴입니다.
당연한 거 아닌가요?
예배당에서 성경책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게 이상한 거 아닐까요?
우리 예배당에서금강경, 천수경, 반야심경같은불경이발견된다면
그게 뉴스가 되는것이고,
저기 종로의 조계사대웅전에서성경책이발견되면
그게 뉴스가 되는거지,
교회에서 성경책이, 절에서불경책이발견되는건당연한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대제사장힐기야는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했다고떠들썩한데,
뭔가 잘 못된거아니냐고요.
어떻게 성전에서 율법책이발견된걸가지고
이 난리일 수있는걸까요? 왜 이런일이일어난걸까요?
잘 생각해보세요.
성전에 율법책이 없다가갑자기불쑥튀어나온게아닙니다.
율법책이 어디에 갔다온게아니라는말입니다.
율법책은 원래부터 거기있었어요. 쭉 거기있었습니다.
단지, 대제사장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이,
날마다 율법책을 읽고연구하고가르쳐야했던자들과
그 율법을 준수하며살아왔어야하는백성들이
율법책을 찾을 생각을하지않고, 읽을 생각을하지않고,
마음에 새기지 않았을뿐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성전에말씀이없었던것이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말씀이없었던것입니다.
요즘에는 성경책대신스마트폰에성경앱을깔고있기때문에
심방을 가면 스마트폰을꺼내오는경우가많습니다.
하지만 몇 해전만해도성경은성경책으로보던때가있었어요.
한번은 심방을 갔는데,
예배를 드리자고 하니까성경책을가져오시더라고요.
그런데 성경책이 새색시얼굴처럼뽀얗게,
먼지가 잔뜩 쌓인게보이는겁니다.
그 성경책이 거기얼마나오랫동안있었는지…
이분보다 더 목사를당황하게만드는분은
성경책을 못 찾아오는분입니다.
성경책이 집 어디에있는지를몰라…
이런 분들을위해서스마트폰이나온게얼마나다행입니까?
성경책 찾아오지 못하거나,
먼지 뽀얀 성경책가지고올일없으니말입니다.
이 얘기를 했더니어느분이그럽니다.
스마트폰에서 성경 앱찾는데도한참걸리는사람이있다고요.
에이, 그래도매주일주일예배때, 성경을 볼텐데
설마 그런 분은없겠지요.
여러분, 가까이두고자주들여다봐야하는것,
거기에 성경책은 반드시들어갑니다.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하지않으면,
정작 우리의 심령가운데말씀이필요할때발견할수없는거예요.
정작 우리의 심령가운데말씀이필요할때읽을생각조차못해요.
단지 성경책 얘기가아닙니다.
말씀이 우리 가슴에, 저와 여러분의사고와생각에
새겨져야 하는 거아닌가요?
꽃 좋아하시는분들집에가보면,
과연 그 집에서꽃보기가희귀할까요? 아니요.
보통 그런 집은방방마다, 도처에 꽃과화분을두더라고요.
베란다에 발 디딜틈이없도록화분을키우기도합니다.
지금 우리교회에서는성경읽기를강조하고,
같이 읽어 나가고있습니다.
아마도 올해 1독하는분들이더많을것같습니다.
잘 하시는 겁니다. 1독 완독도중요하고,
그와 함께 다양한방법으로읽는훈련도필요합니다.
기회가 닿는 대로참여하셔서
여러분들 내면에 늘말씀이자리잡고있기를바랍니다.
바라기는 저와여러분의일상중에, 삶의 자리마다, 마음 가운데
말씀이 자리잡아 고개만돌려도, 어느 곳을보더라도
말씀이 보이지 않는곳없기를간절히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행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입으로 읽고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따라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행하는 것입니다.
요시야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지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습니다.
율법책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과 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듣지 않았다는 것은 단지 귀로 듣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실천되지 않으면 잃어버립니다.
본문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진노가 크도다 (왕하 22:13)
성전에서 발견된 말씀에 대해 전해들은 요시야는
이 민족이잘못한두 가지를말합니다.
첫째는말씀을듣지않았다는것이고,
다른하나는말씀에기록된것을행하지않았다는것입니다.
본문에서듣지않은것과행하지않은것,
두 가지로말하고있긴하지만,
사실이건한 가지를말하는것입니다.
본문에서 ‘듣지 아니하며’할 때에,
‘듣는다’로 번역되는 히브리어를여러분들도 아실 겁니다.
‘쉐마’라고 들어보셨지요? 쉐마가 뭡니까? (o)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4,5)
신명기 6:4,5을 ‘쉐마’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을쉐마라고하는이유는이 구절을히브리어로읽으면
“쉐마 이스라엘”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솨마([m'v;): 듣다, 경청하다, 순종하다
쉐마의 원형은 ‘솨마’이고, 솨마의 뜻은
듣는다, 경청한다라는 뜻도 있는데,
그와함께아주중요한뜻이바로‘순종한다’입니다.
귀로만듣고끝나는것은의미가없어요. 안 듣는 것만 못합니다.
들으라고말하는이유는듣고끝나라는얘기가아니라
듣고따르라, 듣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아이들 키우면서
잔소리를 한바탕 쏟아놓은 적이 다들 있으실 겁니다.
“건널목 건널 때, 뛰어가지 말고,
왼쪽 오른쪽 다 살피고, 손들고 건너는 거야. 알았지?”,
“집에 오면 손부터 씻고, 숙제하고,
그리고 나서 노는 거야. 알았지?”,
“절대로 거짓말은 하면안 되는 거야. 알았지?”
그렇게 가르쳤는데,
건널목에서 파란불 켜졌다고 후다다닥 뛰쳐 나가고,
집에 와서 숙제는 뒤로 하고 놀기 바쁘고,
거짓말 한 게 걸리면, 그때 뭐라고 야단치나요?
“너, 왜 엄마 말 안 들어?” 엄마가 하지 말라고 헀어? 안 했어?”
아이가 엄마 말을 안 들었습니까?
아니요. 듣기는 들었어요. 다만 귀로만 들었을 뿐입니다.
아이는 분명히 들었는데,
엄마는 왜 엄마 말 안 들었냐고 야단을 치는 건가요?
엄마가 야단을 치는 이유는 아이가 귀로만 듣고
순종하지 않은 걸 야단치는 거잖아요.
이스라엘의 문제도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오랜 기간 우상숭배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도 듣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더 큰 문제, 더 본질적인 문제는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라고 한 것은 했다는 것입니다. 불순종입니다. (x)
네가 듣고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왕하 22:19b)
요시야는 자기 민족이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알고, 하나님 앞에 겸비하여 옷을찢고통곡을합니다.
겸비했다는것은무릎을굽힌다는거예요.
저는 요시야가 왜 자기를 낮추고 옷을 찢고 통곡을 했는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우리 아이들이 내가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다 말해주고 가르쳤는데도 불구하고
알면서 안 한다면 어떨까요? 더 괘씸하겠지요?
아마 더 크게 야단쳐야 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요시야는 이스라엘 민족이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이 뭔지
알면서도 어겼기 때문에, 더 철저하게 겸비하여 회개를했던 겁니다.
그러면 우리도 마찬가지겠지요?
내가 하나님의 뜻을알면서도 따르지 않은 것,
하나님의 말씀이 뭔지 알면서도 내 뜻대로 하려고 했던 것,
겸비하여 철저하게 회개함이마땅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뭔지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늘 그래왔으니까, 그렇게 했어도 어떤 벌도 받지 않았으니까
괜찮겠지 했던 것이 있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고 자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꼬리말
꼬리말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잃어버린 말씀을 찾아서; 힐기야
관리되지 않으면 기능하지 않습니다.
잃지 않는 말씀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행하는 것입니다.
따라하겠습니다.
관리되지 않으면 기능하지 않습니다.
잃지 않는 말씀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행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심령과 일상 가운데
성경책은,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에 있습니까?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는 아닙니까?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서 풍성하게 발견되고,
여러분의 일상이 말씀 가운데 자리하여
살아있는 말씀의 능력을 발휘하며 살아가는
성답의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위탁의 말씀
위탁의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휴대폰과 책상과 침대에 두십시오. 읽고 살아내십시오.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명령하옵소서. 제가 행하겠나이다.
